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02화
제3장 - 더블 팀 #2
나타샤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강진호와 홍유희가 나타났고, 코델리아를 본 홍유희가 혼절했다.
그리고 당연히 졸도한 홍유희를 본 코델리아는 극도로 당황했다.
“아, 으아?!”
제대로 된 문장조차 되지 못한 목소리였지만 아무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
현관에 자리한 이들 모두가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치, 침착하자 유더!’
아직 알렉세이를 외칠 때는 아니었다.
그래, 아직은 도와줘요 알렉세이를 외칠 정도의 위기가 아니었다.
지구에 오자마자 그를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유더는 일단 정면에 자리한 강진호와 홍유희를 보았다.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그린 채 졸도한 홍유희와 그녀를 안고 선 강진호.
‘훌륭하다, 훌륭해.’
반사적으로 유희를 보호했구나.
역시 나.
6년간 쉬었어도 기본적인 반사 신경은 있단 말이지.
뭔가 이상한 자화자찬은 두 가지 의미를 가졌다.
하나는 유더가 그만큼 당황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자화자찬도 일단 정지해 버린 두뇌를 다시 가동시킬 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유더는 다시 눈동자를 움직였다.
강진호는 홍유희를 소중히 품에 안은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진호 또한 홍유희 못잖은- 아니, 어떤 의미로는 그 이상의 영웅전기 폐인이었으니 말이다.
눈앞에 유더와 코델리아가- 그 두 사람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물론 강진호는 합리와 논리로 구성된 인간이었다.
눈앞의 두 사람이 유더와 코델리아라 생각하기보다는 정말 닮은, 혹은 정말 닮게 꾸민 코스플레이어일 가능성을 더 높게 둘 터였다.
‘좋아, 일단 강진호는 잠시 보류하고.’
유더의 시선이 코델리아에게 향했다.
그녀는 어버버거리며 홍유희를 보다가 유더를 돌아보았고, 언제나처럼 눈빛으로 말했다.
‘어, 어떡하지? 어? 어떡해?’
다행히 일단 폭발시키자는 말을 할 정도로 당황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랬기에 유더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한 채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정리할게. 우선은 진정해 줘. 심호흡하고.’
‘아, 알았어. 후후, 하리, 후후, 하리.’
성실하게 심호흡을 시작한 코델리아를 보며 새삼 똑같이 심호흡을 한 유더는 마지막으로 나타샤를 돌아보았다.
[나타샤.]
“어?”
머릿속에 울린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육성을 토했던 나타샤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 어떻게? 지금 머릿속에 말을 건 거야?’
[머릿속에 말을 건 게 맞아. 단순히 일방적으로 의념을 보내는 메시지 마법이 아닌, 상호 간의 정신 통로를 여는 텔레파시 계열의 마법이지.]
유더의 설명에 나타샤는 몇 번인가 눈을 깜박이더니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아. 그럼 이렇게 하면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 그런 식이야. 다만 조심해. 의념 전달이 익숙하지 않으면 그냥 생각한 걸 전부 상대방에게 전달하게 되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아, 알았어.]
멀쩡한 사람들도 머릿속으로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었다.
유더의 친절한 경고에 나타샤는 알렉세이에게 받은 심문 대응 훈련을 떠올리며 정신을 가다듬었고, 유더는 다시 의념을 전달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자.]
[그건 괜찮은데…… 어떻게 하려고?]
강진호와 홍유희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유더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1. 나타샤의 친구인 외국인이 유더와 코델리아 코스플레이를 했다.
2. 유더와 코델리아가 영웅전기2의 유더와 코델리아 본임임을 밝힌다.
3. 유더와 코델리아가 강진호와 홍유희라는 사실을 밝힌다.
셋 중 무엇을 밀고 나갈 것인가.
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유더는 나타샤에게 일단 들어가자는 눈짓을 보냈다.
무엇을 밀고 나가든 지금 같은 기묘한 대치 상황 속에서는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그…… 일단 들어가서 앉을까?”
나타샤가 그녀답지 않게 소심한 목소리로 묻자 잔뜩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던 강진호가 미간을 좁히며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친구…… 인가?”
“일…… 단은?”
살짝 석연찮은 나타샤의 대답이었지만 강진호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이상한 일이었지만 유더를 닮은 남자는 그렇다 쳐도 코델리아를 닮은 여자를 보고 있자니 절로 적대감이 수그러든 탓이었다.
“그럼 들어가자. 들어가자구.”
일부러 활기차게 말한 나타샤가 와와 소리까지 내자 현관에 모여 있던 모두는 거실을 향해 어색한 발걸음들을 내디뎠다.
그리고 도착한 거실의 소파 위.
기역 자로 설치된 소파의 한쪽 면에는 나타샤와 강진호, 강진호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홍유희가 자리했고, 다른 한쪽 면에는 유더와 코델리아가 자리했다.
“일단 마실 것 좀 내올게.”
불편한 자리에서 도망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나타샤가 부엌으로 향하자 유더는 바로 다시 의념을 보냈다.
[나타샤, 오늘이 7월 12일이었어?]
정확한 날짜 지목에 순간 움찔하고 멈춰 선 나타샤는 이내 다시 발걸음을 내디디며 답했다.
[맞아, 내 생일. 기억하고 있었구나.]
유더와 강진호 모두 알고 있었다.
아니, 이제 그녀의 생일을 아는 타인은 유더와 강진호뿐이었다.
[오히려 나야말로 깜박했어. 어차피…… 알렉세이가 죽고 네가 떠난 이후로는 같이 축하할 사람도 없었으니까.]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의념에 나타샤는 다시 움찔했고, 유더는 어쩐지 모를 죄책감에 입술을 움츠렸다.
[생일…… 축하해. 나타샤.]
난처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더의 축하에 나타샤는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빙긋이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더야, 지금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나타샤랑 이야기 중인 거 맞지?]
바로 그때였다.
옆에서 다급히 들려온 코델리아의 메시지에 유더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의 손을 잡으며 나타샤에게 의념을 보냈다.
[나타샤, 일단 눈치 좀 맞춰줘. 알았지?]
[알겠어.]
쟁반에 보리차와 컵들을 담고 돌아온 나타샤가 의념으로 답한 뒤 다시 자리에 앉자 유더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유희를 깨워도 괜찮을까?”
유더의 물음에 거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조금씩 침착하게 가라앉던 강진호의 눈빛에 다시금 경계의 빛이 떠오른 탓이었다.
분명히 유희라는 이름을 언급했다.
눈앞의 남자는 유희를 알고 있다.
물론 나타샤의 지인이라면, 그래서 나타샤가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라면 지금과 같은 말을 꺼내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과 홍유희에 대해 그 이상의 것을 알고 있다.
강진호는 혼란에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유희와 나타샤를 데리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6년간 녹이 슨 자신이었지만 상대가 눈앞의 남자가 아니었다면 이미 진즉에 연막탄을 터뜨린 뒤 나타샤의 집을 빠져나갔을 터였다.
알렉세이에게 그렇게 교육받은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눈앞의 두 사람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닮아서?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이유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다.
“어떻게…… 깨운다는 거지?”
강진호다운 물음에 유더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코델리아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마법으로.”
“뭐?”
거기까지였다.
뭐가 되었든 이 상황을 타파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코델리아가 바로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리커버리.”
유희 쪽으로 손을 뻗으며 나직이 외친 순간 은은한 빛이 코델리아의 손과 유희의 전신을 뒤덮었다.
상태이상 회복 마법.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지만 나타샤와 강진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눈앞에서 펼쳐진 마법에 나타샤와 강진호는 눈을 부릅뜸과 동시에 급히 유희 쪽을 돌아보았다.
“으으응…….”
나직한 신음과 함께 홍유희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야말로 마법같이 말이다.
강진호는 일단 입을 꾹 다물었고, 나타샤는 감탄 섞인 눈으로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코델리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말이다.
그리고 홍유희.
겨우 깨어난 그녀는 다시 얇은 신음을 흘리는가 싶더니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고, 강진호에 이어 거실에 자리한 모두를 돌아보았다.
강진호, 나타샤.
그리고-
“코, 코델리아?!”
현관에서 처음 코델리아를 발견했을 때처럼 눈을 크게 뜨며 소리친 홍유희는 연이어 유더를 보았고, 모두가 반사적으로 떠올린 행동을 하였다.
“아…….”
그대로 다시 졸도.
스르륵 무너지듯 강진호의 품에 안기는 홍유희의 모습에 모두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어…….”
이제 어쩌면 좋지?
순간 뇌 정지가 온 코델리아는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당황 속에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다, 다시.”
다시 한번 리커버리.
일단 홍유희도 깨어나야 다음으로 진행이 가능했으니까.
유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마찬가지로 뇌 정지가 온 강진호에게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리커버리를 시전했다.
“아…….”
그리고 다시 눈을 뜨는 홍유희.
아까와 마찬가지로 얇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보며 거실의 모두는 잔뜩 긴장한 채 다음 수순을 기다렸다.
“으으음…….”
잠에서 깬 사람처럼 눈 좀 비비고, 강진호 보고, 다시 나타샤 보고, 코델리아와 유더를 본 뒤-
“아…….”
“리커버리!”
다시 쓰러지려는 순간 코델리아가 시전한 마법에 정신줄을 붙잡은 홍유희는 새삼 눈을 번쩍 떴고, 코델리아는 다급히 소리쳤다.
“꿈 아니야! 진짜야! 여기 눈앞에 있어!”
코델리아의 얼굴과 코델리아의 목소리.
물론 영웅전기2의 코델리아 일러스트는 2D였고, 목소리 역시 기합성이나 신음 같은 ‘효과음’들만 구현되어 있었기에 완전히 일치한다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홍유희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꿈이 아니다.
코델리아가 눈앞에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사실은 꿈이 아닐까?
그래, 꿈일 거야.
그러니 꿈인 걸 인식해야지.
자각몽인걸 인식하면 코델리아랑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으흐흐.
[유, 유희가 망가지고 있어.]
코델리아의 걱정 섞인 메시지에 유더는 일단 침착하기 위해 노력한 뒤 강진호를 보았다.
홍유희와 달리 그는 유더 자신을 보면서도 딱히 감동에 젖거나 행복해하지 않았다.
그저 경계 어린 눈으로 이쪽을 주시할 뿐이었다.
“강진호.”
유더의 부름에 강진호는 답하는 대신 여전히 비몽사몽 중인 홍유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자연스러운 방어 태세에 미소 지은 유더는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 이름은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이쪽은 내 아내인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유더의 전신에서 황금빛 선풍이 일어남과 동시에 흑룡의 기운 또한 피어올랐다.
불꽃처럼 솟구친 그것이 유더의 오른팔에 깃들자 홍유희는 저도 모르게 ‘흐, 흑염룡?!’이라 외쳤고, 유더는 강진호의 두 눈을 똑바로 주시한 채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 유더와 코델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