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62화 (362/473)

< 엔딩메이커 SS #1 코델리아의 일기 (1) >

엔딩메이커 SS #1 코델리아의 일기 (1)

1.

내일이다.

드디어 내일.

월말 결산 발표.

그러니까 영웅전기2의 정기 순위 발표 날.

이번에야말로 내가 1등이다.

응응, 1등일 수밖에 없다.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번 달에는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을 썼다구?

진짜 하루온종일 게임만 해서 엄마한테 혼났을 정도니까.

아무튼 그러니까 이번 달에는 내가 1등이다.

응응, 절대로.

절대로 내가 1등이야.

아복이 잔뜩 놀려줘야지.

평소에 당한 거 다 갚아줄 거다? 흥!

유치한 아복이.

개초딩이 분명하다.

나이는 몰라도 일단 성격은 개초딩이 맞으니까.

하아, 진짜 옆집 오빠랑은 너무 다르다니까?

옆집 오빠.

분위기 있게 잘생긴··· 뭔가 막 우수에 찬 눈빛? 그런 거? 아무튼 멋진 오빠.

키도 크고 몸도 엄청 좋은 것 같던데 뭐하는 사람일까.

낮에도 종종 보이던데 프리랜서 같은 걸까?

그 왜 집에서 일하는 응응. 그렇게 멋진 사람이 아복이 같은 날백수일 리가 없어. 그렇구 말구.

아까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고 얼마나 당황했는데.

그나마 모자라도 써서 다행이지 그냥 겜 하다가 튀어나간 거였으니까.

맨날 밤에만 마주쳐서 아침에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단 말이야?

이건 약간 옆집 오빠 잘못 같기두.

근데 진짜 뭐하는 사람일까.

궁금하다.

아무튼 내일이다.

내일.

흐흐.

아복이 각오하라구?

내일이야말로 1등과 2등이 바뀌는, 그러니까 올바른 순리가 정립되는 그 날이 될 테니까.

그래두 살짝, 아주 살짝 불안하니까 오늘은 날밤 까야겠다.

지금도 잠이 막 부족해서 눈이 감길라구 하지만 그래두 내일 이기고 나면 전부 다 괜찮아질 테니까. 응응, 그러니까 달리는 거야! 내일의 영광을 위해!

2.

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

영웅전기2는 엉터리야! 엉터리라구!

ㅎㄴ오ㅑㅐ호ㅑ옿ㄴ애ㅑ내ㅑ홍ㄴ호이ㅏ

몰라!

잘 거야!

으앙!

3.

코델리아가 되었다.

꿈이 아니라 진짜로.

어, 정말로.

코델리아.

코델리아 체이스.

코델리아가 되었다.

4.

며칠동안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정말로 많이.

일단.

일단 환생이다.

내가 게임 속에 들어와서 코델리아 몸에 빙의했다!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코델리아로 태어난 거다.

갑자기 각성? 자각?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지금 당장은 ‘홍유희’의 기억과 자아? 아무튼 그런 게 더 강하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코델리아가 맞다.

코델리아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코델리아로 살아온 17년의 시간들.

나는··· 코델리아다.

5.

요 며칠 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달리아가 겨우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해한다.

갑자기 착하고 예쁘고 귀엽고 상냥하고 아무튼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도 좋을 지상에 강림한 천사 같은 아가씨가 ㅆ으로 시작하는 감탄사를 마구 내뱉으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인정.

어, 인정.

나라도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의심했을 거다.

아무튼.

자각하고 며칠이 지났다.

처음에는 엄청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지금은 뭐랄까··· 자연스럽다. 맞아, 자연스러워.

코델리아가 나고, 내가 코델리아니까.

평정을 되찾고 나니 다음이 걱정되었다.

이곳은 영웅전기2의 세계가 분명했으니까.

게임으로 따지면 극초반··· 코델리아 루트는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의 시점이다.

그리고 이 게임의 결말은 세계 전체의 파국.

대소환으로 소환된 천사들과 악마들이 벌인 아마겟돈에 의해 세계가 멸망하고 만다.

그렇게 멸망한 세계가 영웅전기3의 무대가 되고.

솔직히 무서웠다.

상상만 해도 손이 덜덜 떨렸다.

만화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멸망을 막기 위해 미래 지식을 이용해서 팍팍팍 뭔가를 해내지만 그건 만화나 소설이니 가능한 거고.

과연 가능할까?

정말로 나 혼자서 대소환을 막을 수 있을까?

만약 막지 못 한다면······.

무서웠다. 머리가 아팠다.

평소였다면 달리아한테 말했을 텐데.

함께 고민해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달리아라도 이런 이야기를 믿어줄 리 없었다.

믿어줄 리가······.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무섭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6.

달리아가 병문안을 가자고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더 바이엘의 병문안.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는 기분이 참 묘했다.

아니, 지금도 사실 엄청 묘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더 바이엘은 코델리아의 약혼자였으니까.

게임에서야 제대로 된 약혼 관계가 이어지지 않아서 곧 남이 되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약혼자란 말이지?

전생을 자각하기 전의··· 그러니까 순수한 코델리아로 살아가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유더와의 관계는 그리 깊지 않았다.

약혼 관계이긴 했지만 교류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해야 하나?

유더는 몸이 약해서 그런지 축 쳐져 있기 일수였다.

코델리아야 워낙 착하고 상냥하니 그런 유더를 어떻게든 잘해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애당초 만나는 일 자체가 워낙 드물었으니까.

아무튼 뭐··· 데면데면한 사이라고 해야 할 거다.

그러니까 나도 일단은 적당히 인사하고 오면 되겠지.

늘 그랬으니까.

유더 바이엘.

솔직히 지금은 전생의 자아 쪽이 더 강해서 그런지 코델리아가 기억하는 병약 미소년 유더 바이엘보다는 악마 같은 아복이가 조종하던 대악마 유더 쪽의 인상이 더 강했다.

지금이야 병약 미소년이지만 구음절맥만 낫고 나면 훨훨 날아다니는 유더였으니까.

특히 아복이가 조종하던 유더는 악랄함의 결정체나 다름이 없었다.

유더가 그렇게까지 강캐가 아닌데 그 인간 손에만 들어가면 서버 PVP 최강캐로 거듭났으니까.

말하다보니까 짜증나네.

우씨.

아무튼 유더 바이엘.

내 약···혼자.

기분 진짜 이상하네.

가슴이 살짝 두근두근하기두 하구.

아복이는 뭐하고 있을까.

여전히 미친놈처럼 게임만 하고 있겠지?

하아.

7.

야, 너두?

야, 나두.

미친.

정말로 미친.

진짜 레알 완전히 미쳐버린.

아복이가 나타났다.

아복이가 나타났어.

아복이가 나타났다구?

진짜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 했다.

아니, 여기서 왜 걔가 나와?

응? 왜 아복이가 나오냐구!

와, 진짜.

만나자마자 노하 이 지랄하는데 역시 아재복서009.

확실히 확인이 되긴 했지만, 아무튼 아아아아아아아악!

와, 진짜.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아무튼 이따 밤에 만나기로 했다.

지가 안 오고 꼭 나보고 오라는 게 정말 딱 아복이답기는 했다.

아복이.

여기까지 날 쫓아온 거야?

진짜 웬수다 웬수.

웬수······.

다행이다.

8.

밤에 아복이를 만났다.

이제부터는 유더라고 하겠다.

아무튼 유더.

코델리아가 기억하던 병약 미소년은 이제 없었다.

남은 건 사악하기 짝이 없는 능구렁이 한 마리.

와, 진짜. 아복이는 아복이라고 해야 하나.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라이제강을 잡자고 한다.

진짜 미친놈.

물론 진짜 잡자는 건 아니고 현실인 점을 이용해서 태양의 목걸이만 빼돌린다는 계획이긴 했지만··· 역시 미친놈인 거 같다.

아니, 누가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아이템 드랍과 관계없이 아이템을 뺏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 되긴 하는데, 어? 되긴 하는데.

보통은 그런 생각 안 하지 않나?

거기다 라이제강을 공략하기 위해 벨라스틴의 마법진 까지 쓰겠다고 한다.

그리고 아복이답게 그 끔찍하게 복잡한 마법진을 다 외우고 있단다.

이게 사람이야 뭐야.

머릿속에 대체 뭘 넣고 다니는 건데?

거, 거기다.

어? 거기다!

데, 데이트를 하잖다.

데이트를.

데이트를.

아니, 어. 뭐, 물론 위장이긴 한데.

라이제강이 있는 산까지 가기 위한 위장책이기는 한데!

미쳤어 진짜.

내가 아복이랑 데이트라고?

아복이랑?

아복이랑 데이트를 해?

그것두 마차 타구서?

정신이 혼미하다.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으··· 그래.

일기장이니까.

솔직해져야지.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혼자가 아니라서.

약속된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홍유희로 살아가던 나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서.

하필 아복이라는 게 좀 걸리지만······.

솔직히 좀 든든하기두 하다.

아복이 말마따나 1등과 2등이 함께니까.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응, 그래.

맞아.

어떻게든 될 거야.

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다구?

레벨이 내가 더 많이 올랐다.

흥흥, 흥흥흥.

유더 그 바보가 엄청나게 부끄러운 말을 시켜서 화가 났지만 응, 괜찮아. 까짓 거 용서해 줄게.

오늘은 내가 이겼으니까.

이 누님의 승리니까.

라이제강은 진짜 무서웠다.

엄청엄청 진짜 엄청 무서웠다.

역시 게임이랑 현실은 다르니까.

그래두 용기를 냈다.

레벨 업을 해야 했으니까.

태양의 목걸이를 얻어서 유더를 치료해야 했으니까.

다행이다.

외출 금지를 받기는 했지만 뭐 이 정도면 이득이지.

아니, 그것두 아닌가.

유더 그 나쁜놈 때문에 달리아가 나를 보는 눈이 이상해졌다.

하, 진짜.

왜 내가 그런 말을 해야 하지?

응? 왜 사, 사··· 아, 글로도 못 쓰겠다. 아니, 안 써.

아무튼 부끄럽고 이상한 말이나 시키고 유더는 변태가 분명하다.

거기다 내가 유더를 안고 뛴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가던 길에는 업기까지 하구.

그놈의 구음절맥.

낫기만 해봐라.

진짜 말한 거 하나하나 다 시켜야지.

하.

그래두 좋다.

좋아.

이기기도 했구, 태양의 목걸이도 얻었구······.

진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할 수 있어.

10.

유더 이 나쁜 놈.

어떻게 한 달이 넘도록 편지 한 통을 안 보내?

어?

이게 말이 돼?

이렇게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아니, 코델리아니까. 어, 코델리아니까.

아무튼!

드디어 유더에게 편지가 왔다.

이번에는 교회로 나오라구?

달리아는 비밀 데이트를 응원해주겠다며 신나하던데 하아··· 데이트는 무슨 놈의 데이트야.

준비하라는 물건들 보니까 뭔가 싸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아무튼 뭐, 필요한 일일 테니까.

그런데······.

그 날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려나.

아니, 뭐··· 위장이긴 해도 데이트는 데이트니까?

예쁜 옷을 입어야겠지?

코델리아야 뭘 입어도 다 예쁘긴 하지만.

흥흥.

아무튼.

유더랑 다시 만날 날이 잡혔다.

11.

미친놈.

하여간 진짜 미친놈.

나한테 전열 세울 때부터 알아봤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가련한 절세미소녀에게 전위를 맡길 수가 있어?

그것두 갑옷까지 입혀서?

거기다 최종보스로 뭐가 나오는지 왜 말을 안 하는데!

하여간 못 됐다.

맨날 현실현실 그러더니 정작 본인은 현실이란 감각이 별로 없는 거 아냐?

아무리 잡을 자신이 있었다 해도 저런 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던전북이라 죽어도 진짜 죽는 게 아니긴 했지만 그래두!

잔소리를 해줬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잡았다는 고양감이 너무 커서 깜박하고 말았다.

나중에 잔뜩 잔소리를 해줘야지.

아무튼 오늘도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유더의 그 전투.

역시 썩어도 준치라니까.

그리고······.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놀랐다.

정말로 진짜.

영웅전기2에서는 늘 경쟁만 했지 파티 플레이 한 번 제대로 안 해봐서 몰랐는데, 유더랑 이상할 정도로 손발이 잘 맞았다.

궁합이 좋다고 해야 하··· 잠깐, 취소.

맞기는 뭐가 잘 맞아!

안 돼, 어, 안 되고말고.

응응, 생리적으로 무리라는 말씀?

당장 옆집 오빠였어 봐.

나보고 전열을 서라는 말 따위는 절대로 안 했을 텐데.

하, 우리 아복이.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어차피 아복이가 옆집 오빠 같은 멋진 남자가 되는 건 무리겠지만 말이다.

응, 무리지, 무리.

절대로 무리.

12.

아버지께서 유더를 보자고 하셨다.

으윽··· 배가 아프다.

속이 쓰리다.

아더 체이스.

체이스 백작.

아버지는 뛰어난 마법사시고, 대마법사답게 굉장한 통찰력을 가지고 계셨다.

어떡하지.

유더 딱 보자마자 놈팽이에 능구렁이에 글러먹은 놈인 걸 눈치 채실 텐데.

으으··· 약혼 파토나는 거 아냐?

그럼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어? 아니, 그 유더랑 약혼자인 게 여러모로 편하니까.

응응,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냥 그거 때문에. 응응.

아무튼 걱정이다.

13.

이상하다.

왜 유더를 마음에 들어 하시지?

이상한데?

아무튼.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약혼 관계는 유지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바이엘 백작. 그러니까 미래의 시아버지······ 악, 이상해.

아무튼 바이엘 백작님이 돌아오셨다.

유더랑 같이 12가문 자제들의 친목회에 가려면 바이엘 백작가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역시 유더.

영웅전기2에 미친놈답게 공격 패턴을 전부 외우는 걸로 가볍게 시험을 통과했다.

바이엘 백작이 직접 나온다고 했을 때는 잘못되면 어떡하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잘 풀려서 다행이다.

하아.

유더 이 나쁜 놈.

걱정 좀 그만 시켜.

진짜 얘 때문에 제명에 못 살 거 같다.

14.

유더는 진짜 미친놈이다.

미친놈이 분명하다.

게임 속의 이벤트를 재현하기 위해 호숫가에서 야밤에 목욕을 하란다.

불순한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기 때문에 진짜 게임에서처럼 목욕을 하지는 않고 그냥 호수에 들어가 시늉을 하는 걸로 타협을 짓기는 했지만 아무튼 괘씸하다.

돌아서서 아예 쳐다도 보지 못 하게 해야지.

15.

한동안 정신이 없어서 일기를 쓰지 못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성공.

12가문의 자제들을 노린 습격 이벤트를 멋지게 막아냈다.

게임에서는 완벽한 저지 자체가 불가능한, 패배가 정해진 시나리오였지만 유더랑 내가 그걸 바꾸었다 이 말씀이지.

실비아 언니는 물론이고 비올라도 무사하다.

루카스는 말할 것두 없구.

게임에서는 불가능한 말도 안 되는 해피엔딩.

솔직히 유더가 대단하기는 했다.

그 사기꾼.

아주 거짓말이 패시브란 말이지?

능구렁이 같은 말로 청사자 단장을 속이는 것도 그렇고, 위조문서를 천역덕스러운 얼굴로 내미는 것도 그렇고.

전생에 사기꾼인 게 분명했다.

자기 말로는 모범시민이었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믿어.

응응.

그래두 뭐랄까.

진짜 범죄자였을 것 같지는 않다.

응. 그런 건 아닐 거야.

아, 그리고 이건 좀 이상한 이야기지만······.

오빠인 거 같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 같다··· 뭐 그런 거?

세금이니 뭐니 이상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으니까.

흠.

몇 살이었을까.

유더에게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제대로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어째 잘 상상이 안 되었다.

유더가 아복이었던 시절의 모습.

일단 옆집 오빠 같이 멋진 남자는 아니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그냥 겜돌이 같은 모습도 아니었을 것 같긴 한데.

모르겠다.

이상하게 자꾸 머릿속에서 미화가 된다.

이러나저러나 유더는 절세미소년이었으니까.

그리고······.

“믿음직 했어.”

일기를 쓰다말고 코델리아는 아주 작게 소리내어 말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유더가 보여준 모든 모습들.

전투 중에 보여준 모습들.

“유더 주제에.”

살짝, 정말로 살짝.

아주아주 살짝 멋있었다.

정말로 살짝이었지만.

“흥.”

작게 웃은 코델리아는 일기장을 덮었다.

16.

12가문 자제들이 납치되는 사건은 막았지만 그래도 마녀의 힘은 필요했기 때문에 열심히 루카스를 구워삶아서 마녀의 숲으로 향했다.

루카스 흐레스벨그.

영웅전기2에서는 코델리아 아니면 루카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마인이 되어야 해서 제대로 플레이 해본 적이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응, 한 마디로 루카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마인이 되었을 때 버전이라면 엄청 자세하게 알았지만.

아무튼 루카스.

덩치는 큰데 귀엽다.

뭐라고 해야 하나··· 단순히 착한 게 아니라 귀엽게 착하다고 해야 하나?

빌트바인 영웅전 끼고 다니면서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도 뭔가 귀엽고.

막 커다란 댕댕이. 그러니까 골드 리트리버? 아무튼 그거 보는 기분이다.

17.

한동안 또 일기 쓸 겨를이 없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마녀의 힘을 손에 넣었다.

중간에 유더가 죽을 뻔해서 엄청 놀라고 무섭고··· 아무튼 그랬지만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마녀의 힘도 손에 넣었고.

해피엔딩, 해피엔딩.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1편의 진주인공 중 하나인 란디우스와 합류하기 위해 들른 자작가에서 사건이 터졌다.

자작이 악마 추종자였을 줄이야.

게임과는 상황이 달라지면서 숨은 설정? 아무튼 그런 게 튀어나온 상황인데, 아무튼 악마 추종자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전직이 의심스러운 유더가 함정을 설치해둔 덕분에 바로 당하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혈전이었고 정말 위험한 순간까지 내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짜잔하고 나타난 인물이 있었으니.

와······.

란디우스.

지난 10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거대해진 란디우스가,

그것도 엄청나게 강해진 란디우스가 전부 해치워버렸다.

분명 영웅전기 1편 때만 해도 검사였는데 왜인지 주먹질을 해댔다.

그런데 그 주먹질이 너무 세서.

어, 너무 세서······.

거기다 유더를 제자로 들이겠다고 선포했다.

구천구문이라는 걸 전수해준다나?

게임하고는 너무 다른 상황이지만 아무튼 좋은 느낌이기는 하다.

거기다 란디우스가 이렇게나 강하다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테고.

그런데 저런 란디우스가 대체 게임에서는 왜 죽은 거지?

죽여도 안 죽을 것 같은데······.

아, 그리고 다행인 점이 하나 더.

유더가 란디우스한테 배워도 란디우스처럼 커지지는 않을 거란다.

아니, 그래도 뭐··· 일단은 약혼자니까?

너무 크면 좀······ 좀······.

뭔가 좀 더 자라서 옆집 오빠 정도? 그 정도 키가 되면 딱 멋있고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 이상 크는 건 역시 좀······ 특히 란디우스처럼 너무 커져버리면······.

유더야, 적당히 크렴.

알았지?

적당히.

적당히!

18.

유더 이 나쁜놈.

왜 또 난데.

왜 또 난데!

저번에 나올 때도 나한테 부끄러운 말 시키더니 이번에도 나보고 부끄러운 편지를 남기게 했다.

거기다 어?

이유가 뭐?

이미 검게 물들었으니 두어 번 더 한다고 티가 안 날 테니까?

이게 진짜!

아 정말 시집 다 갔어.

다 갔다구!

너무 너무 사.랑.하.는 유더 공자와 밀월여행을 하고 싶어서 가출합니다 호호라니.

으아앙...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특히 달리아.

달리아가!

나쁜놈.

마구 때려줘야지.

생각난 김에 지금 때려줘야겠다.

19.

유더랑 같이 말을 탔다.

뒤에 탔다.

어쩔 수 없이 유더의 허리를 안았다.

기둥같이 단단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20.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더, 생활력 개쩌는 남자.

정말 생활력이 엄청났다.

거기다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유더 위키가 또 엄청나단 말이지?

다시 솔직히 말하자면 북부를 여행하는 일은 꽤 재미있었다.

이런저런 퀘스트를 파파팍 해치워가며 살림살이도 하나씩 하나씩 늘려나가고······.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하나.

인정하긴 좀 싫지만··· 그래두 오빠는 오빠라고 해야 하나?

여행 중에 보게 된 유더의 모습은 살짝, 정말 살짝이지만··· 에이 씨. 그냥 믿음직했다.

안정감이 든다는 쪽이 좀 더 맞는 표현일까?

그냥 이 남자랑 같이 있으면 적어도 굶을 일은 없겠구나- 같은 생각.

분명 출발할 때는 맨손이었는데 어느새 말이 생기는가 싶더니 야영도구들과 침낭과 텐트와 하여간 별의 별 것들이 다 생겨났다.

거기다 유더는 요리도 잘했고.

음음, 좋아.

이런 건 합격이야.

상으로 여기서라도 한 번 불러줄게.

유더 오빠 굉장해요.

뭐래.

ㅋㅋㅋ

21.

유더 나쁜놈.

내가 그래서 요리하기 싫다고 했는데.

그래도 어, 사람이 나름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에 그런 평을 해야겠어?

나빴어.

역시 못됐어.

하지만 그래두······.

“다 먹기는 했으니까.”

맛 없다면서 계속 불평을 터트리면서도 일단 다 먹기는 했으니까.

자기 말로는 어려웠던 시절이 있어서 먹는 건 절대 못 버린다 운운하긴 했지만.

“흥.”

아무튼 유더는 나쁜놈이 분명하다.

베에.

22.

프로스트 앤빌에 무사히 입성했다.

겨울의 가호도 얻었고, 만사가 형통이다.

형통인데.

으으으······.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자꾸 화끈거렸다.

윈터 페어리들과 놀아주다가 생긴 일들.

아니, 그냥 얌전히 대사만 읽으면 되지 나한테 왜 그러는데? 어?

그러니까······.

페어리들이 내민 대사들을 읽어주는 것까지는 좋았다.

엄청 느끼하긴 했지만 페어리들이 좋아해줬으니까.

그런데 어, 그런데 그 다음.

그러니까 대마법사와 페어리 퀸의 사랑? 그 대사 읽을 때.

아니, 내가 굳이 필요했던 거야?

사람 가슴 두근거리게.

진··· 옿야ㅐㅗ홰호래

글자를 마구 헝클어트린 코델리아는 입술을 움츠리더니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유더는 등을 돌린 채 자고 있었다.

“하아, 진짜.”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보니 엄청 붉어진 게 분명했다.

‘우씨, 짜증나.’

왜 가슴이 두근거리지?

다른 사람도 아닌 유더가 그런 건데.

아니, 생각해보니 당연한 건가.

어찌되었든 지금의 유더는 엄청 잘생긴 미소년이었으니까.

맞아, 미소년이 내 허리를 안으면서, 얼굴을 가까이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데 두근거리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야?

“으으윽······.”

다시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진정하자, 진정해 코델리아.’

저건 유더야.

아복이라고.

개초딩 아복이.

오빠인 건 분명했지만.

생활력이 대단하긴 했지만.

그래서 여러모로 믿음직하긴 했지만.

“으으으······.”

갑자기 란디우스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유더는 코델리아 자신의 앞을 떠나지 않았다.

란디우스의 엄청난 위압감으로부터 코델리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 진짜.’

갑자기 왜 이런 게 생각나지?

어차피 아복이인데.

어, 유더.

유더라구, 유더.

“후후, 하리. 후후, 하리.”

코델리아는 기묘한 소리를 내며 심호흡을 했고, 덕분에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우··· 상황 때문에 그래. 상황 때문에.”

어차피 연기였으니까 잊자.

그래, 잊어.

마지막에 페어리들이 키스하라고 외쳐댈 때 진짜진짜 기분이 이상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안 했으니까.

“키스······.”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떤 기분일까.

입술을 살짝 만지작 거리던 코델리아는 이내 도리질을 했다.

마치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잡념들을 지우려는 듯 눈을 꼭 감았지만 이내 다시 우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으면 유더와 키스하는 코델리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으니까.

“말도 안 돼.”

어, 맞아.

말도 안 돼.

하도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유더랑 키스를 한다고?

유더랑?

유더랑?

‘그, 그래두 약혼자니까?’

코델리아는 얼른 도리질을 했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지운 뒤 일기장을 덮고 잠을 청하려 노력했다.

어차피 알람 마법 덕분에 불침번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자자.”

일부러 작게나마 소리내어 말한 코델리아는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날 결국,

코델리아는 잠들지 못 했다.

코델리아의 일기 (2)로 이어입니다.

< 엔딩메이커 SS #1 코델리아의 일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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