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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73화 (373/473)

< 엔딩메이커 SS #12 지구로 (5) >

엔딩메이커 SS #12 지구로 (5)

강진호.

이십 대에 은퇴해서 칩거(?) 생활을 선택한, 좋게 말하면 은퇴자고 나쁘게 말하면 날백수인 서른 살 되기 직전의 스물아홉 살 남자.

취미는 노란폭풍 놀리기, 특기도 노란폭풍 놀리기.

물론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은퇴하기 전만 하더라도 훨씬 더 살벌한 취미와 특기를 가진 강진호였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보다 조금 못 할뿐, 여전히 우수한 기량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6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습관적인 훈련에 의해 강진호 자신의 기량은 유지되었을지 모르지만, 계속된 평화와 노란폭풍이라는 멘탈 치료제는 그의 심경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래봐야 나야.’

유더는 강진호를 잘 알았다.

환생하고 18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강진호의 기억을 각성한 것은 겨우 3년 전이었다.

물론 인간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고, 3년이란 시간은 기억을 애매하게 만들기 충분했지만 유더는 유더였다.

그는 당시의 자신이 어떠했는지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랑은 좀 달라.’

환생을 하면서 달라진 부분들이 있었다.

유더로 성장하며 생긴 여러 일들이 약간의 성격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코델리아.

유더 자신에게는 코델리아가 있었고, 강진호에게는 코델리아가 없었다.

물론 노란폭풍- 그러니까 홍유희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지금 자신에게 코델리아가 가지는 의미와 강진호에게 홍유희가 가지는 가치는 여러 가지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여자인 것도 모르고.’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조차 몰랐다.

물론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강진호가 노폭과 어울려 논지가 6년이니, 그 6년 사이에 들은 간접적인 정보만 종합해도 노폭이랑 인물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하기에는 충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만나는 NPC조차 프로파일링을 해놓는 그였지만, 노폭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폭과 놀 때는 일부러 머리를 비우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강진호는 의심이 많다는 거야.’

코델리아와 홍유희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날카로운 직감을 가진 건 마찬가지인 홍유희가 이렇게 물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코델리아가 어떻게 아복이를 알아?”

그럼 코델리아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꿈이라서 알아!”

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니- 논리가 있긴 하지만 빈약하기 짝이 없는, 그렇기에 얼마든지 다른 질문 하나로 박살날 수 있는 대답이었지만 홍유희는 아마 이럴 것이다.

“와! 그렇구나!”

꿈이니까 그런 거겠지! -하고 말이다.

꿈속에서는 이성적인 사고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평소에는 비상식이라 생각할 법한 것도 상식이라 받아넘기기 마련이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유더는 예전에 책에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꿈속에서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는 오리들을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역시 오리는 저러고 있어야지.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만!”

그리고 홍유희는 아마 최애캐인 코델리아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다른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 좋아하기 바쁘겠지.’

코델리아를 끌어안거나, 손잡고서 같이 방방 뛰거나, 허벅지를 베고 귀를 파달라고 하거나.

‘음.’

손잡고 같이 방방 뛰는 노란폭풍과 홍유희를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유더였다.

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광경이란 말인가.

하지만 상념은 잠깐이었다.

유더는 다시 본제에 집중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럴 리가 없어.’

아마 자신이 나타나서 노폭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꿈은 내가 꾸는 것이고, 꿈의 모든 재료는 결국 내 머릿속에서 나온다. 즉, 네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내 머릿속의 재료들을 기반으로 내가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하다.”

물론 강진호도 꿈속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 해 유더 자신의 말을 알렉세이의 말처럼 경청할 가능성도 있기는 했지만, 유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코델리아보다는 못하지만, 그 역시 맹수의 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꿈이라서 노폭이를 잘 알고 있다는 식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다른 식의 설득이 필요했다.

‘승리조건을 생각해라.’

궁극적인 목적은 강진호와 홍유희가 서로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건 최종목표였다. 작금의 목표는 달랐다.

‘강진호를 정모에 나가게 하는 게 목표다.’

즉, 홍유희- 그러니까 노폭의 장점을 나열하며 노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정모에 나갈 마음이 들게 하면 돼.’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강진호는 옆집 소녀- 홍유희를 귀엽고 예쁜 소녀라 생각할 뿐 이성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처음 봤을 때 중학생- 그것도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소녀를 이성으로 생각할 정도로 타락한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에는 6년 동안 자라는 모습을 봐왔기에 홍유희가 성인이 된 지금도 그저 귀여운 옆집 소녀라는 인식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옆집 소녀가, 성인된 그녀가 노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노폭이 사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욱이 그 소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유더 자신과 운명으로 엮인 코델리아였다.

유더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코델리아에게- 그러니까 홍유희에게 빠져들 것이 분명했다.

‘만나기만 하면 돼.’

물꼬를 열기만 하면 그 다음은 어련히 알아서 잘 되리라.

씨익하고 새카만- 코델리아 눈에는 자신만만하고 멋져보이는 미소를 지은 유더는 다음을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메시지만큼 중요한 것이 메신저였다.

노폭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영웅전기의 캐릭터인 유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너무 안일했다.

보다 효과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유더는 잠시 고민했고, 이내 늘 그러했던 것처럼 나름의 정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

강진호는 눈을 떴다.

익숙했지만 요 6년간 자고 깨고 하던 침실이 아니었다.

다른 방.

세계 각지에서 모은 갖가지 기념품들로 가득 찬 넓고 화려하면서도 난잡한 방.

앞서 말했듯이 강진호는 이 방에 익숙했다.

알렉세이의 방이었으니 말이다.

“알렉세이?”

강진호는 체스판이 놓여 있는 책상 너머에 자리한, 등을 돌린 채 앉아있는 자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오랜만이구나.”

의지가 빙글 돌자 예상한 얼굴이 나타났다.

알렉세이.

성은 너무 많고, 그 대부분이 가짜 성이기에 진짜 성은 아무도 모르는, 그리고 알렉세이가 한 말이 진실이라면 애당초 알렉세이 자신도 진짜 성을 모르기 때문에 애당초 진짜 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그렇기에 그저 알렉세이인 남자.

밑도 끝도 없이 늘어지는 사고에 강진호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강진호 자신은 이렇게 질척질척한 사고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더욱이 알렉세이는 죽었다.

그런 알렉세이가 눈앞에 있으니, ‘오랜만이다’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니 이건 꿈임에 분명했다.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중이었다면 ‘오랜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알렉세이의 형상을 한 존재가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그래, 이건 네 꿈이다. 나는 알렉세이지만, 진짜 알렉세이가 아니지. 네 기억이 만들어낸 알렉세이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마법으로 알렉세이의 형상을 취한 유더일 뿐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 했다.

꿈속에서 자신을 기억이 재구현한 가짜 알렉세이라 말하는 알렉세이가 나타났다.

이 와중에 마법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생각할 강진호가 아니었다.

아마 강진호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할 것이 분명했다.

‘말이 되는군.’

알렉세이에게 훈련받은 강진호는 어떤 일이든 합리를 따지는 버릇이 있었다.

꿈에서 알렉세이가 나왔다.

진짜 알렉세이는 당연히 아니다. 기억이 만들어낸 알렉세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 설명인가.

하지만 그래도 강진호였다.

꿈속이라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바로 긴장을 푸는 대신 알렉세이의 형상을 한 유더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가짜 알렉세이가 무슨 일이지?”

“강진호, 이건 꿈이다. 꿈에서는 논리를 논하기 어려운 법이야. 너도 어렸을 때는 비이성적인 꿈들을 많이 꿨잖아? 나이트풀에서 우연히 보았던 나타샤의 알몸에 흥분해서 음몽을······.”

“거기까지. 진짜 내 꿈속의 인물이 맞나보군.”

저 일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강진호는 조금이지만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움에 허둥거렸고, 유더는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기분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니 이것은 꿈이다. 너무 논리를 따지지는 말아라.”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이상하군. 넌 너무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어.”

꿈속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하고 있다.

강진호 자신이 납득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들어가며.

“그렇기에 다른 누가 아닌 강진호 너의 꿈이지. 참으로 너다운 꿈이지 않나?”

“음······.”

강진호는 잠시 침묵했다.

나타샤의- 그러니까 예전에 자신을 예뻐해주던 누나의 꿈을 꿨을 때는 이렇게 논리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꿈속에서의 전개가 참으로 비이성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일을 언급하는 것은 몹시 부끄러웠기 때문에 강진호는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무슨 일이지? 내가 무의식중에 알렉세이를 보고 싶어 한 건가?”

“보고 싶어 했지. 언제나 문제가 생기면 알렉세이의 가르침부터 떠올리는 너니까.”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강진호는 다시 침묵하며 알렉세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더가 말했다.

“어차피 산통이 다 깨진 상황이니 알렉세이처럼- 정확히는 네가 알렉세이에게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지는 않겠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다른 이야기?”

“그래, 다른 이야기. 요즘 네 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내 생활이 왜?”

“날백수 짓도 정도껏이지 6년은 너무 길지 않았나?”

강진호는 뜨끔했고, 말하는 유더 역시 뜨끔했다.

지금이야 타인이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뿌리인 두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은퇴하고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6년 동안 네가 한 일을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면서 누군지 모를- 어쩌면 너보다 한참 어릴 지 모를 모니터 너머의 상대를 놀려댄 것뿐이지. 진짜 알렉세이가 이 모습을 보며 무어라 할지 모르겠군. 그리고··· 강진호 너도 비슷한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어. 이렇게 꿈속에 내가 나타난 것이 그 증거다.”

물론 개소리였다.

하지만 강진호는 으음하고 신음을 삼켰고, 알렉세이의 형상을 한 유더는 계속해서 말했다.

“다시 예전에 하던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평생 쓰고 남을 돈도 있으니 굳이 돈을 벌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만 있지 말자는 거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이왕 은퇴했으니 평범한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겠지. 사람을 만나고, 교류를 가지고, 기회가 생긴다면 연애도 해보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는 것도 좋을 거다.”

“친구라면-.”

“인터넷 친구가 있다는 말은 하지 마라. 나는 본질적으로 너이고, 우리 둘이 함께 참담해질 뿐이니까.”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고, 강진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연애··· 하고 싶었던 건가?”

꿈속의 인물을 만들어서 이런 설교를 늘어놓을 정도로?

“너도 남자다. 야한 꿈을 꾼 적이 몇 번이나······.”

“거기까지.”

“그래, 내가 나타샤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도록.”

유더의 말에 강진호는 다시 신음을 삼켰지만 사실 억울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나타샤가 나오는 야한 꿈을 꾼 적은 딱 한 번뿐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강진호 자신이 꾸는 야한 꿈- 소위 말하는 음몽은 좀 이상했다.

항상 분홍에 가까운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나왔으니 말이다.

깨고나면 늘 기억이 흐릿해져 얼굴을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그 머리칼 색만은 분명히 기억했다.

‘그러고 보니 노폭이 코델리아 머리색이랑 좀 닮은 것도 같네.’

잠시 잡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은 강진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 연애라도 좀 하라고 나온 건가? 동아리 활동 같은 것도 하고?”

“나쁘지 않지. 하지만 당장 무얼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혹여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교류를 가질 일이 생긴다면 너무 빼지 말라는 거다.”

그리고 유더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인 끝에야 말을 이었다.

“교류를 가져라.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주변 환경이 바뀌었다. 더 이상 너에게 총질하는 놈도 없고, 네게 가까운 사람에게 총질하는 놈도 없다. 네가 총질할 일도 없겠지. 아예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저어된다면 이미 온라인에서 친했던 이들과도 조금 더 교류를 가져봐라.”

이 정도면 되었다.

더 이상은 역효과였다.

“강진호. 도망치지 마라.”

마지막 당부를 마친 유더는 그대로 강진호의 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몇 초.

“후우.”

꿈의 여운에서 벗어난 유더는 긴 숨을 토한 뒤 옆을 돌아보았다.

코델리아가 무척이나 즐거운 꿈을 꾸는지- 아니, 홍유희의 꿈속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는지 헤실헤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진호는 아직 몰랐지만 유더는 알았다.

어린 시절부터 꿈속에서 종종 나왔던 분홍에 가까운 붉은 머리칼을 가진 여인.

지금은 천사화 덕분에 아예 분홍색 머리가 되어버렸지만······ 새삼 피식하고 웃은 유더는 잠들어 있는 코델리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강진호 역시 자신만의 코델리아를 만나기를 기원하며 코델리아의 뺨을 어루만졌다.

&

다음날 오후.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던 강진호는 고민에 빠졌다.

남만고양이 : [우리 정모 한 번 하지 않을래?]

채팅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

평소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바로 발을 뺐을 강진호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도망치지 마라, 강진호.’

알렉세이.

꿈속의 자신이 했던 말.

더욱이 쉬이 발을 뺄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노란폭풍 : [응응. 나는 좋아. 나갈게.]

노란폭풍이 나온다.

지난 6년 동안 강진호 자신에게 살아갈 힘을 준 미지의 존재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꿈을 꿀만도 하군.’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모르는 상대를 6년동안 놀리면서 PTSD를 치유했다니.

뭔가 굉장한 듯 하면서도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였다.

‘거기다 나보다 어릴 게 거의 확실한 상대니까.’

프로파일링을 의식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래, 만나자.’

만나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만나자.

마음을 다잡은 강진호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

그리고 삼일 뒤.

지금.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흥미진진한 얼굴로 홍대거리- 채팅방 멤버들이 모이기로 한 장소를 바라보았고, 그 곳에서 강진호와 홍유희는 서로를 발견하였다.

“어?”

옆집오빠다.

홍유희는 눈을 깜박이다가 이내 급격히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나름 예쁘게 꾸미고 나왔는데, 그 모습을 옆집오빠에게 들킨 것이었다.

‘아, 아니. 들켰다기 보다는?’

사실 나오면서 내심 옆집오빠랑 마주치기를 바라기는 했다.

이왕 예쁘게 꾸몄으니 보여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길거리에서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이제 보니 평소와 달랐다.

수염도 말끔하게 정리했고,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한 느낌이 드는 옷차림이었다.

저걸 세미 정장이라고 하던가.

넥타이 없이 하얀 라운드 티에 캐쥬얼한 느낌이 드는 가벼운 정장 차림.

‘머, 멋있어!’

진짜 멋있어! 역시 옆집오빠야!

아복이와는 비교도 안 돼.

응응.

개초딩 아복이랑은 비교도 안 되고 말고!

코델리아가 아복이도 잘생겼다고 잔뜩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봐야 아복이지 않겠는가.

‘이, 인사해야 하나? 인사해도 되겠지?’

코델리아는 얼굴을 발갛게 붉힌 채 어쩔줄을 몰라했고, 그런 홍유희를 발견한 강진호 역시 당황했지만 잠깐 뿐이었다.

‘놀러 나왔나 보네.’

이제 대학생이니 남자친구라도 만나는 걸까?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순간 가슴 한 쪽에 찌르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왜 이런 걸까.

그냥 옆집 귀여운 애인데.

“아, 안녕하세요!”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쭈뼛쭈뼛 다가온 옆집소녀- 홍유희가 꾸벅 인사를 했고, 강진호는 마주 인사하며 작게 미소지었다.

“어, 안녕. 약속 있나봐?”

“어··· 네.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요.”

“그래, 재밌게 노렴.”

“네.”

이제 갈 길 가면 된다.

집 근처에서 봤을 때 짧게 나누던 인사는 이미 나누었으니.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옆집 오빠가 이동하지 않고 서 있었다.

옆집 소녀 역시 이동하지 않고 서 있었다.

“어··· 여기서 만나기로 했니?”

“네, 오빠도요?”

“어. 나도 여기서.”

“우, 우연이네요.”

“그러게.”

아주 가능성 낮은 우연은 아니었다.

이 장소는 눈에 띄어서 사람들이 곧잘 약속장소로 선정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 걸까? 호, 혹시 여자 만나나?’

스스로의 생각에 흠칫 놀란 홍유희는 슬쩍 옆집오빠를 훔쳐보았다.

언제 봐도 멋지고 잘생긴 옆집오빠.

분명 엄청 예쁘고 몸매 좋고 아무튼 막 대단한 언니랑 만나겠지.

‘으, 싫어······.’

모처럼 놀러나와서 그런 거 보기는 싫은데.

그리고 그 순간 강진호 역시 생각했다.

‘그런데 누굴 만나는 거지? 진짜 남자친구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속이 좀 쓰렸다.

왜 이런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몇 분.

서로 휴대폰을 꺼내지도 않고, 홍유희는 쭈뼛쭈뼛, 강진호는 티 나지 않게 슬쩍슬쩍 서로를 훔쳐보고 있을 때였다.

까톡!

갑자기 울린 알림음에 깜짝 놀란 홍유희는 움찔하다가 얼른 휴대폰을 꺼내들었고, 강진호 역시 진동음을 느끼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몰랐지만, 동시에 같은 오픈 톡방을 바라보았다.

남만고양이 :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서 못 나갈 것 같아. 정말 미안. 주최해놓고 이래서 정말 미안해.]

AAA : [진짜 미안. 아, 진짜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게에 단체 주문이 엄청 들어와서······.]

코와붕가 : [아니, 그··· 당일에 갑자기 미안한데 나도 급한 일이 생겼거든? 정말 미안해.]

주르르 올라오는 불참 소식에 홍유희는 어이가 없어 눈을 껌벅였고, 강진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란폭풍 : [뭐야. 그럼 다 안 나오는 거야?]

남만고양이 : [정말 미안. 그런데 아복이는 나오는 거 아냐?]

아웃복서009 : [일단, 난 지금 약속 장소인데.]

노란폭풍 : [나두.]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홍유희와 강진호는 저도 모르게 서로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꺼내든 휴대폰.

그리고 방금까지 타이핑을 하던 두 사람.

거기에 약속 장소에 이미 도착해있다는 톡방의 말까지.

“어······.”

“어······.”

서, 설마?!

홍유희와 강진호의 동공이 동시에 커졌다.

to be continued

< 엔딩메이커 SS #12 지구로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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