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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72화 (372/473)

< 엔딩메이커 SS #11 지구로 (4) >

엔딩메이커 SS #11 지구로 (4)

홍유희.

한국식으로 스물한 살 직전인 스무 살.

직업은 대학생.

취미 게임.

특기 게임.

좋아하는 것 게임.

학교 집 학교 집을 반복하는 아싸찐따 줄여서 아찐이.

물론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전국의 수많은 고3학생들이 그러한 것처럼 대학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더욱이 잘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기본적으로 수려한 외모 덕분에 관심을 보이는 동기나 선배들도 많았고 말이다.

하지만 입학하고 일 년이 가깝게 지난 지금 홍유희는 아찐이가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하루종일 영웅전기만 하니까!’

수업 시간 외에는 거의 늘 영웅전기만 했으니까.

‘그치만 이건 학교 잘못도 있는걸!’

대학생활은 역시나 막연한 상상과 달랐다.

교수님이라고 해봐야 학교 선생님들이랑 크게 다를 것도 없었고 말이다.

교수님과의 교류?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수준 높은 학습?

어린 애들과는 다른 어른의 놀이들?

개뿔.

물론 교수님과 개인적인 교류를 하는 학생들도 일부 있기는 했다.

일부.

극히 일부.

구석에 앉아서 조용히 수업만 듣는 학생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면서 관계를 트는 교수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수업 대부분도 개론이나 훑는 1학년 수준이라 그런지 딱히 깊이가 있지는 않았다.

아예 회계학 같은 쪽은 그냥 못 가르치는 학원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학원과 대학은 가르치는 목적과 방향성이 다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일단 수업을 듣는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동기들.

대학생 되면 뭐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전부 술이었다.

술. 술. 술.

처음에는 호기심에, 나중에는 강제로 몇 번 술자리에 나가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술 먹고 들이대는 놈부터 시작해서 끔찍한 놈들이 정말 많았으니까.

술자리가 딱히 재밌지도 않았고 말이다.

물론 다 저렇지는 않고, 함께 마시면 재밌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극히 일부였고, 그나마도 규모가 있는 술모임 같은 곳에 안 나가다보니 교류 자체가 조금씩 끊어졌다.

그래서 결국 남은 것은 신입생인데 마치 복학생처럼 혼자 다니는 아찐이 하나.

복장도 어느새 후드티와 청바지로 통일이 된 상태였다.

나열하다보니 이래저래 우울해 보이는 대학 생활이었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영웅전기와 채팅방 멤버들은 여전했으니까.

오히려 대입 초기에는 영웅전기3 마지막 확장팩이 나온 덕분에 흥미진진한 매일매일이 이어졌었다.

‘생각해보니 그래서인가?’

영웅전기에 정신이 팔려서 두문불출했으니까.

커다란 모임에 몇 번이나 빠져서 자발적(?) 아싸가 된 것도 그래서인 것 같고.

‘음··· 고딩때도 학기 초에 무리에 못 끼면 1년 내내 겉돌아야 했으니까.’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대학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찌되었든.

홍유희는 친한 친구 이름을 세 명 적으라고 할 때 채팅방 멤버들만 떠올라 곤란함을 느낄 정도의 아찐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행복했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이길 거야!”

장장 35개월 연속 2위.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야말로.

이번 달이야말로!

“흥흥흥, 이번에는 내기도 했지요.”

이기는 사람 소원 하나 들어주기.

사기꾼 아복이 놈의 말재간에 놀아난 것도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사실 홍유희 자신이 친 배수진이기도 했다.

여기서 지면 아복이 저 사악한 인간말종이 무슨 짓을 시킬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래두 캐삭은 시키지 않겠지.’

그럼 그냥 캐삭빵 하고 마니까.

아마 뭔가 망신을 주려고 할 게 분명했다.

망신.

“그래, 내가 아주 제대로 망신시켜줄게.”

이번에야말로 이겨서. 어?

내가 이겨서 망신을 아주!

아복이에게 시키면 좋을 이런저런 굴욕적인 장난들을 떠올린 홍유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절로 어깨춤이 나올 지경이었다.

“신이나, 신이나, 엣헴엣헴 신이나.”

어깨를 으쓱이며 좋아하던 홍유희는 다시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경치 좋은 곳에 예쁜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코델리아.

“진짜 너무 예뻐.”

홍유희 본인은 밖에서는 후드 티에 청바지, 집에서는 나시티에 돌핀팬츠라는, 극한의 편의성을 추구한 복장만 입고 다니는 처지였지만 코델리아는 아니었다.

직접 디자인한 의상을 만들어 입힐 정도로 코델리아 꾸미기에는 지극정성인 홍유희였다.

“복장 꾸밀 시간에 사냥을 했으면 네가 진즉에 1등 했··· 아니다, 역시 무리겠지?”

아복이 놈이 했던 망언이 순간 떠올라 노여움이 치솟은 홍유희였지만 잠깐뿐이었다.

이쪽을 보고 생긋 미소지는 코델리아의 천사같은 모습이 절로 십덕 미소를 짓게 해준 덕분이었다.

“잘 자구, 내일 봐.”

코델리아에게 작게 인사한 홍유희는 컴퓨터를 끄고 화장실에 가 자기 전에 마지막 세면을 마친 뒤 침대 위에 누웠다.

밤샘 후의 수면이라 그런지 절로 눈이 감겼다.

&

“아싸! 9강이다! 9강 성공이야!”

홍유희는 붉은 보석이 박힌 거대한 황금빛 지팡이를 높이 들며 폴짝폴짝 뛰었다.

마술사 살육신의 지팡이 9강.

마법사 전용 무구임에도 불구하고 마법사 상대에 특화되어 있는 무기였는데, 드랍률도 낮고 강화 확률도 낮아서 서버에 7강 무기까지 밖에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9강.

한방에 9강을 성공시켰다.

“아! 좋아! 너무 좋아!”

홍유희는 마술사 살육신의 지팡이를 꼭 끌어안으며 아예 바닥을 뒹굴뒹굴 구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코델리아는 두 손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덮었다.

‘꿈을 꿔도 이런 꿈이니.’

초 레어 아이템 9강 뜨는 꿈.

아니, 뭐, 분명 꿀 수 있는 꿈이었다.

즐거운 꿈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으으으······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 건데······.’

역시 유더의 분석처럼 홍유희와 코델리아 자신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단순한 외모 차이가 아닌 성격에서의 차이.

하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성장환경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들어오는데는 성공한 것 같네.’

홍유희의 꿈 속.

이제 홍유희를 설득해서 아웃복서009와 정모를 하게만 만들면 되었다.

‘쉽진 않겠지만.’

유더와 다시 의논을 해보았는데, 역시 아웃복서009가 옆집오빠라는 걸 바로 커밍아웃하는 건 무리수에 가까웠다.

홍유희가 아웃복서009와 옆집오빠에 가지고 있는 인식 사이의 골이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단 아복이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유도를 해서······.’

사이의 골을 조금이라도 좁히게 한 다음에 짜잔! 하고 깜짝 놀라게 하면 오히려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게 유더의 분석이란 말이지.

이러나저러나 코델리아 자신을 한 번 공략(?)하는데 성공한 유더의 말이었고, 코델리아 자신이 생각해도 홍유희라면 그쪽이 더 잘 먹힐 것 같아서 이쪽으로 방향을 수정하게 되었다.

“후우······ 좋아. 한 번 해보자.”

마음을 굳게 먹은 코델리아는 짝짝 소리 나게 자기 뺨을 두드린 뒤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리고 1분 남짓 뒤.

“유희야.”

상냥하고 다정한 부름에 여전히 9강 지팡이 들고 폴짝폴짝 뛰던 홍유희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코, 코델리아?”

인생 최애캐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것도 웨딩드레스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채.

“응, 코델리아야.”

코델리아는 아예 광익과 천사의 고리까지 드러낸 뒤 다시 한 번 아름답게 웃었고, 홍유희의 얼굴에는 진심에서 우러난 감탄이 번졌다.

“꾸, 꿈이구나. 이거 꿈이야.”

“맞아, 꿈이야. 하지만 개꿈은 아니라는 거.”

코델리아가 키득 장난스럽게 웃자 멍해 있던 홍유희 역시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응응, 아무튼 꿈이라도 좋아. 아니, 오히려 꿈이라서 좋은가? 꿈속에서 꿈인 걸 깨달으면 자각몽?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홍유희는 조금 많이 위험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흠칫하며 말했다.

“유, 유희야?”

“흐흐··· 코델리아······.”

그리고 다시 몇 분 남짓.

“아, 행복해.”

코델리아의 무릎- 정확히는 허벅지를 베고 누운 홍유희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코델리아는 그런 홍유희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좋아?”

“응, 좋아. 너무 좋아.”

어째 코델리아 자신보다는 유더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코델리아는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분위기상 설득이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희야.”

“응, 코델리아야.”

“너··· 아복이를 어떻게 생각해?”

“어?”

“아복이.”

“아웃복서009?”

“응, 아복이.”

코델리아가 생긋 웃으며 말하자 홍유희의 얼굴이 바로 흐려졌다. 입술까지 삐쭉 내민 채 칫칫 거리던 홍유희는 이내 불만을 터트렸다.

“발랑 까진 사기꾼에 나쁜 놈, 못된 놈. 아무튼 진짜 유치하고 사악하고 치사하고··· 우씨. 말만해도 짜증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꿈속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반응이 격렬했다.

당황한 코델리아는 홍유희를 달래듯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두 아주 싫은 건 아니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 미, 미운 정? 그런 것도 들었을 테고?”

어찌되었든 알고 지낸 게 벌써 그럭저럭 6년이었으니까.

코델리아의 말에 홍유희는 다시 입술을 삐쭉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 제일 오래 본 사이긴 하니까.”

남만고양이 언니보다 더 오래봤으니까.

이러나저러나 제일 많이 논 상대이기도 하고.

아마 현실 친구까지 다 포함해도 코델리아 자신이랑 가장 오랜 시간 우정(?)을 쌓은 인물일 터였다.

홍유희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안도의 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그치? 아복이가 사실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야.”

그리고 이어서 좋은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홍유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기 때문이다.

“코델리아.”

“응?”

“그걸 코델리아가 어떻게 알아?”

코델리아와 아복이 사이에는 이렇다 할 연관점이 없었으니까.

역시나 코델리아 자신답게 날카로운 질문이었고, 덕분에 당황한 코델리아는 어버버 거리다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어? 그······ 꾸, 꿈이니까?”

꿈이니까 안다.

얼토당토한 변명이었지만 확실히 꿈속이라 그런지, 아니면 코델리아의 말이라 그런지 이것저것 따지기 보다는 그냥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홍유희였다.

“아무튼 나쁜 애가 아니라구?”

“어, 아니야. 분명 네 말대로 사기꾼에, 능구렁이에, 맨날 능청만 떨구, 사람 약 올리고, 애타게 하고, 걱정만 잔뜩 시키고, 억지도 막 강하구······.”

“저기, 저기 잠깐만. 지금 나쁜 애가 아니라는 이야기 하는 중이지?”

홍유희가 상체를 일으키며 그리 묻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무, 물론이지! 응! 이제부터 좋은 이야기 하려고 했어. 응, 이제부터.”

코델리아의 어색한 변명에 차게 식은 눈이 된 홍유희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사실 지금 이야기 들어보니까 신뢰성이 좀 더 높아진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좋은 점이 있는데?”

아복이의 좋은 점.

유더의 좋은 점.

코델리아는 흠흠 헛기침을 한 뒤 하나하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똑똑해.”

“그래, 아복이 그 자식이 똑똑하기는 하지.”

심드렁한 어조의 홍유희였지만 동의는 한다는 투였다.

“그리고 요리를 잘해. 성실하구, 은근 배려심도 있구, 자잘한 것에도 신경을 잘 써줘. 섬세한다고 해야 하나? 언제나 날······ 아, 아니. 자기한테 소중한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구.”

하나씩 이야기 할 때마다 코델리아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었다.

조금 더 온화하게, 조금 더 상냥하게,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하게.

뺨에 홍조까지 띄운 채, 그야말로 사랑하는 소녀가 되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코델리아의 모습에 홍유희는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코델리아 너무 예뻐, 귀여워, 사랑스러워!’ 였고,

다른 하나는 ‘뭐지, 왜 코델리아가 아복이한테 반해 있는 거 같지? 저거 아복이 이야기 맞아?’ 였다.

“그리구······ 멋있어. 잘생겼구, 몸매도 좋구, 근육도 튼튼하구··· 엄청 잘하구?”

“응?”

잘해?

뭘?

게임을?

“이, 있어. 그런 게. 아무튼 좋은 점이 참 많아.”

코델리아가 수습하듯 급히 말하자 고개를 갸웃한 홍유희였지만 의문을 오래 이어가지는 않았다.

대신에 다른 것을 입에 담았다.

“아복이가 잘생겼다구?”

“응. 잘생겼어. 멋져, 멋져.”

“막 재수없게 잘생긴 거 아냐? 얍삽하게.”

“아니야, 아니야. 엄청 남자답게 잘 생겼어. 정말로 멋져.”

“흥, 그래봐야 아복이잖아. 옆집 오빠랑은 비교도 할 수 없어.”

마침내 나오고 말았다.

옆집 오빠.

꿈답게 홍유희는 의식의 흐름대로 사고했고, 옆집 오빠란 단어가 나왔기 때문인지 홍유희의 머리 위로 무척이나 미화된 기억 하나가 재생되었다.

남만고양이 언니한테 강제로 끌려나가 한강을 산보하다가 본 옆집 오빠.

강둑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던 그 모습.

그야말로 한 장의 화보나 다름이 없었다.

우수에 찬 눈빛과 무척이나 큰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은, 절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지는 멋진 남자 특유의 분위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렇게 멋진 옆집 오빠라면 무언가 비범한 일이겠지.

어쩌면 사별한 연인의 기일 같은 것은 아닐까?

오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의 기일이라든지.

홍유희는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누르며 망상을 이어나갔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코델리아는 발을 동동 구르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저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았다.

아복이가.

유더가 왜 저런 표정을 하고 한강에 서 있었는지.

‘야! 8강 무기 9강 하려다가 깨먹고서 저러는 거야! 그런 멋진 이유가 아니라구!’

거기다 지금 보니 복장도 딱 동네 백수였다.

몸이 워낙 좋다보니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츄리닝에 쓰레빠 아닌가!

하지만 콩깍지가 잔뜩 쓰인 홍유희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콩깍지를 벗기고 봐도 유더가- 그러니까 강진호가 외형적으로만 보면 꽤 멋진 남자인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180 중반은 되어 보이는 큰 키와 날렵한 표범을 연상케하는 잘 달련된 몸.

거기에 약간 허무한 것 같으면서도 슬픔이 묻어나는 특유의 눈빛까지.

“옆집 오빠는 분명 성격도 좋을 거야. 개초딩 아복이처럼 치사하지도 않을 거구. 응응, 막 어른스러울 게 분명해. 어른. 진짜 어른. 멋지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아복이랑은 완전 달라. 맨날 2등이라고 놀리기만 하는 아복이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어.”

옆집 오빠는 그런 걸로 놀리지도 않을 거야.

오히려 위로해줄 거야.

어쩌면 같이 1등을 할 방법을 찾아줄지도 몰라.

괴롭히지도 않을 거고, 항상 상냥하게 잘 해줄 거야.

홍유희의 망상이 줄줄이 새어나오자 코델리아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이 바부팅아 그놈이 그놈이야!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보다 옆집 오빠에 대한 미화가 심각했다.

아복이가 옆집 오빠라는 사실을 알면 일이 잘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망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으으윽······.’

개초딩 아복이.

맨날 놀리기만 하는 미운 아복이.

그런데 사실이기는 했다.

코델리아 자신도 유더와 직접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차차 인상이 바뀐 것이었으니까.

“그, 그치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법.

코델리아는 망상을 이어나가던 홍유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두 생각해봐. 아복이도 좋은 점이 정말 많아. 너도 아는 것들이야.”

“응?”

“아복이는 절대 패드립을 치지 않아. 그거 알지?”

“그···렇긴 하지?”

“응응, 놀리긴 해도 선은 지키잖아? 그리고 잘 생각해봐. 은근히 잘 해주지 않아? 조금 놀리는 과정이 들어가서 그렇지 결국 도와달라고 하면 다 도와주고, 뭐 알아봐 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 그러잖아.”

정말로 그랬다.

중간중간 딱히 널 위해 그런 것은 아니라든지, 이런 것도 모르냐면서 흥흥거린다든지, 아무튼 좀 초딩스러운 반응들을 보여서 그렇지 예나지금이나 은근히 잘해주던 유더였다.

“음··· 그런 것 같기도?”

“맞아맞아. 정말로 그래. 아무튼 그러니까 아복이도 좋은 점이 은근히 많아.”

코델리아는 이어서 유더의 장점에 대해 늘어놓었고, 홍유희는 때때로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 동의했다.

“그래, 그러니까. 한 번 만나자.”

“어?”

“한 번 만나자구. 게임을 6년이나 같이 했잖아. 아복이 궁금하지 않아?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애일지.”

코델리아가 허리를 안으며 은근한 어조로 말하자 홍유희는 흠칫하다가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궁금하기는 했으니까.

대체 뭐하는 놈인지.

어떻게 생긴 놈인지.

“그, 그치만······.”

혼자서 보는 건 좀 무서웠다.

만났는데 막 무서운 아저씨면 어떡하지.

진짜로 개초딩이라든지.

물론 게임에서 6년이나 보았으니 어떤 사람인지, 이러나저러나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그래도 오프에서 실제로 보는 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어색할 것 같기두 하구······.’

아복이는 보나마나 남자였다.

남자랑 단 둘이 만나라구?

그것도 나이도 모르는 남자랑?

“무, 무리야. 무리. 무리라구.”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홍유희가 도망치듯 뒷걸음질 치자 코델리아는 그런 홍유희의 허리를 보다 단단히 안으며 말했다.

“아니야, 할 수 있어. 그럼 단 둘이 말고 여럿이서 만나면 어때?”

“응? 여럿이?”

“어, 채팅방 멤버들 다 같이 모여서 정모 한 번 하는 거야. 남만고양이 언니는 이미 만난 적도 있잖아?”

단 둘이 만나는 게 무서우면 여럿이 함께면 어떨까.

다른 애들도 궁금하지 않아?

남만고양이 언니가 있으면 안심도 되고. 응?

홍유희와 달리 이미 유더의 검정색에 완전히 물든 코델리아였다.

살살 꼬시는 솜씨가 대단했고, 순진한 홍유희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아, 그럼 다 같이 정모하는 거야. 다 같이 만나서 재밌게 놀자. 알았지?”

“응, 알았어. 그렇게 할게.”

“응응, 우리 유희, 착해요. 귀여워요.”

코델리아는 자기보다 키가 작은 홍유희를 꼭 끌어안았고, 홍유희는 최애캐인 코델리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지고의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암전.

다시 현실에서 눈을 뜬 코델리아는 일단 한숨부터 내쉬었다.

“휴우······ 힘들었다.”

이마에 흐른 땀까지 닦고 나니 돌연 눈앞에 물컵이 불쑥 나타났다.

“자, 찬 물.”

“고마워.”

역시 유더였다.

코델리아는 꼴깍꼴깍 찬물을 마신 뒤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힘들었어.”

“그래도 성공은 한 모양이지?”

“당연하지. 너는?”

“나도, 뭐. 어느 정도는.”

유더가 어깨를 으쓱이자 코델리아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그런데 유더야.”

“어, 코델리아.”

“그게··· 단 둘이 보는 건 무섭다고 해서 정모 쪽으로 가닥을 잡았거든?”

“어, 나도 그랬어.”

“엉? 너도?”

“어, 아무래도 갑자기 단 둘이 보라는 건 좀 그러니까. 어차피 우리 이야기는 꿈속의 암시 같은 거라 강제성도 없는데 그런 무리한 일을 시키는 건 어렵잖아? 그래서 받아들이기도 쉽고 행하기도 쉬운 정모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

“그럼 진짜 정모부터 시작할 거야? 다 같이 만나는 것부터?”

“아니, 그럴 리가.”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정모로 유도했다며.”

“그랬지. 그리고 정모를 실제로 하게 할 생각이야. 그런데 정모를 해도 나오는 게 강진호랑 홍유희 둘 뿐이면 어차피 우리 목적은 달성이잖아?”

“어?”

둘만 나오게 한다고?

“어, 나머지 채팅방 멤버들이 못 나오게 하면 되는 문제니까. 뭐, 꿈에서 암시를 준다든지, 자잘한 사고를 일으켜서 그날 정모를 못 나가게 한다든지······ 방법은 많으니까.”

유더는 씩하고 까만 미소를 지었고, 코델리아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다.

하나는 ‘사악한 놈.’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시 우리 유더 멋져, 믿음직해!’였다.

콩깍지가 단단히 쓰인 건 코델리아나 홍유희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럼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 만남을 실현해 보자고.”

유더는 언제나처럼 사악하게 웃었고,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응!”

&

그리고 삼일 뒤 오후, 홍대 거리.

인식 장애 마법을 걸고 구석진 곳에 숨어 있던 유더와 코델리아는 벽 밖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 약속 장소를 바라보았다.

“온다.”

유더가 말했고, 코델리아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얼른 눈동자를 굴렸다.

과연 저만치서 쭈뼛쭈뼛 걸어오는 홍유희가 보였다.

“오, 예뻐, 예뻐.”

오늘은 항상 입는 후드 티에 청바지가 아니라 입학할 때 한 번 입고 한 번도 안 입었던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 차림이었으니까. 검정색 스타킹에 단화지만 구두까지 신은 상태였다.

“강진호도 온다.”

저만치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키 큰 남자.

같은 동네, 그것도 옆집 사는 것들이 왜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지 의문이었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약속 장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 어떡해. 막 가슴 터질 것 같아.”

코델리아는 얼굴을 발갛게 붉힌 채 발을 동동 굴렀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

홍유희가 강진호를- 옆집 오빠를 발견하였다.

to be continued

< 엔딩메이커 SS #11 지구로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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