< 제127장 - 내일 >
제127장 - 내일
솔라리의 헤일로가 아름답게 회전했다.
태양의 신위가 발하는 찬란한 황금의 빛 아래 분홍색 머리칼이 넘실거렸고, 하늘을 닮은 푸른 눈동자가 세상을 직시했다.
페어리 퀸의 드레스는 이미 너덜너덜했다.
여기저기 찢어진 곳 투성이에 피와 땀에 젖어 지저분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지적할 수 없었다.
활짝 펼쳐진 여덟 장의 광익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솔라리의 계승자.
플레이아데스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대천사.
제대로 된 탄생이 아니었다.
아무리 전생의 모든 경험들을 이어받았다 할지라도 치천사였던 존재가 단번에 대천사로 승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솔라리.”
코델리아가 솔라리의 힘과 의지를 온전히 이어받았다.
그녀의 신위를 계승했다.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태양의 대천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우리엘은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랬기에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코델리아의 계승을 강탈로 받아들였다.
“어디까지 솔라리를 더럽힐 셈이냐.”
그 아이의 것을 얼마나 더 빼앗아야 직성이 풀린다 말이냐!
어긋난 분노였다.
하지만 아우리엘은 그런 것을 인식할 수 없었다. 격노한 대천사의 등 뒤로 열두 장의 광익이 활짝 펼쳐졌고, 어마어마한 힘이 발산되었다.
실로 강대했다.
이제 갓 태어난 대천사인 코델리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밀려나지 않았다.
날개의 장수만으로도 이미 격의 차이가 현저했지만 아우리엘의 격노 앞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코델리아의 곁에 선 자.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
유더가 표표한 칠흑의 기운을 발산하며 아우리엘의 격노를 정면에서 받아냈다.
오만한 독선이 코델리아를 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구천구문.
아홉 개의 세상은 곧 모든 세상을 의미했다.
필멸자로 태어난 이가 하나씩 문을 열어 나감에 따라 종의 한계에 도달하고, 마침내 그 한계를 넘어 진정한 초월자로 거듭나는 것이 구천구문의 목적이었다.
란디우스가 과거 지적한 것처럼 그것은 무공이라기보다는 구도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단순히 강해지는 것만으로는 결코 아홉 번째 문을 열 수 없었다.
천무지체를 타고났다 하여도 아홉 번째 문을 여는 것은 기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더는 그것을 이루었다.
한 발 한 발 나아간 루카스가 지평에 닿았던 것처럼.
첫 번째 유더가 모진 시련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두 번째 유더와 코델리아가 말했다.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알고 있어,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세 번째 유더는 자신의 종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음의 유더와 코델리아를 생각했다.
언젠가 코델리아와 함께 살아가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자신을 꿈꾸었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똑같아. 반드시 너를······.”
네 번째 유더가 말했다.
다섯 번째 유더와 코델리아가 다짐했다.
단 하나의 기적을 바라는 것을, 단 하나의 소망을 남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그들 모두가 유더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들 모두가 유더를 앞에서 이끌어주었다.
지평너머로,
저 한계를 넘어-
오직 하나뿐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
[후대는 정말 끈질긴 남자에요.]
벨렌시아가 말했다.
유더는 웃으며 그녀를 받아들였다. 다시 한 번 아름다운 요정의 검과 하나가 되었다.
유더의 손끝에서 검이 만들어졌다.
소드 오리진의 정수.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요정검 벨렌시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검.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겠다.”
너희가 멋대로 플레이아데스를 휘젓는 것을.
너희의 편의를 위해 플레이아데스를 유린하는 것을.
유더의 손등에서 황금의 용왕의 문장이 그 빛을 발하였다.
먼 곳에서부터 야생의 땅을 지키는 자가 자신의 힘을 보내주고 있었다.
“대천사 아우리엘.”
몇 번이나 거듭하여 플레이아데스를 멸망시킨 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다시 한 번 플레이아데스의 멸망을 초래하려는 자.
회귀가 아니었다.
그녀의 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플레이아데스라는 세계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하찮은 것이!”
아우리엘이 노성을 터트렸다.
그녀는 플레이아데스의 존재들을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다.
솔라리와 같은 시선을 가진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불가능했다.
“너희를 심판하리라!”
아우리엘이 심판의 검을 들어올렸다. 황금의 파문을 크게 일으키며 유더에게 돌진했다.
유더는 그런 아우리엘에게 마주 달려 나갔다.
요정검 벨렌시아로 파문을 베었고, 허공에서 칠흑의 용들을 소환하였다. 아홉 마리의 흑룡들이 아우리엘을 향해 맹진했다.
쾅! 쾅! 쾅!
아우리엘이 흑룡들을 베었다.
열두 장 광익으로 세상을 뒤흔들었고, 심판의 검이 세상 그 자체를 찢어발길 기세로 휘둘러졌다.
유더는 그것을 보았다.
아홉 마리의 흑룡들이 분쇄되는 그 순간 가볍게 지면을 박찼다.
천하삼십육보.
방위를 이해한다.
질풍이십사보.
거리를 이해한다.
신뢰십이보
방위를 지우고, 거리를 지우고, 결국 남는 것은 출발점과 도착점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 한 걸음.
천둔구보.
세상을 이해한다.
유더가 사라졌다.
아우리엘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블링크조차 초월한 공간 도약이었다.
요정의 발걸음을 아무런 제약 없이 펼친 것과 같았다.
아우리엘이 급히 반전하며 심판의 검을 휘둘렀다.
지평에서 나고 자란 자의 검답게 검리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유더는 알 수 있었다.
지평 너머를 보았기에 지평에 선 자의 검조차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절대검리.
요정검 벨렌시아가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그것만으로 아우리엘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단 한 수였지만 그 순간 아우리엘은 깨달을 수 있었다.
검으로 유더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수를 써야 했다.
이제 막 탄생한 미숙한 신이기에 유더는 아우리엘 자신보다 검술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
그러니 검술 외의 것으로 승부한다.
현격한 격의 차이로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을 찍어누른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
아우리엘의 광익들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어마어마한 신력을 발산해 유더를 밀어냄과 동시에 열두 장의 광익들이 저마다 다른 권능을 발하였다.
유더는 그것을 보았다. 아우리엘의 사방에서 흑룡들을 소환해 돌진시킴과 동시에 의식을 집중했다.
아우리엘의 권능들이 자신을 덮치는 그 순간마다 천둔구보를 펼쳤다.
부수고 으깨고 무너트린다.
물질붕괴.
공간소멸.
신벌의 번개와 공간단열.
하나의 권능이 발현될 때마다 세상이 진감했다.
플레이아데스 그 자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코델리아는 그 모든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우리엘의 등을 향해 빛의 폭풍을 돌진시키는 대신 태양의 신위를 발하였다.
처음 다루는 진짜 신의 힘이었지만 코델리아는 역시 코델리아였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힘을 조율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체이스 백작이 유더에게 주었던 엘릭서.
그 어떤 상처와 부상이라도 단 한 번은 치유할 수 있는 그것.
촉매로 사용하였다.
여덟 장의 광익을 활짝 펼치며 발산한 태양의 빛에 엘리서의 힘을 담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생명을 불어넣었다.
“커헉!”
스칼렛이 피를 토했다.
그리고 숨을 이어나갔다. 가슴에 박힌 심판의 검을 뽑아내며 아프다고 욕지거리를 토했지만, 그녀는 목숨을 잃지 않았다.
코델리아의 빛을 받은 카이사 역시 신음을 삼키며 일어섰다.
아델라이데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숨쉬기 시작한 태양노래를 보며 붉은바람이 오열했다.
태양의 빛은 멀리까지 닿았다.
조금이라도 생명의 기운이 남아 있는 자들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웠다.
“버러지들이!”
다시 제도를 채우기 시작한 생명들을 느낀 아우리엘이 빛으로 된 깃털들로 주변을 가득 채웠다.
천사들을 소환하여 또 다시 생명을 거두려 하였다.
이미 탄생했던 천사들이 아우리엘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코델리아도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용납하지 않았다.
“뭐가 사랑이야!”
대체 뭐가 복수란 말이야!
솔라리가 사랑한 세상이야.
솔라리가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야.
너는 지금 그 모두를 파괴하려 하고 있어.
솔라리가 스스로의 목숨까지 희생해가며 이룩한 일들을 짓밟고 있어!
사랑이 아니야.
집착이야.
독단과 독선으로 솔라리를 재단하고 그녀가 한 모든 일들을 부정하고 있어.
무가치한 일이라며 깎아내리며 너만의 정의를 강요하고 있어.
솔라리는 이런 것을 바라지 않아.
그녀는-
모두를 사랑했던 그녀는-
“네가 무엇을 안다고!”
아우리엘이 노성을 터트렸다.
천상이 열린 이래 태어난 모든 천사들 가운데서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가 터트리는 분노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 노여움만으로도 세상의 일부가 뒤틀리고 부서졌다.
하늘과 땅이 아닌, 세상 그 자체가 비명을 질러댔다.
“어째서, 어째서 그 아이가!”
이런 세상 따위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버러지들이 죽어나가든 말든 동정심을 갖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
왜.
그 아이가!
“그것이 솔라리의 선택이었으니까!”
코델리아는 광익을 펼쳤다. 솔라리의 헤일로을 회전시키며 아우리엘을 노려보았다. 무의미한 논쟁을 펼치는 대신 마찬가지로 분노를 발산했다.
“사람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플레이아데스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저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무수히 많은 그들 각자의 이야기들.
몇 번이나 그 모두를 짓밟았다.
몇 번이나 모두의 삶을 부정했다.
이제는 참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 모든 짓거리를 용납할 수 없었다.
“쳐라! 쳐라! 막 쳐라!”
빛의 폭풍이 일었다.
14만 4천개의 광구들이 하늘을 뒤덮었고, 그대로 휘몰아치며 천사들과 아우리엘을 집어삼켜버렸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천사로서 명하였다.
계약자로서 계약의 이행을 요구하였다.
“정령왕 펀치!”
하늘이 갈라졌다.
핏빛의 하늘을 찢고 번개와 폭풍의 정령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황금의 거인이 기꺼운 웃음을 터트렸다.
빛의 폭풍 한 가운데를 향해 거대하고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굉음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어마어마한 폭발과 충돌이 제도 전체를 뒤흔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아우리엘이 비명을 질렀다.
수백을 넘어 일천에 달하던 천사들이 빛의 폭풍과 폭발로 인해 모조리 소멸하였다.
심판의 검을 들고 지상에 섰던 대천사가 처음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비록 세상 간 이동에 많은 힘을 소진하였다 할지라도 아우리엘은 천계의 대천사들 가운데 가장 강한 자였다.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온 천상의 신이었다.
번개와 폭풍의 정령왕을 노려보며 심판의 검을 들어올렸다.
핏빛의 하늘 너머로부터 거대한 심판의 검을 불러내었다.
콰가가-!
정령왕을 향해 거대한 빛의 검이 쏟아져 내렸다.
정령왕은 사나운 웃음을 터트리며 빛의 검을 받아냈다. 스스로를 폭발시켜 아우리엘이 천상으로부터 불러낸 심판의 검을 파괴하였다.
콰가가가강!
제도의 하늘에서 몇 번이나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수백 조각으로 부서진 심판의 검이 마치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보며 아우리엘이 광소를 터트렸다.
미쳐버린 천상의 신이 거친 숨을 토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미 대의명분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역사를 순리대로 되돌리기 위해.
천상의 운명을 제멋대로 유린한 어린 신 아탈리아를 징벌하기 위해.
지옥의 악마들과 싸울 전장을 만들기 위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심판의 대천사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맹목적인 증오를 발산할 뿐인 파괴의 신이었다.
유더가 다시 천둔구보를 펼쳤다.
잠시나마 절대검리로 아우리엘을 밀어붙이며 생각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보다 월등히 오랜 시간 동안 신격을 길러온 아우리엘이었다.
단순한 소모전으로는 이쪽이 먼저 거꾸러질 따름이었다.
그러니 시간이 필요했다.
아우리엘을 쓰러트리기 위한 단 하나의 수를 준비할 시간이.
하지만 대체 누가 미쳐버린 신을 막아선단 말인가.
이미 신들의 격전이 된 이 싸움에 끼어들 수 있단 말인가.
“강철의 마음, 불굴의 의지, 천하무쌍의 육체.”
호기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멸자의 몸으로 감히 신들의 싸움에 난입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사납게 웃었다.
세계의 적을 주시하며 태양신의 검을 들어올렸다.
솔라 블레이드.
솔라리가 이 세상을 사랑했다는 증거.
그녀가 최후까지 플레이아데스의 모두를 지키고자 했다는 상징.
“우오오오오오오!”
란디우스가 구극태양신공의 힘을 발산했다.
개벽의 검으로 아우리엘을 공격했다.
“버러지가!”
아우리엘은 란디우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개벽의 검이 담고 있는 태양의 힘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콰강!
개벽의 검과 심판의 검이 충돌했다.
그 충돌의 여파만으로 세상이 뒤집혔고, 솔라 블레이드를 움켜쥔 란디우스의 육신이 부서져 갔다.
하지만 란디우스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나마 아우리엘을 밀어붙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함께 일어서는 자들이 있었다.
루카스의 손에서 클라우솔라스가 빛났다.
카마엘이 설화십이검의 오의를 펼쳤다.
프란이 목 놓아 노래하며 모두의 힘을 북돋았고, 벨키안이 죽음의 마력으로 아우리엘을 방해했다.
그리고 레나가 손을 뻗었다. 란디우스의 등을 받쳐주었다. 부서지는 그의 육신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아우리엘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서지지 않는 필멸자의 모습에 당황했다.
심판의 검 너머로 란디우스를 보았고,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란디우스의 등 뒤로 떠오른 태양이 핏빛의 하늘을 밀어내며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코델리아였다.
그녀가 태양의 신위를 발하였다.
그 어떤 절망과 어둠도 끝내 걷어내고 말 태양을 이 땅에 소환하였다.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이해했다.
자신의 태양이 칠흑이었던 이유.
분명 태양의 힘을 발함에도 불구하고 카마엘의 설화십이검을 온전히 익힐 수 있었던 이유.
극한.
그것이 유더 자신이 타고난 힘이었다.
그렇기에 유더는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으로서 모든 것을 정리하였다.
억지로 검은 태양의 힘을 사용하는 대신 자신의 진정한 힘을 일깨웠다.
검은 달.
극한의 힘을 품은, 황금빛 태양인 코델리아와 짝을 이루는 유더 자신의 본질.
깍지 낀 손 사이로 태양과 달의 힘이 하나가 되었다.
극양과 극한이 하나 되어 무궁무진한 힘을 탄생시켰다.
아우리엘이 그 힘을 느꼈다.
전력을 다해 란디우스를 밀어냈다. 광익을 흩뿌려 주변의 필멸자들을 모조리 날려버린 뒤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다.
태양과 달.
두 사람의 맞잡은 손끝에서 완성되기 일보 직전이 그것을 향해 심판의 검을 휘둘렀다!
촤라락!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 쇠사슬이 아우리엘의 팔을 휘감았다. 감히 신의 행보를 방해했다.
카이사와 스칼렛이 함께 쇠사슬을 잡고 있었다. 붉은바람이 피닉스의 힘으로 쇠사슬을 감싸 잠시나마 대천사를 붙들 수 있게 하였다.
“쏴!”
루카스가 외치며 성왕십자검을 펼쳤다. 쇠사슬을 타고 역류하는 아우리엘의 힘을 끊어냄과 동시에 폭발시켰다.
그리고 직후.
바로 그 순간.
아우리엘은 정면을 보았다.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다.
강하게 맞잡은 두 사람의 손끝에서부터 두 개의 신위가 하나 되는 것을, 그리하여 신멸의 힘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우리엘이 뒤늦게나마 파문을 발했다.
신멸의 힘은 너무나 거대했다. 힘을 자아내고 있는 유더와 코델리아에게조차 막대한 타격을 입힐 지경이었다.
그러니 비틀 수 있다.
어그러트려 자멸시킬 수 있다.
파문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덮쳤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무너지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신멸의 힘을 견뎌냈다.
아니,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첫 번째 유더가 미소지었다.
두 번째 유더와 코델리아가 행복하게 웃었다.
지나간 시간 속의 모두가 유더와 코델리아의 등을 받쳐주었다.
콰가가-!
두 사람의 목에 걸려 있던 요정왕의 목걸이가 동시에 부서졌다.
신멸의 힘의 여파를 대신 받아낸 그것이 흩어졌고, 정면에서부터 다시 파문이 일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 신멸의 힘이 거대한 빛의 구가 되어 돌진했다!
“우오오오오오!”
지금의 두 사람이 있기까지 이어진 모든 순간들.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다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기적!
“가라!”
란디우스가 소리쳤다.
루카스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기원했다.
콰가가가가가가-!
신멸의 빛이 파문을 깨트렸다. 발악하듯 뻗어 나온 아우리엘의 광익을 사르며 그대로 맹진했다.
멸망을 막기 위해.
어제와 다른 내일을 손에 넣기 위하여.
신멸의 빛이 아우리엘을 집어삼켰다.
새로운 미래를 이끌었다.
< 제127장 - 내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