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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01화 (401/473)

엔딩메이커 401화

제3장 - 더블 팀 #1

인영은 여자였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한 얼굴이 되어서 말이다.

‘나타샤?!’

그랬다.

여자는 나타샤였다.

어깨 위로 찰랑거리는 백금발과 푸른 눈동자.

녹색 탱크탑에 하얀 핫팬츠.

강진호의 전우이자 누나이자 첫사랑에 가까운 존재.

‘어떻게?’

나타샤가 하필 이 순간에, 그것도 이 장소에 자리한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나타샤는 분명 ‘유델리아’라고 말했다.

즉,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를 본 순간 ‘유델리아’라는 이름을 떠올렸다는 소리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

‘잠깐.’

유더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코델리아를 보았다.

유더 자신과 나타샤보다 두 배쯤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이는 코델리아는 언제나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

“어? [어어.]”

당황해서 육성으로 되물었던 코델리아가 얼른 메시지 마법으로 목소리를 감췄다.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뭔가 남겼었어?]

[응? 뭐가?]

[저번에 나타샤한테 남긴 편지. 거기에 우리 정체라도 밝힌 거야?]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다시 눈을 깜박였고, 이내 움찔하더니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정을 말이다.

[하, 맙소사.]

[아, 아예 말한 적은 없거든? 그, 그냥 힘들고 지칠 때는 유델리아를 외쳐보라고 했거…… 든요.]

서둘러 말을 쏟아내던 코델리아는 이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냥…… 이렇게 마주칠 줄 몰라서…….]

[알았어,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거기다 상대가 나타샤기도 하고.]

움츠러든 코델리아의 뺨을 살짝 꼬집은 유더는 숨을 한번 크게 고른 뒤 다시 나타샤 쪽으로 돌아섰다.

‘나타샤 몰로토프.’

쪼그려 앉아 있던 그녀는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그냥 편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유더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반쯤은 임전 태세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이다.

‘딱히 우리랑 적대할 생각은 없어.’

더욱이 애당초 코델리아가 편지를 남긴 시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에게 은혜를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타샤는 은원이 확실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코델리아가 유델리아를 언급했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유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위화감을 느낀 나타샤가 유더와 코델리아에 대해 조사하고…… 영웅전기를 발견했겠지.’

애당초 강진호와 홍유희가 랭커로 있는 게임이니 호기심에라도 한 번은 찾아봤으리라.

유더와 코델리아를 찾아보고, 게임 캐릭터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게임 캐릭터를 코드네임으로 쓴 건가?’

아예 그 캐릭터들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미 공상을 넘어 망상의 영역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좋아, 어찌 되었든 유더와 코델리아는 알고 있어. 지금 당황한 건 게임 캐릭터랑 똑같이 생긴 사람들과 공간의 문을 보았기 때문이고. 그러니 괜찮아. 차라리 유더와 코델리아로 밀어붙이자.’

짧은 시간 동안 고속으로 사고를 마친 유더는 목소리를 가다듬듯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입을 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타샤 쪽이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지노…… 맞지?”

날카로운 일격에 순간 눈을 깜박인 유더는 ‘대체 어디까지 말한 거냐’는 뜻을 담아 눈빛을 보냈고, 코델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후, 좋아. 생각하자 유더.’

아직 알렉세이를 찾기에는 이른 상황이었다.

나타샤는 지금 확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의문을 가득 담아 물음을 던진 것이었다.

그러니 괜찮다.

얼버무릴 수 있다.

언제나처럼 능청스럽게 아닌 척 연기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유더는 나타샤를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였다.

나타샤 몰로토프.

마이아와 같은 사람.

알렉세이가 세상을 떠난 지금, 지구에 남은 유더 자신의 유일한 가족.

나타샤가 유더를 보았고, 유더 역시 나타샤를 보았다.

그리고 유더는 마음을 정했다.

숨을 한 번 길게 토한 뒤 나타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작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나타샤.”

“지노.”

알렉세이의 아이들.

유더와 나타샤는 다시 한번 서로를 향해 미소 지었다.

* * *

코델리아가 남긴 편지를 수십 번도 넘게 정독한 나타샤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코델리아가 누군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유더는 지노야.’

지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노라고 결론을 내리자니 문제 되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유더와 코델리아.

유델리아.

핑크폭탄과 블랙망토.

마지막은 좀 정신이 혼미해지는 코드네임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저들의 힘은 실로 가공할 정도였다.

조직 하나를 하루아침에 박살 내고 은닉 자산을 빼돌리다니.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적어도 조직.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가진 조직의 힘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노에게는 조직이 없었다.

지노 개인도 은퇴한 지 6년이나 지나 전성기 시절에 비해 기량이 많이 쇠한 상태였다.

그럼 누구일까.

지노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기에 나타샤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 한 것일까.

‘일방적 관계인가?’

나타샤 자신은 딱히 가족이란 인식이 없는데 그쪽만 가족이라 인식하는, 한마디로 짝사랑 같은 관계?

‘짐작 가는 인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리수가 많은 가정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유델리아는 대체 누구인 것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타샤는 나올 리가 없겠지만- 하는 심정으로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이름의 출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영웅전기…… 2?”

익히 알고 있는 게임이었다.

지노와 유히- 강진호와 홍유희가 푹 빠져 있는 게임이었으니 말이다.

‘게임 캐릭터를 코드네임으로 사용한 건가?’

생각보다 흔히 있는 일이기는 했다.

나타샤 자신도 벅스버니 같은 코드네임을 써본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웅전기2라니.

이러니 더더욱 지노 같지 않은가.

“아, 몰라. 일단 한국 가봐야지.”

그리고 한국에 도착한 나타샤는 한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단서라니? 어떤?”

어느새 이야기에 몰입한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묻자 나타샤는 유더 쪽을 돌아보았고, 유더는 입을 꾹 다문 채 딱히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역시 지노네.’

궁금한 게 있어도 절대 티를 내지 않는 지노였으니까.

‘그래서 더 티가 난다는 걸 본인은 알랑가 몰라.’

작게 키득 웃은 나타샤는 옥상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건물. 정확히는 이 건물에 위치한 PC방.”

나타샤의 말에 유더는 실수를 통감한다는 듯 눈을 감았고,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코델리아 역시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크게 떴다.

“검은 머리 청년과 분홍 머리 처녀. 어딜 가도 눈에 띌 것 같은 외국인 둘이 방문한 PC방.”

“인지 저하 마법만으로는 부족했나…….”

역시 아예 폴리모프를 했어야 했는데.

유더의 한숨과는 별개로 나타샤는 옥상 구석에 숨겨져 있는 감시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 건물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어. 혹시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그럼 오늘 여기 있었던 건…….”

“카메라 점검하러 들렀다가 담배 좀 피운 거지.”

손가락으로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한 나타샤는 다시 빙긋 웃더니 어깨를 가볍게 늘어뜨리며 말했다.

“아무튼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이제 그쪽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솔직히 지금도 궁금해 미칠 것 같아서 말이야.”

눈앞에 자리한 잘생긴 외국인 청년.

하지만 그는 지노였다.

지노가 분명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지노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또 한 명의 지노가, 그것도 게임 캐릭터와 똑같이 생긴 지노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방금 유더가 지나가듯이 언급한 ‘마법’이란 단어.

나타샤의 물음에 유더는 말을 고르듯 잠시 입을 꾹 다물었고, 옆에 있던 코델리아는 음- 하고 소리를 내며 유더를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나타샤를 돌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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