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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79화 (379/473)

< 엔딩메이커 SS #18 지구로 (11) >

엔딩메이커 SS #18 지구로 (11)

“그랬구나. 너의 나타샤였구나. 강진호의 나타샤였던 거구나. 같이 나이트풀에 갔던 그녀가 나타샤였던 거구나. 나는 그런 것두 모르구 눈치 없이 누구랑 갔었냐고 캐물었던 거구나.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코델리아가 차가운 눈을 한 채 기복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유더는 전에 없이 당황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 유더가 말을 더듬을 지경이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어, 일단. 어, 오해하지 말고.”

“오해?”

“어, 오해. 지금 오해하고 있는 거라니까? 나타샤는 내 전 여친··· 같은 게 아니야.”

전 여친이라는 어감에 스스로 당황한 유더가 다시 좀 버벅이자 코델리아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닌데? 전여친이라도 상관없는데? 난 전생과 현생 통틀어 너밖에 없지만. 어, 그렇지만. 나한테 남자는 곧 유더밖에 없지만.”

누가 봐도 불만이 넘쳐 흐르는 표정과 목소리였다.

때문에 유더는 잔뜩 토라진 코델리아와 어렵사리 눈을 맞추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아니, 정말로 진짜. 나타샤는 나한테 마이아··· 그래, 마이아 같은 사람이야.”

“마이아?”

“그래, 마이아.”

이제 알겠지?

-라는 마음이 된 유더였지만 전혀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오히려 깜짝 놀라서는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너, 마이아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아니이!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

마이아랑 그렇고 그런 사이는 무슨!

나랑 마이아 사이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답답해서 가슴을 탕탕 두드린 유더는 여전히 의심에 찬 코델리아의 파란 눈동자를 마주하다 말했다.

“코델리아, 너도 알잖아, 마이아는 내······.”

거기까지였다.

유더는 잠시 말끝을 흐리며 마이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마이아 탄탈롯.

유더 자신보다는 다섯 살 연상인, 사실상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쭉 보아온, 코델리아를 제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여인.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녀와 함께 한 수많은 추억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마이아는··· 내 어머니이자 누나이자 친구이자··· 그런······ 사실 생각해봐. 아파서 집안에서만 골골거리고 있는데 착하고 예쁘고 상냥한 누나가 막 이것저것 다 챙겨주는 거야. 칭얼거리는 것도 받아주고, 잠잘 때 동화책도 읽어주고. 그럼 당연히 ‘아, 나중에 자라면 마이아 누나랑 결혼해야지.’ 이런 생각 할 수 있지 않아?”

유더가 천천히 말을 잇자 입술을 삐쭉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였다.

마이아가 유더에게 있어 어떤 사람인지는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마이아 누나랑 결혼해야지’ 부분을 듣고나자 눈을 크게 뜨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뭐야, 너 나타샤랑 결혼까지 생각했었어?!”

나타샤는 마이아 같은 사람이다.

어린 유더는 어른이 되면 마이아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즉, 강진호는 나타샤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극히 논리적인(?) 코델리아의 추론에 유더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아니이! 아, 진짜.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정말. 나타샤는 나한테 마이아 같은 사람이라니까? 어? 마이아!”

유더의 어머니. 유더의 누나. 유더의 가장 친한 친구.

하지만 코델리아는 여전히 납득한 얼굴이 아니었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뜨더니 묘한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흐으응, 흐으응.”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는 신호.

때문에 유더는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나타샤한테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 날 키운 건 알렉세이와 나타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흐으응, 흐으응.”

“야, 자꾸 알면서 그럴래? 나한테는 너밖에 없는 거? 네가 그냥 나 자신보다도 더 중요한 거?”

“흥, 말로만.”

다시 코웃음을 친 코델리아였지만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 모습에 자신감은 얻은 유더가 다시 자기 가슴을 탕 소리나게 두드리며 말했다.

“못 믿겠으면 내 머릿속을 한 번 들여다보든지.”

“흐으응.”

“마법으로 보면 되잖아? 저항하지 않을게. 그쪽이 해명하기도 쉬울 것 같고.”

유더가 가슴을 활짝 펴며 그리 말하자 코델리아는 입술을 움츠리더니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한 번 보자.”

“어? 잠깐. 진짜로 본다고?”

“그럼 진짜로 보지 가짜로 봐? 거기 앉아봐. 왜, 쫄려?”

코델리아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유더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쫄리긴 누가. 흠. 좋아. 난 자신 있으니까. 오히려 보고나서 부끄러워하지나 말라고.”

“부끄러워? 누가?”

“네가.”

“내가 왜?”

“보면 알걸?”

“야, 너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길래 내가 부끄러워할 거라는 거야?”

“글쎄, 야한 생각?”

유더가 뻔뻔하게 답하자 순간 얼굴을 붉힌 코델리아였지만 잠깐뿐이었다.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안 통해. 안 통한다구. 그런다구 내가 안 볼까봐? 빨리 앉아.”

“예이, 예이. 앉겠습니다.”

유더가 정말로 시원하게 자리를 잡고 앉자 코델리아는 순간 주춤했지만 이미 칼을 빼든 상황이었다.

이왕 뽑았으니 무라도 베어야만 했다.

“좋아, 그럼 시작할게. 나타샤에 대해 생각해봐.”

“그래.”

짧게 답한 유더는 눈을 감고 나타샤를 떠올리기 시작했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며 눈을 감았다.

&

“네가 지노구나. 난 나타샤라고 해.”

예쁜 소녀.

나이는 십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파란 눈동자에는 마치 어른과 같은 성숙함이 어려 있었다.

“지노! 포기하지 마!”

기억이 바뀌었다.

비오는 날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저만치 너머에서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나타샤가 무어라 격려의 말을 외쳤고, 그 옆에 선 알렉세이가 차가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잖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작은 나무로 만든 엉터리 트리.

하지만 나타샤는 촛불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 미소를 마주한 강진호 역시 미소를 머금었다.

“지노, 멋진데?”

“이제는 정말 잘하는구나. 나보다 나은데?”

“지노, 네가 자랑스러워.”

유더의 말대로였다.

나타샤는 강진호에게 있어 마이아와 같은 존재였다.

강진호에게 싸우는 법과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 것이 알렉세이였다.

하지만 강진호의 마음을 보듬고 지켜준 것은 나타샤였다.

‘흐으응. 흐으응.’

나타샤를 대하는 유더의- 강진호의 마음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마이아와 같았다.

이성이 아닌, 어머니나 누나를 대하는, 그런 감정에 가까웠다.

‘어, 잠깐.’

하지만 어느 순간.

코델리아는 빠르게 흘러가던 유더의 기억을 멈추었다.

문제의 나이트풀.

경호대상이었던 부호의 배려로 일이 다 끝난 뒤 그의 별장에서 하루 온 종일 휴식을 취하였을 때.

“지노, 변태.”

우연인지 필연인지 찢어져서 흘러내린 나탸사의 수영복과, 그걸 정면에서 마주한 강진호.

빨개진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하는 강진호에게 나탸사갸 웃으며 건넨 한 마디.

그리고 기억이 이어졌다.

진짜 현실에서 있었던 일이 아닌, 그날 밤 여자의 알몸을 처음으로 본 강진호가 꾼 음몽의 기억.

‘흐으으으으으음.’

그렇게까지 야하지는 않았다.

그냥 알몸의 나타샤가 나왔고, 야릇한 분위기로 다가와 유더의 뺨을 어루만진 정도가 다였으니까.

‘흐으으음.’

코델리아가 못마땅한 얼굴로 묘한 소리를 내었을 때.

다시금 눈앞의 광경이 바뀌었다.

나타샤의 기억이 이어지는 대신 유더가- 강진호가 꾼 야한 꿈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나타샤 때와 달리 본격적으로, 정말 본격적으로 야한 꿈들.

코델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기억을 건너뛰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눈을 깜박였다.

“나?”

그랬다.

강진호의 야한 꿈에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었다.

당신의 강진호는 누구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코델리아는 알았다.

저 여인은 코델리아 자신이 분명했다.

더욱이 나타샤 때와는 달리 꿈의 내용도 그냥 부드럽고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야말로 꺅 소리가 절로 나오는 꿈이라고 해야 할까.

코델리아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리고 손가락 틈을 벌려 그 사이로 꿈을 엿보고 있을 때 유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흠.”

마법으로 구현된 가상의 공간 속에서 유더의 기억을 엿보는 코델리아와, 그 옆에 나타난 유더.

코델리아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더 역시 마법에 능숙한 터라 이 정도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어떻게 된 일이냐 묻는 대신 보다 이 상황에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야.”

“어.”

“너, 저 때는 나 알지도 못 했잖아.”

강진호가 영웅전기2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국에 들어온 이후였다.

즉, 열 네 살의 강진호는 영웅전기2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 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코델리아의 꿈을 꿨다.

처음 계기가 되었던 나타샤의 음몽 이후에는 늘 코델리아의 꿈만을 꾸어왔다.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빙긋이 웃더니 코델리아가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능청스러운 얼굴이 되어 말했다.

“그야··· 우린 운명의 두 사람이니까.”

나한테는 코델리아 오직 너 뿐이니까.

강진호는 유더의 환생이었다.

몇 번의 생을 반복하더라도 늘 코델리아만을 사랑한 유더의.

“흐흥.”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이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고, 유더는 미소지었다.

귓불까지 빠짐없이 빨개진 코델리아의 귀를 살짝 깨물더니 그대로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또또. 또 이렇게 넘어가려구······.”

유더는 더 이상 듣지 않았고, 코델리아도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유더의 입술과 혀가 코델리아의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랑해.’

유더가 눈빛으로 말했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끌어안았다.

정신 속에서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

같은 시각.

유더와 코델리아가 주변에 대해 조금도 인식하지 못 하게 되었을 때.

강진호는 여전히 통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만간 만나러 갈게. 너의 나타샤가]

짤막한 한 줄의 문장.

하지만 강진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강진호는 유더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직 코델리아가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을 떠나 나타샤는 강진호라는 인간에게 있어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나타샤.”

마지막으로 만난 지 벌써 6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알렉세이의 복수를 하고, 이 바닥에서 은퇴한 이후 만나기는커녕 작은 연락하나 주고받지 못했던 그녀.

강진호 자신과 달리 그녀는 은퇴하지 않았다.

어쩌면 여전히 활동 중일지도 몰랐다.

아니, 활동 중일 것이 분명했다.

“나타샤······.”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지난 6년 동안 그녀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많은 의문들이 떠올랐고, 하나씩 사라졌다. 결국에 남은 것은 오직 한 가지 감정뿐이었다.

‘만나고 싶다.’

나타샤를.

그녀를.

자신의 누이이자 친구인 소중한 그 사람을.

까톡!

바로 그 때였다.

상념을 깨는 알림음에 퍼뜩 정신이 든 유더는 휴대폰을 돌아보았고, 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홍유희 : [오빠오빠. 지금 뭐해요?]

홍유희 : [지금 게임하러 가도 돼요?]

문장일 뿐인데도 발랄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컴퓨터 우측 하단에 뜬 시계를 돌아본 유더는 저도 모르게 빙긋 웃더니 휴대폰 화면을 두드렸다.

강진호 : [와도 돼. 그런데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하고?]

홍유희 : [응응. 괜찮아요.]

과연 정말 괜찮은 걸까.

PC방 간다고 거짓말치고 오는 것은 아닐까.

이웃집 오빠로서 이 행동을 제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유더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시간이라고 해봐야 오후 3시 밖에 안 되었고, 홍유희는 다 큰 성인이었다.

더욱이 만나서 정말로 게임만 할 거니까.

강진호 : [좋아, 지난번의 설욕을 해주겠어.]

홍유희 : [흥흥, 어림두 없거든요? 아무튼 그럼 지금 갈게요!]

그리고 띵동-하는 초인종 소리.

애당초 대문 앞에서 톡을 보낸 모양이었다.

인터폰을 확인한 강진호는 서둘러 현관문을 열었다.

“헤헤.”

예상대로 홍유희가 서 있었다.

정모 때와 거의 비슷한, 하지만 살짝 다른 복장이었는데 척 보기에도 나름 열심히 꾸민 것이 눈에 보였다.

살짝 분홍빛이 감도는 블라우스와 살짝 짧은 검은색 치마.

하나로 묶은 머리에는 과하지 않을 정도로 큰 검정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할까.

사실 알고 있었다.

가벼운 칭찬.

나타샤가 가르쳐준 것.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부끄러워진 강진호는 헛기침을 몇 번이나 터트리느라 칭찬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들어와.”

“네, 오빠.”

홍유희가 빙긋 웃으며 답했지만 강진호는 그 순간 눈치 챌 수 있었다.

약간의 실망.

살짝 의기소침해진 상태.

지금이라도 예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작은 소리.

하지만 강진호는 그 소리를 포착했다.

정확히는 청각이 아닌 육감이라 불러야 할 감각이 무언가를 감지했고, 그 무언가가 청각으로 이어졌다.

안방 쪽.

무엇일까.

위험한 것 같지는 않았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착각인가?’

지난 6년 사이에 감이 많이 무뎌지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알렉세이의 가르침이 강진호에게 행동할 것을 명하였다.

“잠깐만. 방에서 뭐 좀 가져올게.”

현관에 서서 거실 쪽을 보고 있던 홍유희에게 그렇게 말한 강진호는 안방으로 향했고, 홍유희는 눈을 깜박이다가 그런 강진호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강진호가 무의식중에 내뱉은 변명인 ‘뭐 좀 가져올게’에 호기심이 생겨서였다.

뭐지?

뭘 가져온다는 거지?

거기다 안방은 곧 강진호의 방이었다.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홍유희는 몸을 더욱 기울였지만, 아파트의 구조상 안방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리였다.

그랬기에 강진호는 홍유희에게 의식을 분산하는 대신 감각을 끌어올렸다.

만약의 상황을 떠올리며 안방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직후.

강진호의 눈에 들어온 것.

아니, 그보다 앞서 들려온 것.

“오랜만이야, 지노. 나 보고 싶지 않았어?”

조금 어눌하지만 그래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는, 뭣보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목소리의 한국어.

그리고 그 소리의 진원지에 해당하는,

천의 면적이 무척이나 적은 붉은 드레스 차림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반라의 여인이 하나.

“나, 나타샤?!”

“이런 지노. 감이 많이 둔해졌네. 보금자리에 사람이 숨어든 것도 모르고?”

오랜 만에 듣는 러시아어에, 아니, 그보다는 눈앞의 상황에 당황하던 강진호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나타샤가 무어라 더 말을 잇기도 전에 급히 안방에 들어서며 문을 쾅 소리나게 닫아버렸다.

“지노?”

6년 만에 마주한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

자신이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반라에 가까운 차림을 한 채 침대 위에 누워있을 정도로 짓궂고 이상한 사람. 그래도 너무나 소중한 그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오빠?”

문 너머에서 들려온 홍유희의 목소리에 강진호는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조함과 두려움을 느꼈고, 나타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to be continued

< 엔딩메이커 SS #18 지구로 (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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