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04화
제3장 - 더블 팀 #4
강진호는 눈앞의 남자가 영웅전기2의 유더 바이엘이란 사실은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애당초 유더가 맞는지를 의심하기에는 눈앞의 남자가 보여준 증거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세계- 그것도 영웅전기2의 배경인 플레이아데스가 실존한다는 것과 그 세계의 유더와 코델리아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 같은 것들은 쉬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알렉세이에게 훈련받은 대로 합리와 이성을 발휘했다.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체이스는 눈앞에 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한들 실제로 일어난 현상이니 더 이상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행동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언제나 승리 조건을 떠올려라.’
그렇다면 지금 가져야 할 의문은 무엇인가.
유더와 코델리아가 실존한다면 그들에게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왜지?’
왜 이곳에 온 거지?
어째서 우리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지?
나타샤와 함께한 이유는 무엇이지?
그래서 강진호는 질문했다.
모든 의문을 하나로 응축한 질문인 ‘유더와 코델리아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를.
그리고 그 의문에 유더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1등과 2등이니까.”
유더의 대답에 강진호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랬기에 유더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도 알다시피 코델리아는 마법사야. 그것도 우리 세계에서는 여신의 화신이라 불리는, 세계도 한 번 구한 대마법사지.”
대견함과 뿌듯함과 자랑이 뒤섞인 것 같은 어투에서 어쩐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 강진호였지만 일단은 침묵했다.
유더는 그런 강진호를 보며 손가락을 세웠다.
“세상 간 이동은 쉬운 일이 아니야. 출발점이 있으면 도착점이 있어야 하는데, 세상 간 이동에는 그 도착점을 지정하기가 쉽지 않거든. 미사일을 쏘긴 쏘는데 탄착점을 지정하지 않고 쏘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이 되잖아?”
“……나와 유희가 도착점이 되었다는 건가?”
“그런 셈이야. 세상 간 이동을 하려고 후보지를 찾던 도중에 우리와 강한 연을 가진 특이점들을 찾을 수 있었거든. 그 특이점들이 네 말대로 너와 유희 씨인 거고.”
완전한 거짓보다는 진실이 함유된 거짓이 훨씬 더 그럴싸한 법이었다.
지금 유더가 하고 있는 설명은 완전한 날조가 아니었다.
애당초 세상 간 이동을 할 때 강진호와 홍유희를 목적지로 타깃팅한 것 자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연이 아니라 애당초 알고서 노린 거였지만.’
어찌 되었든 사실은 사실.
유더가 티 하나 없이 맑은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자 강진호는 다시 미간을 좁히다 말했다.
“특이점인 이유는…… 1등과 2등이라서?”
“아마도?”
유더가 그건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강진호는 다시 미간을 좁혔다.
‘말이 되는 것 같기는 한데.’
영웅전기2는 세계적인 히트작이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가 최상위 랭커로 등록된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코델리아에 대한 애정’만을 놓고 본다면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홍유희였으니 특이점 운운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는 했다.
‘애당초 정보가 너무 부족해.’
유더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기에는 마법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부족한 강진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강진호의 고민에 유더는 속으로 까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확인할 방법이 없지.’
플레이아데스에서도 즐겨 사용하던 ‘그래서 어떻게 확인할 건데?’였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일방적인 공세 앞에서는 아무리 강진호라 해도 배겨낼 방도가 없을 터였다.
“굳이 세상 간 이동을 한 이유는?”
‘역시나.’
결국 꺼낼 수 있는 것은 본질을 다소 비껴간 질문뿐.
그랬기에 유더는 이번에도 미리 준비해 놓은 답안을 가볍게 내놓았다.
“일단은 코델리아가 하고 싶어 해서. 아는지 모르겠지만 코델리아는 호기심이 무척 많거든. 다른 이유는 혹시나 모를 외세…… 다른 세계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이미 천상과 지옥이라는 선례가 있으니 대비해 두는 것이 타당한 선택이겠지.”
정론이었다.
유더의 이야기에는 이렇다 할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나도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
유더의 물음에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취조하듯 질문을 반복한 것은 이쪽이었으니 여기서 안 된다고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질문에서 알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질문은 결국 질문자의 머릿속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알렉세이의 가르침을 새삼 되새긴 강진호가 자세를 조금 편안하게 하자 유더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플레이아데스가 실존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그다지 놀란 것 같지 않아서.”
아무리 강진호라도 그렇지 자기가 하던 게임이 다른 세상에 실존한다는데도 이렇게까지 반응을 안 할 줄이야.
하지만 유더의 물음에 강진호는 아니라든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충분히 놀랐다.”
보호해야 할 대상인 홍유희와 나타샤가 주변에 없었다면- 그래서 극도의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마 조금 더 놀란 모습을 보여줬을 터였다.
“그리고…….”
강진호 자신이 조금 더 진정할 수 있었던 이유.
“듣는 순간 납득이 되었다.”
“듣는 순간?”
“그래, 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묘하게 납득이 되더군.”
사실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이렇게 납득이 되었다 운운하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다.
유더이기 때문일까?
가장 오랫동안 플레이 한, 강진호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의 원본이기 때문에?
묘한 친근감에 강진호는 작게나마 웃었고, 그 미소에 유더는 어쩐지 모를 어색한 기분을 느끼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십여 초 남짓이나 지났을까.
“유더.”
다시 말문을 연 강진호는 아까보다는 훨씬 더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나타샤의 일을 도와준 건 너희들인가?”
6년의 휴식기가 있었다고는 해도 강진호는 강진호였다.
나타샤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이미 찾아낸 지 오래였다.
다만 의문이었던 것은 나타샤의 사건을 해결해 준 존재들.
조직 하나를 몇 시간 만에 궤멸시킨 그들은 누구일까.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강진호의 물음에 유더는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우리가 한 일이야.”
“어째서지?”
“나탸사와 너희가 연관이 있으니까? 코델리아가 너희를 매우 아끼거든.”
강진호는 유더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두 사람이 지구에 처음 방문한 시기.
나타샤의 일을 해결했으니 당연히 나타샤의 방문 이전일 터였다.
그런데 나타샤의 일을 해결한 이유가 강진호 자신과 홍유희 때문이라면, 나타샤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유더와 코델리아 역시 한국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타샤가 나타난 시기.
그 시기를 전후로 하여 있었던 일들.
채팅방 멤버들의 정모.
유희와의 만남.
그리고-
“스프링클러.”
“어?”
부지불식간에 하나의 단어를 완성해 낸 강진호는 유더를 똑바로 보았다.
아까와 같은 친근함이나 의구심 대신 강한 확신을 담은 눈으로 유더에게 물었다.
“지하 주차장의 스프링클러. 너희였나?”
정확히는 갑자기 터진 스프링클러와 망가진 유희네 집 대문.
정모 날 단체로 갑자기 일이 생긴 채팅방 멤버들까지.
날카롭기 짝이 없는 질문에 유더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참으로 오랜만에 알렉세이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 * *
같은 시각.
유더와 강진호가 번갈아 가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그때 코델리아와 홍유희는 달콤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그래서요. 그날 오빠가…….”
“응응! 옆집 오빠가! 아니, 강진호가!”
코델리아의 재촉에 홍유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코델리아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꺄! 늑대야, 늑대!”
홍유희의 속삭임에 코델리아가 빨개진 얼굴로 꺄꺄거리자 홍유희는 더더욱 얼굴을 붉혔고, 그런 홍유희의 모습에 코델리아는 더욱더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
부끄러워하는 홍유희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유더가 이런 기분이었나?’
그래서 하루 온종일 코델리아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려고 몸부림을 친 거였나?
‘아무튼 우리 유희한테 그랬단 말이지?’
강진호.
옆집 오빠.
과거의 유더.
“흐으응, 흐으응.”
그랬단 말이지?
강진호가 유희한테.
“흐흐흐.”
흥흥거리던 코델리아가 으흐흐 미소를 흘리자 홍유희의 얼굴을 더더욱 빨개졌고, 그 빨개짐에 비례하여 코델리아의 미소는 짙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 유더는 어때요?”
“어?”
“유더요. 코델리아 언니의 나, 남편인 유더.”
영웅전기3에 새로 준비된 해피엔딩 루트대로 진행하면 유더와 코델리아가 결혼하긴 했지만, 그래도 유더와 코델리아가 남편, 아내 하고 서로를 부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할 정도로 부끄러운 홍유희였다.
그리고 그건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가 인정하는 잉꼬부부가 된 지 오래였지만 아직도 남편, 아내 같은 호칭에는 얼굴이 빨개지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우, 우리 유더? 우리 유더는…….”
코델리아는 잠시 말꼬리를 흐리며 고민했고, 이내 마음을 굳혔다.
홍유희도 이것저것 말해줬으니 코델리아 자신도 이것저것 말해줘야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 코델리아는 주먹을 꼭 움켜쥐더니 홍유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고, 이미 가까이에 있던 홍유희가 얼굴을 가까이하자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유더와 있었던 일들.
유더가 한 일들.
머릿속의 추억을 음성으로 구체화시킨 코델리아의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고, 그건 듣고 있는 홍유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 안 되는 연애 기간의 스몰데이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굉장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 짐승.”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홍유희가 헉하고 숨을 삼키자 코델리아는 이미 한도를 넘은 부끄러움 때문인지 다소- 아니, 무척이나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짐승이야, 짐승. 그런데…… 그거 알아?”
“어떤…… 거요?”
“그래서 좋아.”
“꺄!”
코델리아의 수줍은 고백(?)에 홍유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꺅꺅거렸고, 코델리아 역시 이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한 부끄러움에 얼른 얼굴을 가려 버렸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광경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차가운 눈이 된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왜 나는 다른 날도 아닌 생일에 지노와 유히가 꽁냥거리는 이야기를 더블로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내 멘탈 라이프는 이미 제로가 된 지 오래인데.
‘그래도…… 일단 동일 인물이 맞긴 맞네.’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나타샤는 나타샤였다.
이렇게 둘을 앞에 놓고 보니 친자매라 해도 과언이 아닐 두 사람이었다.
‘애당초 친자매를 넘어 동일 인물들이지만.’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 것일까.
지노와 유히의 갑작스러운 난입 때문에 아직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사정 설명을 듣지 못한 나타샤였다.
‘뭐, 나중에 들으면 되겠지.’
너무나 부끄러운 두 사람의 이야기 덕분에 같이 부끄러워진 것인지 온몸에 열이 오른 나타샤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열기를 가라앉혔다.
“저기 그런데 유희야.”
“네, 언니.”
“그럼 요즘에도 학교 다니는 거야? 강진호는 여전히 집에서 놀- 아니, 아니, 그…… 은퇴 생활 중이고?”
솔직히 말해 강진호는 그냥 집에서 노는 게 맞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으니까.
코델리아가 얼른 말을 고치자 홍유희는 돌연 배시시 웃더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오빠도 요즘엔 다시 일하고 있어요.”
“오, 진짜? 어떤 일?”
“저랑 같이 하는 일이에요.”
“너랑?”
“네, 저랑. 나타샤도 가끔 같이 하고요.”
“나타샤도?”
반사적으로 나타샤를 돌아본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차가운 도시 미녀 나타샤가 순식간에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는 귀여운 소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강진호와 홍유희와 나타샤가 함께하고, 천하의 나타샤가 저렇게 부끄러워할 정도의 일은 무엇일까.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에헤헤 웃은 홍유희는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