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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69화 (369/473)

< 엔딩메이커 SS #8 지구로 (1) >

엔딩메이커 SS #8 지구로 (1)

유더와 코델리아가 지옥에서 귀환하고 다시 반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

재앙전쟁.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전쟁은 제국의 수도인 제도를 탈환하는 순간 종결처리가 되었지만, 실질적인 전쟁의 여파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제도 아카데미의 고고학 교수인 케플란은 잠시 손을 멈추고 벽에 걸린 지도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 새로 구한 저 지도는 아르곤 제국도, 세일룬 왕국도 아닌 유델리아 신성국에서 만들어진 지도였다.

양쪽 모두의 눈치를 보지 않는 신성국의 지도답게 정치적인 요소 따위는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명백한 사실들이 종이 위에 담담히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유델리아 신성국······.”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앞에 선 케플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세일룬 왕국의 중앙과 남부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

도시 하나와 마을 십여 개로 이루어진 무척이나 작은 나라였다. 여간한 공국보다도 작았으니, 일단 케플란이 아는 한도 내에서는 대륙에서 가장 작은 나라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도 무시할 수 없지.”

무시하기는커녕 대륙 양강이라 불리는 아르곤 제국과 세일룬 왕국 모두가 이 작은 나라의 눈치를 살필 지경이었다.

상징적 의미나 정치적인 프로파간다가 아닌, 문자 그대로 신이 사는, 그리고 신이 다스리는 나라였으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유델리아 신성국을 세운 것은 물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앙전쟁의 영웅인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공작과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공작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신성국이 세워진 것은 두 사람의 변덕이나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세일룬 왕국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테니까.’

신성국의 건국을 제일 먼저 주장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세일룬 국왕 헨리2세였다.

그가 대외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공작은 태양신 솔라리의 계보를 이어 천사로 거듭난 신성한 존재이다.

둘, 태양신 솔라리의 가호가 여전히 대륙을 비추고 있음이 재앙전쟁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러하니 솔라리 교단의 부활을 위해서라도 중심축이 될 신성국의 건국이 필요하다.

그 외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더 붙기는 했지만 사정을 아는 케플란의 눈에는 구차하면서도 필사적인 변명들에 불과했다.

‘그래, 신을 신하로 부릴 수는 없을 테니까.’

대외적으로는 ‘치천사’ 정도로 알려진 코델리아였지만 케플란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코델리아는 솔라리의 계보를 이은 것 정도라 아니라 아예 그 신위를 이어받은 새로운 대천사- 한 마디로 말해 진정한 천상의 신들 가운데 하나였다.

유더 또한 구천구문 제구문을 열었을 때 한정이기는 해도 플레이아데스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각성이 가능한 존재였으니, 결국 코델리아와 동급의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어리석은 자라면 신들을 수하로 부릴 수 있다며 좋아할 터였지만, 제국에게는 애석하게도 헨리 2세는 그렇게까지 어리숙한 바보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현명한 1왕비와 영리한 왕세녀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본인 스스로의 도량이 있었다.

‘지금 같은 관계는 서로 부담스럽고 불편할 뿐이에요. 모양뿐인 군신관계를 유지할 바에는 아예 그냥 독립시키는 쪽이 좋아요.’

다프네 왕세녀의 의견에 1왕비는 동의했고, 헨리 2세 역시 동감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성국이었다.

공국으로 독립시키는 것은 명분도 부족했고, 아무래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세일룬 왕국의 바람이 담긴 일이기도 하지.’

신성국.

신들의 나라.

그러니 자잘한 인간사의 일에서는 손을 떼어주기를.

두 사람의 존재가 세일룬 왕국에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였다.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왕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두 사람의 존재는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언제든지 나라를 뒤엎을 수 있는 존재들.

왕족인 자신들보다 훨씬 더 고귀한 존재들.

이런 존재들을 등 뒤에 두고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겠는가.

‘제국 쪽에서도 반길만한 일이고.’

유더와 코델리아가 신이라는 사실은 제국의 수뇌부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일룬 왕국과의 관계 조성에 있어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큰 압박을 받고 있었는데, 신성국의 건국으로 그 부담이 좀 덜해진 감이 있었다.

‘어차피 유델리아의 가족들이 세일룬 왕국의 귀족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확실히 낫다고 할 수 있으니까.’

더욱이 신성국은 세일룬 왕국과 독립된 곳이었으니, 아르곤 제국에서도 얼마든지 교류를 강화할 수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위에 말했듯이 유더와 코델리아의 가족이 있는 세일룬 왕국 이상으로 가까운 존재가 될 수는 없을 터였지만, 그래도 최소한 세일룬 왕국의 바람처럼 ‘인간사에는 가능한 손을 떼어주십시오.’ 정도는 바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델리아 신성국이라니. 대체 누가 지은 이름인 걸까.”

유더와 코델리아.

합쳐서 유델리아.

아이들 말장난 같은 저 이름을 국명으로- 그것도 신성국의 이름으로 삼다니.

‘역시 코델리아 양···이려나?’

아니면 코델리아의 바람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려고 하는 유더 군의?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 케플란은 다시 웃었다.

그리고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바로 며칠 전에 보았던 두 사람.

분명 달라졌다.

인간에서 신이 되었으니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똑같은 부분도 있었다.

야생의 땅에서 자신을 구해주었을 때.

목숨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구원해주었을 때.

그때와 똑같은 두 사람.

‘달달하게 염장 지르는 것도 똑같고.’

다시 쿡쿡 웃은 케플란은 지도 전체를 바라보았다.

유델리아 신성국 외에도 지도에는 달라진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

&

“슬슬 종전인가.”

성벽 위에 서서 동쪽을 바라보던 프란은 여러 가지 의미가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젊은 놈이 한숨 쉬는 꼬라지하고는.”

바로 들어온 타박에 옆으로 고개를 돌린 프란은 아예 인상을 구겼다.

과거의 모습이라고는 저 꼬장 부리는 말투밖에 남지 않은, 젊고 잘생긴 벨키안이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뭐냐, 불만이냐?”

“당연히 불만이죠.”

여간한 미남자들도 울고 갈 정도로 색기 넘치는 미남이 된 벨키안과 미녀 뺨치는 미인인 자신을 놓고 이상한 소문들이 나돌았으니까.

아니, 어디 소문뿐이겠는가.

낯 뜨거운 삽화가 들어간 도색 서적까지 몇 권이나 출간될 지경이었다.

“아무튼 드디어 전쟁이 끝난 것 같네요.”

유더와 코델리아가 귀환한 이후.

악마 추종자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대군주조차 쓰러트린 플레이아데스의 신들이 적이 되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지옥의 대군주들에게 있었다.

“깨끗하게 손절당한 셈이죠?”

“대군주들 입장에서는 플레이아데스가 더 이상 만만하게 건들기 좋은······ 그런 젖과 꿀이 흐르는 약탈지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벨키안의 말대로였다.

대군주들은 플레이아데스에 개입하는 일을 포기했다.

즉, 악마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신으로 모시던 대군주들에게 버림받고 말았다.

“물론 악마 놈들이니 뒷구멍으로 여전히 이것저것 하려고 할 테지만······ 적어도 몇 년- 아니, 어쩌면 수십에서 수백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겠지.”

악마 추종자들은 그래서 전쟁을 포기했다.

동방으로 도망쳐 몸을 웅크리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일 터였다.

“우리가 동방으로 쳐들어가는 건 무리겠죠?”

“무리겠지.”

성십자수호단만을 이끌고 성전을 선포하며 원정 가는 거 자체는 가능할지 몰라도 동방 전체를 어찌하는 건 불가능했다.

“제국도 앞으로 최소 십년은 웅크리고 있어야 하니까. 재앙전쟁은 겨우 석 달 밖에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석 달 동안 제국은 너무 많은 것들을 잃고 말았어.”

제도가 초토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국군이 반쪽이 났다.

재앙들로 인해 초토화된 도시만 수십 개에 달했으니 어쩌면 십년도 너무 짧을지 몰랐다.

“뭐, 수뇌부는 다 박살을 냈으니 문제없겠죠. 재앙들도 머리만 내밀면 유델리아가 개박살을 내놓을 테고.”

“그런 셈이지.”

그러니 이제 문제라고는 아직 제국과 왕국에 남아 있는,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악마 추종자들 정도가 다였다.

“그, 막시밀리언이었나? 걔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죠?”

“그래, 임페리얼 나이트들과 함께 제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더군.”

검신의 제자.

대천사 아우리엘의 대행자였던 그는 임페리얼 나이트에 입단하여 악마 추종자 박멸에 힘쓰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전범이었지만 세뇌당한 상태였다는 점, 그 재주가 아깝다는 점 등등이 반영되어 처벌을 피한 것이었는데,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아는데다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와 괴로움 등으로 인해 실로 열성적인 악마 박멸자가 된 모양이었다.

“하아······.”

“왜 또 한숨이냐.”

“아니 그냥······ 부러워서?”

난데없는 소리였지만 벨키안은 단박에 이해했고, 그랬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부럽긴 하지.”

란디우스와 레나.

며칠 전 두 사람의 결혼식이 있었다.

장소는 파라곤 왕국의 옛 터.

본래는 친한 이들만 모아놓고 조촐하게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왕국과 제국 각지에서 모여든 하객들로 가득 찬, 거의 유더와 코델리아의 결혼식만큼이나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으니 말이다.

“행복해 보였어.”

“행복해져야지.”

란디우스와 레나 두 사람 모두 잃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이제 행복해져야 했다.

행복해야만 했다.

“그런데 솔직히 레나가 좀 걱정되더라. 영감도 그렇지?”

프란의 말에 벨키안은 헛기침을 토했다.

사실 결혼식장에 모인 모두가 떠올린 생각이었으니까.

재앙전쟁 와중에도 자란 것인지 이제는 키가 240cm에 달하는 란디우스와 여자치고는 큰 키지만, 그래도 170 언저리인 레나 사이에는 70c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키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덩치 차이까지 고려하면 어른과 아이 이상이었다.

“란디우스 팔뚝이 레나 허리만 하더라.”

아니, 어쩌면 더 굵을지도.

“레나는 천사니까 괜찮을 거다.”

“영감, 영감이 생각해도 너무 막 던지는 거 같지?”

날카로운 찌르기에 벨키안은 헛기침을 토했지만 잠깐뿐이었다.

이내 평정을 되찾은 그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튼······ 너는 어찌할 셈이냐.”

너는 누구 만나는 사람 없냐는- 그런 노인 같은 물음이 아니었다.

프란 역시 바로 알아들었기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다.

“미안하지만 난······ 아직은 돌아갈 마음이 없어. 지난 10년 동안은 나도 틀어박혀 수련만 하느라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여행도 못 해봤거든. 나온 직후에도 영감이랑 같이 싸움만 실컷 했고.”

“그래, 그것도 좋겠지.”

“영감은 어떡할 건데?”

“난 도와줄 생각이다.”

파라곤 왕국의 재건.

데몬 프린스가 오염시킨 땅은 왕국과 제국 모두 꺼려하였고, 그 결과 멸망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파라곤 왕국의 옛 터는 여전히 주인 없는 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카마엘 녀석은 왕이 될 생각이 없다 하였으니······ 파라곤 왕국의 계보를 제대로 잇는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란디우스가 그 곳에 있고, 레나가 그 곳에 있다면······ 그곳이 우리의 파라곤이겠지.”

벨키안의 말에 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소식을 들은 파라곤 왕국의 유민들이 대륙 곳곳에서 모여들고 있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성질 급하게 신생 파라곤 왕국이 기입된 지도를 만들어 출판하고 있었다.

본래 이런 건 사람들 인식이 중요하다는 유더의 주장에 의해서라는데, 아무튼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또 어딜 간다고?”

“오래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플레이아데스를 비우게 되었으니 잘 부탁한다고 하더군.”

어젯밤에 도착한 두 사람의 편지.

이제는 대륙 전체의 유행이 된 사랑의 가출 편지는 아니었지만, 골 때리는 내용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니, 따지고 보면 이것도 사랑의 가출 편지 아니야?”

결국 집 나간다는 소리였으니까.

이번에도 날카로운 프란의 지적에 벨키안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저 허허 웃으며 유델리아 신성국이 위치한 남서쪽을 돌아보았다.

&

“에구에구 꺄르르! 이모 없다!”

코델리아가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그리 말하자 작은 침대 위에 누워있던 아기들이 눈을 동그랗게들 떴다.

“다시 있다!”

손바닥을 치우며 활짝 웃자 아기들 역시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인지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아기들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라졌다’라고 인식하기 마련이었는데, 이를 이용한 일종의 존재와 부존재 놀이였다.

‘-라고 유더가 이상한 설명을 했었지.’

잠시 유더의 얼굴을 떠올린 코델리아는 이내 생글생글 웃으며 아브아브 거리는 아기들의 작은 손을 잡아주었다.

“아우, 어떡해. 너무 작아. 너무 귀여워.”

침대 위의 아기들.

아델리아와 게일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남매였다.

“진짜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막 천사 같아. 아니, 생각해보니 진짜 천사네?”

엄마인 아델리아가 천사였으니까.

“아, 진짜. 너무 좋아.”

꼬물꼬물 거리는 저 작은 손.

사랑스러운 미소.

쌍둥이 남매인데도 한쪽은 게일을 닮아서 검푸른 머리칼이었고, 다른 한쪽은 아델리아를 닮아 금발이었다.

‘누나가 검푸른 머리칼이고, 남동생이 금발이고.’

둘 다 자라면 어떻게 될까.

막 유더 여자 버전이라든가?

잠시 여자가 된 유더의 모습을 떠올려 본 코델리아는 므흐흐 웃음을 흘렸다.

지금이 아니라 예전, 그러니까 병약하던 시절의 유더가 여자가 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병약 미소녀 귀여워.’

하지만 생각해보니 안될 말이었다.

이렇게 천사 같은 아이가 병약하면 안 되었으니까.

무조건 건강하고 튼튼한 게 최고였다.

“그쯤하고 이리 와. 슬슬 애들 재워야 할 시간이니까.”

아델리아의 말에 코델리아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아기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이모 또 올게. 응. 금방 올게. 응. 꼭. 흑흑.”

정말로 눈시울까지 붉히는 코델리아의 모습에 지켜보던 아델리아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보면 네가 낳은 애들인줄 알겠다.”

“흥, 언니 애니까 내 애나 다름이 없지.”

“아니거든?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애들이거든?”

아기들이 태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쌍둥이를 낳은 터라 출산 직후에는 시름시름 앓던 아델리아였지만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한 상태였다.

“진짜 대단하다. 천사는 엘프들 이상으로 아이 가지기가 힘든데.”

결혼하고 반년인가 만에 아이를 가지다니.

실로 놀라운 성과였다.

“그냥 열심히 하면 돼. 어, 열심히.”

아델리아의 말에 헛웃음을 지은 코델리아는 다시 침대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름은 아직도 고민 중인 거야?”

“아명은 정했는데, 진짜 이름은 아버지께서 아직도 고민 중이시잖니. 하, 정말이지. 지금까지 지은 이름 후보만 천 개는 족히 될 걸?”

아델리아의 푸념에 코델리아는 다시 웃었다.

아버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보다······ 이 편지 진짜니?”

어젯밤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의 편지.

아델리아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래는 아니고······ 잠시만 다녀오려고.”

아델리아는 전생의 기억들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 했다.

그리고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있었던 일들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편지에 쓰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 두 사람이 정한 일이니까. 분명 중요한 일이겠지.”

아델리아의 말에 코델리아는 뜨끔한 표정이 되었지만 딱히 무어라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중요한가.’

플레이아데스에게 있어 중요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코델리아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다녀와. 너무 늦지는 말고. 우리 아기들 자라는 모습은 지켜봐야하잖아? 아이는 은근히 빨리 크는 법이라고. 좋은 장면 다 놓치지 말고 제때 돌아와야 해. 알았지?”

“응, 언니. 금방 올게. 응, 꼭.”

“그래, 한 번 안아보자.”

그리 말한 아델리아는 두 팔을 벌렸고, 코델리아는 그런 아델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이후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이래저래 여유가 생긴 아델리아였지만, 그래도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코델리아 자신의 하나뿐인 언니.

사랑하는 가족.

“그럼 갔다 올게.”

“그래.”

코델리아는 마지막으로 아델리아의 아기들에게 인사한 뒤 바이엘 백작가를 나섰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유델리아 신성국의 저택에서 유더를 마주하였다.

“대충 정리는 끝난 거지?”

“어, 마무리 되었어.”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가 아델리아와 작별인사를 하는 동안 유더는 플레이아데스를 떠나기 전에 꼭 처리해야 하는 일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케인즈.

영웅전기2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가운데서 유일한 악인인 그.

영웅전기2의 시작 시점 이전부터 이미 흉악한 범죄자였던 그는 역시나 재앙전쟁 전후로도 많은 악행들을 저질렀다.

아예 존재를 모른다면 모를까, 뻔히 악행을 일삼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존재를 그냥 두고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레온이랑 사라가 데려갔어.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는 제국에서 정하겠지.”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하나하나 손을 꼽아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빼먹은 일이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언은 임페리얼 나이트에 들어갔고, 란디우스 님이랑 레나 님은 결혼하셨고, 레온이랑 사라도 곧 결혼한다고 하고······ 붉은바람은 반 년 뒤에 아이를 낳을 거고······ 키라라는 신성국의 수호자 중에 하나가 되었고······.”

마이아와 달리아가 빨리 짝을 찾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 외에는 얼추 모든 일들이 마무리 된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잠깐만.”

그렇게 말한 코델리아는 일기장을 꺼내더니 마지막 페이지를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유더는 투시술을 사용해 일기장을 훔쳐보는 대신 기다렸고, 몇 분 뒤에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좋아, 이제 정말 가도 되겠다.”

일기장을 접은 코델리아가 활짝 웃자 유더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의문을 제시했다.

“그런데 코델리아.”

“응, 유더야.”

“우리 왜 제국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는 거야?”

그랬다.

두 사람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세상간 이동용 아바타들은 제국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코델리아가 입고 있는 것은 칼라와 손목 부근에 검은 천이 덧대어진 옅은 회색 겉옷에 파란 어깨 수술, 하얀 블라우스, 파란 리본, 가슴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는 허리와 일체형인 짧은 검정색 치마가 들어간 제국 아카데미의 여성용 교복이었고, 유더가 입고 있는 것은 똑같은 배색에 치마 대신 바지가 들어간 남성용 교복이었다.

케플란을 만나러 갔다가 얻어온 것들이었는데, 왜인지 아바타들이 입고 있었다.

“그야 예쁘잖아. 자기도 어젯밤에 그렇게 좋아해놓구는.”

“흠흠. 그건 그렇지만.”

코델리아의 말에 헛기침을 터트린 유더는 다시 자신들의 아바타를 바라보았다.

세상간 이동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아바타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는 이미 신적 존재들이었기에 세상간 이동이 만만치가 않았다.

때문에 약간의 편법을 동원하기로 한 것이었다.

‘아바타에 우리 영혼을 담아서 보내면 되겠지.’

본체는 플레이아데스에 있고, 영혼의 일부를 담은 아바타만 지구로 보낸다.

“어떻게 보면 이거야말로 게임하는 감각이네?”

온라인 게임에 아바타 만들어 접속하듯이.

코델리아의 비유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제 가자.”

“응, 가자. 빨리 가고 싶어.”

지구에 남아 있을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자기 자신들이라 할 수 있을 강진호와 홍유희.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운명적인 만남을 거쳐 연인이 되었을까?

아니면 지금도 온라인에서 서로 물어뜯으며 놀고 있을까.

“가보면 알겠지.”

“응, 가보면.”

유더와 코델리아는 나란히 의자 위에 앉은 뒤 서로의 손을 깍지 껴서 잡았다.

천천히 의식의 일부를 아바타에게 전송하였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의식에 딸라 열린 세상간 이동을 위한 게이트.

파랗고 동그란 공간의 문 앞에 선 유더와 코델리아의 아바타는 서로를 보았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손을 꼭 잡은 채 공간의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구로.”

세상간 이동이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

< 엔딩메이커 SS #8 지구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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