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03화
제3장 - 더블 팀 #3
1. 나타샤의 친구인 외국인이 유더와 코델리아 코스플레이를 했다.
2. 유더와 코델리아가 영웅전기2의 유더와 코델리아 본임임을 밝힌다.
3. 유더와 코델리아가 강진호와 홍유희라는 사실을 밝힌다.
유더가 선택한 것은 2번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언제나처럼 가장 중요한 이유는 코델리아였다.
‘코델리아 입장에서는 이쪽이 편할 테니까.’
일단 코델리아를 코스프레 할 정도로 좋아하는 외국인을 연기할 필요가 없다.
플레이아데스에서의 여정으로 연기력이 폭풍성장한 코델리아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연기력은 주로 사기, 그것도 페어리를 대상으로 한 사기에 한정되었다.
갑자기 외국인을 연기하라고 하면 실수를 연발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강진호 앞이니까.’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강진호가 코델리아의 연기에서 위화감을 읽어내지 못할 리 만무했다.
‘나타샤 건도 있고.’
강진호였다.
나타샤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나 그녀가 돌연 한국에 눌러앉은 이유 등등을 찾아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초현실적 존재인 유델리아가 개입했다고 하면 전부 설명이 가능해.’
그리고 마지막 하나.
이번에도 코델리아를 위한 것.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숨어서 쳐다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유희의 지인이라는 식으로나마 부모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유더는 2번을 선택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합리와 코델리아를 위해.
‘2번이 뭔가 코델리아답기도 하고.’
그리 생각하며 유더가 작게 웃은 때였다.
“마, 마법! 아니지, 유더니까 무공이죠? 막 기 같은?!”
유더의 손에서 피어난 ‘흑염룡’을 보고 흥분한 홍유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눈빛이 어찌나 반짝이는지 진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랬기에 유더는 바로 답하는 대신 오히려 뜸을 들이듯 잠시 침묵을 갖더니 강진호 쪽을 슬쩍 돌아본 뒤 다시 홍유희를 마주하며 말했다.
“맞아요, 이건 제가 가진 검은 달의 힘을 구천구문의 구결에 따라 형상화한 흑룡의 기운입니다.”
조금 긴 설명이었지만 적절했다.
왜냐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리고 유더의 설명을 듣는 것은 영웅전기2의 석유들이었으니 말이다.
“우와아…… 구천구문! 유더의 졸업스킬!”
강진호 덕분에 유더에 대해서는 코델리아만큼이나 빠삭한 홍유희였다.
나타샤는 갑자기 나온 고유명사들에 당황했지만 홍유희는 오히려 이해가 쏙쏙 된다는 얼굴로 유더의 전신- 정확히는 지금도 일어나 전신을 휘감고 있는 황금빛 선풍을 보며 말했다.
“그, 그럼 그 황금빛 선풍은? 질풍이십사보?!”
“네, 질풍이십사보의 황금빛 선풍입니다.”
“우와아.”
구천구문도 있고 질풍이십사보도 있다.
무공이 실존한다!
“오빠, 오빠. 질풍이십사보래요, 질풍이십사보!”
잔뜩 달아오른 홍유희가 강진호의 팔을 잡아당기며 통통 뛰었다.
그리고 강진호는- 이성과 합리의 화신인 그 남자는 참으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너도 결국 영웅전기 썩은물이니까.’
유더의 자아성찰스러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강진호 역시 홍유희처럼 마구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꽤나 흥분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강진호.
적어도 겉으로는 동요를 드러내지 않은 그는 홍유희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이쪽을 주시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저기, 그럼 신뢰십이보도 쓰세요?”
게임에서 강진호가 주로 쓰던 보법은 신뢰십이보였으니까.
홍유희의 물음에 유더는 이번에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천둔구보까지 익혔습니다.”
“천둔구보! 환상의 스킬!”
존재는 알려져 있지만 익힌 이가 없는 바로 그 궁극의 보법!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최소한 겉으로는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던 강진호조차도 순간 눈빛이 요동쳤다.
주변에 홍유희와 나타샤가 없었다면, 그리고 유더와 코델리아를 신뢰할 수 있었다면 ‘그거 어디서 얻는데?!’라고 바로 물어올 것 같은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묻지 않겠지.’
위의 두 가지 전제들이 건재한 상황이었으니까.
과연 강진호는 무어라 말하는 대신 다시 차분함을 가장했고, 유더는 속으로 웃으며 다시 홍유희를- 정확히는 코델리아를 바라보는 홍유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저기.”
“어?”
“어, 언니는요? 그, 코델리아 언니…… 라고 불러도 되나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홍유희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소심하게 물었고, 코델리아는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응, 괜찮아. 언니라고 불러.”
사실 육체적 나이만 따진다면 홍유희 쪽이 연상이었지만 정신연령은(?) 코델리아 자신이 언니가 맞을 테니까.
어찌 되었든 지금 중요한 것은 코델리아가 허락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실로 굉장했다.
“코델리아 언니…… 헤헤, 헤헤헤. 헤헤헤헤.”
입술을 살짝 깨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홍유희는 그렇게 계속 헤실헤실 미소를 흘려댔고, 그 귀여움에 코델리아와 강진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잔뜩 풀린 표정이 되었다.
유더는 코델리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말이다.
‘이것들 뭐야 대체.’
홍유희도 귀엽고 코델리아도 귀엽지만 일단 둘이 동일 인물이잖아.
유일하게(?) 진실을 아는 나타샤가 참으로 기묘한 기분에 빠진 그때, 홍유희는 용기를 내듯 주먹을 불끈 쥐더니 그대로 코델리아를 마주하며 말했다.
“어, 언니.”
“응?”
“어, 언니도 보여주시면 안…… 돼요?”
홍유희의 소심한 듯하지만 간절한 요청.
언니도 보여줘요.
언니도 유더처럼 스킬 쓰는 거 보여주세요.
“어…… 그, 그럼 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
무엇을 보여줘야 홍유희가 대만족할 수 있을까.
사실 정답은 거의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유더 덕분에 남들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해본 것이기 때문이다.
코델리아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천사의 힘을 개방했다.
비록 본체가 아닌 아바타였지만 대천사가 아니라서 그렇지 상품천사라 할 수 있을 지천사에 준하는 힘을 가진 육신이었다.
코델리아의 머리 위에 빛나는 헤일로가 떠오르고 등 뒤로 네 장의 광익이 펼쳐지자 주변 일대의 공기 자체가 바뀌었다.
성스러운 기운이 나타샤의 집을 가득 채운 덕이었다.
“처, 천사?!”
영웅전기에 대해 그리 깊이 알지 못하는 나타샤였지만 그렇다고 천사를 모르지는 않았다.
코델리아의 머리 위에 자리한 빛의 고리를 본 그녀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홍유희는 마치 기도라도 하듯 두 손을 모으며 신앙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와…… 천사! 진짜 천사! 코델리아 마지 텐시!”
“마, 마지 뭐?”
나타샤가 되물었지만 이미 대답할 정신이 없는 홍유희였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졸도할 것 같은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동시에 들뜬 숨을 토하며 하악거렸다.
“어떡해. 어떡해. 진짜 너무 예뻐. 진짜 천사.”
예쁘다. 아름답다. 성스럽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홍유희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나타샤 역시 저도 모르게 경건한 기분이 들어 자세를 고쳐 앉았고, 강진호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코델리아도 결국엔 홍유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 사람.
이 모든 광경에 누구보다 크게 만족한 그 남자는 속이 까만 미소를 짓더니 마치 악마처럼 속삭이기 시작했다.
“유희 양, 사실 저희 세계에서 코델리아는 여신의 화신으로 통한답니다.”
“여신의 화신이요? 그, 스토리처럼 솔라리의?”
“아뇨, 솔라리로부터 태양의 신위를 이어받은, 태양과 사랑과 미의 여신 코델리아의 화신으로 말이죠.”
언제부터 아름다움이 추가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유더는 그렇게 말했고, 홍유희는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코델리아인데 당연히 미의 여신 정도는 해줘야지.
때문에 그녀는 다른 곳에 의구심을 가졌다.
“코델리아가 코델리아의 화신……이요?”
“사실 여신인 동시에 화신인 건데 일단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유더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야! 너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어?!]
코델리아가 얼굴을 몹시 붉힌 상태로 메시지 마법을 보내왔다.
유더가 무언가 ‘빌드 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동물적 육감으로 직감한 탓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녀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유더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예의 속이 까만 미소를 지어주더니 그대로 홍유희에게 접근하며 말했다.
“여기,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더가 품에서 꺼낸 것.
까만 표지에 금박이 들어간 참으로 고급지면서도 멋진 책.
“성경?”
“네, 코델리아 교단의 성경입니다.”
“와아…….”
성경이라니.
코델리아 교단의 성경이라니.
플레이아데스에는 홍유희 자신 같은 사람이 교단을 만들 정도로 많단 말인가?
홍유희는 감동한 얼굴로 유더가 내민 성경을 받아 들었고, 코델리아는 정신적인 절규를 지르며 메시지 마법을 연사했다.
[야! 야! 이 미, 미친놈아! 그걸 들고 왔다고?!]
그걸 왜 들고 오는데!
아니, 그걸 왜 상비하고 다니는데!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는 코델리아의 외침에 유더는 언젠가 그러했던 것처럼 뻔뻔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답했다.
[왜 이래, 내가 코델리아 교의 교황인데. 성경 정도는 항상 들고 다녀야 하지 않겠어?]
[으아아!]
‘구음절맥 걸린 남자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지만 코델리아는 머리칼을 움켜쥔 채 절규할 따름이었다.
정말로 어째서 부끄러움은 왜 늘 코델리아 자신의 몫인 것일까.
일을 저지르는 것은 언제나 유더인데!
“봐,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유희 양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유더가 스윗한 미소를 지으며 성경을 직접 펼쳐주자 홍유희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감탄을 토했다.
“와…… 진짜 플레이아데스의 문자야. 오빠는 이거 읽을 수도 있죠?”
“……있지.”
강진호의 대답에 홍유희는 역시 우리 오빠야! 같은 표정을 짓더니 다시 헤실헤실 웃으며 성경을 보았다.
“나중에 내용도 알려줘요. 와…… 삽화 완전 예뻐!”
문자는 못 알아봐도 그림은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더욱이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은 유더가 특별히 만든 커스텀 성경이었다.
다른 성경들과 달리 풀컬러 삽화가 들어가 있는 커스텀 성경 말이다.
“이 부분은 코델리아의 탄생을 다룬 부분입니다. 아기 천사들이 코델리아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내용이죠.”
“와…….”
홍유희가 감탄한 얼굴로 아기 코델리아를 바라보자 유더는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코델리아는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코델리아의 고통을 모르는 홍유희는 성경을 촤르륵 넘기며 삽화들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더니 돌연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 그럼 달리아도 있어요? 마이아도?”
“물론이죠. 두 사람은 코델리아를 모시는 신성국의 기사단장과 시종장이랍니다.”
달리아 에일 백작과 마이아 탄탈롯 백작.
신성국 유델리아의 기사단장과 시종장.
‘코델리아를 모시는 신성국’이란 말에 너무 좋다는 듯- 정확히는 코델리아의 초상화가 집집마다 걸려 있는 나라를 상상한 홍유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며 새로운 질문을 쥐어짜 냈다.
“사, 사진 같은 건 없…… 겠죠?”
“있습니다.”
“꺄.”
홍유희가 저도 모르게 감탄한 순간 유더는 품에서 납작하고 네모난 금속판 하나를 꺼내더니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금속판 위로 수많은 홀로그램 영상들이 떠올랐다.
“달리아야! 마이아도 있어!”
이번에는 홍유희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정밀하기 짝이 없는 3D 홀로그램 영상에 나타샤는 눈을 부릅떴고, 강진호는 활짝 웃고 있는 마이아의 모습에 여러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뭐야, 너 이런 것도 있었어?]
[코델리아 컬렉션도 있는데 꺼내볼까?]
[꺼내지 마! 꺼내지 마! 알았어?!]
[멋진 사진이 참 많은데 아쉽네.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보여줄게.]
유더의 메시지에 코델리아는 머리칼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괴로워했고, 홍유희는 유더가 슬쩍 꺼낸 코델리아의 영상들에 다시 꺅꺅거리며 덕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유더의 만행으로 인해 십덕사 직전까지 몰린 홍유희는 돌연 고개를 번쩍하고 들었다.
무척이나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홍유희 자신과 강진호가 나타샤의 집에 몰래 숨어든 이유.
코델리아와 직접 만나게 되었다는 대경사 이전에 오늘이 무척이나 중요한 날인 이유.
“그, 어…….”
홍유희가 돌연 말꼬리를 흐리자 모두는 의아하단 눈으로 그녀를 보았고, 홍유희는 이내 결심했다는 듯 나타샤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가, 갑작스럽지만! 그리고 타이밍을 좀 놓친 것 같지만! 생일 축하해요! 나타샤!”
7월 12일.
오늘은 나사탸의 생일이었으니까.
오늘의 주인공은 그녀였으니까.
홍유희의 외침에 나타샤는 눈을 깜박였지만 잠시뿐이었다.
연이어진 강진호와 유더, 코델리아의 축하에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조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가 엎드려 절 받기 같지만…… 고마워.”
한국에 오길 잘한 것 같아.
나타샤 몰로토프.
유더에게 있어서는 마이아와 같은 사람.
“그럼 케이크 꺼내 올게요! 잠시만요!”
다람쥐처럼 부엌을 향해 쪼르르 달려 나가는 홍유희의 뒷모습에 나타샤와 강진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유더와 코델리아 역시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 * *
깊은 밤.
아파트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흡연실에 선 강진호는 자신의 맞은편에 선 남자- 유더를 바라보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홍유희를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거의 피우지 않은 담배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눈앞의 남자와 둘만 나올 핑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 대 피울 건가?”
“음…… 아니, 코델리아가 싫어할 것 같아서.”
우리 집 짐승은 냄새를 잘 맡거든.
유더의 말에 강진호는 입에 물려던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밀어 넣은 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진짜 유더와 코델리아가 여긴 왜 온 거지?”
사실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가졌던 의문.
그리고 유더가 강진호 자신과 홍유희의 이름을 알고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강진호의 물음에 유더는 쓰게 웃는가 싶더니 이내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