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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00화 (400/473)

엔딩메이커 400화

제2장 - 다시 지구로 #2

파라곤 왕궁의 지하에는 거대한 던전이 존재했다.

대사교 마누엘라가 소환한 데몬프린스에 의해 창조된 던전은 그 너비가 왕궁의 몇 배에 달했고, 깊이 역시 깊어 십여 층에 달할 지경이었다.

지옥의 문을 통해 넘어온 수많은 마물들과 사이한 기운으로 가득 찬 던전은 인세에 강림한 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과거의 이야기였다.

던전의 주인인 데몬프린스는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에게 패해 소멸했고, 던전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지옥의 문 역시 완전히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복잡하고 거대한 던전 깊은 곳에는 여전히 소수나마 마물들이 남아 있었고, 데몬프린스 소환의 제물로 쓰인 원혼들이 던전을 헤매며 원한에 찬 비명과 저주를 질러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지옥의 기운이 가득 찬 공간 안.

박쥐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거대한 악마가 몸을 웅크린 채 음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라이제강.

비록 영락했다고는 그의 본질은 지옥의 강대한 악마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히는, 작위와 영지를 가진 대악마 데몬프린스였다.

그가 눈을 뜬 것은 불과 1년하고도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가 태어난 지 2년도 안 된 애송이 악마라는 것이 아니었다.

본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깨어난 분신체.

뱀파이어들의 왕인 붉은 달의 라이제강이 자신이 소멸했을 때를 대비해 남겨둔 두 번째 목숨.

분신체 라이제강은 눈을 뜬 순간 본체의 소멸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그는 분신에서 새로운 본체가 되었고, 본체가 전해온 최후의 사념들을 흡수해 본체의 힘과 기억을 일부나마 회복하였다.

[반드시 복수해야만 한다.]

본체가 죽기 직전에 내지른 원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분신체는 새로운 본체가 되자마자 오직 복수를 위한 준비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낼 수 있었지.]

파라곤 왕궁 지하에 남아 있던 지옥의 문의 흔적을.

작은 틈바구니 사이로 조심스럽게 지옥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지옥의 마력에 굶주려 있던 던전의 마물들은 라이제강이 흘려보내는 기운들 앞에 모여들었고, 라이제강은 그런 마물들을 부려 안과 밖에서 동시에 문을 열 준비를 갖춰 나갔다.

그렇게 1년 남짓.

기나긴 인고의 시간 끝에 작게나마 지옥의 문을 열 수 있게 된 라이제강은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다시 한번 인세에 넘어가면 온 대륙을 피로 물들여 주마.

감히 뱀파이어들의 왕인 이 몸에게 굴욕을 안겨준 모든 것들에게 태어난 것을 저주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특히, 특히 그 연놈들.]

본래 흐릿한 것이 정상인 사념파임에도 불구하고 본체가 남긴 원한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그 얼굴들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놈들의 그 악랄한 미소.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사악한 족속들.

[짐이 갈 것이다.]

붉은 달의 라이제강이.

강대한 뱀파이어들의 왕이 피의 복수를 행하고자.

라이제강은 눈앞에 자리한 지옥의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주문을 외우며 미리 준비해 온 제물들의 목숨을 바쳤고, 기둥에 묶인 하급 악마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지옥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두려워하라 인간들이여…….]

본래 데몬프린스 정도 되는 존재는 설사 지옥의 문이 열려 있다 할지라도 쉬이 건너갈 수 없는 법이었지만 라이제강은 아직 온전한 힘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단번에 건너가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라이제강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은 채 서서히 열리는 문틈 너머를 노려보았다.

인세의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피를 탐할 생각에 전신의 마력이 들끓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열린 문 너머로 발걸음을 내디딘 직후-

“어, 라이제강이다.”

“어, 진짜 라이제강이네?”

정면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라이제강은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그리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것들.

반드시 말살해야 할 본체의 원수들!

[찢어 죽일 연놈들이!]

마주한 순간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본체의 기억들.

자신의 저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제대로 듣지도 않으면서 저들끼리 잡담을 이어나가던 광오한 것들.

심지어 놈들은 본체를- 자신을 소멸시키던 그 순간에조차 저들끼리 꽁냥거리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모욕.

그 굴욕.

그 분노!

[크라라라라라라라라-!]

라이제강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이미 단순한 노성이 아니었다.

대악마의 기운이 실린 포효가 던전은 물론이고 왕궁 전체를 뒤흔들 기세로 퍼져 나갔다.

[마침 잘되었구나. 잘되었어. 이것이 바로 운명일지니.]

저 저주받을 솔라리의 힘에 봉인되어 있던 과거와는 달랐다.

비록 약해졌다고는 하나 지금의 자신은 자유로운 몸이었다.

그러니 놈들에게 알려주리라.

데몬프린스의 진정한 힘을.

작위와 영지를 가진 대악마의 진정한 공포를!

라이제강의 얼굴에 흉악한 미소가 번졌다.

노여움으로 번들거리던 붉은 눈동자에 희열이 어리기 시작했다.

[간악한 것들, 제발 죽여달라 울부짖게 만들어주겠다.]

라이제강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렇기에 흉신과 같은 기운을 뿜어내면서도 더없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이제 곧 맛보게 될 복수의 희열에 전율하던 라이제강은 무언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의 인간들.

너무나 태연했다.

드래곤조차 공포에 떨게 만들 강대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인간들 가운데 누구 하나 두려움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뭐지? 어떻게 된 건지?’

복수의 대상인 연놈들이야 애당초 머리가 어떻게 된 놈들이니 그렇다 쳐도 다른 두 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잠깐.]

다른 두 명?

그냥 맨몸으로도 라이제강 자신과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인간과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이 하나.

분명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라이제강은 마주한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불길하다.

아니, 불길한 수준을 넘어 위험-

“구천구문 개문, 초월지신.”

그 순간 유더가 구천구문 제구문 초월지신의 힘을 개방했다.

용솟음친 칠흑의 기운이 불꽃처럼 타올라 주변 일대를 뒤덮고 있던 라이제강의 기운을 소멸시켜 버렸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구천구문, 제팔문.”

란디우스의 전신에서부터 황금빛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태양과 같은 그 힘에 던전 전체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레나 역시 힘을 개방하였다.

그녀의 머리 위에 밝게 빛나는 헤일로가 형성되었고, 등 뒤로 치천사를 상징하는 여섯 장의 광익이 펼쳐졌다.

[처, 천사?!]

단숨에 부풀어 오른 성스러운 힘에 라이제강이 경악했지만 진짜 경악할 일은 따로 있었다.

코델리아가 힘을 개방한 것이었다.

천상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대천사의 힘.

태양신의 힘이 지상에 강림했다.

왕관처럼 떠올라 맹렬하게 회전하는 거대한 헤일로.

코델리아의 등 뒤에 펼쳐진 아홉 장 빛의 날개.

대천사의 강림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유더와 란디우스의 힘에 의해 이미 반쯤 정화되어 있던 던전 내부는 순식간에 천상의 영역 그 자체가 되어 라이제강의 숨을 옥죄어왔다.

‘도, 도망.’

라이제강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 순간 코델리아 역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쾅.

지옥의 문이 매정하게 닫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라이제강이 급히 돌아서서 문을 열려 했지만 이미 무리였다.

상식을 초월한 수준의 염동력이 지옥의 문을 굳게 봉한 탓이었다.

“아이참, 어딜 가려고 그래.”

등 뒤에서 들려온 코델리아의 달콤한 목소리에 라이제강은 숨을 헐떡이며 돌아섰고, 오른손 가득 태양의 힘을 움켜쥔 코델리아는 다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는 거…… 알지?”

악마다.

진짜 악마다.

저딴 게 태양의 대천사일 리가 없어!

하지만 라이제강의 마음속 절규는 그저 현실도피에 불과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악마 같은 연놈들이 대군주에 필적하는 힘을 손에 넣었단 말인가.

세상이 이토록 부조리해도 된단 말인가!

“저기, 안 올 거면 우리가 갈까?”

유더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고, 코델리아는 속이 까만, 실로 마신과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이 악마 같은 것들!]

진퇴양난.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라면 최소한 싸우다 죽으리라!

용기를 일깨운 라이제강은 대악마- 아니,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괴성을 토하며 돌진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그런 라이제강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 * *

“와, 레벨 업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코델리아는 가슴께에 떠오른 새하얀 고리를 보며 감탄했고, 유더 역시 제법 놀랐다는 듯 자신 주위에 떠오른 고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에서 펼쳐진 대군주 아스모데우스와의 혈전 이후 처음으로 보는 레벨 업 이펙트였기 때문이다.

“약체화되었어도 데몬프린스는 데몬프린스라는 거구나.”

“대군주 바로 아래긴 하니까.”

유더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이러나저러나 레벨 업 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고맙구나. 너희 덕분에 쉽게 해치운 것 같구나.”

란디우스가 껄껄 웃으며 말하자 유더와 코델리아는 아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나타난 라이제강 소멸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란디우스였기 때문이다.

‘우린 거의 경험치 먹으려고 수저만 올린 느낌…… 이었지?’

‘거의 막타만 쳤으니까.’

전신에서 황금빛 태양의 기운을 내뿜으며 라이제강을 두들겨 패던 란디우스의 모습을 떠올린 유더와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라이제강이 절로 불쌍해질 정도로 호쾌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일방적 구타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해졌어도 데몬프린스는 데몬프린스인데.’

‘뭐…… 그레이터 데몬 수준이었으니까. 서포트도 있긴 했고.’

그렇지 않아도 약화된 라이제강이었는데 싸움 장소까지 좋지 못했다.

코델리아와 레나에 의해 사실상 천상과 다름없어진 던전 내부였으니, 놈에게는 독무가 가득한 땅에서 싸우는 것과 별로 차이가 없었으리라.

‘아무튼 역시 스승님.’

그야말로 인자강의 표본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구천구문의 경지 자체는 유더 자신이 더 높았지만 실전이 되면 과연 란디우스를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무적의 영웅…….’

마치 태양과도 같은, 언제 어디서나 승리하여 모두를 지켜줄 것만 같은 무적의 존재.

‘확실히, 태양이야.’

코델리아와 란디우스.

태양의 여신과 태양의 영웅.

아우리엘과의 결전에서 자신의 본질이 ‘검은 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더욱 눈부시게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제자야, 왜 그러느냐.”

“아뇨, 그냥.”

유더가 조금은 머쓱한 미소로 얼버무리자 란디우스와 코델리아가 사이좋게 고개를 갸웃거렸고, 유더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남짓이 지났을까.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는 지옥의 문을 조사하던 레나가 안심했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일단 지옥의 대군주들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아. 애당초 이 문 자체가 지옥과 제대로 연결된 것도 아니고.”

레나의 설명에 코델리아가 질문하는 학생처럼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럼 그…… 아스모데우스가 만든 지옥의 영지처럼 분리된 아공간 같은 건가요?”

“그래, 맞아. 아무래도 라이제강이라고 했나? 그 데몬프린스가 만든 영지와 연결되어 있는 지옥의 문이었나 봐.”

지옥과의 직접 연결도 아니고 지옥의 대군주들이 개입한 일도 아니다.

“지옥의 문마저 소멸시키고 정화한 다음에…… 던전을 무너뜨리거나 메워 버리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솔직히 없애기에는 아까운, 거기다 너무 거대한 던전이었지만 그렇다고 왕도 지하에 이런 거대한 던전을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무너뜨리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닐 테니.”

란디우스가 껄껄 웃으며 말하자 유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란디우스가 난동 좀 부리면 금방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유더야, 유더야. 나도 같이 하면 안 될까?’

‘어, 안 돼.’

‘치, 쾅쾅 터뜨리면 재밌을 것 같은데.’

‘응, 그래서 안 돼.’

아무리 코델리아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 들어주고 싶은 유더라고는 해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폭발을 좋아하는 코델리아인데 던전 폭발 같은 걸 하게 해줬다가는 폭발 욕구가 솟구칠 것이 분명했다.

‘너무 맛있는 요리만 먹다 보면 입맛이 높아져서 여간한 요리는 못 먹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지.’

작은 폭발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된 코델리아라니 상상만 해도 두려운 유더였다.

‘뭔가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알겠어. 참을게.’

‘우리 공주님,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흥.’

그렇게 유더와 코델리아가 눈빛 대화를 한창 나누는 사이 란디우스와 레나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나름대로 꽁냥거리기 시작했고, 벨렌시아와 멜리사는 오늘도 미적지근한 눈이 되어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그럼 스승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거라.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유더 대신 란디우스에게 화답한 코델리아를 보며 쿡쿡 웃은 레나는 손수 만든 쿠키를 잔뜩 건네주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그럼 이제 지구에 갈까?”

“일단 안전하게 몸부터 숨기고.”

플레이아데스의 신적 존재 - 정확히 말하면 유더는 구천구문을 개문했을 때를 한정한 준신이었지만 - 인 두 사람이 지구라는 다른 세계에 직접 이동하는 것은 대군주나 대천사가 플레이아데스에 강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본체는 플레이아데스에 남겨둔 뒤 아바타를 만들어 지구로 이동하는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다.

“저번에 말한 그 안가? 거기 가는 거지?”

“그래, 안전가옥. 사실 안가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대단한 곳이지만.”

키득 웃은 유더는 언제나처럼 코델리아를 엎은 뒤 질풍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유더의 안전가옥.

기존에 있던 신전이나 던전이 아닌, 유더가 처음부터 새로 만든 안가는 파라곤 왕국과 세일룬 왕국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하로 백 미터 이상 파고 들어간 암반 속에 숨겨져 있는 핵방공호.

물론 핵미사일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플레이아데스였지만 유더는 진짜 핵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안가를 건설하였다.

내부에는 10년 이상을 버틸 수 있도록 비축 식량뿐만 아니라 각종 시설들을 완비해 두었고, 마법을 이용해 작은 생태계까지 구축을 해두었다.

그리고 그런 안가의 시설들 가운데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바로 본체를 보관하기 위한 금고였다.

“SF영화에서 이런 거 본 거 같아.”

안전가옥 안.

SF에 흔히 나오는 냉동 수면 장치같이 생긴 보관 장치를 본 코델리아가 눈을 빛내자 유더는 씩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이 안에 들어가면 그 위에 장갑들이 자동으로 덮일 거야. 마법이랑 결계로 단단히 봉인해 뒀으니 스승님급의 강자가 작정하고 파괴하려고 해도 정말 쉽지 않을 거야.”

“와…… 그런데 그러다 고장이라도 나서 안 열리면 그건 그거대로 낭패 아니야?”

코델리아의 예리한 지적에 유더는 훗 하고 웃더니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안에서는 부수기 쉽게 만들어서 괜찮아.”

“올~”

역시 유더.

빈틈이 없다니까.

흥흥거리며 좋아한 코델리아는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듯 지구로 통하는 차원문을 연 뒤 아바타들을 소환하였다.

“좋아, 그럼 본체는 보관하고, 아바타로 이동하자.”

이미 이전에 한 번 해봤던 일이기에 진행에 거침이 없었다.

보관 장치를 안전하게 봉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아바타 상태로 심호흡을 했고, 언제나처럼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차원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차원문을 빠져나온 코델리아는 가슴을 활짝 펴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음, 서울의 공기 좋아.”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고층빌딩의 옥상 위.

지난번에 차원문을 열었던 그 장소에서 유더는 코델리아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서울의 공기가 좋다고?

“우씨, 좋다면 좋은 거지 뭘 또 그런 걸 따-”

거기까지였다.

세상 간 이동을 한 탓에 순간적으로 무뎌졌던 감각이 회복된 순간 유더와 코델리아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자신들만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측면.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5~6미터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멍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인영이 하나.

“유델……리아?”

인영이 말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의 만남에- 아니, 생각지도 못한 호칭에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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