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딩메이커 SS #9 지구로 (2) >
엔딩메이커 SS #9 지구로 (2)
다른 세상으로의 이동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아니, 영혼의 이동까지 고려하면 네 번째일 터였다.
플레이아데스에서 지구로, 다시 지구에서 플레이아데스로.
그리고 지옥에 갔던 경험까지.
하지만 역시 익숙해지기에는 아직 경험이 너무 적은 탓인지 코델리아는 약간의 멀미 증상을 느꼈다.
“괜찮아?”
“어, 응. 좀 어지럽네.”
세상간 이동에서 그 과정을 느끼기란 어려웠다.
감각적으로는 공간의 문에 들어선 직후 반대쪽으로 나온 것에 가까웠다.
터널이 아닌 문을 통과하듯이 말이다.
어찌되었든 비틀거리던 코델리아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싸는 유더의 팔에 몸을 기대었고, 그대로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공기가 나빠.’
플레이아데스와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켁켁 거리며 콜록거리던 코델리아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끝에 겨우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유더에게 안긴 채였지만 말이다.
“좀 괜찮아졌어?”
“응, 이제 괜찮아.”
사실 마법을 쓰면 바로 해결될 일이었지만 앞으로 체류 기간 내내 마법을 걸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 익숙해지는 게 좋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못 쓸 것도 없긴 한데.’
그래도 역시 아니었다.
도리질을 친 코델리아는 유더의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광경.
두 사람은 지금 이름 모를 건물의 옥상 위에 서 있었다.
도시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고 해봤자 10층도 되지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인 플레이아데스와는 달랐다.
어림잡아도 50층 남짓.
더욱이 주변에 자리한 건물들 역시 대부분 그러했다.
그렇기에 보이는 풍경들.
“와, 남산 타워다.”
코델리아가 무심코 꺼낸 말에 유더 역시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
비틀거리는 코델리아에게 온신경이 집중되어 있던 탓에 놓치고 있던 풍경들을 다시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기 때문이다.
“진짜로 와버렸네.”
“그러게.”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연 번쩍 안아들더니 그대로 옥상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코델리아는 유더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 던지면 안 돼. 알았지?”
“던져도 날개 있잖아.”
언제나처럼 되도 않는 소리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이내 감탄을 토했다.
50층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의 풍경 때문이었다.
“유더야, 조금 이상한 소리해도 돼?”
“늘 그러니까 해도 돼.”
“우씨. 진짜 못 됐어.”
“아무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정겹다구.”
“도시의 풍경이?”
“응, 8차선 도로 위에서 자동차들 막 오가는 거랑 사람들이 휴대폰만 보면서 걷는 거랑··· 다 정겨워.”
보통 정겹다기보다는 삭막하다는 말이 어울릴 광경이었지만 유더는 동의했다.
유더 자신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이니까.’
햇수로는 19년만이었고, 기억을 각성한 이후부터 따져도 근 3년만이었다.
“지금이 몇 년일까.”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을 거야. 플레이아데스에 있을 때 계산해봤는데, 아마 1년에서 2년 정도?”
“겨우?”
플레이아데스서 환생해서 보낸 시간이 19년인데?
코델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유더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기 쉽게 행성으로 비유하자면··· 화성과 지구도 서로 가까워지고 멀어질 때가 있잖아?”
“응, 있어.”
“그런 식으로 세상간의 시간의 흐름의 격차도 세상 간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냐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어.”
유더와 코델리아의 영혼이 지구로 갔을 때는 플레이아데스와 지구가 속한 세상이 무척이나 가까웠을 때의 일이었다.
“우리가 나고 자라는 동안에는 플레이아데스와 시간이 비슷하게 흘렀지만··· 우리가 돌아간 뒤에는 다시 세상간의 거리가 많이 벌어졌거든.”
“그래서 지금처럼 되었다고?”
“어. 사실 단순히 거리 문제가 아니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와 변수가 있지만 일단 대충 말하면 그래.”
“응, 대충만 알래.”
코델리아는 복잡한 일들은 언제나처럼 유더에게 맡긴 뒤 대신 다른 것을 떠올렸다.
“그럼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천계랑 지옥도 비슷한 경우야?”
“비슷하지. 하지만 플레이아데스랑 지구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아.”
아우리엘과 라구엘이 솔라리의 죽음에 개입하지 못 했던 것도, 아우리엘이 솔라리의 죽음에 대한 상처를 결국 회복시키지 못 한 것도 세상간 시차와 연관이 있었다.
“아무튼 일단 지금 날짜부터 확인하자.”
어림잡아 1~2년이라 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지도 몰랐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기저기. 날짜 확인할 거면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
“좋은 방법?”
그냥 밑에 내려가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잠시 휴대폰을 빌려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유더가 고개를 갸웃하자 코델리아는 다시 므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지무지 좋은 생각.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
대체 무슨 소리일까.
그리고 20분 뒤.
유더는 코델리아의 말에 새삼 동의하였다.
정말로 좋은 생각이었다.
&
“PC방 너무 좋아!”
그랬다.
PC방.
컴퓨터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는, 게임하면서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바로 그 공간.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유더와 코델리아는 몇 가지 마법을 더 사용해야만 했다.
코델리아가 예뻐서 입었다고 주장한 아카데미 제복은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환상 마법으로 평범한 옷의 환영을 두르고, 인식장애 마법으로 두 사람에 대한 인상 역시 흐릿하게 만든 뒤에야 PC방에 입성할 수 있었고, 입성하기 5분 전부터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흥분하던 코델리아는 이제 대놓고 좋아하고 있었다.
“아, PC방 특유의 이 냄새. 너무 그리웠어.”
“컵라면 냄새랑 소독제 냄새랑 공기청정기 냄새가?”
“어, 그리고 저 소리들.”
달칵달칵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들려오는 육두문자.
“아 씨발 존나 못 하네!”
“길막만 하지 말라고!”
“이게 안 죽어? 씨발?”
그것만이 아니었다. 뒤쪽 모니터들을 힐끔 바라보니 채팅으로 열심히 상호간의 부모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역시 씨발은 감탄사라니까?”
코델리아가 까르르 웃으며 말하자 유더는 결국 따라서 웃었다.
아무튼 코델리아가 웃으면 좋았으니까.
코델리아가 웃는데 사소한 것들 쯤이야 뭐가 문제겠는가.
“그래, 씨발은 감탄사고 패드립은 애교지.”
“에이, 그래도 패드립은 좀 아니다.”
까르르 웃은 코델리아는 다시 모니터와 키보드를 바라보았고, 조금이지만 얼굴을 붉혔다.
“헤헤··· 커플석이다.”
커플석.
예전에 남만고양이 언니랑 같이 앉아본 게 다인 장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정말로 커플이었으니 말이다.
“헤헤헤.”
“그렇게 좋아?”
“응, 좋아. 너무 좋아.”
PC방도 좋구, 커플석도 좋구, 유더도 좋구.
다시 헤헤 웃은 코델리아는 새삼 옆자리 앉은 유더의 뺨에 쪽하고 입술을 맞추었고, 유더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주변에서 게임하던 이들 가운데 몇이 인상을 구기며 욕지거리를 토했지만 그런 것 따위 깨끗이 무시할 수 있는 유더였다.
“우리 공주님, 아무튼 날짜 확인해볼까요?”
“네, 아빠.”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의 표정이 더더욱 괴악해졌지만 이미 서로밖에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그래도 좀 그러니 차단해놔야겠네.’
그리 생각한 유더는 컴퓨터 책상에 손가락으로 슥슥 마법진을 그렸다.
시선 차단과 침묵 마법. 여기에 덤으로 인식장애 마법까지.
이제 이 커플석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주변의 이목을 끌지는 않으리라.
“흥흥~ 날짜를 확인해 보면~ 와, 진짜 1년 정도 밖에 안 지났네?”
떠날 때가 2019년이었는데 지금은 2021년이었다.
햇수로는 2년이었지만 달수로 따지면 13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흠··· 이 정도면 그다지 변한 게 없을 지도 모르겠는데?
“응응. 그치만 하나 바뀐 게 있을 거야.”
거기까지 말한 코델리아는 얼른 인터넷 창을 열어 도도도 키보드를 두드렸고, 이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역시 나와있을 줄 알았어!”
영웅전기3의 최종 확장팩.
“오··· 정말 2편 캐릭터들 연동해서 쓸 수 있게 되었네?”
“응응! 거기다 봐봐. 해피엔딩 루트가 추가되었대.”
플레이아데스에서의 일이 영향을 끼친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낮았지만 아무튼 반가운 일이었다.
“유더야 유더야.”
“응?”
유더가 돌아보자 코델리아는 돌연 입술을 움츠리더니 그대로 유더의 팔을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우리 진짜 오랜만에 왔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놀다 가지 않을래? 응? 쪼끔만. 응?”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겠는가.
코델리아가 작정하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자 유더는 언제나처럼 홀라당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럴까? 조금만 할까?”
“응응! 조금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영웅전기2를 실행시킨 뒤 로그인 창을 보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직후였다.
“잠깐!”
“응?”
벌써 번개같은 타이핑으로 아이디 입력을 끝마친 상태였던 코델리아가 깜작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유더는 다시 빠르게 말했다.
“아니, 본캐로는 안 되지. 겨우 1년이잖아. 우리가 있을 거야.”
“아.”
그랬다.
강진호와 홍유희가 어딘가에서 영웅전기2에 접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설사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로그인 흔적에 해킹 같은 것을 의심하리라.
“그럼 어쩌지? 새로 파야하나?”
“그래야겠지.”
“음······ 뭐, 좋아. 새로 추가된 해피엔딩 루트도 신경 쓰이니까.”
까짓거 새로 키우지 뭐.
사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기두 하구.
“그럼 유더야. 우리 내기하지 않을래?”
“무슨 내기.”
“누가 먼저 만렙 찍나 내기? 시나리오 누가 먼저 클리어하나 내기도 좋구.”
“호오. 그래도 괜찮겠어?”
“괜찮구 말구. 내가 이길 거니까.”
“흠··· 그 소리 어째 매일 밤마다 듣는 기분인데 말이야.”
유더가 능글거리기 시작하다 코델리아는 바로 유더의 손등을 꼬집으며 말했다.
“그래서 할 거야 말거야.”
“해야지. 우리 공주님이 내기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해야지.”
“흥, 아주 혼쭐을 내줄 거야.”
“그래, 그래. 아무튼 그럼 내기 조건은?”
“소원 하나 들어주기?”
“또또 후회하려고 그런다. 아니지. 나한테 빌게하고 싶은 소원이 있는 거야? 우리 공주님 역시 야하네?”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여기서 야한 게 왜 튀어나와. 진짜 변태라니- 잠깐, 너 뭐하는 거야?”
“뭐하긴 계정 만들지. 내기는 벌써 시작한 거 아냐?”
“우씨. 맨날 꼼수만 쓰구! 나도 가입해줘!”
“네이네이, 잠시만.”
강진호와 홍유희의 신상정보로 가입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유더는 외우고 있던 신상정보로 자신과 코델리아의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하, 이제 시작이네. 막 두근두근거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가슴이 설레이는 것일까.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보며 솔직히 인정했다.
“사실 나도 그래.”
“그치?”
너나나나 어쨌든 겜돌이 겜순이였으니까.
“그럼 진짜 시작이다?”
“어, 시작. 바로 시작.”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유더는 유더를, 코델리아는 코델리아를 선택했고, 게임을 시작했다.
&
3일 뒤.
“크, 게임하면서 컵라면 먹기. PC방은 이 맛에 오는 거지.”
스탭롤을 바라보며 코델리아는 새우탕면을 호로록 먹었고, 그런 코델리아을 위해 콜라캔을 따며 말했다.
“일단 2는 다 깼네.”
“어, 이제 3편 깨야지.”
2편 캐릭터로 3편 연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3편 시나리오를 공략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럼 코델리아, 우리 장소 옮기지 않을래?”
“응? 왜? 컴터에 문제 있어?”
“아니, 것보다는 3일 내내 앉아서 게임만 했으니까. 그냥 분위기 환기 차원?”
“흠······ 그래. 옮기자. 근처에 다른 PC방 있어?”
“아니, PC방은 없는데··· 대신 더 좋은 곳이 있거든.”
“좋은 곳?”
“어, 아주 좋은 곳.”
유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코델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30분 뒤.
“야, 이 변태야.”
“변태 아니거든?”
“뭐가 아니야. 게임하자면서 모, 모, 모텔 오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모텔.
홍유희이던 시절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
그도 그럴 것이 갈 일이 없었으니까.
“여, 여기 야한 곳이잖아!”
“허허, 어찌하여 머리가 그렇게만 돌아가는 것일까. 인터넷도 안 봤어? 요즘 모텔은 게임하러 놀러가는 장소기도 하다니까? 봐봐. 최신형 컴퓨터가 두 대나 떡하니 자리잡고 있잖아?”
사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놀거리가 풍부했다. 마이크를 보니 노래방까지 가능한 모양이었다.
“흐으응.”
하지만 그래도 모텔은 모텔.
코델리아가 무척이나 신경 쓰인다는 듯 투명한 샤워부스를 바라보자 유더는 바로 컴퓨터 세팅을 하며 말했다.
“아무튼 바로 3편 달리자. 여기라면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마법 쓰지 않아도 될 거야.”
“응응. 그건 맘에 든다. 맘에 들어.”
숨 쉬듯이 마법을 쓸 수 있는 본체와 달리 세상간 이동용으로 준비한 이 아바타로는 24시간 내내 마법을 쓰고 있는 것이 다소 버거웠으니까.
실제로 마법을 거두자 이래저래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자자, 그럼 바로 달리자고. 내기는 3편 완전 클리어까지니까.”
“흥, 내가 무조건 이길 거야.”
“네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쁜 놈.”
웃으며 욕한 코델리아는 바로 영웅전기3를 시작했고, 그렇게 다시 3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
“아······.”
“아······.”
유더와 코델리아는 만감이 뒤섞인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영웅전기3의 엔딩.
그리고 이어진 에필로그와 엔딩 스탭롤.
플레이아데스에서 유더와 코델리아가 겪은 것처럼 이야기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1회차 플레이이기 때문인지 구할 수 없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플레이아데스는 평화를 되찾았다.
“좋은 이야기야.”
“응, 재미있었어.”
눈시울까지 붉히던 코델리아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코델리아- 아니, 홍유희에게 있어 영웅전기 시리즈는 단순한 게임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4분의 1이 넘는, 5년도 넘는 시간을 투자했던 인생의 동반자.
그 대장정의 끝을 봤으니 눈물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아직이야. 온라인 모드도 있으니까.”
“응.”
아직이었다.
쓰러트린 것은 대군주 아스모데우스 뿐이었고, 아직 대천사 아우리엘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은 만족했다고 해야 할까.
유더는 코델리아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재미있었어.”
“응, 즐거운 여정이었어.”
“그런데 코델리아.”
“응, 유더야.”
“소원은 뭐 빌거야?”
겨우 몇 초 차이이긴 했지만 내기에서 이긴 건 코델리아였으니까.
“흐흐, 글쎄. 유더를 여자로 만들까? 난 남자가 되구.”
까짓거 여자 아바타랑 남자 아바타를 만들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유더는 흠칫했고, 코델리아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병약미소녀 유더 막 엄청 귀여울 것 같지 않아?”
“저, 저기요?”
“흐흐흐.”
코델리아는 다시 능글맞게 웃더니 유더에게 키스했다. 그대로 유더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싫으면 내기 한 번 더할까?”
“무슨 내기?”
“글쎄? 온라인 모드로 나와있는 메인 퀘스트들 누가 먼저 다 깨나?”
“호오. 이번에는 내가 봐준 거란 거 알고 있나요?”
“봐주기는 개뿔. 한숨도 안 자고 겜만 했으면서.”
“너도 마찬가지거든?”
“흥, 누구 때문인데 그래.”
거기까지였다.
서로를 보며 날카롭고 사나운 미소를 지은 두 사람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고, 맹렬한 기세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아, 좆망겜. 할 거 존나 없네. 컨텐츠가 부족하네.”
“좆망겜이 다 그렇지 뭐.”
한 달 동안 모텔에 틀어박혀 게임만 한 두 사람은 그리 말했고, 어느 순간 코델리아가 배를 긁적이며 말했다.
“슬슬 돌아갈까?”
“그럴까?”
영웅전기3도 다 깼고.
습관적으로 입술을 맞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기지개.
“하, 그래도 재밌었어.”
“어, 보람도 차고.”
“돌아가면 바로 여자 유더부터 만들어야지. 히히.”
두 번째 내기도 코델리아 자신이 이겼으니까.
살짝 비겁한 수를 쓰긴 했지만.
까르르 웃은 코델리아는 공간의 문을 열기 위한 준비를 하였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거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남짓 뒤.
“그런데 코델리아.”
“어, 유더야.”
“우리 뭔가 잊은 거 같지 않니?”
“응? 뭐가?”
영웅전기2랑 3랑 다 깼는데?
4도 계획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오려면 한참 남-
“아!”
플레이아데스에서 지구까지 온 진짜 이유.
“야, 야! 난 그렇다 치고 너까지 잊으면 어떡해?”
“아니, 난 잊은 척 한 거거든? 그냥 네가 언제 깨닫나 지켜본 거지.”
“뻥 치시네. 너도 방금 깨달은 거 티 나거든?”
“······이게 다 네 몸에 들어갔던 일 때문이야. 너처럼 되고 말았어.”
“이게 누구 핑계를 대고 있어!”
유더의 정강이를 걷어차 준 코델리아는 언제나처럼 자기 정강이를 붙잡고 아파했다.
아바타지만 단단하기는 지금의 유더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코델리아. 빨리 찾아보자.”
“우씨. 다음엔 말랑말랑하게 만들거야.”
“에이 설마. 말랑말랑한 것 보다는 단단한 게 좋잖아?”
언제나처럼 개소리를 늘어놓은 유더는 코델리아의 손을 당겨 컴퓨터 앞에 앉혔다.
금붕어처럼 방금 말한 걸 까먹고 다시 게임에 몰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있다, 있어!”
영웅전기담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두 사람.
1위 : 아웃복서009 - 36개월 연속!
2위 : 노란폭풍 - 35개월 연속!
“뭔가 기분이 나빠졌어.”
“우리답네.”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뺨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대로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자, 그럼 추적해 볼까?”
강진호와 홍유희.
두 사람이 이 세계에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키보드 위에 올라가 있던 유더와 코델리아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 엔딩메이커 SS #9 지구로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