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4 >
&
유더와 코델리아가 귀환했다.
환장의- 아니, 환상의 커플.
데몬 슬레이어.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들.
두 사람의 귀환에 대륙 전체가 요동쳤다고 하면 거짓말이 아니었다.
가감없는 사실이었다.
유더가 구천구문 제구문을 열어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물론이고 코델리아가 솔라리의 신위를 완전히 계승해 대천사로 재탄생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는 자는 극소수였지만, 그러한 사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두 사람의 귀환은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제국과 악마 숭배자들에게는 말이다.
“이런 미친! 그렇지 않아도 밀리던 판국에?!”
재앙전쟁으로 인해 비대칭 전력을 다수 잃은 제국이었다.
그런데 세일룬 왕국에 비대칭 전력이 더해졌다.
그것도 대륙 최강의 비대칭 전력들이.
유더와 코델리아가 제도에서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몇몇 이들은 아무리 두 사람이 대단하다고 해도 겨우 십대에 불과하니 대부분의 일은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특히 란디우스가 해결했을 거라 주장했지만 이러한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정작 사건의 당사자들- 그러니까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모두가 유더와 코델리아의 공을 제일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의 검을 초월했다.”
지평에 닿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에 도달한 자.
검신의 말대로였다.
유더는 플레이아데스가 열린 이래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 했던 경지에 올랐다.
설사 구천구문을 열지 않는다 할지라도 유더는 절대검리의 소유자였다.
검으로 그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검신은 물론이고 철인 란디우스와 검귀 카마엘조차 인정한 세계 최강의 검사.
미쳐버린 신을 죽이고 플레이아데스를 구원한 자.
그런데 여기서 더 환장하겠는 건 유더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폭발의 마녀······.”
세일룬 왕국에서는 폭발의 천사라 부르는 그녀.
어느 쪽이든 일단 ‘폭발’을 넣고 보는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의 귀환도 세일룬 왕국과 적대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재앙과 같았다.
유더가 세계 최강의 검사라면 코델리아는 세계 최강의 마법사였다.
그나마 철인 란디우스나 검귀 카마엘 혹은 하늘의 검성 루카스 흐레스벨그처럼 ‘그래도 비벼볼만한 자’를 떠올릴 수 있는 유더와 달리 코델리아에게는 아예 적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마법사 몇 명이 모여도 당해낼 수 없는 압도적인 마력.
상식을 벗어난 마력 제어 능력과 초월적인 공간 지각 능력 등등.
그녀의 장기이자 상징과도 같은 ‘황금빛 폭풍’의 존재는 마법사들에게 있어 신비 그 자체였다.
“14만 4천 개의 매직 미사일? 근데 그걸 또 다 제어한다고?”
더 이상 논의하는 것 따위가 무의미했다.
차라리 유더와 코델리아 가운데 누가 더 강할 것인지 논의하는 쪽이 약간이나마 생산성이 있을 지경이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두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이간질이라도 시켜보려 노력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둘을 상대로는 그것도 불가능했다.
애당초 두 사람이 유명해진 계기부터가 실로 비범했기 때문이다.
이미 약혼한 사이인데도 야반도주를 떠난 두 사람.
가문끼리 인정하고 주변에서도 다 인정하는데도 몇 번이나 가출해가며 밀월여행을 떠난 두 사람.
환장의 커플.
서로 좋아 죽는 세기의 커플.
무리였다.
저들끼리 싸우다가 헤어지면 모를까,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이 둘을 갈라놓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세상에 절대가 어디 있습니까! 각자에게 미남미녀를 투입해 유혹을 해보면······.”
발악하듯 외치던 황제의 충신 마토아 백작은 말 꼬리를 흐리다 주저앉았다.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에게 붙어 있는 또 다른 별칭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세계최고의 미녀.
세계제일의 미남.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잘생긴 것들끼리 커플이 되었는데 누굴 끼워넣어서 유혹을 하고 자시고 한단 말인가.
물론 미인계라는 게 꼭 미모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애당초 콩깍지가 엄청나잖아?”
다프네 왕세녀의 말이 맞았다.
누굴 데려오든 유더의 눈에는 코델리아 아래로 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요.”
“하··· 그 수밖에 없겠군요.”
미인계도 무리였지만 돈으로 회유하는 것도 무리였다.
두 사람 다 이미 어마어마한 부자였으니까.
물론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이 마련이었지만, 이미 엄청난 부자인 두 사람을 유혹할 정도의 초월적인 부는 일단 제국에도 없었다.
이도저도 안 되니 그저 방치할 수밖에.
만약 제국의 인사들이 한 가지 진실을 더 알았다면- 그러니까 이미 신이 된 두 사람이 사실상 불로영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세일룬 왕국으로의 망명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았겠지만 다행히 그 사실까지 아는 자는 없었다.
“그나마 제국은 다행이지.”
프란은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국은 왕국을 건들지 않는한 두 사람과 적대할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존재 그 자체로 두 사람과 적대하는 무리들이 있잖아?”
악마 추종자들.
지옥까지 쳐들어가 대군주의 목을 따고 돌아온 두 사람이 그들을 방치해둘 리가 없었다.
악마 추종자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악마 추종자를 죽이는 신’이 둘이나 생겨난 셈이었다.
“뭔가 엄청나군. 좋긴 좋은데··· 살짝 허망하기까지 할 지경이야.”
벨키안이 이러한 감상을 내놓는 이유는 단순했다.
제국 동부를 끊임없이 두들기던 악마의 입이 유더와 코델리아가 귀환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즉시 동방으로 철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라곤의 다섯 영웅도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들 앞에서는 그 빛이 바래기 마련이지.”
프란이 약간은 자조적으로 말했고, 벨키안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제 진행하는 건가?”
카마엘의 물음에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사도 대군주도 모두 해결했으니까.
이제 플레이아데스에 평화가 찾아왔으니까.
“진행 해야지.”
꼭 해야지.
이거까지는 세상 모두에게 보여주어야지.
“그렇지 않아?”
레나의 물음에 란디우스는 언제나처럼 껄껄껄 웃는 것으로 응답했다.
&
“긴말하지 않겠다. 결혼하거라.”
“네, 아버님.”
“네, 아빠.”
체이스 백작의 명령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예쁘게 답했고, 지켜보던 모두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세상 모두가 다 아는, 그야말로 세기의 커플인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두 사람의 결혼이 결정되자 장소가 문제가 되었다.
게일과 아델리아 때처럼 나름대로 조용히(?) 가문 내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무조건 왕도에서 해야 한다. 왕궁을 빌려주도록 하겠다.”
헨리 2세의 폭탄선언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릴만한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신하’의 결혼식에 왕궁을 대여하겠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1왕비 유스티아가 살짝 시험하듯 묻자 헨리 2세는 이번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괜찮아. 왜냐하면··· 이것이 옳은 일이니까.”
이 정도는 해주어야 했으니까.
남편이자 왕의 말에 1왕비 유스티아는 결국 참고 참던 웃음을 터트렸다.
“멋있는 말인데 멋이 없어졌어요.”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옳은 일은 행해야 하는 것이니까.
저번에 들었을 때는 정말 멋졌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웃음만 나오는 것일까.
“그 또한 옳은 일이기 때문이지.”
헨리 2세는 유쾌하게 웃었고, 1왕비 유스티아는 그런 헨리 2세의 뺨에 입술을 맞추었다.
어찌되었든 국왕의 뜻은 강경했고, 의외로 그러한 국왕의 결정에 반대를 표하는 이도 없었다.
분명 폭탄발언이긴 한데, 그다지 폭탄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해줘야 계속 우리 왕국에 남아있겠지요.”
유더와 코델리아는 너무 거물이 되고 말았다.
북부12가문과 남부6가문이 아무리 세가 강하다고 해도 결국 왕국의 신하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충성의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충성도 따지고 보면 받은 게 있기 때문에 바치는 일종의 대가였다.
즉 주고 받는 것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가능한 개념이라는 뜻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이미 왕국에 너무 많은 것들을 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힘은 이미 왕국의 전력을 초월한 상태였다.
그러니 특별히 대우해줘야 한다.
더 많은 것들을 주어야 한다.
그들이 계속 왕국에 소속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나라로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결혼식은 왕도에서 거행한다. 대륙 전체에 이 사실을 선포하고 하객들을 불러 모아라!”
헨리 2세의 호쾌한 명령에 왕국 전체가 움직였다.
결혼하는 당사자들과 그 가문이 아닌, 옆에서 구경하던 왕국이 설치는 꼴이었지만 이 일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웃으며 이 국가 단위의- 아니, 세계 단위의 대축제를 즐길 따름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국 쪽에서도 정식으로 사절을 파견하는 한편 자국 내에서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이들은 모조리 찾아내어 결혼식이 거행될 왕도에 보냈다.
덕분엔 카플란은 국경을 어찌 넘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고, 레온과 사라 역시 눈치보지 않고 왕도로 향할 수 있었다.
왕국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왕도로 향했다.
북부12가문과 남부6가문 모두 왕도로 사람을 보냈고, 당연히 이들 사이에는 코델리아와 개인적인 친분이 깊은 실비아와 비올라도 끼어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도 될까요?”
“안 될게 뭐야. 왕도 사람들도 전부 다 갈 텐데. 그리고 우리 정도면 친분이 꽤 있는 사이잖아?”
흐레스벨그 백작령에서 비허가 운송업자로 활동 중인 파비안은 호탕하게 웃었고,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유더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악마의 눈의 동향을 보고하던 그녀였으니 말이다.
“마침내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거예요!”
다리안 왕녀가 사랑을 동경하는 소녀의 얼굴로 말하자 스펜서 공작은 흐뭇하게 웃었고, 이번에도 호위대장을 맡은 콘웰 경 역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우리도 가야지.”
이미 원정대에 참가하기 위해 영원의 숲을 나섰던 라이카 왕녀는 왕도에 계속해서 머물렀고, 엘룬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더해지는 이들이 있었다.
“축하하지 않을 수 없겠죠.”
세이렌 여왕 일리아나가 가신들을 이끌고 뭍으로 올라섰다.
대륙 곳곳의 페어리 퀸들이 실로 수백 년- 아니, 천 년의 세월을 넘어 한 자리에 집결하였다.
“초콜릿 맛있어.”
“언니들은 이거 먹어본 적 없죠? 페어리 전용 초콜릿이에요.”
“뭐야? 그건 뭐야? 그런 게 있었어? 나도 줘. 나도 줘어어!”
페어리 퀸도 결국엔 페어리.
더욱이 백성들이 아닌 같은 여왕들끼리였기에 오히려 더 페어리다워진 그녀들이었다.
“우리도 늦으면 안 되지. 서둘러야 해!”
거친눈사태는 아장아장 걸었고, 위대한폭풍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손가락을 놀려 거친눈사태를 거센 바람에 태워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고운눈바람은 까르르 웃으며 위대한폭풍의 바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모인다.
왕도에.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나도 집을 지키지 않고 나왔다는 사실!”
에드워드 체이스의 말에 성격 좋은 게일이 적당히 박수를 쳐주고 있는 그때, 신랑과 신부는 각자의 대기실에서 각자의 소중한 사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달리아.”
“마이아.”
서로 다른 곳에 있었지만 목소리는 거의 동시에 나왔다.
달리아는 울면서 웃었고, 마이아 역시 그러했다.
“절벽으로 마차 데이트 가자고 하셨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달리아의 말에 코델리아는 뺨을 붉혔다.
마차 데이트 다음- 그러니까 절벽에서 뛰어내리던 당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한테만 부끄러운 말 다 시키고!’
거기다 안는 것도 코델리아 자신의 몫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유더가 부끄러운 말을 훨씬 더 많이 했으니까.
그때 약속했던 것처럼 정말로 많이 안아주었으니까.
코델리아는 두 팔을 벌렸고, 달리아는 그런 코델리아를 안아주었다.
유더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 하는 마이아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밖에서 궁내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마따나,
이제 시간이 되었다.
&
결혼식은 대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왕도는 물론이고 대륙 각지에서 모인 이들로 이미 대광장은 가득 찬 상태였다.
건물에 꽉꽉 들이찬 사람들까지 합친 다면 수십만- 아니, 어쩌면 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인 걸지도 몰랐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대광장과 왕궁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높고 커다란 발코니에서 식을 거행할 예정이었다.
헨리 2세와 1왕비 유스티아가 나란히 서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다프네 왕세녀와 디온 왕자, 다이란 왕녀 같은 왕족들 뿐만 아니라 발코니에 서는 것이 허락된 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
게일 바이엘과 아델리아 체이스, 이번에는 어떻게든 끼어들기에 성공한 에드워드 체이스.
그리고 달리아와 마이아까지.
“왜, 긴장 돼?”
“어, 긴장 돼.”
유더의 작은 물음에 코델리아는 잔뜩 굳은 얼굴로 솔직하게 답했다.
이러나저러나 부끄러움이 많은 그녀였으니까.
[괜찮아요, 최고로 예뻐요. 모두들 기뻐하고 있고요. 작은 실수 정도는 저질러도 다들 뭐라하지 않을 거예요.]
멜리사의 격려에 코델리아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같이 대천사랑 대군주도 잡았잖아요? 결혼식 그거 사실 별 것도 아니니까 떨지 않아도 된답니다. 해치워 버려요.]
벨렌시아의 호쾌한 발언에 유더는 웃었다.
순간 벨렌시아는 결혼식 해본 적 있나요? 같은 짓궂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참았다.
‘그리고 어떤 답이 돌아올지도 대강은 알고 있으니까.’
검을 사랑하고, 검과 사랑하고, 검 그 자체가 된 여인.
바로 그때 음악이 바뀌었다.
헨리 2세가 다시 무어라 소리쳤고, 나팔을 비롯한 각종 악기 소리가 대광장 전체에 퍼져나갔다.
이제 때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할 때였다.
“가자.”
“응, 가자.”
지옥의 문으로 걸어들어 갔을 때보다 지금이 더 떨린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코델리아는 숨을 길게 토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유더의 얼굴을 보았다.
‘할 수 있어.’
유더가 함께니까.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처럼 둘이 함께니까.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두 사람은 다시 정면을 보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광장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환호 속에서 결혼식을 거행했다.
&
밤이 찾아왔다.
차갑고 어두운 밤.
하지만 지옥의 밤과는 달랐다.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빛과 하얗고 아름다운 두 개의 달.
유더와 코델리아는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더가 코델리아의 어깨를 안았다.
코델리아가 유더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뭔가··· 신기해.”
코델리아의 작은 속삭임에 유더는 고개를 내렸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살짝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모든 게. 응, 모든 게 다.”
지옥에서 서쪽 숲의 마녀와 카시우스를 만난 일.
유더가 정말로 대군주들 사이에 이간질을 시도하고, 그걸 또 결국엔 성공시킨 일.
대군주와 대천사의 격파.
플레이아데스의 구원.
약속된 멸망이 사라진 세계.
하지만 이런 일들만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다시 만나고··· 사랑하고······.”
코델리아가 뺨을 살짝 붉혔고,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의 뺨에 입술을 맞추었다.
수줍어하는 그녀의 허리를 살짝 간지럽혀 다시 한 번 웃게 만들었다.
유더는 언제나 코델리아를 사랑했다.
기억이 이어지지 않아도, 언제나 조금씩 다른 전개로 이야기를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생은 어떨까. 그러니까 지구.”
유더와 코델리아가 아닌 강진호와 홍유희.
이제는 두 사람도 알 수 있었다.
영웅전기2에서 로그아웃한 이후의 기억이 없는 것은 그 이후의 기억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영혼이 분열하였다.
필요한 정보를 모두 모았고, 플레이아데스를 다시 이어 붙여야 할 때가 되었기에 이미 준비되었던 약속에 따라 강진호와 홍유희로부터 유더와 코델리아의 영혼이 분리되었다.
즉, 영혼이 둘로 나뉘었다는 이야기다.
지구에 남은 강진호와 홍유희.
지구의 기억을 가지고 플레이아데스에서 다시 태어난 유더와 코델리아.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랜선으로 으르렁 거리며 게임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우연찮게 만나서,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사랑을 나눌까.
“어쩌면 둘이 서로 좋아하게 된 다음에야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네가 노란폭풍이었어?
오빠가 아웃복서009라고요?!
잠시 그 광경을 떠올려 본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이웃집이니까. 그래도 나이차가 꽤 나잖아?”
“나지. 아홉 살 정도.”
“와··· 진짜 도둑놈이네. 왕도둑이야.”
가능한 시나리오는 몇 개 더 있었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다가 현피 뜨자며 만났다가 ‘어, 너는?’ ‘어라? 오빠가 여기 왜 있어요?’ 라든가- 정모 때 만나서 두근두근하다가 사귀게 된다거나.
이런저런 가정을 이야기하고 있자니 코델리아가 돌연 흐흐흐 웃음을 흘렸다.
유더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는 방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 뭘 어떻게 해도 둘이 사귀는 결론 밖에 안 나오니까?”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따라 웃는 대신 무척이나 느끼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그야 우리 두 사람이니까. 결국엔 만나서 서로를 사랑할 운명이니까.”
“으 느끼해.”
“그래서 좋잖아?”
유더가 더욱 뻔뻔하게 말하자 코델리아는 엉망진창인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미쳤지. 왜 이런 애를 좋아해가지고.”
코델리아의 푸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 했다.
유더가 입술과 혀로 코델리아의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악마 추종자들을 마저 몰아내고, 영지를 더 발전시키고, 지구에도 한 번 다녀오고······.
밤이 지나 새벽이 밝아왔다.
하얗게 밤을 지새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댄 채 저 멀리서 떠오르는 여명을 바라보았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다시 입술을 맞추었고, 똑같은 말을 떠올렸다.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소리내어 말해 보았다.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그 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코델리아는 유더를 바라보았다.
해맑게 미소지었다.
<엔딩메이커 끝>
< 에필로그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