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56화 (356/473)

< 최종장 - 엔딩메이커 (유더와 코델리아 일러스트 포함) >

최종장 - 엔딩메이커

빛이 부서졌다.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아우리엘은 텅 빈 눈으로 정면을 보았다.

신성이 파괴된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태양의 신위를 느꼈다.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았던 아이의 흔적을 놓치지 않았다.

“솔라리.”

아우리엘은 눈을 감았다.

중심에서 일어난 균열은 전신으로 퍼졌고, 대천사의 육신은 시작의 빛으로 돌아갔다.

약속된 멸망과 함께 사그라졌다.

&

천상에 억류되어 있던 라구엘은 눈물을 흘렸다.

맏이의 죽음에 오열했다.

하지만 그녀는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다.

증오와 분노를 발산하지 않았다.

아우리엘의 잘못이 너무 컸다.

아무리 망가진 상태라고는 하나 그녀는 제도에 강림하여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그렇기에 라구엘은 그저 슬퍼할 따름이었다.

아우리엘에게 있어 솔라리의 대신이 되지 못 한 스스로를 원망할 뿐이었다.

“아우리엘.”

라구엘은 아이처럼 울었다.

눈물을 멈추지 못 했다.

&

핏빛 하늘이 걷히고 있었다.

밤을 부르듯 무겁게 세상을 짓누르던 보랏빛이 흩어지며 하늘이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하아··· 하아··· 하······.”

루카스는 거친 숨을 토하며 클라우솔라스를 늘어트렸다.

스칼렛과 카이사는 쇠사슬을 움켜쥔 자세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붉은바람은 넋 나간 얼굴로 눈을 깜박이다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이겼다.”

프란이 말했다.

너무 힘들고 지쳐 바닥에 드러누운 그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

벨키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로 거듭난 덕분에 회춘한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일어서지 못 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이었다.

카마엘은 미소지었다.

언제나 차갑다고 알려진 그였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한숨을 쉬었고, 검을 늘어트리더니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레나가 웃었다.

진즉에 주저앉은 그녀는 산처럼 우뚝 선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란디우스.”

우리의 태양.

그는 숨을 깊이 삼켰다.

솔라 블레이드를 거머쥔 손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축 늘어질 따름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란디우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기적을 일으킨 자들을 돌아보았다.

유더와 코델리아.

두 손을 꼭 마주잡은 두 사람은 쓰러질 때도 함께였다. 동시에 주저앉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었고, 그렇게 서로를 돌아보더니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입술을 맞추었다.

그 모습에 란디우스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내일이 바뀌었다.

약속된 멸망을 막아냈다.

이제 새로운 미래가 시작될 터였다.

하지만 한 차례 입술을 맞춘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겠어?”

“조금 도와주면?”

코델리아는 장난스럽게 말한 뒤 태양의 신위를 발동시켰다.

바닥난 힘을 모으고 모아, 정말로 라이프 드레인까지 사용해 유더의 힘까지 흡수하여.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태양이 떠올랐다.

아침의 영광과도 같은 그것은 제도 전역을 비추었고,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생명의 빛을 나눠주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아름다운 빛이었다.

석양과 함께 저무는 빛이 아닌, 코델리아처럼 씩씩한 여명의 빛이었다.

모두는 그 빛을 바라보았다.

루카스를 비롯한 모두의 얼굴에 다시 한 번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조금 달랐다.

있는 힘껏 최고의 미소를 지어보인 두 사람이었지만, 이내 숨을 고르고 서로를 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스모데우스.”

유더와 코델리아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

어린 신 아탈리아는 머나먼 제도의 하늘을 보았다.

그녀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지옥의 대군주들은 물론이고 천상의 대천사들조차 그녀가 했던 것처럼 삼계의 기록을 이어 붙이는 일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무력했다.

아직 어린 신인 것도 있었지만, 이어 붙이기를 반복한 끝에 플레이아데스라는 세계의 힘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어린 신 아탈리아 자신도 무척이나 마모되어 이제 작은 기적 하나 조차 일으킬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이어진 시간동안 유더를 지켜봐온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유더가, 그리고 코델리아가 어떠한 선택을 내릴지.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유더 바이엘.”

코델리아 체이스.

플레이아데스에게 내일을 되찾아준 두 사람.

어린 신 아탈리아는 더 이상 참지 못 했다.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

[지옥과의 연결로가 만들어졌어.]

서쪽 숲의 마녀는 알 수 있었다.

아우리엘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플레이아데스는 물론이고 천계와 지옥 역시 요동치고 말았다.

그리고 아스모데우스는 그 요동침을 이용하였다.

지옥과 플레이아데스 사이에 연결로가- 일종의 터널이 만들어졌다.

푸른 하늘 너머에 열리기 시작한 지옥의 문은 아직은 작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지옥의 문을 통해 지옥의 힘을 계속해서 발산했다.

[사방의 군세가 강해지고 있어.]

아우리엘은 쓰러트렸다.

플레이아데스를 증오하는 대천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당초 사방의 군세는 아우리엘과 무관한 자들이었다.

지옥의 문을 통해 지옥의 힘을 받은 그들은 계속해서 강해졌고, 플레이아데스의 모두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노도가 그림자 숲에 들이닥쳤다.

게일과 아델리아가 별의 검성 무수를 대신하여 필사적으로 게오르그에 맞섰다.

칠살검 세류의 눈앞에서 신속검 세바스찬이 무너졌고, 점점 더 강대해지는 악마의 힘에 라이카 왕녀가 비명을 질렀다.

체이스 백작이 피를 토했다.

재의 여인을 정면에서 대적하던 바이엘 백작의 기세가 점점 더 약해져 갔다.

아스모데우스는 교활한 자였다.

그는 아우리엘처럼 굳이 나서려 하지 않았다.

지옥의 문을 통해 사방의 군세를 강화한다.

대천사조차 쓰러트린 플레이아데스의 용사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사방의 군세가 목적을 달성하기를 기다린다.

그림자 숲을 휩쓸고, 북부를 폐허로 만들고, 왕도로 진군한 마물들이 남부를 불바다로 만들고.

대환란을 초래한다.

통곡과 비탄으로 플레이아데스를 가득 채워 다시 한 번 대소환을 일으킨다.

그러니 지옥의 문을 닫아야 했다.

사방의 군세에 더해지는 힘을 끊고, 그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라.]

문을 부수거나 닫는다고 끝나지 않았다.

저 문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아스모데우스였다.

밖에서 닫으려 하면 안에서 다시 열 것이 분명했다.

저 문을 당장에 닫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서쪽 숲의 마녀는 몸을 돌렸다.

세일룬 왕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명공 카시우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

“방법은 하나 뿐이야.”

유더가 말했고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닫는다.

안과 밖에서 동시에.

그리고 안에서 다시 문을 열지 못 하도록 만든다.

“그 말은 설마······.”

루카스의 물음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나와 코델리아가 지옥의 문 안으로 들어갈 거야. 안에서 문을 닫고, 아스모데우스가 다시 문을 열지 못 하게 하겠어.”

유더의 말에 루카스는 말을 잃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흥흥 거리며 말했다.

“다시는 플레이아데스를 노리지 못 하게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지. 아주 혼내줄 거야.”

코델리아의 미소는 언제나처럼 밝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모두는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코델리아가 방금 말한 것처럼 지옥의 문 너머에는 아스모데우스가 있었다.

심판의 대천사 아우리엘과 동급인, 그녀의 오랜 맞수인 지옥의 대군주가.

루카스는 이를 악물었다. 숨을 깊이 삼키더니 결연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가겠어.”

“안 돼, 방해야.”

유더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코델리아 역시 그러했다.

단칼에 루카스를 거절한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저 안은 지옥이야. 플레이아데스와는 달라. 아우리엘과 싸우느라 기력이 모두 쇠한 너는··· 그리고 모두는 저 안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 할 거야.”

명백한 사실이었다.

루카스를 비롯한 모두는 너무나 지쳤다.

아우리엘과의 싸움에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모두는 영육에 큰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포션을 마시거나 회복 마법을 사용한다 하여 쉬이 치유될 것이 아니었다.

“스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더의 말에 란디우스는 침음을 삼켰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들 가운데서 사실 가장 부서지고 망가진 것은 란디우스였다.

필멸자의 몸으로 신들의 격전 한복판에 뛰어들어 미쳐버린 신을 상대한 대가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신위를 얻은 유더와 코델리아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란디우스는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었다. 저 불을 다시 키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핑크폭탄. 그렇다고 너희 둘만······ 이번에도 너희 둘이서만······.”

스칼렛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 했다.

전생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코델리아가 미소를 머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랬다.

언제나, 몇 번이나, 최악의 위기 때마다 두 사람은-

“괜찮아, 스칼렛.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니까. 죽을 생각따위는 요만큼도 없으니까.”

코델리아는 스칼렛의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어느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을 닦아주었고, 엉엉 울며 안기는 붉은바람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런 자신과 붉은바람을 한 번에 끌어안는 카이사 때문에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야. 죽을 생각은 없어. 문을 닫고, 플레이아데스를 구하고, 아스모데우스를 혼내 준 다음에 돌아올 거야.”

꿈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저 너머는 지옥이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자신의 힘을 가장 강하게 발휘할 수 있는 장소였다.

더욱이 아스모데우스는 아우리엘처럼 세상간 이동으로 큰 힘을 소모한 상태도 아니었다.

“괜찮아, 괜찮아. 연결로인걸. 진짜 완전 지옥까지는 아냐. 대군주도 아스모데우스밖에 없어. 애당초 서로 싸우기 바쁜 대군주들이라 어쩌면 우리한테 협력하려는 놈이 있을지도 몰라. 아니, 분명 있을 걸? 없어도 유더가 그렇게 만들 거야. 그렇지 유더야?”

“당연하지. 이이제이는 기본이니까.”

유더가 씩 웃자 코델리아가 저 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괜찮아. 우리는 돌아올 거야. 응, 돌아와서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결혼식도 할 거고, 신혼가출··· 아, 아니. 신혼여행도 다녀올 거고··· 아이도 낳을 거야. 정말정말 행복하게 살 거야.”

그러니까 가야해.

지금 가지 않으면 언니랑 게일 아주버님이 위험해지니까.

아버지와 시아버님은 물론이고 플레이아데스의 모두가 위험해질 테니까.

달리아를 지키고 싶어.

마이아를 지키고 싶어.

다프네 왕세녀도, 라이카 왕녀도, 키라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모두를 지키고 싶어.

더 이상 슬픈 건 싫으니까.

모두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으니까.

코델리아의 말에 스칼렛은 울음을 터트렸다.

루카스 역시 눈물을 보였다.

“제자야.”

“네, 스승님.”

란디우스는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커다란 손으로 유더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녀오거라.”

본래는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다.

네가 최고라든지, 네 스승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든지.

하지만 결국 입 밖에 나온 것은 그것이었다.

다녀오거라.

반드시 돌아오거라.

유더는 미소지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반드시 그러겠다고 다짐하였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갔다.

모두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코델리아가 손을 놀리자 지옥의 문이 나타났다.

하늘 저 너머에서 열린 지옥의 문의 연장선이었다.

마치 공간을 깨트려 만든 것 같은 거대한 균열 속에서 보랏빛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기고 도망가기 없음이야! 돌아와서 승부해야해! 알았지?!”

스칼렛이 울며 외쳤다.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에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한 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멀리서 달리아가 용맹하게 싸웠다.

마이아가 두 손 모아 기도했다.

키라라가 배신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게일과 아델리아가 재앙과 격돌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플레이아데스의 모두들.

“유더야.”

“어, 코델리아.”

“사실 조금 무서워.”

코델리아의 소심한 고백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의 문을 향해 나아가며 동의했다.

“사실 나도 그래.”

“엄청 힘들고 괴로울 거야.”

“난이도가 말 그대로 헬이겠지.”

정말로 지옥이었으니까.

저 너머에는 수많은 악마들과 음욕의 대군주 아스모데우스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미소지었다.

작은 농담에 웃으며 입술을 맞추었다.

“그래도 할 수 있을 거야.”

“맞아, 1등과 2등이 함께잖아?”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가 눈을 흘겼고, 유더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얼른 말을 바꾸었다.

“나한테는 코델리아 네가 언제나 1등이니까.”

“말은 잘해요.”

까르르 웃은 코델리아는 유더의 손을 꼭하고 잡았다.

정말로 무섭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유더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두 분만이 아니에요. 저도 있어요. 벨렌시아 님도 계시고요.]

[참 좋은 지적이에요, 멜리사. 후대도 코델리아도 우리가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네?]

멜리사와 벨렌시아의 말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한 두 사람에게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지옥의 문이 가까웠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두려워하는 대신 서로를 보았다.

손을 떨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멈춰서더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하였다.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동화책의 주인공들처럼, 그 후로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

유더가 웃었다.

코델리아가 미소지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두 사람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둘이 함께 나아갔다.

< 최종장 - 엔딩메이커 (유더와 코델리아 일러스트 포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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