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딩메이커 SS #10 지구로 (3) >
엔딩메이커 SS #10 지구로 (3)
영웅전기2 한국서버 1등과 2등.
영웅전기3 최종 확장팩을 통해 2편과의 연동이 확정됨에 따라 2편과 3편의 유저 데이터가 합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등과 2등을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밥 먹고 게임만 하나 진짜.”
“그러게.”
한달 넘게 밥 먹고 게임만 하던 두 사람은 남 이야기하듯 중얼거리다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유더였다.
“그런데 코델리아, 네가 옆집 소녀였다고 하면······ 결국 얼마 전까지는 고등학생이었다는 거 아냐?”
“응응. 그런데? 작년까지 교복 입던 애랑 사귄다고 하니까 막 흥분되고 그래? 아닌가, 찔리는 건가?”
“저기요, 너님 환생하신지 19년이 지났거든요?”
“그래서 지금 안 두근거린다 이거야?”
“콩닥콩닥하지요.”
“흥흥.”
코델리아가 만족했다는 듯 흥흥 거리자 유더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은 뒤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럼 처음 2등한 게 고2 때라는 거잖아.”
“너 지금 일부러 2 강조하는 거지?”
“그럴 리가. 아무튼 그럼 고2랑 고3때 계속 2등을 했다는 거야? 한국 서버 2등을?”
“왜, 할 수도 있지 뭐.”
코델리아가 툴툴 거리며 답하자 유더는 미간을 좁혔다.
“음··· 내가 비록 외국에 있어서 한국 고등학교를 체감해보지는 않았지만··· 보통 고2랑 고3때는 공부하느라 바쁘지 않아?”
“바쁘지. 영웅전기2도 하구 공부도 하구 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코델리아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뭐지. 설마 진짜 공부했나?’
그러고 보니 자격증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기는 했다.
‘실업계나 공고 계열이었나? 아닌데. 입고 다니던 교복이 근처 인문계 교복이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유더는 이내 눈빛을 날카로이 했다.
그대로 코델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코델리아.”
“응?”
“솔직히 말하자. 알았지?”
“뭐, 뭐가?”
벌써부터 당황하는 것이 역시나 수상했다.
“너, 대리 돌렸지?”
중요한 전투나 PVP를 다른 사람에게 맡겼을 리는 없었다.
당시 보여준 코델리아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유더 자신이 잘 알았으니 말이다.
아마도 대리를 돌린 것은 반복 노가다 플레이 쪽.
유더의 발언에 뜨끔한 코델리아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어버버 거렸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뺨을 아프게 꼬집었다.
“아야아야. 아프하.”
“아프라고 꼬집는 거다만?”
물론 볼따구의 감촉이 말랑말랑하니 좋은 것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울상이 된 코델리아는 뺨을 붙잡힌 채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이, 고2랑 고3 제이루 바쁘르 때마안······.”
유더의 추측대로 반복 노가다 부분만 사촌오빠나 남만고양이 등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영웅전기2는 하루 플레이 제한 시간- 즉, 소위 말하는 피로도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 고2랑 고3이 피로도를 꽉꽉 채워가며 게임을 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호오······ 그러셨군요.”
“우씨이······ 야! 따지고 보면 너 때무니거드은?!”
너 이겨보려고 그런 거거든?
누가 그렇게 찰지게 놀리래?
어?
내가 너 한 번 이겨보겠다고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새삼 서러움이 폭발한 코델리아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고, 유더는 당황해서 얼른 손을 놓았다.
“아니, 뭐··· 반복 노가다 쪽만 부탁한 거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아예 매크로 쓰는 애들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왜 매크로 안 쓰고 대리를 쓴 거야?”
“매크로는 기록 남잖아.”
순위 산정할 때 걸리면 계정 정지당할 수도 있고.
코델리아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답하자 유더는 저도 모르게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1등하고 싶었어?”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너 한 번 이겨보고 싶었어.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명만 이기면 되는데, 그 한 명이 천하제일인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유더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냥 코델리아보다만 잘하면 되는데, 그래서 코델리아만 놀리면 되는데, 그러려면 서버 1등을 해야만 했다. 코델리아가 2등이었으니 말이다.
“미안. 맨날 1등해서 미안해.”
유더는 코델리아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옆구리에 분노의 꼬집기를 행했다.
“이게 진짜 사람 놀리나!”
“어, 놀리는 거 맞아.”
“씨발?!”
아, 역시.
코델리아는 놀리는 맛이 있었다.
반응이 찰지다고 해야 하나.
유더가 다시 웃어대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코델리아는 앙증맞은 주먹으로 열심히 유더의 가슴을 때려댔지만 역시나 대미지가 없었다.
“우씨. 내가 다음 아바타는 꼭 병약미소녀로 만들고 만다.”
“아니, 그건 좀······.”
“왜, 발랄유쾌짐승남 코델리아와 병약미소녀 유더 조합도 좋지 않아?”
코델리아의 말에 잠시 상상해본 유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다시 도리질을 했다.
그 병약미소녀가 자신이 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아, 아무튼!”
“아무튼? 말 돌리는 거야?”
“어, 그래. 돌리는 거야. 아무튼 너 대학 갈 예정이었지?”
“응, 수시 붙어서 막판에는 겜만하고 놀 수 있었지롱.”
“어디 붙었는데?”
“그건 왜?”
“아니, 대학생이 되고도 게임만 했다는 거잖아.”
유더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대학교 1학년생은 게임만 하는 거 아니야?”
“아니거든? 내가 대학을 가본 건 아니지만 그럴 리가 없거든?”
사실 자신이 별로 없기는 했다.
스스로 말했듯이 대학을 가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래도 대학 가서 새로 친구들도 사귀었을 테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 음.”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은 있었을 테니까.
고2랑 고3을 게임으로만 보낸 겜순이가 대학 가서 게임 안하고 갑자기 인싸가 되는 것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관성의 법칙이라는 거지.”
코델리아가 응응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더는 저도 모르게 다시 코델리아의 뺨을 꼬집었다.
“야, 그런데 쓰는 말 아니거든? 그리고 딱히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왜애! 너느 여우저기가 부끄러?”
영웅전기가 부끄럽냐는 발언에 유더는 다시 미간을 좁혔다.
“아무튼.”
“또 마알 도린다.”
“그래, 돌리는 거야. 아무튼 대학 가서도 게임만 하고 있다는 거구나.”
“지는.”
유더의 손을 쳐낸 코델리아는 달아오른 뺨을 누르며 입술을 삐쭉였다.
홍유희가 대학 진학 후에서 2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있는 유더였지만, 그러는 강진호도 여전히 계속 1등이었으니 말이다.
“옆집 오빠 무지 멋진 프리랜서일 거라 생각했는데 날백수였어. 집에서 게임만 하는 날백수.”
“아니거든? 난 은퇴한 거거든?”
“그럼 날백수 맞네. 은퇴하고 논다는 거잖아.”
코델리아의 지적에 유더는 발끈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딱히 무어라 변명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는 게 맞긴 하니까.’
그래도 좀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은퇴할 때까지.
제대로 된 학교 한 번 다녀본 적 없이 전장과 분쟁지역만 뒹굴며 살았는데 은퇴 좀 빨리해서 놀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대체 무슨 돈으로 그렇게 노는 거야? 은퇴하기 전에 많이 벌어둔 거야?”
“그런 것도 있지만··· 유산을 받았거든.”
알렉세이의 유산.
애당초 은퇴 자체도 스승인 알렉세이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고 말이다.
유더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이번에는 코델리아가 당황했다.
유더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인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돌아······ 가셨어?”
“어, 벌써 5년도 넘었네.”
환생한 시간까지 고려하면 20년이 훌쩍 넘은 일이기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미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알렉세이의 죽음을 생각하면 울적한 기분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일반적인 아버지상과는 전혀 달랐다.
알렉세이는 유산도 남겨줄 정도로 유더 자신을 아꼈지만, 그건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는 부하에 대한 애정에 가까웠다. 애당초 정말 자식처럼 생각했다면 전장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나라로 이민을 보내주거나 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은 괜찮아. 복수도 했고.”
“어?”
보, 복수?
게임에서 PVP 뜨고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진짜 복수.
그것도 소위 말하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닌가?’
생각해보니 플레이아데스에서 이미 수많은 아수라장을 돌파한 유더와 코델리아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음, 그래. 아무튼 털어냈다면 잘 되었네.”
그리고 일단 유더는 좋은 사람이니까 알렉세이도 좋은 사람일테고, 그럼 그 복수 대상들도 나쁜 사람들이었겠지.
물론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었지만 코델리아는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튼 둘 다 여전히 게임 열심히 하고 있네.”
“어, 그런 것 같네.”
강진호와 홍유희.
지구에서 환생한 유더와 코델리아.
영혼이 분리된 지금은 타인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애착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운명적인 만남은··· 아직 없었던 거 같지?”
“아마도?”
“옆집 오빠가 아복이라는 것도 눈치 못 채고?”
“옆집 소녀가 노폭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겠지.”
아마 여전히 게임에서 만나면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 한 쪽은 놀리고, 다른 한 쪽은 발끈하고··· 그런 것의 반복이지 않을까.
“으으으··· 옆집 오빠는 바보야.”
“저기요, 눈치 못 채고 있는 건 옆집 소녀도 마찬가지거든요?”
“야, 지금 그런 게 중요해? 어? 금태양한테 날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인데?”
저기서 나는 홍유희를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금태양?”
“금발 태닝 양아치. 몰라? 그것 말고도 대학 선배라든지, 대학 동기라든지······.”
“아니, 잠깐. 코델리아 양. 진정하시고 이걸 보시죠.”
“뭐가? 우리 순위가 뭐 어때서.”
코델리아가 입술을 삐쭉이자 유더는 상냥한 어조로 설명했다.
“여전히 2등이잖아. 게임만 하고 산다는 거잖아.”
그러니 연애 같은 걸 할 리가 없겠죠?
하지만 코델리아는 도리질을 하며 말했다.
“야, 네가 뭘 몰라서 그래. 나는, 그러니까 홍유희는 그, 뭐냐. 겜덕들의 이상향? 그런 거라니까? 게임 잘하고 입 험한 예쁜 미소녀 겜순이라니. 내가 다 꼴리네.”
이게 지금 뭐라는 것일까.
순간 말문이 막힌 유더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코델리아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않아? 우리가 강제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분명 유더 자신은 강진호였고, 코델리아는 홍유희였다.
하지만 영혼이 분리된 지금 네 사람은 서로 완전한 타인이었다.
“으으··· 안 되겠다. 그런 건 나중에 따지고 일단 어떻게 사나 보러 가자. 어쩌면 이미 누군가랑 썸타고 있을지도 몰라.”
“그럴 리가.”
썸타는 여대생이 영웅전기에서 서버 2등을 하고 있을 리가.
유더는 딱 잘라 말했지만 코델리아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무튼 빨리 보러 가자. 응?”
사실 홍유희만이 아니었다.
부모님도 보고 싶었고, 이제는 다섯 살이 되었을 강아지 토리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이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유더는 없으니까.’
홍유희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혼자였다. 제대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단편적으로 들은 이야기만 종합해보아도 강진호가 고아라는 사실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가족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유더였다.
코델리아의 마음이라면 때때로 코델리아 본인보다 더 잘 아는 그답게 금방 그녀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래, 보러 가자.”
홍유희가 어떻게 지내는지.
그 가족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채팅방 애들도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 역시 같이 웃고 떠들던 채팅방 멤버들이 생각났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본계로 접속하면 강진호랑 홍유희가 눈치 챌 걸? 새로 만든 계정으로 접근하면 제대로 된 대화가 될 리가 없고.”
“으그으······.”
안타깝지만 사실이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괜한 미련을 떠는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좋아, 아무튼 그럼 나 보러 가자.”
사실 조금 부끄럽기는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더와 같이 자기 자신을 관찰한다니.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유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더에게만은 무엇이든 보여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가자.”
홍유희를 보러.
그리고 이틀 뒤 저녁.
코델리아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구!”
옆집 오빠가 사실 아웃복서009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알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홍유희니 연애와는 담을 쌓았을 거란 사실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도 졸업했는데, 대학도 갔는데!
“변한 게 없잖아!”
집, 학교, 집, 학교.
사이에 하는 건 그저 게임, 게임, 게임!
입는 옷도 맨날 후드티에 청바지가 다였다.
그나마 학교 다닐 때는 교복이라도 예쁘게 입었는데!
“음, 참으로 노폭이 답네.”
“너도 문제야, 너도! 홍유희는 그나마 학교라도 나가지. 넌 집에서 게임만 하잖아!”
그나마 하는 외출이 담배 피러 나가는 거나 마트에 음식 사러 가는 정도?
“야, 운동도 하거든?”
“그것도 집에서만 하잖아!”
지금의 유더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강진호도 몸이 몹시 좋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맨날 집에만 있는데.
‘아니, 이건 어떻게 보면 다행인가?’
강진호를 남에게 뺏기면 안 되었으니까.
코델리아가 잠시 고민하는 동안 유더는 다시 강진호와 홍유희가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각자 잘 사는 거 같네. 그냥 저대로 두면 되는 거 아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름 행복하게 잘 살고들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만족할 수 없었다.
“안 돼, 이대로는 못 가. 물론 저러다가 진짜 운명적인 만남을 거쳐 서로 사귀게 될지도 모르지만, 못 기다려. 지금이어야 해.”
“왜?”
“너 이제 서른 될 거잖아!”
정확히는 유더가 아닌 강진호가.
“홍유희는 이제 스물 한 살이라구! 근데 강진호는 이제 곧 서른 살이잖아! 안 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사귀어야 해.”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아니, 그··· 뭐랄까. 그런데 꼭 둘이 사귀어야 할······.”
거기까지였다.
코델리아가 무서운 눈으로 유더를 올려다보았고, 유더는 어색하게 웃으며 바로 말을 바꾸었다.
“예, 둘이 사귀어야죠. 물론입니다. 무조건 그래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운명의 두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유더 자신도 홍유희가- 그러니까 코델리아가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기는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려고?”
6년째 같은 게임 하면서 매일같이 서로를 놀려대는 두 사람이 사실 옆집에 사는 멋진 오빠와 사랑스러운 소녀다.
이 두 사람을 어떻게 사귀게 할 것인가.
사랑의 묘약이라도 만들어서 먹여야 하는 것일까?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팔짱을 낀 채 고민하더니 이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서로 만나게 해야 해.”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어, 서로 만나고. 서로가 누구인지 알고. 그래야 해. 그럼 될 거야.”
“아니, 그 정도로 된다고?”
“어, 될 거야.”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데?”
“어? 그, 그게······.”
돌연 말꼬리를 흐리던 코델리아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이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말했다.
“조, 좋아하거든.”
“어?”
“조, 좋아한다고!”
홍유희가 옆집 오빠를.
물론 진짜 막 열렬한 짝사랑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뭐랄까, 동경하는 학교 선배? 뭐 그런 느낌?
코델리아의 고백 아닌 고백에 유더는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사악하게 활짝 웃었다. 아니, 웃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웃으면 죽일 거야.”
빨개진 얼굴로 부들부들 떠는 코델리아의 모습은 위협적이라기 보다는 사랑스러웠지만 어느 쪽이든 유더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래야지요. 웃을리가요.”
유더는 애써 꾹 참았고, 덕분에 입꼬리의 경련을 경험해야만 했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불만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다 말했다.
“그런데 너는?”
“응?”
“너는 어땠는데?”
홍유희는 옆집 오빠를 내심 동경하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럼 강진호는?
옆집 소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그······.”
“그?”
“옆집에 사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
일단 수식어들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에 차는 것은 아니었다.
“뭐야, 그게 다야?”
“저기요. 일단 옆집 소녀는 고등학생이었거든요?”
처음 봤을 때는 중학생이었고.
특별한 마음을 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치치치. 이제 다 컸는데. 여대생인데.”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일단 유더 자신이 강진호였을 당시에는 고등학생이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그렇게까지 마음이 변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음. 너랑 나니까. 일단 만나면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겠네.”
코델리아 말마따나 지금은 둘 다 성인이기도 했고.
“그렇지? 어떻게 될 것 같지?”
코델리아가 신이나서 어깨를 으쓱이자 유더는 일단 동의한 뒤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만나게 할 생각인데?”
우연을 가장해서 옆집 오빠가 아웃복서009라는 사실을 폭로라도 할 것인가?
하지만 그래서야 정상적인 만남을 가질 수 없을 터였다.
코델리아는 다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정모하게 해야지. 같이 게임을 6년이나 했는데 정모 한 번 할 때 되지 않았어?”
“채팅방 사람들 전원이랑?”
“아니, 그건 아니고. 둘만 만나게 해야지.”
“어떻게?”
“야, 본래 이런 거 생각하는 건 네 담당이잖아.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음흉한 책략을 짜보라구!”
유더가 펼쳤던 장구한 ‘기정사실화 작전’에 대해 이제는 다 알고 있는 코델리아였다.
어쩐지 맨날 이상한 말만 하게 하더라니.
편지도 쓰게 하구.
어찌되었든 코델리아의 타박에 유더는 턱을 긁적이더니 이내 계략 하나를 꺼내들었다.
“꿈을 이용하자.”
“꿈?”
“어, 꿈. 꿈에서 유도해보자.”
두 사람이 서로 한 번 만날 마음을 가지도록.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는가 싶더니 이내 짝하고 소리나게 박수를 치며 웃었다.
“오오, 역시 우리집 사기꾼. 좋은 방법이야. 꿈속에서 코델리아가 말하면 나도 엄청 신경쓸 게 분명해.”
자타공인 코델리아 덕후인 홍유희였으니까.
솔직히 강진호는 유더가 나와서 뭐라고 해봐야 별로 신경도 안 쓸 것 같긴 했지만, 현실에서 홍유희 쪽이 적극적으로 푸시를 할 때 받아들이게 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당장하자.”
“저기요, 지금 낮이에요.”
“그럼 밤까지 게임하자. 콜?”
“콜.”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고, 밤까지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깊은 밤.
침대 위에 나란히 누운 유더와 코델리아는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잘 해.”
“너도 잘 해.”
거기까지 말한 두 사람은 습관적으로 손을 깍지 껴 잡은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분 뒤.
코델리아는 홍유희의 꿈속에서 눈을 떴다.
to be continued
< 엔딩메이커 SS #10 지구로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