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65화 (365/473)

< 엔딩메이커 SS #4 페어리 챌린지 >

엔딩메이커 SS #4 페어리 챌린지

제도의 결전으로부터 5개월 남짓.

재앙전쟁이라 이름 붙은 전쟁은 끝이 났다.

재상을 중심으로 반역을 도모했던 반란군- 악마 추종자들은 제국 내에서 일소되었고, 전장에서 도망친 재앙들 역시 깊숙이 몸을 숨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때문에 눈에 보이는 위협은 이제 동방에서 밀려드는 악마 추종자들뿐이었는데, 조금 이상한 말이었지만 그들은 그리 큰 걱정거리가 되지 못 했다.

제도의 결전에서 악마 추종자들 역시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악마의 손, 악마의 눈, 악마의 입.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악마 추종자 집단 가운데 둘이 재앙 전쟁으로 말미암아 소멸했다.

악마의 손과 악마의 눈의 수장들은 둘 모두 제도에서 전사했고, 수하인 상급 마인들 역시 대천사 아우리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간신히 살아서 도망친 마인들이 아주 없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나마 세를 유지하고 있는 악마 추종자 집단인 악마의 입에 합류하기 위해 동방으로 향했다.

즉, 일단 제국과 왕국 내부는 깨끗해졌다는 소리였다.

동방에서 밀려드는 악마 추종자들의 싸움.

재앙전쟁 때 그러했던 것처럼 하늘이 진감하고 땅이 울리는 그런 어마어마한 초인들 간의 대결은 벌어지지 않았다.

동방과의 전쟁은 다수의 병력을 든든한 성벽과 훈련된 정병들로 막아낸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양쪽 모두 피해가 컸으니까.”

스칼렛의 말에 카이사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당장은 동방을 막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잖아? 그치들도 일단 대치 국면을 유지하고만 있지 팍 치고 들어올 마음은 없다는 거고.”

“뭐···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게 말하며 스칼렛은 체스판 위의 하얀 여왕을 전진시켰고,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사는 어느 순간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어어?”

“체크메이트.”

가볍게 말한 스칼렛은 카이사가 말도 안 된다는 눈으로 체스판과 자기 얼굴을 번갈아 보는 것을 방치한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루카스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지평에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루카스는 단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한결같이, 묵묵하게,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주 천천히 검을 휘두름으로써 자세를 정돈하고 검로를 최적화하는 루카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스칼렛은 좋아했다.

큰 키와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아이 같은 느낌을 주는 선하고 해맑은 얼굴이 검을 휘두를 때만은 무척이나 진지하게- 어른스럽게 변했기 때문이다.

‘몸도 좋고.’

완벽하게 단련된 몸은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웠다.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스칼렛은 루카스의 복근에서 눈을 뗀 뒤 그의 검로에 집중해 보았다.

단순히 재능만을 논하자면 루카스를 상회하는 스칼렛이었다.

그렇기에 루카스의 검에서는 배울 것이 참 많았다.

루카스의 검에는 기교나 기발함 같은 것이 아닌 단순하고 명확한, 그렇기에 순수한 강함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바로 그때 귀를 거슬리게 하는 군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 뻔했지만 스칼렛은 고개를 돌렸고, 불끈불끈 거리는 루카스의 근육을 보며 꼴깍꼴깍 군침을 삼키는 카이사를 보았다.

아니, 이제는 숫제 혀까지 핥고 있었다.

“맛있겠다.”

“야, 루카스 먹는 거 아니거든?”

“지도 비슷한 생각하면서. 루카스 배에 구멍나겠다.”

카이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스칼렛은 이마에 빠직하고 힘줄이 돋아났지만 연장자의 미덕을 발휘코자 스스로를 진정시킨 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루카스의 노력하는 모습과 루카스의 검을 보고 있던 거고.”

“네네, 그러시겠죠.”

“이게 진짜!”

그리고 투닥투닥.

매일 보는 광경인 터라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은 너무 집중하느라 주변의 상황을 보지 못 했고, 다른 한 명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루카스 님, 이제 슬슬 시간이에요. 여기 수건이랑 물이요.”

스칼렛과 카이사의 싸움을 무시한- 그러니까 고양이 수인 키라라는 수건을 내밀며 말했고, 바로 앞에 들이밀어진 수건에 검을 멈춘 루카스는 호흡을 바꿈과 동시에 집중을 끊었다.

“아, 고마워.”

키라라가 내민 수건으로 땀을 닦고 물까지 마신 루카스는 다시 한 번 긴 숨을 토했다.

아주 천천히 완검을 펼쳤지만 집중했기 때문인지 단단한 루카스의 가슴 위로 땀방울이 흘렀다.

예전에는 부끄럽다는 이유도 상의 탈의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는데, 요 몇 달 동안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루카스였다.

키라라가 말한 시간.

제도에서의 결전이 끝나고 한동안 루카스는 전장에 나서지 못 했다.

신과 직접 대적한 대가로 인해 심신 모두가 극도로 피폐해진 탓이었다.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지는데 필요했던 시간이 한 달.

다시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기까지 다시 한 달.

그리고 지금처럼 기량을 회복하는데 세 달 남짓.

근 반년의 시간을 들여 겨우 몸 상태를 회복시킨 루카스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더와 코델리아.’

플레이아데스를 구하기 위해 단 둘이서 지옥으로 향한 두 사람.

벌써 반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혹자는 이미 두 사람이 죽었을 거라 말했지만 루카스는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두 사람이 죽었다니.

있을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

두 사람이 죽었다면 지옥의 대군주- 저 애욕의 아스모데우스는 어째서 플레이아데스 침공을 재개하지 않는가.

악마 추종자들의 움직임은 왜 점점 더 수비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는가.

물론 명확한 증거는 될 수 없었다.

이쪽을 방심시키기 위한 기만책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주인님들은 살아계실 거예요. 키라라는 믿고 있어요.”

눈앞에서 들려온 작은,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옅게나마 미소를 지으며 키라라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나도 믿고 있어. 그러니 이제 확인을 해보자.”

그나마 지옥의 소식에 밝은 서쪽 숲의 마녀와 명공 카시우스는 제도의 결전 이후 홀연히 사라진 상태였다.

두 사람이 갑자기 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라진 두 사람에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방법을 강구했고, 그 결과 한 가지 방책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떠올린 거지만.”

“스칼렛에게는 언제나 탄복하고 있어요.”

루카스가 해맑게 웃으며 말하자 스칼렛은 뺨을 살짝 붉히며 흥흥 거렸고, 카이사는 입술을 삐쭉였다.

방을 나서고 한 시간 남짓.

네 사람은 지금 왕궁의 본궁에 자리한 다프네 왕세녀의 수영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페어리들을 불러내기 위함이었다.

‘페어리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공간을 자유롭게 뛰어넘는 그녀들이라면 지옥에 있는 유더와 코델리아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것 역시도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지금은 뭐든 시도하고 도전해봐야 할 때였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그랬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미모를 가진 사람이 달밤에 목욕을 하면 페어리들이 다가와 같이 놀자며 말을 건다고요.”

페어리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 소위 ‘페어리 포인트’가 어디인지까지 제대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루카스 역시 알고 있는 포인트가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영원의 숲에 있는 스프링 페어리들의 호수였고, 다른 하나가 바로 여기- 왕궁에 자리한 섬머 페어리들의 수영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달밤입니다.”

그것도 하얗고 예쁜 보름달이 뜬 밤.

셀레네와 헬레네가 함께 빛나는 드문 시간들.

“그래서, 우리가 하면 되는 거지?”

카이사가 씩 웃으며 말하자 루카스는 뺨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카이사의 복장이 루카스 기준으로는 너무 야했기 때문이다.

검은색 비키니 수영복.

가린 곳이 너무 적어서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그런 디자인.

루카스가 부끄러워하며 눈을 돌리자 카이사 역시 뺨을 붉혔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흥분해서 말이다.

“흐흐흐.”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확 잡아먹고 싶어라.

“아저씨 같아.”

“아저씨 같아요.”

스칼렛과 키라라의 말에 움찔한 카이사였지만 다 같이 여행한 지 벌써 반 년이 넘었다.

이 정도 일에는 이제 꿈쩍도 하지 않는 그녀였다.

“아무튼 그럼 해보자. 일단 나부터!”

시원시원한 성격의 카이사답게 망설임이라는 게 없었다. 남부 출신답게, 그것도 해적 사냥에 열을 올렸던 여인답게 멋지게 수영장 물 속으로 뛰어든 카이사는 자유로이 헤엄을 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인어와 같이 아름다웠다.

“와아······.”

루카스는 진심으로 감탄했고, 스칼렛도 속으로는 인정했다.

달빛 보정을 받아서 그런지 오늘따라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이는 카이사였다.

그런데.

“안 나오네요.”

카이사가 열심히 수영을 한 지 10분 남짓.

반응이 없었다.

카이사는 그래서 배영으로 바꾸어보았고,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에이이!”

역시 목욕인가? 목욕을 해야 하나?!

노기가 치솟은 카이사는 수영복을 벗어 던졌고, 루카스는 급히 고개를 돌렸고, 키라라는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스칼렛은 말했다.

“응, 탈락.”

역시 카이사로는 무리였다.

무리일 수밖에.

완전 선머슴이잖아?

훗 하고 코웃음을 친 스칼렛은 몸에 두르고 있던 커다란 목욕수건을 벗었다.

카이사처럼 비키니였지만, 색이 정반대로 하얀색이었고, 건강한 구릿빛 피부인 카이사와 달리 스칼렛의 피부는 창백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새하얀 상앗빛이었다.

밤의 검정과 하얀 달빛 속에 유달리 더 희게 보이는 스칼렛의 모습.

입술을 삐쭉이는 카이사의 눈빛을 받으며 스칼렛은 수영장을 향해 도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우아하게 입수.

“역시, 안 나오네요.”

키라라의 말에 스칼렛은 얼굴을 빨갛게 붉혔고 카이사는 까르르- 아니,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예쁜 척은 혼자서 다 하더니!”

“야! 너도 어차피 못 불렀잖아!”

“어, 못 불렀어. 그런데 너도 못 불렀네? 못 불렀어?”

“야!”

그리고 다시 투닥투닥.

두 사람의 모습을 훔쳐보던 루카스는 슬쩍 수영장에 입수해보았고,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페어리들의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도 무리 같아요.”

귀여운 하얀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키라라 역시 탈락.

그렇게 네 사람 모두에게 침울한 침묵이 감돈지 얼마나 지났을까.

키라라가 다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다프네 왕세녀 님은 어떠실까요? 미녀로 소문나셨잖아요.”

“무리무리. 애당초 다프네 왕세녀님이 여기 안 나타나신 이유가 뭔데.”

더 이상은 불경죄가 되는 터라 말을 끊었지만, 말을 꺼낸 카이사는 물론이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프네 왕세녀는 한 번도 페어리들을 불러내는데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스칼렛이 작게 중얼거리자 카이사는 공주병 운운하며 이죽거리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스칼렛은 빼어난 미녀가 맞았기 때문이다.

‘눈 진짜 더럽게 높네.’

왜 이렇게 비싸게 굴어.

코델리아는 싸우다 말고 머리에 물만 뒤집어썼는데도 튀어나왔다는데.

‘몸매는 내가 훨씬 더 좋지 않나?’

카이사가 그리 말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때였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스칼렛이 작은 목소리로 노래했고, 키라라는 스칼렛이 왜 작은 목소리로 노래했는지 알았다.

“음, 역시 소용없네요.”

스칼렛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기껏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노래를 불러봤건만 페어리 이것들이 진짜!

“음······.”

스칼렛과 카이사가 각기 다시 침울해진 동안 루카스는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코델리아는 되는데 스칼렛과 카이사는 안 된다.

그럼 누구를 불러와야하는 걸까.

코델리아의 언니인 아델리아?

아니면 마이아?

“실비아 양이라면 가능할지도.”

루카스는 작게 말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 크로스벨.

북부12가문의 자제들 가운데서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영애.

실제로 코델리아가 부각되기 전까지만 해도 북부 제일의 미녀로 가장 먼저 손꼽히던 그녀이지 않은가.

“그래, 실비아 양이라면 가능할 거야.”

서둘러 왕도로 부르면-

거기까지였다.

순간 느껴진 섬뜩한 기운에 루카스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고,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실.비.아. 양?”

“그랬구나. 루카스의 눈에는 우리보다 실비아 양이라는 여자 얼굴이 더 예쁜 거구나. 그랬던 거구나.”

카이사의 낮게 으르렁거렸고, 스칼렛이 차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어, 그! 조, 조형적으로? 그냥 조형적으로······.”

빠직.

지뢰였다.

카이사가 입을 꾹 다문 채 이쪽을 바라보았고, 스칼렛의 눈매 역시 날카로워졌다.

제3자인 키라라가 말했다.

“루카스 님은 조형적으로는 실비아라는 분이 스칼렛 님이나 카이사 님보다 예쁘다고 생각하신다는 거죠?”

“그, 그게······.”

수렁이었다.

뭘 어떻게 말해도 발이 푹푹 빠질 수밖에 없는 수렁.

제일검과 싸웠을 때조차 잃지 않았던 지평으로의 길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지평에 이미 닿았으니 당연한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스칼렛 주변의 기온은 점점 더 차가워졌고, 반대로 카이사 주변은 뜨거워졌다.

얼음과 불.

하지만 양쪽 모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태.

루카스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순진무구한 루카스가 유더처럼 능구렁이 같은 계책을 짜내는 것은 무리였다.

아니, 사실 유더도 이런 상황에 처하면 딱히 도리가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루카스! 스칼렛! 카이사! 키라라!”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급히 고개를 돌린 루카스는 안도의 숨을 토했다.

활짝 웃으며 다리안 왕녀가 도도도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광명이랄까.

지옥에서 헤매고 있는데 하늘에서 동앗줄이 내려온 기분이었다.

“다리안 왕녀 저하.”

“저하를 뵙습니다.”

“저하를 뵙습니다.”

루카스를 필두로 하여 일행 모두가 예를 표하자 다리안 왕녀는 다시 밝게 웃으며 말했다.

“페어리들을 부르시려고요?”

“예, 그럴 생각이었는데······.”

“제가 도와드릴게요.”

“네?”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리안 왕녀가 분명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운 소녀이기는 했지만 이미 스칼렛과 카이사, 거기다 키라라까지 실패한 마당에 딱히 성공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어떡하지.’

페어리들이 안 나타나면 실망하실 텐데.

스칼렛과 카이사는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고, 두 사람은 다시 루카스를 보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얼버무리고 빠져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다시 그 순간이었다.

“사람이 많네?”

“같이 놀까?”

재잘재잘 거리는 발랄한 목소리들.

환상적인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페어리들이 빛의 가루를 뿌리며 다리안 왕녀에게 모여들었다.

“어?”

스칼렛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고, 카이사 역시 당황한 가운데 눈을 껌벅였다.

“어린 애를 좋아하나?”

순간 카이사의 시선이 키라라에게 향했고, 키라라는 참으로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루카스는 정답을 찾아냈다.

“아!”

다리안 왕녀가 품에 가득 안고 달려온 것들.

지금 페어리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거들.

“페어리 부르는 데는 이게 최고죠.”

왕도 특산 고급 초콜릿.

“너무 좋아!”

“맛있어! 짜릿해! 맛있는 게 최고야!”

얼굴도 좋지만 단 게 더 좋다는 사실.

페어리들은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고, 루카스와 스칼렛과 카이사와 키라라는 서로를 보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

“두 사람은 살아 있어.”

“네?”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고, 녹인 초콜릿 속에 몸을 담근 채 수영인지 목욕인지 모를 것을 즐기던 섬머 페어리 퀸은 다시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살아있다구. 우리는 느낄 수 있어. 두 사람에게는 요정왕의 가호가 있으니까.”

사계와 사성.

여덟 페어리 퀸들의 가호를 모두 모아 만든 플레이아데스 최강의 가호가 두 사람과 함게 하고 있으니까.

요정왕의 가호가 강력해서 두 사람이 죽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가 아니었다.

요정왕의 가호에는 여름의 가호 역시 들어가 있었고, 그렇기에 여름의 가호를 내린 장본인인 섬머 페어리 퀸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가호가 건재해. 그건 곧 두 사람이 잘 살아 있다는 걸 의미하고.”

살아있다.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옥에서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루카스는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루카스의 손을 스칼렛과 카이사가 잡았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살아있다.

여전히 지옥에서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두 사람을 구해낸다.

이쪽에서 지옥에 쳐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두 사람을 반드시 구해낸다.

루카스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다운 얼굴과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스칼렛과 카이사는 만족했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루카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구해내자.”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두 사람이 죽었을 리가 없잖아? 오히려 지옥에서 악마들을 괴롭히고 있으면 모를까.”

스칼렛과 카이사가 말했고,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기쁜 나머지 훌쩍이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린 키라라를 토닥이며 결심했다.

“지옥에 가죠.”

“그래, 언제까지 우리만 당하고 있으란 법은 없잖아?”

“한바탕 털어주자.”

카이사와 스칼렛이 이번에도 동의했다.

지옥으로의 원정대.

세상을 구한 두 사람을 위해 이번에는 세상 모두가 나서리라.

“유더, 코델리아.”

조금만 기다려요.

우리가 반드시 구하러 갈 테니.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설사 지옥 전체와 적대하는 한이 있더라도.

루카스는 다부진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fin

“그런데 루카스.”

“네, 카이사.”

“그래서 결국 실비아가 누구야?”

카이사는 은근하게 물었고, 스칼렛은 흐으응 묘한 소리를 흘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압박에 루카스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섣불리 입을 열지 못 했다.

fin

< 엔딩메이커 SS #4 페어리 챌린지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