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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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내전.
혹은 재앙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이 끝나고 반년이 지났을 때, 아르곤 제국과 세일룬 왕국 사이의 관계는 양호하지 못 했다.
세계의 운명을 대전쟁 앞에 극적으로 손을 잡은 대륙의 양강.
실제로 재앙전쟁 기간 동안 양국은 긴밀한 협조관계를 이어나갔다.
힘을 합쳐 악마 추종자들에 맞섰고, 서로에게 물자를 지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세계 전체가 위험해지는 극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외부의 적은 내부의 단결을 이루기 마련이었다.
천계의 대천사와 지옥의 대군주라는 플레이아데스 밖의 존재들의 공격은 삼백 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 전쟁과 휴전을 반복해온 아르곤 제국과 세일룬 왕국조차도 서로 손을 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사가 증명하듯 외부의 적이 사라진 순간 내부의 결속 역시 깨지고 말았다.
“악마 추종자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재앙전쟁에서 도망친 재앙들은 아직도 둘이나 남아 있고, 동방에서의 공격 역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앙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미노 백작.
그러니까 아르곤 제국의 사절인 그녀는 외교적 수사마저 던져버린 채 간곡한 어조로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세일룬 국왕 헨리 2세의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무심하게 답했다.
“알고 있다.”
“하오면 폐하!”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미노 백작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알현실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의 손이 일시에 검의 손잡이 위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아직 뽑아들지는 않았지만 검술에도 제법 조예가 있는 미노 백작은 알 수 있었다.
검을 실제로 뽑아들지만 않았을 뿐 왕국 기사들의 눈에는 적의가 가득하였다.
미노 백작은 눈을 감았다.
애당초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답답한 현실을 마주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헨리 2세가 말하였다.
“미노 백작. 우리는 순리대로 행동한 것뿐이다. 실라테스 평원을 공격해온 제국군을 물리쳤고, 그 기세를 몰아 전진하여 바이론 요새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승자의 권리대로 그 바이론 요새를 계속 우리의 소유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왕국을 공격한 것은 역도의 무리이자 악마 추종자 무리인 재상군이었습니다.”
“그래, 그들과 맞서 싸우느라 우리 세일룬 왕국은 참으로 많은 피를 흘리고 말았지. 제국의 재상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말이야.”
“그는 역도입니다.”
“제국의 역도이지. 본래는 제국의 재상이었던 자이고.”
미노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바이론 요새.
제국과 왕국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요새들 가운데 하나.
하지만 이는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고, 바이론 요새에는 양국 모두가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커다란 가치가 있었다.
‘길목이야.’
실라테스 평원 외곽에는 커다란 산맥들이 마치 성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제국군 입장에서 실라테스 평원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험준한 산맥을 넘거나 비교적 좁은 외길을 통해 진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양국은 요새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황금사자 기사단의 주둔지이자 왕국의 방패라 불리는 사라디움 요새.
실라테스 평원으로 통하는 문인 동시에 반대로 왕국에서 제국으로 진출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관문인 바이론 요새.
재앙전쟁에서 바톨레인 원수가 이끄는 재상군을 격파한 왕국군은 그대로 북진하여 바이론 요새를 점거하였다.
그리고 이는 제국에게 있어 심대한 안보 위기를 불러왔다.
실라테스 평원을 에워싼 산맥들은 제국의 공격을 막는 왕국의 방패였지만, 이는 동시에 왕국의 공격을 막는 제국의 방패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바이론 요새를 손에 넣음에 따라 세일룬 왕국군은 이제 자유롭게 제국으로의 진출이 가능해졌다.
제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안보적 위협이었다.
물론 전쟁은 그리 쉽게 나는 것이 아니었다.
왕국군은 바이론 요새를 공격의 발판으로 삼기보다는 실라테스 평원을 보다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한 방벽으로 쓸 가능성이 높았다.
‘그저 가능성일 뿐이지.’
재앙전쟁으로 인해 양국 모두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제국 쪽이 훨씬 심대한 상황이었다.
내전이 일어나 제국군이 두 쪽이 난 것은 물론이고, 전쟁의 무대 자체가 거의 대부분 제국의 영토 안이었기에 전화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제도는 아예 쑥대밭이 되었고, 그 외에도 제국의 여러 주요 도시들과 가도 등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인재들을 잃었어.’
초인이 존재하는 플레이아데스에서 검호와 대마법사로 대표되는 비대칭 병력들의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재앙전쟁으로 인해 제국은 너무나 많은 인적자원을 소모하고 말았다.
절대기사 갤러헤드는 악마 추종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악마 추종자들 편에 돌아섰던 그랜드 소드 마스터 루시우스는 황금의 검성에게 살해당했다.
재앙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대륙 최강이라 불리던 검신은 부상이 너무 심해 은퇴하였으니, 사실상 남아있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엘룬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엘룬은 그림자 숲을 나서지 않는다 이거지.’
즉, 왕국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왕국의 검성들을 막아낼 수 있는 제국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전무하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만이 아니야.’
악마 추종자 쪽으로 돌아섰던 소드 마스터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전쟁 중에 서로 죽고 죽인 자들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진 마법사들의 피해.
일선급 지휘관들의 부재 등등.
재앙전쟁 전과 비교하면 전력이 절반 이하로 깎여 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제국군이었다.
반면 왕국군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 이전보다 전력이 더 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이었다.
별의 검성 무수가 부상으로 인해 은퇴했다.
하지만 이를 대신하듯 새로운 강자가 세일룬 왕국에 탄생했다.
하늘의 검성 루카스 흐레스벨그.
열일곱 살이란 나이에 검성- 그것도 양국 모두를 통틀어 최강의 검성 자리에 오른 괴물 중의 괴물.
그의 존재는 제국에게 있어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재앙전쟁에서 왕국군은 검호를 거의 잃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의 늑대라 불리는 게일 바이엘이나 칠살검 세류 같은 신진들의 성장이 두드러져 전력이 더 강화된 상태였다.
특히 바람의 검성 알렉스 바이엘 백작의 활약과 위용은 제국군의 가슴을 서늘케 하였다.
여기에 붉은천사 아더 체이스 백작까지······.
서로 가지고 있는 패를 비교하다보면 싸우기 전부터 패배가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뿐이다. 아니, 우리가 오히려 사정을 많이 봐주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우리가 제국에게 청구한 전쟁보상금은 경미한 금액이지 않았나.”
헨리 2세의 태연한 발언에 미노 백작은 가슴이 뭉개지는 기분이었지만 어렵게나마 표정을 유지하였다.
헨리 2세는 변했다.
우유부단하고 심약하던 왕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왕국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뻔뻔해지고 단호해질 수 있는 능구렁이가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니 그 엄청난 금액을 ‘경미한 금액’이란 말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겠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러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그대도 먼 길 오느라 고생하였으니 푹 쉬다가 돌아가게. 겨울에만 마실 수 있는 파르티온주도 꼭 맛보도록 하고.”
사람 좋게 웃어 보인 헨리 2세는 여지 자체를 주지 않겠다는 듯 옥좌에서 일어서 버렸다.
가지고 있는 패 하나 없이 떠밀리듯 왕국을 찾은 미노 백작으로서는 그런 헨리 2세를 잡을 방도가 없었다. 그저 씁쓸히 예를 표할 따름이었다.
“후우, 힘들구만.”
알현의 방을 나서자마자 헨리 2세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미노 백작 앞에서야 당당한 척 했지만, 역시 이런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 기분이었다.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보는 제가 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시고는.”
알현의 방 밖에서 안쪽의 사정을 모두 보고 있던 1왕비 유스티아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자 헨리 2세는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유스티아.”
“예, 폐하.”
“정말 제국과는 전쟁이 나지 않겠지?”
“그럴 겁니다. 제국에는 그럴 여력이 없으니까요. 사실 이 김에 좀 더 북부로 진출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좀 무리겠죠. 도리도 아니고요.”
사실 도리보다는 실리적인 이유가 컸다.
아르곤 제국은 현재 동방에서 밀려오고 있는 악마 추종자들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제국이 저들의 피를 흘려가며 왕국을 지켜주고 있는데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동방과의 싸움이 끝난 이후를 노려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제국 침공보다는 다른 쪽에 전력을 돌려야 하니까요.”
1왕비 유스티아의 말에 헨리 2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제국 진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다프네가 알현을 요청했어요. 천상의 목소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또 천상인가.”
저 먼 천계의 존재들.
물론 헨리 2세도 알고 있었다.
라구엘과 아우리엘은 달랐다.
정의의 대천사인 라구엘은 과거 플레이아데스를 위해 희생한 솔라리와 에로스, 가브리엘처럼 자애롭고 상냥한, 실로 천사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래도 천상의 존재라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하였다.
천상의 대천사는 라구엘만이 아니었으니까.
대천사가 둘이나 더 있었고, 그들은 모두가 자매였다.
언제 아우리엘의 복수를 부르짖으며 플레이아데스로의 침공을 꾀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상식적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이미 상식을 벗어난 예가 있지 않나······.”
대천사 아우리엘.
그녀는 솔라리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렇기에 미쳐버리고 말았다.
솔라리가 목숨을 바쳐 지켜낸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멸하려 하였다.
“어디까지나 라구엘의 이야기지만··· 남은 둘은 아우리엘과 달라요. 미치지도 않았고요. 일시적이나마 악마들과 손을 잡는 것 역시 거부했던 이들이잖아요?”
1왕비 유스티아가 안심하라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지만 헨리 2세는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이의 속조차 알 수 없지 않았던가.
타인을 통해 전해들은 또 다른 타인의 이야기를 신뢰하기에는 그간 입은 상처가 너무나 큰 그였다.
“물론 실리적인 이유도 있어요. 이번 전쟁으로 인해 대천사 아우리엘이 소멸했고··· 결과적으로 천상의 대천사는 이제 겨우 셋 밖에 남지 않았어요. 반면 지옥에는 아직도 대군주가 다섯이나 남아있죠. 즉-.”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과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이 대군주를 쓰러트리기를 바란다 이거인가.”
“예, 몇 번이나 이야기했던 것처럼요.”
천상 입장에서는 제발 힘내라고 응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아··· 마음에 들지 않아.”
“저도 그래요. 하지만··· 라구엘을 조금만 믿어보는 건 어떨까요. 전후 과정이야 어찌되었든그녀는 사랑하는 자매를 잃었어요. 하지만 자매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용서를 구했죠. 그녀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러나저러나 ‘신’에게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요.”
“인격신이라는 건가······.”
다시 한 숨을 내쉰 헨리 2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노 백작이 보았다면 저런 놈이었냐며 한탄을 하겠지만, 잘 모르거나 고민이 되거나, 선택을 못 하겠을 때는 아무튼 유스티아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을 잘 아는 그였기 때문이다.
“다프네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이번 ‘원정’에 대한 조력을 라구엘에게 받기로 했나 봐요. 애당초 지옥에 쳐들어가는 일이니··· 천사들의 도움을 받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요.”
“뭔가 세상이 이상해졌어.”
지옥이니 천사니 악마니··· 이런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상식이 된 세상이었으니까.
“그보다 폐하, 정말 괜찮으신가요?”
“무엇이?”
“이번 원정 말이에요.”
1왕비 유스티아는 차분한 눈으로 헨리 2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가 묻고 있는 것.
이번 원정은 위험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이웃 나라가 아닌 다른 세계- 무려 지옥으로 쳐들어가는 일이었다.
왕국이 제국에게 우위를 보이고 있는 비대칭 전력들 가운데 대부분이 이번 원정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 모두가 돌아오지 못 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너무나 위험한 선택이었다.
일국의 왕으로서는 이번 원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헨리 2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스티아의 물음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말하였다.
“해야만 해.”
유더와 코델리아를 구해야 했다.
두 사람을 방치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째서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거죠?
유스티아의 얼굴에는 미소가 없었다. 그녀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헨리 2세를 보며 물었다.
헨리 2세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우유부단하고 심약하기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스티아가 헨리 2세와의 결혼을 승낙하게 만들었던 이유를 이번에도 보여주었다.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저버려서는 안 되는 도리가 있었다.
사람으로서 지켜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헨리 2세 자신을 구해주었다.
왕족들을 구했고, 왕국을 구했으며, 세계 전체를 구해주었다.
그런 두 사람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코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1왕비 유스티아는 헨리 2세의 말을 작게 따라서 읊조려 보았고,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쿡쿡 웃으며 자신의 왕을 올려다보았다. 소녀 같은 얼굴로 속삭였다.
“이래서 당신이 좋아요.”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당신이니까.
“흠흠.”
헨리 2세는 뺨을 붉히며 헛기침을 토했고, 유스티아는 다시 웃었다. 헨리 2세의 손을 가볍게 움켜쥐며 말했다.
“자, 그럼 갈까요? 다프네가 기다릴 거예요.”
“그래, 유스티아.”
새삼 수줍게 웃은 헨리 2세는 유스티아의 손을 깍지 껴잡았고, 이번에는 유스티아 역시 얼굴을 붉혔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과 시녀들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며 시선들을 돌렸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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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은 고개를 들었다.
“영감.”
“그래, 프란.”
“으··· 이제 영감이 아냐. 나랑 또래로 밖에 안 보여.”
“흠··· 객관적으로 보면 이제 내가 더 어려 보이지 않을까?”
노 라이프 킹- 뱀파이어 로드로 거듭난 벨키안의 발언에 프란은 얼굴을 구겼다.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젊음의 샘을 찾고 말 거야.”
“찾으면 연락해다오. 연구 자료로 쓰고 싶으니.”
“왜 그램 영감. 젊어지더니 성격까지 변했어.”
“당연하지 않을까.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끼치듯, 육체 역시 정신에 영향을 끼치니 말이다.”
프란이 미녀를 방불케 하는 미남이라면 벨키안은 차가운 인상의- 마치 얼음으로 조각해 놓은 것 같은 남자다운 인상의 미남이었다.
“이건 사기야. 왜 회춘하니까 키까지 커진 거지?”
“늙으면 키가 작아지니까. 너도 조만간일 거다.”
“아니거든? 아직 멀었거든?”
유치하게 툴툴거리던 프란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주변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지금 전장에 나와 있었다.
제국의 동부.
동방에서 밀려오는 악마 추종자들과의 전쟁이 계속되는 땅.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대치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프란과 벨키안 역시 마지막으로 전장에 나선지 한 달은 족히 되었고 말이다.
“프란, 카마엘은 지금 어디에 있지?”
뱀파이어답게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하는 벨키안이었다.
때문에 언제나 잠에서 깨어나면 낮에 일어난 일부터 묻곤 하는 그였다.
‘그런데 인간이던 시절에도 어차피 저랬던 것 같은데.’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간형 인간.
어찌되었든 프란은 턱을 긁적이며 답했다.
“마지막으로 전선 돌아보고 있어.”
“마지막으로?”
“어, 마침내 서신이 도착했거든.”
지옥으로의 원정 계획.
일단 침공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침공 후에 있을 여러 가지 제약들을 해결하는 것도 일이었고 말이다.
때문에 레나는 물론이고 어린 신 아탈리아까지 노력하고 있음에도 벌써 몇 달째 일이 지연되고 있었다.
“드디어 끝난 것인가?”
“아마도.”
씩 웃으며 답한 프란은 성벽에 등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었지만 태양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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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곳곳으로 서신이 전달되었다.
원정을 위한 집결 명령에 많은 이들이 응답하였다.
라이카 왕녀가 다시 일군을 이끌고 영원의 숲을 나섰다.
빈첸죠 롬바르디에게 사죄의 편지를 남긴 엘룬은 생애 첫 가출을 시도했다.
칠살검 세류가 방랑을 멈추고 왕도로 향했다.
야생신들 모두에게 골고루 축복을 받은 붉은바람이 보무도 당당하게 야생의 땅을 떠났다.
그리고 한 사람.
이번 원정의 주역이 될 남자는 서신을 내려놓았다.
그날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 곁에서 빛을 발하는 솔라 블레이드를 움켜쥐었다.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지옥이라는 어둠을 걷어낼 태양.
한결같은 뒷모습으로 모두를 이끄는 자.
그 역시 구천구문의 여신을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지옥인가.”
란디우스의 얼굴에 두려움 따윈 없었다.
오히려 그의 전신에서는 태양과 같은 활력이 솟구쳤다.
“간다, 제자야.”
이번에야말로 널 놀라게 해주마.
시원하게 웃은 란디우스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옥으로의 침공을 위해 왕도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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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