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99화 (399/473)

엔딩메이커 399화

제2장 - 다시 지구로 #1

세일룬 왕국 북부, 변경도시 바일룬.

바이엘 백작령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에는 북부12가문 가운데 둘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바이엘 백작가였고, 다른 하나는 붉은 여명탑을 영지로 삼는 체이스 백작가였다.

북부12가문에 속하는 두 가문이 거하는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바일룬은 ‘변경도시’라는 이름답게 낙후된 지역에 가까웠다.

이는 사실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는데, 북부12가문에 속해 있다고는 하나 바이엘 백작가는 서서히 세가 약해져 가는 무가에 불과했고, 체이스 백작가는 단지 저택이 바일룬에 있을 뿐 실질적인 영지는 붉은 여명탑이었기 때문이다.

두 가문의 상황이 저러하니 딱히 비옥하지도 않고, 이렇다 할 특산품도 없는 바일룬은 그저 변경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바일룬에 샴프와 린스라는 특산품이 탄생했다.

곳곳에 공장이 건설되었고, 바일룬을 오가는 상인들이 늘어났다.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러운 선순환의 시작이었다.

사람이 늘고, 돈이 늘고, 도시가 커지고, 더 많은 사람과 돈이 바일룬에 모이고.

결정타는 역시 코델리아 상단의 합류였다.

코델리아 상단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바일룬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북부의 심장이라 불리는 랑게스트에 필적하는 대도시가 되었다.

그러한 바일룬의 중심.

본래는 외각 지대에 위치했지만 도시가 커짐에 따라 중심지로 위치가 변한 바이엘 백작가에는 번화한 도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후, 이게 바로 극락이지.”

“시원하세요?”

“어, 좋아. 정말 최고야.”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새하얀 아기 곰 하나가 메이드의 무릎을 베고 누워 노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런 아기 곰이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메이드가 천천히 빗질을 이어나갔다.

새하얀 아기 곰.

도시 한복판에, 그것도 백작의 저택에 곰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말하는 아기 곰은 그 자체로 특기할 만한 존재이기는 했지만, 문제의 아기 곰에게는 훨씬 더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다.

야생신.

야생의 땅에서 나고 자란 자연의 수호자.

“날씨 좋구만.”

사시사철 눈보라만 몰아치는 야생의 땅과는 전혀 다른 온후한 기후에 야생신- 거친눈사태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살며시 눈을 감았다.

메이드의 빗질을 좀 더 느끼기 위함이었다.

본래 유나만 데려다주고 바로 야생의 땅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던 거친눈사태였지만 어쩌다 보니(?) 바이엘 백작가에 눌러앉은 지가 벌써 장장 7개월째였다.

‘그냥 여길 내 성역으로 삼을 순 없으려나?’

메이드들을 부족민으로 삼아도 될 것 같은데.

교역도시 바일룬을 상징하는 존재라든가.

저 멀리서 위대한폭풍을 비롯한 야생신들과 야생의 땅의 주민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말 그대로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라 잘 들리지도 않는 거친눈사태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귀엽게 턱시도를 차려입고 바일룬 시의 행사에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던 거친눈사태의 귓가에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어왔다.

“어머, 진짜?”

“어, 진짜. 100번째 사랑의 도주시래.”

“하아…… 정말 낭만적이야.”

사랑의 도주.

100번째.

메이드들이 재잘거리는 목소리에 거친눈사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누구의 이야기를 하는지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여전하구만.’

사랑의 도주만 100번째라니.

그 녀석이랑 그 녀석이 아닌 대체 누가 사랑의 도주를 100번이나 한단 말인가.

‘아니, 애당초 사랑의 도주가 아닌 거 아냐?’

이미 양가 부모는 물론 전 세계의 축복까지 받아가며 결혼한 사이잖아?

“하…… 나도 사랑의 도주 한번 해보고 싶어.”

“나두.”

연이어 들려온 메이드들의 목소리에 거친눈사태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두 사람이 만든 유행 때문에 세일룬 왕국에서는 결혼 전에 야반도주를 하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알아서 밥도 잘 먹고 다니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두 사람이었으니까.

걱정하는 게 손해일 터였다.

‘분명 지금도 보는 이의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꽁냥질을 하며 잘 지내고 있겠지.’

잠시 상상해 본 거친눈사태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친눈사태 님?”

“어? 아냐, 그냥 잠시.”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메이드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인 거친눈사태는 다시 눈을 감고 눕는 대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만치서 반가운 얼굴들이 다가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고마저시!”

“고마저시!”

“어이구, 우리 애기들 왔어요?”

아장아장 걸어오는 엠버와 에이든에게 마주 인사한 거친눈사태는 마찬가지로 아장아장 걸어 두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같은 시각, 다른 장소.

거친눈사태의 상상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 * *

“자, ‘아’ 해봐. ‘아’.”

산 좋고 물 좋고 바람 좋은 어느 언덕 위.

돗자리 위에 앉은 코델리아가 젓가락으로 집은 김밥을 내밀며 말하자 유더는 슬쩍 주변을 살피는가 싶더니 조금은 소심하게 입을 벌렸다.

“아.”

“응, 잘했어요.”

그대로 유더의 입안에 쏙하고 김밥을 집어넣은 코델리아는 바로 다시 하나를 새로 집어 들며 말했다.

“다시 ‘아’.”

너무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유더는 순순히 입을 벌리는 대신 흠흠 하고 헛기침을 토했다.

“저기, 평소에는 그렇게 부끄러워하더니 안 부끄러워?”

“어, 안 부끄러워.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는 너야말로 지금 부끄러운 거야? 응? 그런 거야?”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이며 묻자 유더는 전혀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로 입을 벌렸지만 코델리아는 알 수 있었다.

유더의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남들이 볼 때는 안 그러다가 오히려 둘만 있으면 이러더라?’

특히 지금처럼 자기가 당하는 상황이 되면 더더욱 민망해 한다고 할까?

‘대체 어떻게 된 부끄러움일까.’

평소에는 훨씬 더 부끄러운 짓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펑펑 저지르면서.

하지만 코델리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콩깍지가 씌일 대로 씌인 그녀에게는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유더의 매력 중 하나로 보였으니 말이다.

‘공격 수단이 되기도 하구.’

부끄러워하는 유더는 참으로 진귀하면서도 귀여우니까.

속으로 까르르 웃은 코델리아는 순순히 입을 벌리라는 듯 다시 김밥을 내밀며 눈으로 말했고, 유더는 여전히 부끄럽다는 듯 눈을 살짝 감은 채 입을 벌렸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또 다른 두 사람은 미적지근한 눈을 한 채 서로를 보며 말했다.

[후,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가끔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걸 잊는 것 같죠?]

[가끔이 아니지 않을까요?]

소드 오리진의 검령인 벨렌시아와 문라이트에 깃들어 있는 인공정령 멜리사.

에드워드가 만들어낸 아티팩트 덕분에 서로 소통은 물론이고 지금처럼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진 두 사람이었다.

[김밥을 먹다 말고 키스를 하는 건 뭘까요.]

[하루 이틀 일인가요.]

벨렌시아가 득도한 얼굴로 답하자 멜리사는 진심으로 감탄하기라도 했는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벨렌시아 님은 이런 쪽으로 내성이 정말 강하시네요.]

[제가 괜히 검리에 닿은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다시 십여 초 남짓이나 지났을까.

[흠흠흠, 체스라도 둘까요?]

[그, 그럴까요?]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얼굴이 발갛게 물든 두 사람은 점잖게 돌아앉은 뒤 체스판을 펼쳤다.

100번째 사랑의 도주로부터 닷새째.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여행 중인 유더와 코델리아의 목적지는 세일룬 왕국의 국경 밖에 위치한 신생 파라곤 왕국이었다.

사실 아직 ‘왕국’이라 칭하기에는 여러모로 어폐가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신생 파라곤 왕국에는 ‘왕’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파라곤 왕국에는 란디우스와 레나가 있었고, 두 사람을 보고 모여든 수많은 파라곤 왕국의 유민들이 있었다.

분명 머지않아 제대로 된 국가로서의 기틀을 닦을 것이 분명했다.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아. 좋은 냄새도 나고.”

유더의 등에 업힌 채로 언덕 아래에 펼쳐져 있는 신생 파라곤 왕국의 왕도를 내려다본 코델리아는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한창 건설 중인 도시의 모습은 번잡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렇기에 활기 역시 넘쳐 나고 있었다.

“마침 점심때니까.”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빵 굽는 냄새에 유더 역시 코를 킁킁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빨리 가보자.”

“그래.”

다시 웃으며 답한 유더는 그대로 검은 질풍이 되는 대신 나이트메어를 소환했다.

마음 같아서야 이대로 코델리아를 업은 채 터벅터벅 걷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눈에 띄는 짓이었으니 말이다.

“나이트메어는 괜찮고?”

“파라곤 왕국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노 라이프 킹- 뱀파이어 로드로 거듭난 벨키안의 고국이었다.

실제로 언덕 아래 공사 현장에는 사람보다 언데드가 더 많은 상황이었다.

“어쩐지 공사 진도가 너무 빠르더라.”

24시간 연중무휴 노동이 가능한 스켈레톤 인부들이 공사판을 오가는 모습은 마법에 익숙한 코델리아에게도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유더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높이 올라가는 성벽을 보며 추가적인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단은 일손이 급해서 쓰고 있는 임시적인 조치고…… 나라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히고 나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들었어.”

“응? 왜? 노동력이 많으면 좋은 거 아냐?”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순간 눈을 깜박였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켈레톤들 때문에 사람들이 일을 못 하면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거지?”

“그런 셈이지. 아직 문명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플레이아데스인 만큼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스켈레톤과는 경쟁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

지구에서도 과거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일자리들이 증발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 역시 생겨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도태된 이들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음, 역시 좋아.”

“뭐가? 유더위키가?”

“아니, 똑똑한 남자가.”

작게 말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유더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고, 유더는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몰아나갔다.

벨렌시아와 멜리사는 언제나처럼 미적지근한 눈이 되었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십여 분 남짓.

재건 중인 파라곤 왕국의 왕도를 가로지른 유더와 코델리아는 완파된 왕궁의 터에 설치된 커다란 가건물- 임시 시청에 도착했다.

“코델리아! 유더!”

두 사람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역시 레나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마법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있던 두 사람이지만 천사인 레나의 눈에는 두 사람의 영혼 그 자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서류작업이 한창이었는지 팔 토시를 차고 나온 레나의 환대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나이트메어에서 얼른 뛰어내린 뒤 마법의 가면을 해제했다.

“환장의 커플?!”

“환상의 커플이야!”

“교황 성하와 여신의 화신께서!”

가면을 벗자마자 소리 죽인 탄성이 임시 시청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그런 주변의 반응에 신경을 기울일 수 없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끄는, 실로 태양과 같은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자야! 코델리아!”

마치 벽력과도 같은 쩌렁쩌렁한 부름에 유더와 코델리아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실로 강철 같은 근육을 고스란히 드러낸, 반라 상태의 란디우스가 왕궁의 잔해 쪽에서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역시, 역시 란디우스.”

분명 옷을 벗고 있는데도 근육이 너무 탄탄해서 갑옷을 두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제 보니 조금이지만 덩치가 더 커진 것도 같았다.

새삼 감탄한 코델리아는 다시 빙긋 웃더니 언젠가 무협 영화에서 보았던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기도문 같은 인사에 란디우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는가 싶더니 이내 껄껄 웃으며 마주 포권을 취했다.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역시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법이었다.

근육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란디우스가 근육의 가호를 비니 온몸의 근육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이 드는 유더였다.

‘아니, 이건 PTSD의 일종인가.’

상체 조졌으니 이제 하체 조지자며 껄껄껄 웃던 란디우스의 얼굴을 저도 모르게 떠올린 유더는 조금이지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꾸나.”

다시 껄껄껄 웃은 란디우스는 터벅터벅 걷는 대신 도약 한 번으로 수십 미터를 가로질렀고, 그대로 다시 레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레나는 그런 란디우스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듯 살가운 미소를 흘리더니 이내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말했다.

“마침 점심때니까. 같이 식사라도 하자꾸나. 밀린 이야기도 나누고.”

“네, 레나 언니.”

언니라는 호칭이 썩 마음에 든 것인지 다시 빙긋 웃은 레나는 그대로 빙글 돌아서서 일행을 인도했다.

* * *

‘저기 유더야,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응, 나도 무슨 말 하려는지 알 것 같아.’

가건물 안.

커다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란디우스, 레나와 마주 앉은 유더와 코델리아는 정말로 같은 생각을 하였다.

‘레나 대단해.’

란디우스는 거인의 피를 이었고, 선조회귀를 시전해 거인의 피를 각성시키기까지 했다.

즉, 란디우스는 거인이었다.

물론 트롤이나 오우거처럼 5미터에 육박한다거나 사이클롭스처럼 10미터가 넘는 그런 종류의 거인은 아니었지만, 인간보다 월등히 큰 거인인 것은 분명했다.

2미터 40센티미터- 아니, 칠문의 벽을 넘은 지금은 좀 더 자라 2미터 50센티미터.

더욱이 그냥 키만 큰 것이 아니었다.

강철의 성을 연상시키는 무지막지한 근육질 체형 덕분에 란디우스는 위로만 긴 게 아니라 옆으로도 길었다.

그런 란디우스 곁에 자리한 레나.

170이 조금 넘는 그녀는 플레이아데스 기준으로 장신으로 분류될 수 있는 여인이었지만, 란디우스 옆에 앉아 있으니 과장 조금 보태 인형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실제로 란디우스의 팔뚝 두께가 레나의 허리보다 더 두꺼웠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격차를 새삼 느끼게 하는 눈앞의 광경.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스튜를 담고 있는 그릇.

레나의 것은 작았다.

아니, 표준적인 사이즈였다.

그리고 란디우스의 것은 컸다.

거의 냄비- 아니, 솥을 하나 가져다 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바, 밤에 어떻게 하는- 아, 아냐! 음란마귀 아웃! 마구니 아웃!’

코델리아가 빨개진 얼굴로 도리질을 하자 란디우스와 레나는 무슨 일인지 고개를 갸웃했고, 유더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역시 책장을 한번 뒤져봐야 하는 건 아닐까.’

카이사에게 받은 책들이 가득한 그 책장을.

어찌 되었든 잡념은 여기까지였다.

유더는 레나가 손수 만든 음식들을 칭찬하며 대화할 분위기를 만든 뒤 본격적인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은 잘 지내시나요?”

카마엘과 벨키안과 프란.

성십자 수호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코델리아 교단인 만큼 카마엘의 근황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아는 것이 많은 유더였지만 벨키안과 프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더의 물음에 란디우스는 커다란 빵을 찢으며 답했다.

“카마엘에 대해서는 네가 더 잘 알 테고…… 벨키안과 프란이라면 지금 동부 쪽에 가 있단다.”

“동부라면…… 국경 지대 부근 말씀이신가요?”

“그래, 재앙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두 사람이 지키던 국경선 부근이 맞다.”

재앙 전쟁 당시에는 동방의 악마 추종자들이 무리를 이끌고 서방을 침공한 탓에 벨키안과 프란만이 아니라 란디우스와 레나 역시도 동부 국경 지대에서 활약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재앙전쟁은 물론이고 동방과의 전쟁마저 끝난 지금 두 사람이 동부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동방에 나타났다는 초인황제 때문인가요?”

유델리아 신성국의 건국 시기 즈음해서 퍼지기 시작한 소문.

동방에 초인황제가 나타났다.

창천의 용이라 불리는 초인이 동방을 통일하기 위한 대전쟁을 일으켰다.

유더의 물음에 란디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특별한 침공 행위 같은 것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신경 쓰이는 인물인 것은 분명하지. 그 압도적인 강함도 신경이 쓰이고.”

악마 추종자들의 본거지나 다름이 없었던 동방이었다.

그런 땅에서 초인이 탄생했으니 악마들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은 과한 일이 아니었다.

“란디도 말했지만 딱히 일이 터진 건 아니라 그냥 확인차, 조사도 해볼 겸 동부로 간 거야. 국경을 넘을 일도 없을 거고.”

레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을 환기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동방에 나타난 초인황제…… 창천의 용.’

영웅전기2는 물론이고 3에도 존재하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는 누구이고,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괜한 기우일지도.’

창천의 용이라는 으리으리한 별칭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자가 눈앞의 란디우스보다 강할 거란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자가 악마 추종자가 아니라면, 순수한 수행의 결과 초인의 힘을 손에 넣은 것이라면 유더 입장에서는 딱히 그와 대립할 이유가 없기도 하였다.

레나의 말마따나 서방을 침공해 온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거기다 벨키안과 프란이 갔으니까.’

두 사람이라면 설사 예기치 못한 돌발 사태가 터진다 해도 알아서 잘 해결할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그러니 넘어가자.’

당장 눈앞의 란디우스와 레나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으니.

마음을 정리한 유더는 새삼 자세를 정돈한 뒤 레나가 내준 차를 마시며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승님, 도착하면 해주신다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유더와 코델리아가 괜히 파라곤 왕국에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100번째 사랑의 도주의 발단이 된 것은 란디우스와 레나가 보낸 서신이었고 말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파라곤 왕국에 와주었으면 한다.

유더의 물음에 란디우스와 레나는 숨을 크게 삼키더니 서로를 보았고, 이내 레나가 입을 열었다.

“너희를 부른 건…… 함께 해결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야.”

“함께요?”

“그래, 우리 넷이 함께.”

코델리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레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