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딩메이커 SS #30 재회(4) >
엔딩메이커 SS #30 재회(4)
“그런데 거친눈사태 님은 왜 오신 거예요?”
코델리아의 물음에 쩔쩔매고 있던 거친눈사태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뭐야, 오면 안 돼?”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코델리아가 질문을 던진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거친눈사태를 난처한 상황에서 구해주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거친눈사태는 왜 여기까지 따라온 것일까.
이미 말했듯이 거친눈사태가 오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인연도 있고, 만나서 반갑기도 하니 오히려 환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와도 상관 없는 것과 왜 온 것인가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존재했다.
거친눈사태는 야생의 땅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그것도 유나와 함께 바이엘 백작가에 나타난 것일까?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 역시 궁금하다는 얼굴로 거친눈사태를 돌아보았다.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어디까지나 짐작일뿐.
더욱이 그다지 마음에 드는 짐작은 아니었기에 유더는 섣불리 자신이 추측한 바를 입밖에 내는 대신 거친눈사태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몇 초나 지났을까.
거친눈사태는 유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유나는 지금 온전한 상태가 아니야. 본래라면 적어도 10년··· 아니, 20년은 더 잠들어 있었어야 하는데 강제로 깨어난 상태니까.”
거친눈사태의 대답에 코델리아가 깜짝 놀라 말했다.
“서, 설마 저희 때문에 상태가 더 안 좋아지신 거에요?”
대폭발을 일으킨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였으니까.
하얗게 질린 코델리아의 얼굴을 마주한 유나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너희 때문이 아니야.”
“그래, 방금 말했잖느냐. 본래라면 훨씬 더 오래 잠들어 있어야 했는데 일찍 깨어난 게 문제라고. 대폭발로 인해 푸른눈보라··· 그러니까 유나가 추가적으로 더 몸이 안 좋아지거나 한 것은 없어. 다만 충분히 회복하기 전에 깨어났다는 것이지.”
“그, 그래두······.”
이러나저러나 일찍 깨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코델리아 자신과 유더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유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그때 깨어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다시 렉스를 만나지 못 했을 테니까. 너희도 그렇고. 더욱이 너희는 야생의 땅을 구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거잖아? 오는 길에 거친눈사태 님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
탁상 너머로 코델리아의 손을 꼭 붙잡은 유나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희 탓이 아니야. 마음쓰지 않아도 돼. 알았지?”
“······네, 어머님.”
코델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나는 정말 괜찮다는 듯 빙긋 웃은 뒤 거친눈사태에게 눈짓을 보냈다.
“거친눈사태님.”
“그래, 마저 이야기하마.”
흠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거친눈사태는 짧은 다리를 소파 위에서 몇 번 움직인 뒤 말을 이었다.
“유나는 지금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성역과도 멀고 한기도 약한··· 이런 곳에 머물면 다시 금방 몸이 약해질 거다. 완전히 회복하기 전까지는 야생의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소리지.”
“새로이 만들어진··· 야생의 땅의 성역에서요?”
“그래, 오히려 회복이 더 빠를 거다. 야생신들이 잔뜩 모인 덕분에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성역보다도 강력한 성역이 되었으니까. 황금의 용왕님께서도 계시고.”
유더의 물음에 다시 답한 거친눈사태는 후-하고 숨을 한 번 쉬더니 유나를 비롯한 모두를 돌아본 뒤 말했다.
“유나가 깨어나서 우리에게 온 건 너희가 지구라는 곳으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나가 너희- 정확히는 유더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몰랐어. 그저 그녀가 제국령에 있는 설산에 가고 싶다고··· 예전에 요양하던 그 곳에 가고 싶다고 해서 내가 함께 설산까지 동행했다. 유나는 막 깨어나서 힘은 물론이고 정신도··· 정확히는 사고력도 지금처럼 또렷하지 못 했거든.”
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었다.
“그리고 설산에서 바이엘 백작을 만났다. 유나도 그제서야 정신을 온전히 회복하였고.”
바이엘 백작이 이전에 물었던 ‘유나’라는 사람이 푸른눈보라라는 것도 그때서야 안 거친눈사태였다.
“본래는 너희를 설산이나 야생의 땅의 새로운 성역으로 부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나가 한 번이라도 좋으니 꼭 바이엘 백작가에 돌아가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여행에 나서게 되었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거친눈사태가 여러모로 불안정한 유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식으로 따지면 주치의 노릇을 해주었다 해도 좋았다.
일련의 설명에 유더는 고개를 숙였고, 코델리아 역시 정중히 예를 표했다.
“거친눈사태 님, 정말 감사해요.”
“흥, 너희에게는 빚이 있으니까. 그리고··· 칼날노래에게도······.”
야생의 땅에서 펼쳐졌던 최후의 결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유더와 코델리아의 활약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눈꽃바람 평원에서 처음으로 서부군과 동부군이 격돌했을 때 동부군이 궤멸하지 않은 것은 칼날노래와 그 부족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었다.
칼날노래는 유나의- 푸른눈보라의 의붓 오라버니라 해도 좋았으니 이렇게라도 칼날노래에 대한 추모를 더하고 싶은 거친눈사태였다.
‘칼날노래 님······.’
코델리아 역시 입술을 움츠리며 그를 떠올려 보았다.
만난 것은 겨우 한 번뿐이었고, 그때도 이런저런 아이템을 뜯어낼 대상으로 밖에 대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좋은 야생신이었다.
야생의 땅을 구한 대영웅이었고 말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야생의 땅에서의 전투에 관여했던 터라 자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러자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유나가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아델리아에게 말을 붙였다.
“아델, 아기가 있다고?”
“네, 어머니. 위층에 있어요. 만나보시겠어요?”
“응, 보고 싶어.”
유나가 다시 활짝 웃자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친눈사태 역시 소파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저택 구조도 모르면서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2층.
키가 작은 거친눈사태가 작은 아기침대의 창살에 매달려서 아기들을 바라보고, 아기들이 그런 거친눈사태를 동물원 곰돌이 보듯이 바라보고 있을 때.
황홀한 얼굴이 되어 눈을 반짝이던 유나는 아델리아의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아델, 아델. 아기들 이름이 뭐야? 이름이 있지?”
“그게······.”
“그게? 아기들 이름이 그게야?”
“아뇨, 그런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이름을 지어준다고 하셨는데······ 벌써 몇 달째 고민 중이시라서요.”
아델리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유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더는 정말 여전하구나.”
근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유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고작해야 두어 달. 아니, 겨우 며칠 전의 이야기들.
잠시 체이스 백작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던 유나는 돌연 피식피식 웃더니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는?”
“네?”
“너희는 아기 없어?”
해맑은 물음에 코델리아는 빨개진 얼굴로 무어라 말도 못 했고, 유더는 흠흠 헛기침을 토하며 말했다.
“저희는 아직······.”
“아직? 아직 낳을 생각이 없어?”
“아니, 그······.”
유더는 저도 모르게 뻘뻘 식은땀을 흘려댔다.
코델리아 앞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능글맞고 능청스러운 유더였지만 상대가 상대였으니 말이다.
“나, 낳을 거예요.”
결국 보다못한 코델리아가 어색하게 답하자 유나는 다시 방긋 웃으며 물었다.
“언제?”
“네?”
“언제?”
“조, 조만간?”
저도 모르게 답한 직후였다.
“유나?”
문 너머에서 들려온 커다란 목소리에 모두는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를 알아들은 유나의 얼굴에 다시 커다란 미소가 그려졌고 말이다.
“아더.”
“유나!”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난 것은 체이스 백작이었다.
그는 바이엘 백작 옆에 선 유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고, 단숨에 지면을 박차 거리를 좁혔다.
“유나!”
“아더!”
다시 소리친 유나는 그대로 폴짝 뛰어 체이스 백작의 커다란 품에 안겼고, 체이스 백작은 그런 유나를 꼭 끌어안았다.
“오, 세상에. 유나. 네가 돌아오다니.”
“보고 싶었어, 아더.”
“나도 보고 싶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 번 유나를 꼭 끌어안은 체이스 백작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토했다.
품안에 느껴지는 작은 몸이, 따스한 온기가, 유나의 실존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때 그대로구나.”
“응, 아더는 더 멋있어졌네? 우리 렉스처럼.”
“늙은 거지.”
“아니야. 여전히 잘생겼어. 그리고 늙어도 멋있게 늙었어.”
“그래, 고맙다.”
체이스 백작은 다시 활짝 웃었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정돈했다.
이쪽을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유더와 코델리아와 게일과 아델리아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이스 백작이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본 건 딸인 코델리아와 아델리아도 처음- 아니,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흠흠.”
다시 헛기침을 토한 체이스 백작은 이쪽을 보며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유나에게 말했다.
“유나, 에드워드다. 기억하지?”
그리 말하며 손짓하자 문가에 서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체이스 백작가의 장남- 에드워드 체이스가 유나 앞에 다가가 예를 표하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에드워드 체이스입니다.”
귀족간에 볼 수 있는 정중한 인사였지만 유나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유나에게 있어 에드워드는 에어리스의 말썽쟁이 보물이었으니 말이다.
“에드.”
유나가 애칭을 부르며 두 팔을 벌리자 에드워드는 당황했지만 이내 히죽 웃더니 유나를 꼭 끌어안았다.
어릴 때는 안기기만 했는데, 지금은 자신 쪽에서 안는 모양새가 되니 기분이 참 묘해진 그였다.
‘어머니 생각도 나고······.’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 에드워드였지만 백작가의 후계자답게 쉬이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유나를 품에서 놓아준 뒤 능숙하게 표정을 정돈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유나가 눈을 깜박이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등 뒤를 이리저리 살피자 미간을 좁히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유나 님? 왜 그러시죠?”
“에드.”
“네, 유나 님.”
“너는 부인 없어? 아이는?”
게일도 결혼했고 아델리아도 결혼했고 유더도 결혼했고 코델리아도 결혼했는데 너는?
응? 너는?
악의라고는 조금도 없는, 순수하기 짝이 없는 질문.
그렇기에 더욱 더 타격을 받은 에드워드는 애써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게······ 아직 홀몸입니다.”
“흐으음.”
에드워드의 대답에 유나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더니 휙하고 몸을 돌려 바이엘 백작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렉스, 렉스.”
“그래, 유나.”
“게일이랑 아델이 맺어졌고, 유더랑 코델리아가 맺어졌잖아?”
“행복한 일이지.”
“응응, 그러니까, 우리 애들이랑 아더네 애들이 주르륵 이어진 거잖아?”
“그렇지.”
“그럼 우리 셋째랑 에드가 맺어지면 되겠네?”
“네?”
마지막은 에드워드였다.
아니, 이 자리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 전부의 마음이었다.
“셋째? 셋째라니?”
체이스 백작의 물음에 바이엘 백작은 대답하지 못 했다.
바이엘 백작 역시 당황했기 때문이다.
“유, 유나?”
“셋째. 태어날 거야.”
그렇게 말한 유나는 자기 배 위에 두 손을 올렸고, 그제야 바이엘 백작은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흠흠.”
체이스 백작은 헛기침을 토했고,
“아버지?”
유더와 게일은 놀란 얼굴로 바이엘 백작을 돌아보았고,
“어어어?”
코델리아와 아델리아는 유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 사람 더.
“아니, 유나 찾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거친눈사태는 작은 손을 꼽아가며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기껏해야 두어 달 남짓 아니었나? 그 사이에 셋째가 생겼다고?
복잡한 시선이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정신이 멍해진 바이엘 백작은 반사적으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지적했다.
“그런데 유나, 맺어진다니?”
“딸이거든. 딸이 태어날 거야.”
유나의 시원한 대답에 모두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오.”
“오는 무슨 놈의 오야!”
아델리아가 반사적으로 뒤통수를 후려치자 악 소리를 내며 허리를 숙인 에드워드는 얼굴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
“야! 내가 설마 진짜로 그러겠니?”
“아무튼!”
지지않고 마주 소리쳐준 아델리아는 급히 유나를 돌아보았다.
코델리아가 어버버 거리다 활짝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려요. 어머니.”
“추, 축하드려요.”
유더도 멍하니 말을 보태자 유나는 어깨를 으쓱였고, 바이엘 백작도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약간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더니 다시 한 번 유나를 꼭 끌어안았다.
“유나, 유나, 나의 보물.”
“애들이 봐요.”
이제와서?
체이스 백작은 껄껄껄 웃었고, 모두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시 한 사람.
“유전이었구만.”
아들내외랑 아주 똑같아.
끌끌끌 혀를 찬 거친눈사태는 이내 피식 웃더니 짝짝짝 축복의 박수를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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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 백작가에 밤이 깊었다.
백작 부인의 귀환과 새로운 아기님이 탄생할 거란 소식이 더해진 백작가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던 터라 밤늦게까지 가족들은 물론이고 사용인들 모두가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자정이 가까운 시간.
온실에 서서 가만히 꽃들을 바라보던 마이아는 천천히 돌아섰다.
일부러 들려준 것이 분명한 발자국 소리에 미소지었다.
“도련님.”
“마이아.”
숄을 들고 다가온 유더는 마이아의 어깨 위에 올려주었고, 마이아는 그런 유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도련님.”
“마이아.”
다시 한 번 서로를 부른 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미소를 지었다.
유나가 돌아왔다.
분명 행복한 일이었다.
유더에게 있어 너무나 좋은 일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마이아는 약간의 쓸쓸함을 느꼈다.
이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외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코델리아와 유나.
유더에게는 이제 연인도, 어머니도 있었다.
더 이상 마이아 자신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이아.”
“네, 도련님.”
“그거 생각나?”
“어떤 거요?”
“내가······.”
“도련님이 어른이 되시면 저랑 결혼한다고 하신 거요?”
마이아가 픽 웃으며 말하자 유더는 얼굴을 붉히며 어버버 거렸다.
본래 하려던 말은 다른 말이었던 것 같지만, 짓궂은 마음이 든 마이아는 말을 돌리는 대신 추가타를 집어넣었다.
“거짓말쟁이.”
“마, 마이아?”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셨는데··· 도련님은 다 잊어버리신 거죠? 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이아가 그리 말하자 유더는 더더욱 당황해서 뻘뻘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마이아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에는 거의 웃지 않아서 사용인들 사이에서는 얼음공주라고까지 불리던 그녀였지만, 유더 앞이라면 달랐다.
아니, 유더 앞에서도 이런 식으로 웃은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장난이에요.”
“미안.”
“정말 장난이에요.”
다시 그리 말한 마이아는 손을 뻗어 유더의 뺨을 어루만졌다.
“정말 잘 크셨어요.”
언제 이렇게 큰 것일까.
허리춤에도 겨우 오던 작고 어린 아이가 이제는 올려다보지 않으면 얼굴도 마주할 수 없을 만치 자라다니.
“마이아 덕분이야.”
마이아는 그저 빙긋이 웃었다.
네, 제가 도련님을 키웠죠-같은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마이아.”
“네, 도련님.”
마이아는 다시 유더를 올려다보았고, 유더는 그런 마이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이아는 가족이야. 나한테는 정말 누나 같은 사람이야.”
코델리아와 결혼했어도, 어머니께서 돌아오셨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변할 수 없어.
유더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엉망진창인 미소를 보였다.
코델리아에게 전직 사기꾼으로 의심받을 정도로 온갖 곳에서 온갖 이야기들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늘어놓던 유더였지만 역시 마이아 앞에서는 무리였다.
부끄럽고, 고맙고, 그야말로 여러 가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겨우겨우 몇 마디 말을 늘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이아는 쿡쿡 웃더니 유더를 꼭 끌어안았다.
유더 역시 그런 마이아를 품에 안으며 미소지었다.
“마이아.”
“네, 도련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네.”
“마이아는··· 만나는 사람 없어?”
“아직은요.”
그런데 만약 만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유더는 어떻게 반응할까.
잠시 상상해본 마이아는 쿡쿡 웃었고, 비슷한 상상을 한 유더는 미간을 좁혔다.
정말로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었지만, 이기적인 마음이었지만 마이아 곁에 다른 누군가가 선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복잡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게 소위 말하는 시스콘이라는 건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이아였으니까.
정말로 소중한 그녀였으니까.
“밤이 깊었네요. 이제 들어가서 주무셔야죠.”
“그래.”
“이제는 동화책 읽어드리지 않아도 되는 거죠?”
“가끔은 좋을지도?”
유더가 능청스럽게 답하자 마이아는 다시 쿡쿡 웃더니 가볍게 예를 표했다.
“먼저 돌아가 볼게요.”
“잘 자, 마이아.”
“잘 자요, 도련님.”
마이아는 천천히 걸어 온실을 나섰고, 유더는 가만히 서서 그런 마이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목소리.
“흐으응. 흐으응.”
눈을 가늘게 뜬 코델리아의 묘한 소리에 유더는 팔짱을 끼며 답했다.
“저기요, 마이아거든요?”
“그래도 흐으흥. 흐으응.”
코델리아도 장난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흐으응 거리는 대신 매직 미사일을 날려주었을 테니까.
“장난 그만치고 우리도 들어가서 자자.”
“흐으응?”
“이왕이면 아기도 만들고.”
“저기요?”
대답하는 대신 능청스럽게 웃은 유더는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았고, 코델리아는 이내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유더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
“코델리아.”
“왜.”
“그냥. 좋아서.”
“뭐래?”
하지만 말하는 것과 달리 코델리아 역시 웃고 있었다.
유더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온실의 유리천장 너머에 자리한 셀레네와 헬레네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속삭였다.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그 후로 모두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화답하듯 작게 말한 코델리아는 까치발을 들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와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유더는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코델리아를 꼭 끌어안으며 밤하늘을 우러렀다.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fin
< 엔딩메이커 SS #30 재회(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