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딩메이커 SS #6 너의 이름은 (1) >
엔딩메이커 SS #6 너의 이름은 (1)
야생의 땅을 구하고 본가로 돌아온 지 보름 쯤 지났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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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제대로 보지 못 했다. 바로 다시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무겁고, 졸리고, 아무튼 졸리고.
오랜만에 맛보는 감각이었다.
구천구문을 익힌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깊게 잠든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감각에 대해 고찰할 여지도 없었다.
이미 반쯤 다시 잠이 들었기 때문이-
“아가씨! 일어나셔야죠! 아가씨!”
제법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지는 않고 기묘한 신음을 흘리며 겨우겨우 눈을 떴다.
그런데 아가씨?
머릿속이 무겁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일어나세요. 이제 정말 일어나실 시간이라고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엄청 자주 듣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기억에는 남아 있는 목소리.
‘달리아?’
코델리아의 호위 기사.
코델리아에게는 친언니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
그리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코델리아가 좋아하는 유더위키도 작동을 멈춘 기분이었다.
왜지.
왜 이렇게 머리가 흐릿하지.
어찌되었든 눈을 뜨자 달리아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 좀 정신이 드세요?”
달리아가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짜증이 다소 섞여있긴 했지만, 코델리아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지는 눈빛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
조금 멍한 목소리를 뱉었더니 달리아가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아예 목욕을 하시는 게 좋겠네요. 준비해두라고 할 테니 간단하게라도 씻고 계세요. 다시 잠들지 마시고요. 아셨죠?”
“어?”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달리아는 빙글 돌아 밖으로 나갔다.
호위기사인데 하는 일만 보면 완전히 유모였다.
이래서 코델리아랑 그렇게 친해진 거였나?
“어?”
잠깐.
근데 왜 달리아가 우리 집에 있지?
거기다 왜 달리아가 나를 아가씨라 부르지?
머리를 짓누르던 잠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며 정신이 명료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논리적인 모순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델리아 방···이지?”
영웅전기2에서 몇 번이나 본 방.
하지만 플레이아데스에서 직접 본 적은 아직 없는 방.
“코델리아 방이네.”
캐노피가 달린 커다란 공주 침대와 구석에 놓여 있는 커다란 곰인형.
코델리아 방이 맞았다.
그리고 방금 들어온 건 달리아였다.
코델리아 방에 유더 자신이 누워있는데 달리아가 저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
더욱이 달리아는 무어라 소리를 치기는커녕 빨리 일어나라며 재촉했다.
‘아가씨라 불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밋밋하지 않았다.
아니, 어.
그러기는커녕 시야가 가까운 곳에서 턱하고 막혀버렸다.
“이, 이게 뭐야.”
뭔지는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다시 번쩍 들었고, 반사적으로 치렁치렁하고 무거운 머리칼에 손을 대었다.
분홍에 가까운 빨간색.
엄청 길어서 허리에 닿을 것 같은 머리칼.
유더는 심호흡을 하였다.
당황해서 비명을 지르는 대신 열심히 심호흡을 하였고, 겨우 평정을 되찾은 뒤에는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코델리아네.”
코델리아다. 코델리아가 맞다.
그래도 아직 최후의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유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유더위키에 의존하는 대신 고개를 좌우로 열심히 돌리는 것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냈다.
전신거울.
코델리아는 북부12가문 가운데 하나인 체이스 백작가의 영애였고, 당연히 엄청나게 큰 방 안에는 전신을 다 비추고도 남을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억?”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로 달려가려던 유더는 비틀거리다 넘어질 뻔 했다.
단순한 이유였다.
‘몸이 너무 가벼워.’
거기다 신체 사이즈가 전부 다 달라진 덕분에 보폭까지 달라지고 말았다.
천무지체인 유더의 몸이라면 이런 변화 쯤이야 바로 적응해버릴 터였지만 지금 이 몸은 천무지체가 아니었다.
‘이, 이게 코델리아의 몸이야?’
유더도 병약했던 시절에는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갔지만 그때랑은 느낌이 또 달랐다.
키나 몸무게와는 무관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신체 구조의 차이 때문이었다.
‘힘··· 줘도 되겠지?’
팔목이 너무 가늘었다.
발목도 너무 가늘어서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리고 어깨에 부하가 걸렸다.
까놓고 말해 가슴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 일단 거울.”
유더는 다시 조심조심 걸어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했다.
“예쁘다.”
코델리아가 예쁘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새삼 다시 깨달았다.
예쁘다.
정말 너무 예쁘다.
하얀 얼굴과 매끄러운 턱선, 또렷한 이목구비와 영롱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파란 눈동자.
거울에 비친 자신- 그러니까 코델리아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더는 얼른 도리질을 쳤다.
그마저도 귀여워서 순간 정신을 빼앗길 뻔 했지만 유더는 다시 심호흡을 하였다.
코델리아의 몸이 되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평소처럼 생각하기 힘든 유더였다.
“진짜 코델리아야.”
확인하듯 한 차례 더 말한 뒤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렸고, 저도 모르게 만지고 말았다.
“와.”
와와와.
와.
와아.
바보처럼 감탄만 흘리며 조물조물거린 게 몇 분일까.
다시 퍼뜩 정신을 차린 유더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러니까 와와 거리며 특정부위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지, 진정하자 유더.’
그리고 다시 다른 곳도 살펴보았다.
피부가 말도 안 되게 부드러웠다.
거기다 살결도 말랑말랑하다보니 힘을 줘서 만지는 것도 무서웠다.
가느다란 발목만큼이나 가느다란 허리.
작은 어깨.
여기저기 만지며 확인하다보니 문득 죄책감이 들었다.
코델리아의 몸을 허락 없이 만지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지만, 과거의 행적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애한테 업어달라고 했던 거야?’
갑옷 입혀서 전위에 세우고?
과거의 자신이 쓰레기로 느껴졌다.
아니, 물론 구음절맥 때문에 당시의 유더 자신의 몸은 지금의 코델리아 이상으로 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사람으로서 하면 안 될 짓을 했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더욱이 지금의 코델리아는 레벨 업을 잔뜩 거치면서 신체적으로도 우월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과거의 코델리아는?
그러니까 유더 자신과 처음으로 같이 여러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녀는?
‘나 진짜 완전 쓰레기네.’
나중에 코델리아한테 맛있는 거라도 해줘야지.
잠깐의 죄책감 시간을 가진 유더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아무튼 어떻게 된 거지?’
이건 코델리아의 몸이 맞았다.
즉, 유더 자신이 코델리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굉장히 비상식적인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그렇게까지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마법도 있는 세상이니까.’
더욱이 유더 자신은 이미 환생이라는 비상식의 극치인 일을 경험한 상태였다.
서로의 영혼이 바뀐다는- 그런 경우 정도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럼 코델리아가 지금 내 몸에 들어가 있는 건가?’
일단 정합성만 따지면 그러했으니까.
물론 여기에 제3자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서로 밀어내기 식으로 몸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선 코델리아를 만나야 해.’
제3자가 존재하게 되면 일이 복잡해졌다.
제3자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양쪽 모두 일단 코델리아를 만나야지 파악이 가능한 문제들이었다.
“근데 진짜 예쁘다.”
저도 모르게 말한 유더는 치렁치렁한 잠옷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린 뒤 몸을 슬쩍슬쩍 돌려보았다.
역시 예쁘다.
코델리아는 정말 예쁘단 말이지.
정말 예뻐.
진짜 천사 같아.
‘진짜로 천사 맞지만.’
몸이 바뀌었는데도 콩깍지는 여전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코델리아의 미모에 다시 한 번 감탄하던 유더는 재차 도리질을 쳐 정신을 수습했다.
코델리아 몸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딴생각들이 치고 들어왔다.
‘집중하자.’
일단 씻고, 편지를 써서 약속을 잡고, 코델리아를 만나자.
‘지금 우리 사이 정도면 당일에 그냥 팍하고 찾아가서 만나는 것도 문제없겠지.’
이미 사랑의 야반도주를 몇 번이나 반복한 사이였으니까.
음음, 좋아.
모든 것은 계획대로.
기정사실화 성공이랄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것.
당장 눈앞의 사태.
‘할 수 있어.’
분명 당혹스러운 사태였지만 이런 때일수록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운 문제가 어디 한 두 가지였던가?
침착하게.
눈앞에 닥친 문제들부터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가씨?”
“어? 어어.”
조금 어색하게나마 웃으며 돌아서자 달리아가 보였다.
그리고 유더는 또 하나의 시련을 마주하고 말았다.
“목욕 준비 다 끝났으니 이쪽으로 오세요.”
코델리아의 방 옆에 딸려 있는 전용 목욕탕.
과연 체이스 백작가다운 호화사양이라고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자, 잠깐. 목욕?’
세수나 머리감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목욕?
다, 다, 버, 벗고 해야 하는 목욕?
그, 그래도 돼?
어?
그래도 되는 거냐고.
그런데 유더의 당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더 큰 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같이 할게요. 어차피 늦은 아침 그냥 느긋하게 씻어요.”
달리아가 같이 들어간다 말하고 있었다.
아가씨랑 호위기사가 같이 목욕이라니.
역시 친자매처럼 친근한 사이구나 하하하.
‘-하고 웃을 때가 아니잖아!’
아니, 코델리아 몸으로 목욕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달리아까지 같이 하라고?
옛동료 베르트랑이라면 여기서 우효오~ 럭키~ 따위의 말을 했겠지만 유더 자신은 아니었다.
그런 파렴치한 짓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 다, 달리아?”
“아가씨?”
“아니, 그······ 눈가리개 해도 될까?”
“네?”
“아니, 그 눈가리개 하고 목욕······.”
말하고 있는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엄청나게 어색하고 이상한 말이라는 것을.
과연 달리아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아가씨?”
“아, 아냐. 그냥. 어, 그냥.”
그냥 눈이나 감고 있어야겠다.
유더, 넌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완전무장한 상태로 사막도 횡단했던 너잖아?
할 수 있어!
“아무튼 빨리 오세요.”
달리아가 먼저 목욕탕으로 들어갔고, 유더는 심호흡을 하였다.
목욕하는 내내 눈을 감고 있는다는, 실로 힘겨운 도전을 시작했다.
&
‘흑흑 나는 쓰레기야.’
도전은 실패했고, 유더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지고의 기쁨을 누렸다.
‘진짜 쓰레기네.’
그래도 좋지 않았느냐 말하는 자신의 일부에게 재차 실망한 유더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어깨가 아팠다.
정확히는 무거웠다.
‘코델리아 진짜 대단하네.’
놀란 것 중에 하나가 구두였다.
굽이 바보 같이 높아서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코델리아는 이걸 신고 달리기도 했단 말이지?’
진짜 초인인가.
어쩌면 코델리아도 천무지체인 게 아닐까?
‘아······ 뭔가 이상해. 영혼은 내꺼지만 일단 육체는······ 그러니까 두뇌까지 전부 코델리아라 그런가.’
이상하게 생각할 때조차 의성어 같은 게 마구 튀어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머리가 더 좋은 거 같은데?’
단순 성능만 따지면 유더 자신보다 부족할 게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것도 같았다.
‘하긴, 애당초 코델리아도 머리 자체는 좋은 편이니까.’
단순해서 그렇지 머리 자체는 좋았다.
게임적으로 따지면 INT는 높은데 WIS는 낮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대단해.’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허리는 엄청 조이고, 가슴은 답답하고, 치마는 또 너무 치렁치렁해서 무겁다.
‘이 치마 안에 물건을 잔뜩 숨긴 상태로 그렇게 자유롭게 움직였다는 거지? 날 안기까지 하고.’
진짜 대단하다.
코델리아는 초인인 게 아닐까?
‘아무튼 만나러 가자.’
아무리 사이가 좋아진 마당이지만 그렇다고 불쑥 방문할 수는 없었다.
‘아직 오전 중이니 지금 서신을 보내놓고, 오후에 찾아가면 되겠지.’
마음을 정한 유더는 코델리아의 손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코델리아 몸에 남아 있는 습관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동글동글하고 예쁜 글자들이 종이 위에 나열되었다.
‘좋아, 이걸 보내고 만나면 되는 거야.’
유더 자신의 몸에 들어간 코델리아와.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이 걱정되었다.
‘별······ 사고 안 쳤겠지?’
자기 몸에 들어간 코델리아가.
문득 느껴진 불안감에 어깨를 움츠린 유더는 얼른 편지를 봉하였다.
그리고 몇 시간 전.
바이엘 백작가.
애석하기 짝이 없게도 유더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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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딩메이커 SS #6 너의 이름은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