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딩메이커 SS #23 결혼식이 끝난 이후에 >
엔딩메이커 SS #23 결혼식이 끝난 이후에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이자 세일룬 왕국의 수호자인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공작과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공작의 결혼은 국가적인 행사가 되었다.
과장 없이 전 세계에서 하객들이 모여들었고, 세일룬 왕국 왕도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북부와 남부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왕도로 향하였다.
헨리 2세와 제1왕비 유스티아의 결혼식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광장을 가득 채운 수만- 아니, 어쩌면 수십만에 달할지 모를 사람들.
인산인해를 이루다 못 해 왕도 밖에도 펼쳐진 수천, 수만의 천막들.
당연히 결혼식도 통상적인 절차와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구구절절한 주례사는 없었고, 신랑신부의 입장 역시 달랐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두 손을 마주잡고 사람들 앞에 나아가 모두의 환호와 축복을 받았다.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행사의 규모가 커져도, 그 형식이 달라진다 할지라도 결국 유더와 코델리아의 결혼식이었다.
두 사람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을 축복하는 자리였다.
체이스 백작은 가만히 서서 유더와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대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왕궁의 발코니.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입맞춤을 나누는 두 사람.
유더가 웃고 있었다.
코델리아가 미소지었다.
입맞춤을 맞춘 두 사람은 그렇게 환히 웃다가 서로 반지를 교환하였다.
체이스 백작은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헨리 2세의 축사와 선언이 끝났다.
왕도 곳곳에서 새하얀 비둘기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왕도 전체를 뒤흔들 것 같은 대함성이 터져나왔다.
코델리아가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기쁨 때문인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다시 한 번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결혼식이 마무리 되었다.
참으로 기쁜 날이었다.
&
코델리아의 아버지인 체이스 백작에게는 왕궁의 손님방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방과 열 명이 넘는 사용인들이 배정되었다.
하지만 체이스 백작은 결혼식이 끝난 직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과 마주하는 대신 조용히 왕궁을 빠져나와 어느 한 곳으로 향하였다.
바이엘 백작은 체이스 백작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체이스 백작에게 혼자서 쏙 빠져나가느냐며 타박하는 대신 오히려 그의 탈출을 도와주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모았고, 체이스 백작을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을 대신 상대하였다.
발걸음이 이어졌다.
사람들로 가득 찬 왕도를 빠져나온 체이스 백작은 작은 언덕 위에 멈춰 섰다.
왕도의 전경이 고스란히 보이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체이스 백작에게 이곳은 다른 의미를 가진 장소였다.
“에어리스.”
코델리아의 어머니.
체이스 백작 자신의 사랑.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체이스 백작 부인.
그녀의 무덤과 위패는 체이스 백작가에 있었다.
이 장소는 그가 그녀를- 체이스 백작이 엘로아 자작가의 영애인 에어리스 엘로아를 처음 만난 장소였다.
&
귀족들에게 있어 결혼은 일종의 사업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상호간의 거래.
그렇기에 평민들처럼 연애결혼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애당초 유더와 코델리아 역시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약혼관계였으니 말이다.
아델리아와 게일처럼 서로 사랑하여 맺어진 사례는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가문 간의 결합.
그렇기에 북부나 남부보다 훨씬 더 많은 군소 귀족들이 자리하고 있는 중앙에서는 결혼식 날에나 상대의 얼굴을 처음 보는 극단적인 경우조차도 적지 않았다.
애당초 가문 간의 거래가 목적이기에 신랑신부의 나이 차가 크게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마치 상품처럼 팔려가는 어린 신랑과 신부들.
그나마 당대 왕인 헨리2세가 즉위한 이후로는 이런 분위기가 다소 완화되었지만 체이스 백작이 젊었던 시절- 그러니까 헨리2세의 치세 이전에는 귀족간의 연애결혼이란 사랑이야기에나 나오는 호사에 불과했다.
그런 시대.
이제 막 정식 마법사 자격을 손에 넣은 체이스 백작은 왕도로 향하는 언덕 위에서 마차 바퀴가 구덩이에 빠져 꼼짝도 못 하고 있던 엘로아 자작가의 마차와 조우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만난 에어리스 엘로아를 사랑하고 말았다.
&
운명적인 사랑.
첫눈에 반한 서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체이스 백작은 에어리스를 본 순간 사랑에 빠졌지만 정작 에어리스 쪽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체이스 백작보다 두 살 연상이었고, 무엇보다 이미 결혼이 예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상대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연상인 제나두 자작으로 그에게 있어서 에어리스는 세 번째 결혼 상대였다.
“한 번만 왕도에 가보고 싶어요.”
사실상 북부라 불러도 좋을 중앙 끝자락에 자리한 엘로아 자작가에 사는 그녀가 왕도까지 올라온 것은 그래서였다.
한 번만 왕도에 가보고 싶다.
엘로아 자작은 이제 곧 자기 아버지뻘인 남자에게 가문과 동생들을 위하여 팔려가게 될 딸아이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 했다.
더욱이 제나두 자작은 남부의 귀족이었다.
앞서 세상을 떠난 자작의 두 부인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엘로아는 이번에 시집가고 나면 평생 동안 제나두 자작령을 나서지 못 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어쩌면 자작의 저택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요원할지 몰랐다.
“다녀오거라.”
“감사해요, 아버지.”
여행에는 적잖은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에어리스가 철이 든 이후 처음으로 입 밖에 낸 소망이었다.
엘로아 자작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아내의 유품들 가운데 하나를 팔아 여비를 마련하였다.
여행 기간은 한 달.
엘로아 자작가의 위치를 생각하면 왕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이틀에서 삼일 남짓이었지만 이 정도가 한계였다.
애당초 제나두 자작과의 결혼식이 이제 겨우 두어 달 남은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
에어리스는 책임감이 강했다.
스무 살이나 많을뿐더러 얼굴도 알지 못 하는 제나두 자작에게 시집가기로 결정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녀에게는 동생들이 많았으니까.
적어도 동생들만은 원하는 것을 이루고,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좋은 곳에 시집가기를 바랐으니까.
엘로아 자작은 무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너무 많은 빚을 지고 말았고, 그의 아내- 그러니까 에어리스의 어머니인 엘로아 자작 부인이 결국 세상을 떠났을 때 엘로아 자작가의 가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에어리스는 부자에게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나두 자작은 비록 나이가 많고 성격이 모난 편이기는 했지만 엘로아 자작가를 건사하고 남을 정도로 부자였다.
그랬기에 그녀는 파티에서 제나두 자작의 청혼을 수락하였다.
&
에어리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보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잘생기고 얼빠진, 덤으로 키도 무척이나 큰 청년에게 가능한 눈길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기사 같은 청년이 완력이나 타고 있던 말을 이용해서가 아닌, 마법을 이용해 마차를 들어 올렸을 때조차 그리할 수는 없었다.
누가 봐도 기사같은 청년이 마법사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감사를 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에어리스는 고개를 들어 청년을 마주하였다.
아더 체이스.
백작위를 물려받기 전의, 젊은 날의 체이스 백작.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덕분에 난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말을 입에 담으면서 에어리스는 생각했다.
답례를 요구하면 어떡하지.
물론 도와주었으니 답례하는 것이 맞기는 했지만 여비조차 빠듯한 상황인데.
좀스러운 생각이었지만 현실적인 고민이었고, 그 사실이 다시 한 번 에어리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체이스 백작이 말했다.
“당신은 마법 같은 분이군요.”
“네?”
에어리스가 저도 모르게 되묻자 체이스 백작은 무어라 말을 잇는 대신 몹시 당황했다.
스스로가 꺼낸 말에 놀랐기 때문이다.
“아니, 그, 그러니까.”
얼굴을 붉힌 채 허둥거리는 잘생긴 청년의 모습은 젊은 처녀의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하기 충분했다.
에어리스는 실례인 것을 알면서도 불가항력적인 미소를 머금었고, 그 환한 얼굴에 체이스 백작은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
“결국 얼굴이 좋다는 거군.”
“아니다. 얼굴만 좋은 것이 아니다.”
알렉스 바이엘.
바이엘 백작의 지적에 체이스 백작은 무척이나 진지하게 답했다.
때문에 호기심이 생긴 바이엘 백작은 다시 물었다.
“그럼 뭐가 더 좋은데?”
“전부 다 좋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평소라면 여기서 다시 반발이 돌아와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바이엘 백작은 지금도 반쯤 넋이 나가있는 친구의 얼굴에 쓴웃음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었다.
“아더.”
“그래, 알렉스.”
“유부녀라며.”
“아직이다. 약혼자가 있을 뿐이다.”
“불장난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진지하다.”
“아더, 만난 지 이제 겨우 하루 밖에 되지 않았어. 실제로 마주한 시간은 마차를 고치고 왕도까지 동행하면서 함께한 한 시간 남짓 밖에 되지 않고.”
“나도 안다.”
“아는 사람이 그래?”
“그녀는 마법 같은 존재니까.”
답이 없었다.
때문에 바이엘 백작은 일단 친구를 돕기로 하였다.
젊은 놈이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이야기도 젊은 시절에나 누릴 수 있는 호사 중에 하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이엘 백작은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알게 되었다.
체이스 백작은 본인의 말처럼 진지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
‘정말로 운명적인 사랑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체이스 백작과 에어리스는 사랑에 빠졌다.
사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체이스 백작가는 북부12가문 가운데 하나였고, 마법명가답게 재산 역시 적지 않았다.
더욱이 체이스 백작- 그러니까 아더 체이스는 젊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아버지 뻘인 제나두 자작보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이엘 백작은 운명적인 사랑을 생각했다.
적어도 그가 만나본 에어리스는 저런 손익 계산에 따라 이미 성사되기 직전인 결혼 약속을 무시할 정도로 후안무치한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쉽지 않아.’
백작가라 하여 무조건 자작가보다 높고 강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북부12가문 정도 되면 이야기가 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나두 자작가를 마음대로 찍어 누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체이스 백작가는 북부의 가문이었고 제나두 자작가는 남부의 가문이었다.
명분조차 제나두 자작가에 있으니 결혼을 무효로 하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결국 무효로 하지 못 할 수도 있었다.
체이스 백작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모한 짓을 하기로 결심했다.
에어리스와 함께 사랑의 야반도주를 떠난 것이다.
‘내가 미치지, 미쳐.’
사랑의 야반도주라니.
동반 가출이라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사랑 이야기에나 나올 무모한 짓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더 체이스 그 친구가 감행하다니.
당연히 난리가 났다.
사교계가 발칵 뒤집혔고 제나두 자작은 이 기회에 북부를 마음껏 비난하고 싶은 남부의 지원을 받아 체이스 백작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명예를 훼손한 죄를 묻겠다며 결투까지 신청하였다.
물론 제나두 자작이 직접 나서는 것은 아니었다.
남부 출신의 십검호인 중압검 엔리코 루클리아는 자신의 조카이자 수제자인 마테오 루클리아를 제나두 자작가의 대전사로 보내주었다.
마테오는 강했다.
검의 연회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그는 사람들에게 미래의 십검호라고까지 불리었다.
그런 그를 내세워 결투를 신청했다.
결투를 거절하면 그렇지 않아도 난처해진 체이스 백작가의 명예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터였고, 받아들인다면 검사가 아닌 마법사인 아더 체이스는 무사하기 힘들 터였다.
물론 체이스 백작가에서도 대전사를 내세워 결투를 받아들인다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십검호와 척질 것을 각오하고, 더욱이 미래의 십검호라 불리는 십검호의 수제자와 맞선단 말인가.
애당초 체이스 백작가가 잘못한, 그렇기에 백작가를 위해 나서는 것조차 명예롭지 못 할 결투에.
“뒷수습은 언제나 내 몫이지.”
바이엘 백작은 쓰게 웃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본가에서 뭐라 하든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더 체이스를 위해 검을 뽑았고, 친구와 함께 싸잡혀 파렴치한이라 불리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바람은 자유로운 법이니까.”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미래의 자신이 자다가 몇 번이나 이불을 걷어차게 될 것이란 것을 젊은 날의 바이엘 백작은 알지 못 했다.
&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뤄지지 못 했다.
체이스 백작가에서 조용히, 가족들과 지인들만 참가한 가운데 아더 체이스와 에어리스 엘로아의 결혼이 선언되었다.
체이스 백작은 고개를 들었다.
등 뒤를 향해 말했다.
“네 어머니는 무척이나 활발하고 발랄한 사람이었단다.”
“네, 아버지. 기억납니다.”
에드워드 체이스는 몇 걸음을 더 내디뎌 아버지 곁에 섰다.
막내동생인 코델리아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신 어머니.
에드워드와 코델리아의 나이 차이는 열 살에 가까웠고, 그랬기에 에드워드는 어머니의 모습을 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좀 극성이기도 했고요.”
“그랬지.”
에어리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자주했다.
갑자기 부자집에 시집왔다고 가산을 탕진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에어리스가 주변에 주는 선물들은 대부분 소박하고 값싼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작은 주머니에 항상 사탕이나 과자를 넣고 다니셨죠.”
어린 에드워드와 아델리아만이 아니었다.
체이스 백작가에서 일하는 이들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에어리스는 작은 선물들을 나눠주고는 했다.
체이스 백작도 그때를 기억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움이 가득 담긴 얼굴로 속삭이듯 말하였다.
“언젠가 한 번 물었던 적이 있단다. 왜 그렇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냐고. 그러자 에어리스는 말했지.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예상 밖의 무거운 이야기에 체이스 백작은 무어라 바로 답하지 못 했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에어리스가 그녀의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숨 쉬는 것처럼 울고 또 울어 마침내 눈물조차 말라버렸을 때.
앞으로 영원히 이어질 에어리스가 없는 시간들을 체이스 백작이 자각했을 때.
“에어리스는, 네 어머니는 언제나 옳았지. 언제나.”
체이스 백작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에드워드에게 얼굴을 감추며 천천히 숨을 골라 감정을 가라앉혔다.
아마 에어리스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을 터였다.
에어리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에드워드.”
“네, 아버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아끼지 말거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작은 미소 하나가 그 사람을 영원히 떠나보낸 뒤에 바치는 백만 송이의 꽃보다도 더 가치 있으니.”
“알겠습니다. 아버지.”
체이스 백작이 주변에 과할 정도로 선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것도 그냥 주기가 쑥스러워 속이 뻔히 보이는 거친 말들을 덧붙여가며.
에드워드는 굳이 아버지를 공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체이스 백작은 거리낌 없이 아들을 공격하였다.
“물론 그 전에 사랑하는 사람부터 찾아야겠지만 말이다.”
뼈가 있는 말에 순간 움찔한 에드워드였지만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바이엘 백작가에 여식이 하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허튼 소리 말고 이번에 잘 찾아보거라. 왕국의 모든 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만 하지 말고 결과를 내놓거라.”
여기에는 무어라 답해야 하는 것일까.
에드워드는 결국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는 대신 그저 왕도를 바라보았고, 체이스 백작은 사별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빼지 않은 반지를 바라보았다.
에어리스의 미소를 떠올리며 서툰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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