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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90화 (390/473)

< 엔딩메이커 SS #29 재회(3) >

엔딩메이커 SS #29 재회(3)

190cm가 넘는 유더가 160cm도 채 안 될 것 같은 유나의 품에 매달리듯 안겨 엉엉 우는 모습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지만 모여 있던 이들 가운데 이를 흉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다들 눈시울을 붉히거나 눈물을 보였다.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 보고 싶다.’

머릿속에 절로 홍유희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지금도 지구에 잘 계실 어머니.

홍유희가 멀쩡히 있는 마당에 딸이라며 나타날 수 없어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어머니.

그리고 또 한 사람.

홍유희의 어머니처럼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수조차 없는 사람.

코델리아의 눈앞이 흐려졌다.

어느새 잔뜩 쏟아진 눈물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체이스 백작 부인.

코델리아 체이스의 어머니.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병상에 누운 어머니에게 매달리듯 안겨 있던 순간들이 생각날 뿐이었다.

그때의 온기.

포근함.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그저 막연히 따뜻했다고, 참 좋았다고- 기억인지, 아니면 그저 상상인지 모를 그런 느낌들만이 아련하게 남아있을 뿐.

유더가 어머니와 재회해서 좋았다.

유더의 사정을 잘 아는 코델리아였으니까.

유더는 물론이고 강진호에게도 어머니가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좋았다.

사랑하는 유더가 어머니를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부러웠다.

어머니와 재회한 유더가 너무나 부러워서 서럽다는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엄마.’

나도 보고 싶은데.

나도 만나고 싶은데.

나도 우리 엄마 보고 싶은데.

기쁨과 서러움이 하나로 엉켜 엉망진창이 되었다.

코델리아는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에 유더가 반응했다.

정신없이 우는 와중이었지만 코델리아의 눈물을 놓칠 그가 아니었다.

“엄마, 엄마. 저기. 저기.”

감정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 한 유더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헐떡이듯 겨우겨우 말을 잇다가 고개를 돌려 코델리아를 보았고, 엉엉 우는 그녀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코델리아에요. 제 아내에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자연스럽게 쏟아진 말들이었다.

도저히 생각을 정리할 수 없어 마치 아이처럼 말했다.

“코델리아, 이쪽이야. 이리 와.”

연달아 손짓하니 엉엉 울던 코델리아도 반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더의 목소리였다.

유더가 그러한 것처럼 코델리아 역시 아무리 정신을 놓은 상태라 해도 유더의 목소리를 놓치지는 않았다.

“흐윽. 흑.”

코델리아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다가오자 유더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더니 그대로 코까지 한 번 풀게 했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이 작게나마 웃었다.

그리고 덕분에 얼굴이 빨개진 코델리아는 겨우 눈을 떠서 유나를 보았다.

유나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머리칼에 녹색 눈동자.

다소 이질적인 색 배합이었지만 그저 아름답고 신비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유더의 엄마.’

정말이었다.

유나의 얼굴 곳곳에서 유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 녹색 눈동자.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빨려들 것만 같은 신비.

“코, 코델리아에요. 유더의 아내입니다. 어머님께 인사드려요.”

엉엉 운 탓인지 코델리아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몸에 밴 예법 덕분에 인사하는 자세 자체는 그럴싸했지만 인사말이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유나는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방긋 웃었고, 작은 손을 뻗어 코델리아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에 코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기대자 다시 웃으며 말했다.

“네가 코델리아구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단다.”

“저를요?”

코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일까.

아버님?

바이엘 백작님?

그리고 무슨 이야기일까.

바이엘 백작님은 코델리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갑자기 다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 그래도 나쁜 말씀은 안 하셨겠지?’

아버님이시니까.

그리고 아버님한테는 잘못한 게 딱히 없으니까.

‘가, 가출은 좀 많이 했지만.’

야반도주로 속을 참 많이도 썩혀 드렸으니까.

하지만 그건 다 사정이 있었던 거고, 아버님도 이제 그 사실을 아셨다.

그러니 괜찮겠지.

응응, 괜찮을 거야.

하지만 이 불길한 기분은 무엇일까.

막연히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그냥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꺼림직한 그것.

더욱이 코델리아 자신이지 않은가.

육감 하나만큼은 플레이아데스 제일이라 해도 좋았다.

‘뭐지? 뭐지?’

어머님은 정말로 해맑게 웃고 계신데.

왜일까.

왜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코델리아의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바로 정답이 들려왔기- 아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왜, 쫄리니?”

장난기가 잔뜩 어린 얄미운 목소리.

익숙한 그것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번쩍 들어 마차를 보았고, 이내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내었다.

“헉! 거, 거친눈사태 님?!”

님이 왜 여기서 나와요?

당황한 것은 유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나-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야생신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 다른 야생신인 거친눈사태가 함께 방문한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으니까.

왜 온 거지?

그리고 거친눈사태가 코델리아의 이야기를 했다면-

“후후훙.”

거친눈사태가 제법 사악하게 웃자 코델리아와 유더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머니, 이쪽은 제 아내인 아델리아입니다.”

게일이 미묘한 분위기를 끊고 아델리아를 유나에게 소개했다.

“아델리아입니다. 어머님께 인사드려요.”

아델리아가 차분히 예를 표하자 유나는 이번에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아델리아? 아델리아 맞지? 에어리스의 아이!”

유나가 아예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까지 하자 아델리아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님. 아델리아에요.”

유나가 바이엘 백작가를 떠나야만 했을 때 아델리아의 나이는 다섯 살 남짓이었다.

아델리아는 어렴풋이나마 유나를 기억했고, 유나는 작고 예쁜 아기 아델리아를 기억했다.

“정말 예쁘게 컸구나. 정말 예쁘게 자랐어. 에어리스를 참 많이 닮았고.”

감탄해서 여러 말을 쏟아낸 유나는 휙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바이엘 백작의 소매를 당기며 말했다.

“왜 이야기 안 해줬어요. 네? 아델리아가 게일의 아내가 되었다고.”

유나가 ‘네?’하는 순간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은 표정이 된 바이엘 백작은 헛기침을 토해 표정을 되돌리기는커녕 그대로 실실 웃으며 답했다.

“그야 이렇게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어머나, 심술쟁이!”

유나가 다시 소매를 잡아당기자 바이엘 백작은 허허허 웃었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용인들은 생각했다.

‘꽁냥질도 유전되는 거였구나.’

저기만 딴 세상 같다고 해야 할까.

손발은 물론이고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사용인들은 애써 침묵을 유지했고, 게일은 다시 하하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무튼 어머니, 계속 여기 서 있을 수도 없으니 안으로 드시죠. 안에는 제 아이들도 있답니다.”

“게일의 아이? 아델리아랑 게일의?”

“네, 어머님. 저희 아이에요. 쌍둥이 남매랍니다.”

아델리아가 다소곳이 답하자 유나는 다시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에어리스의 아이가 아이를? 그것도 게일의?”

마치 어린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달을 한 유나는 바이엘 백작의 소매를 마구 당기기 시작했다.

“이것도 말 안 해주고! 심술쟁이!”

“허허허.”

바이엘 백작은 다시 그저 웃었고, 사용인들은 생각했다.

‘귀여우셔라.’

아무튼 귀엽다.

귀여워.

“흠흠. 아무튼 드시죠.”

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던 게일이 다시 재촉하자 유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 뒤 바이엘 백작의 손을 꼭 붙잡았고, 바이엘 백작은 그런 유나를 에스코트하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쌍둥이 남매와 인사를 하고, 뺨을 비비고, 손가락을 꼭 쥐고 등등 행복한 시간을 보낸 유나와 바이엘 백작가 사람들은 응접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된 거야.”

이야기를 주도한 것은 의외로 거친눈사태였다.

짤막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여럿담긴 그의 이야기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거렸다.

“칼날노래 님이······.”

유나의 오라버니.

다른 누구도 아닌 칼날노래였다.

정말 피가 이어진 남매인 것은 아니었지만, 칼날노래가 유나의 보호자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위대한폭풍과 고운눈바람의 관계와 비슷한 거지.”

위대한폭풍은 새이고 고운눈바람은 사슴인데도 서로 오누이처럼 지냈으니까.

“그럼 어머님께서는······.”

“난 사슴의 뿔을 가진 늑대야. 아버지는 늑대 야생신이셨고, 어머니는 사슴 야생신이셨거든.”

유나의 설명에 코델리아는 와-하며 감탄했고, 유더는 거친눈사태를 돌아보았다.

거친눈사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나는 야생신들 중에서도 무척 특이한 경우다. 야생신들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대부분의 야생신들은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었다.

인공정령왕 프로젝트의 산물인 인공정령들이 자연의 기운과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 야생신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유나는- 푸른눈보라는 더욱 더 성역에 머물러야 했던 아이다.”

“푸른··· 눈보라요?”

유더가 다시 묻자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게 내 야생신으로서의 이름이란다. 하지만 나는 유나야. 유나 바이엘. 그게 내 사람으로서 이름이니까.”

푸근한 얼굴로 말한 유나는 그렇지 않느냐는 듯 바이엘 백작을 돌아보았고, 바이엘 백작은 유나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서 나도 처음엔 전혀 몰랐지. 유나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데다가··· 내가 기억하는 칼날노래의 동생 푸른눈보라는 작은 아기 늑대였으니까. 사람으로 변한 모습은 나도 이번에 처음 보았고.”

거친눈사태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유나를 보았다.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칼날노래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특유의 기운이 유나에게서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요약정리하면 이거야. 너무 오랫동안 인세에 나가 있어서 기운이 고갈된 유나는 다시 야생의 땅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용맥이 있는 성역에서 기운을 회복하기 위한 긴 잠에 빠졌지.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난 거야.”

그 사건.

코델리아는 입술을 움츠렸고, 유더는 흠흠 헛기침을 토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황금의 용왕을 깨우기 위해 저질러 버린 일.

야생의 땅의 모든 용맥을 연쇄폭발시킨 덕분에 계획대로 황금의 용왕이 깨어나긴 했지만 그 대가는 결코 싸지 않았다.

야생신들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성역을 잃었으니 말이다.

“괜찮아.”

“어머니?”

“정말 괜찮아. 비록 성역이 파괴되고, 고향이 없어지고, 성역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이 먼 곳으로 이주해야 했지만··· 덕분에 이렇게 깨어날 수 있었으니까. 다시 렉스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유나가 해맑은 얼굴로 한마디씩 할 때마다 코델리아는 칼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움찔움찔거렸다.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렴. 두 사람이 한 일들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한단다.”

그리고 다시 세상 맑은 미소.

아하하 어설프게 따라 웃은 코델리아는 얼른 유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도, 돌려 까시는 건 아니시겠지?]

[그. 그런 분 아니실 거야.]

말에 뼈가 있긴 했지만 딱히 의도한 바는 없으시겠지.

어, 그렇고말고.

그냥 해맑게 사실들을 나열하신 거겠지.

유더와 코델리아가 어설픈 미소로 서로를 다독이자 거친눈사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왜. 이제 고향이 없으니 고향이 위험할 일은 없다고 해야 하지 않아?”

저저저.

마음에 품고 있었구나.

바위산 날아간 걸로 아직도(?) 꽁해있었구나.

하지만 사실이었기에 뭐라 할 말이 없는 코델리아는 입술만 움츠렸고, 거친눈사태는 모처럼 승리한 기분을 만끽하며 으쓱으쓱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거친눈사태님은 역시 현명하세요.”

“어?”

“그렇지 않아요? 고향이 없으니 고향이 위험하지 않다니. 발상의 전환이에요.”

“아니, 그, 그러니까······.”

유나가 해맑은 눈으로 말하자 거친눈사태는 당황해서 어버버 거렸고, 코델리아는 눈을 껌벅였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깨달았다.

유나가 이쪽을 보며 살짝 윙크를 보낸 것을.

‘아.’

역시 유더의 어머니라고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해맑으시지만 그래도 재치가 있으신.

코델리아는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웃었고, 유나는 뻘뻘거리는 거친눈사태 앞에서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to be continued

< 엔딩메이커 SS #29 재회(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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