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408화 (408/473)

엔딩메이커 407화

제4장 - 채팅방 #2

오전 일곱 시.

다섯 시에 깨어 두 시간 동안 침대 위에서 뒤척거리던 코와붕가는 결국 더 자는 것을 포기했다.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씁…….”

뭐라고 해야 할까.

두근두근하면서도 긴장이 된다고 해야 할까?

소풍 가기 직전의 설렘에 묘한 긴장감이 더해진 것 같은 이 복잡한 심정은.

“죽겠네.”

단순히 일찍 일어난 것을 떠나 아예 잠을 자지 못했으니까.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겨우 잠든 게 세 시인가 네 시였으니 사실상 한 시간 남짓밖에 자지 못한 셈이었다.

왜 이런 것일까.

코와붕가 자신이 이토록 아복이와 노폭이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아닌데.’

폭파된 지난 1차 정모 때는 이 정도로 긴장하지 않았는데.

왜일까.

왜 이번 정모 때는 특히 더 긴장을 하는 것일까.

‘설마 내 초능력이 예지력으로까지 발전을?’

그래서 미래를 읽고 무언가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잠을 못 자긴 했구나.’

망상이 박차를 가하는 걸 보니.

머릿속으로 흰소리 늘어놓기를 멈춘 코와붕가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약속 시간인 오후 두 시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기 때문에 일이라도 할까 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5분 정도 태블릿을 깨작거리던 코와붕가는 디스코드를 켰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긴장하고 있을 채팅방 멤버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없네.”

그런데 없었다.

시간이 이르긴 했지만 그래도 두어 명- 특히 AAA는 항상 접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주말이라 늦잠들을 자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나도 주말에는 이 시간에 접속해 본 적이 없네.’

늘 꿀잠 자기 바빴으니까.

‘영웅전기에도 없고.’

혹시나 해서 접속해 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코와붕가는 잠시 단톡방에 뻘글이라도 올려볼까 했지만 전송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손가락을 멈췄다.

다들 평온한데 혼자 조바심을 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릴렉스하자.’

그냥 온라인에서 매일 같이 보던 애들 오프에서 보는 것뿐이다.

단지 그뿐인 일이다.

심호흡을 크게 한 코와붕가는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섯 시간 뒤.

“늦어.”

오후 한 시하고도 십 분.

어쩌다 보니(?) 약속 장소에 한 시간이나 일찍 나오게 된 코와붕가는 홀로 카페에 앉아 빨대를 씹으며 휴대폰을 보았다.

아직 한 시간 전이라 그런지 단톡방에는 코와붕가 자신이 심심해서 끄적인 뻘소리들과 의례적인 아침 인사들 외에는 이렇다 할 메시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으으음.”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좀 억울하다고 해야 할까?

누구는 한 시간이나 일찍 와서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데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태연하다니.

이러면 마치 자기 혼자만 신난 사람 같지 않은가.

‘신났다기보다는 기대하는 건가? 아무튼 아 진짜. 이게 다 그 꿈 때문이야.’

어젯밤도 아니고 이틀 전에 꾼 꿈.

드디어 성사된 2차 정모 생각하다가 우연히 떠올린,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망상.

AAA가 십덕변태아저씨가 아니라 유쾌하고 야한 십덕변태누나가 아닐까 하는.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어떻게 꿈을 꿔도 그런 꿈을 꾸는지.

AAA가 야한 누나로 나오는 꿈을 꿨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괴감이 드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래, 진정하자. 이성을 되찾자.’

AAA.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

심심하면 디코로 야짤이나 보내는 십덕이 아니던가.

거기다 그냥 십덕도 아니었다.

아재 개그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구시대적 인간이었다.

애당초 닉네임부터가 20세기에나 쓰였을 법한 AAA고.

코와붕가는 잠시 눈을 감고 AAA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당장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AAA : 너님아, 너님아. 오리가 얼면 뭔지 알아?]

[코와붕가 : 뭔데?]

[AAA : 언덕.]

[AAA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AA : 너님아, 우주인들이 술 마시는 곳은 어딘지 알아?]

[코와붕가 : ……뭔데?]

[AAA : 스페이스바.]

[AAA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지? 웃기잖아? 지금 웃고 있는 거 다 알거든?]

[코와붕가 : 아오 씨발. 꺼져 그냥 좀.]

[AAA : 솔직하지 못한 녀석 같으니.]

언덕.

스페이스바.

다시 떠올려도 마음이 차게 식는 개그들이었다.

‘그래, AAA는 그런 놈이지.’

거기다 아재 개그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야한 개그는 또 얼마나 좋아하던가.

야짤과 아재개그와 야한 농담을 즐기는 유쾌한 십덕 누나.

‘아, 젠장. 왜 끝에 가서 갑자기 누나야.’

하지만 한번 시작한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잇기 시작했다.

더욱이 코와붕가의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 그것도 소위 말하는 오덕체에 특화된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AAA 여체화 버전을 떠올린 코와붕가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오, 괜찮은데? 디자인 좀 기억해 둘- 아니지, 아니야. 스스로의 존엄성을 포기할 순 없어.’

사람이 되자.

온라인에서는 어찌 되었든 오프라인에서는 당당한 사회인이 아니던가.

심호흡으로 스스로를 진정시킨 코와붕가는 조금 더 건전한 상상을 시작했다.

남만고양이나 노폭이에 대한 상상 말이다.

그리고 사십여 분 뒤.

바람직한 사회인답게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한 남만고양이 김혜은을 마주한 코와붕가는 말했다.

“음, 예상대로야.”

“왠지 화가 나는 멘트네.”

김혜은.

남만고양이.

27세.

과하게 꾸미지 않은, 하지만 패션 센스가 엿보이는 옷차림을 한 평범하게 예쁜 20대 중후반 여성.

거기에 남을 잘 챙길 것 같은 느낌이 풀풀 풍기는 전형적인 맏언니, 누나 같은 인상.

“야, 그러는 너도 예상대로거든?”

김혜은의 말에 코와붕가는 코웃음을 쳤지만 사실 김혜은도 그냥 꺼낸 말이 아니었다.

사실 코와붕가의 현재 코디는 꽤 화려한 편이었다.

‘단발’이라 불러야 할 머리칼은 무려 분홍색이었고, 입고 있는 옷도 특별히 비싸거나 유명한 메이커는 아니었지만 코와붕가의 체형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평범한 키에 마른 체구.

가늘고 긴 손가락.

제법 귀엽게 잘생긴 얼굴이지만 눈빛과 분위기에서 숨길 수 없는 오덕의 향이 새어 나오는 20대 중반의 남자.

그리고 사실 곧잘 올려대던 영웅전기 팬아트나 짤 덕분에 현실 직업이 사실상 공개되어 있던 코와붕가인 터라 상상하기도 쉬운 편이었다.

“혼자 온 거야? 노폭이는?”

코와붕가의 물음에 김혜은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복이랑 같이 올 거야.”

“역시. 역시 예상대로인가.”

두 사람은 반동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연인 사이인 것인가!

코와붕가의 추론에 김혜은은 무어라 말하는 대신 쪽 하고 빨대만 빨았다.

그리고 다시 1분, 아니, 2분 남짓이나 지났을까.

“언니~”

상큼하고 발랄하면서도 익숙한 목소리에 코와붕가와 김혜은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노란폭풍.

백만 조회 수를 돌파한 ‘타냐 눈나의 매도 스페셜’ 덕분에 이제는 제법 유명해진 버튜버.

그렇기에 목소리만은 익히 알고 있던 영웅전기2의 만년 2등.

손을 흔들며 등장한 노폭이- 홍유희의 모습에 코와붕가는 눈을 크게 떴다.

160이 조금 안 될 것 같은 작은 키에 고양이 같은 느낌이 나는 귀여우면서도 예쁜 얼굴과 작은 키를 무색케 하는 밸런스 좋은 몸매.

솔직히 예상한 그대로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잠시 넋을 놓고 만 탓이었다.

그리고 이런 코와붕가의 반응에 김혜은은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지금의 홍유희를 만들어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혜은이었기 때문이다.

‘바탕은 좋은데 영 꾸미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사랑에 눈뜬 소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가만히만 놔둬도 빛을 발하게 된 홍유희가 꾸미기까지 열심히 했으니 말이다.

“그, 코와…… 붕가?”

김혜은 옆에 착석한 홍유희가 조심스레 묻자 코와붕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응. 어. 코와…… 붕가야.”

부끄럽다.

갑자기 부끄럽다.

나는 왜 닉네임을 코와붕가로 지은 것일까.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코와붕가만이 아니었다.

“어, 으응. 그, 나는. 어…… 알지? 노란…… 폭풍.”

“어어. 노폭이.”

통성명을 하고 싶다.

닉네임 말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강한 욕구를 느낀 두 사람이었지만 결국 부끄러움에 몸부림칠 뿐 어느 누구도 통성명 제안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런 둘을 보며 피식 웃은 김혜은은 홍유희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물었다.

“아복이는?”

“오빠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 어디 좀 들렀다가 온대. 금방 올 거야.”

홍유희가 에헤헤 웃으며 말하자 김혜은은 쓰게 웃으며 코와붕가를 돌아보았고, 코와붕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그리고 오빠라 말하며 에헤헤 웃는 홍유희.

‘둘이 이런 사이야. 짐작은 했지?’

‘짐작은 했지.’

‘내가 왜 적극적으로 정모 추진 안 했는지 알 것 같지?’

‘어, 알 것 같아.’

노폭이 하나만 있어도 이런데 여기에 아복이가 더해진다면?

염장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진다면?

김혜은과 눈빛을 교환한 코와붕가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지만 잠깐뿐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아복이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았기 때문이다.

‘일단 오빠라는 걸 보니 남자는 맞고.’

어떤 녀석일까.

저렇게 귀여운 겜덕들의 이상향 같은 미소녀가 좋아 죽는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그런데 AAA는 아직 안 왔어?”

“어, 아직. 그러고 보니 코와붕가 너도 AAA는 본 적 없지?”

“없어.”

그래도 역시 몇 년이나 채팅방에서 같이 논 사이라 그런지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니 오래 만난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이 튀어나왔다.

“코와붕가는 딱 예상 그대로인데 AAA는 어떨지 솔직히 짐작도 안 가.”

“뭐…… 그냥 아저씨 아닐까?”

김혜은의 대답에 코와붕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기다리면서 온갖 십덕 망상을 다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냥 아저씨일 가능성이 제일 높았으니 말이다.

‘애당초 남만이랑 노폭이가 여자인 것부터가 영웅전기2의 성비 생각하면 이상한 거니까.’

다섯 명짜리 채팅방에 여자가 둘인 것도 신기한데 셋이다?

영웅전기2의 성비가 9:1 정도니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더욱이 AAA지 않은가.

아재개그와 변태개그와 고전작들을 좋아하는 올드한 십덕.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을까? 막 유쾌한 언니라든가.”

“뭐…… 아예 아니라는 법은 없겠지?”

“아니, 그럴 리가.”

차례대로 홍유희, 김혜은, 코와붕가였다.

코와붕가의 경우 앞의 둘과 달리 점점 현실감각을 찾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빨리 좀 오면 좋겠다. 벌써 약속 시간 지났잖아.”

홍유희의 말마따나 약속 시간인 두 시에서 오 분 남짓이 지난 상황이었다.

조금 늦는다는 아복이는 그렇다 치고 AAA는 어떻게 된 것일까.

“단톡방에 뭐 올라온 거 없어?”

“잠깐만-.”

코와붕가가 휴대폰을 들어 올린 그 순간이었다.

“노폭이? 남만이랑?”

등 뒤에서 들려온 무겁고 거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움찔한 코와붕가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고, 다시 한번 움찔했다.

190을 넘어 2미터에 육박할 것 같은 거대한 키.

아니, 단순히 키만 큰 게 아니라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와 마동석을 연상시키는 미친 상완을 가진 떡대 중의 떡대.

짧게 자른 머리 아래로 역시나 짧게 자른 수염이 보이는, 30대 중반의 남자.

넥타이 없는 하얀 셔츠와 검은 양복에 금목걸이.

눈을 마주치면 바로 고개를 숙여야만 할 것 같은 인상의 얼굴.

“어…….”

AAA라는 말도 못 하고 어버버거리자 떡대남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 혹시 코와붕가?”

“어, 으, 네. 아니, 어…… 어.”

이건 존댓말일까 반말일까.

잔뜩 얼은 코와붕가는 어설프게 말했고, 김혜은은 그런 코와붕가를 보고 웃지 못했다.

김혜은 역시 움찔하고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야, 표정 풀어. 풀어. 누가 잡아먹냐?”

AAA가 껄껄 웃으며 코와붕가의 등을 팡팡 치는데 그 포스가 실로 범상치 않았다.

코와붕가는 등을 한 대 맞을 때마다 컥컥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고 말이다.

‘예상 밖이야.’

예상 밖이다.

오늘 정모에서 어색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을까?

오늘 이후에도 채팅방 모임이 이어질 수 있을까?

코와붕가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때였다.

“푸흡. 흡. 푸흐흐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숨넘어가는 웃음소리에 순간 팟 하고 정신을 차린 코와붕가는 초능력을 발동시켰다.

자신의 등을 두드리고 있는 남자.

그는-

‘AAA가 아냐?!’

“아, 진짜. 사장님. 사장님이 먼저 속이자고 해놓고 그렇게 웃으면 어떻게 합니까.”

AAA의 입에서 나온 말에 코와붕가는 눈을 크게 떴고, 그건 김혜은과 홍유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웃음소리의 주인공.

근처 자리에 아까부터 앉아 있던 노출도 높은 검은 옷의 여자가 깔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은 머리칼을 높이 올려 묶고 검은색 마스크를 쓴, 거기에 요즘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스모키 화장까지 한 세 보이는 인상의 여자.

가죽 부츠와 체인 장식 덕분에 입고 있는 옷도 무척이나 강해 보이는 그녀는 거한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쯤 하면 됐으니까 이제 그만 들어가.”

“이런 일로 좀 그만 부르쇼.”

투정 부리듯 말한 거한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여전히 얼어 있는 일행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그럼 재밌게들 놀아요.”

친근하게 웃으며 돌아선 남자는 그대로 카페를 나섰고, 김혜은과 홍유희는 생각했다.

저 남자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AAA와는 무슨 관계고.

“아, AAA.”

퍼뜩 정신이 든 김혜은이 고개를 번쩍 들자 AAA는 까르르 웃더니 코와붕가의 옆에 털썩하고 앉으며 말했다.

“AAA야. 많이들 놀랐어?”

20대 후반쯤 되었을까?

세 보이는 인상과 반대되는 것 같은 유쾌한 목소리에 홍유희는 커다란 눈을 깜박였고, AAA는 그게 또 귀엽다는 듯 까르르 웃더니 그대로 홍유희의 뺨을 꼬집으며 말했다.

“그래, 언니야. 언니. 우리 노폭이는 딱 예상한 대로네? 그쪽은 남만이지?”

“어어.”

김혜은의 대답에 다시 웃은 AAA는 마스크를 벗었다.

유쾌하게 웃고 있지만 어쩐지 모르게 무서운 느낌이 드는 미녀.

그녀는 바로 옆에 앉은 코와붕가의 뺨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너님아, 너님아. 왜 그래? 나 여자인 거 상상도 못 했어?”

아니, 상상은 했는데.

사실 요 며칠 상상한 그대로의 외모이기는 한데.

코와붕가는 어버버 말을 늘어놓는 대신 자신의 뺨을 콕콕 찌르는 AAA의 손가락을 대상으로 초능력을 발동시켰다.

AAA.

본명은 유가영.

인터넷 성인용품 샵 사장.

그리고-

‘흠, 생각보다 귀엽게 생겼는데? 내 취향인 것 같기도?’

AAA가 속으로 떠올린 생각을 읽은 코와붕가는 다시 한번 움찔했다.

사실 외모만 놓고 보자면 코와붕가 역시도 AAA가 몹시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유쾌하고 야한 십덕누나라니.

그야말로 코와붕가 자신의 이상형이지 않던가.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 오빠다.”

홍유희의 말에 코와붕가와 AAA는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 씨발.’

저만치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남자.

180 중후반은 되어 보이는 몹시도, 정말 몹시도 잘생긴 남자.

거기다 몸도 보통 좋은 게 아니었다.

AAA가 데려온 남자가 근육 덩어리였다면 지금 걸어오는 남자는 그야말로 핏이 사는, 같은 남자가 봐도 멋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초슈퍼 알파메일.

그냥 슬리퍼만 신고 다녀도 주변 사람들이 돌아볼 것 같은 육식남 그 자체.

‘저, 저게 아복이라고?’

저렇게 멋진 형이- 아니, 남자가 노폭이 놀리려고 엉덩이춤까지 추던 그 개초딩 아복이라고?

대충 멋진 남자일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상정치를 벗어났다.

AAA가 처음 데려왔던 남자처럼 혹시 대역인 것은 아닐까?

“코와붕가랑 AAA?”

어느새 코앞까지 성큼 다가온 아복이- 강진호의 말에 코와붕가와 AAA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강진호는 빙긋 웃으며 AAA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웃복서009다. 본명은 강진호고.”

“어어. AAA…… 아니, 유가영……이예요.”

슈퍼 알파메일의 패기에 눌린 AAA가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며 악수를 나누었고, 강진호는 다시 빙긋 웃더니 이번에는 코와붕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다.”

“어…… 네.”

AAA와 마찬가지로 존댓말을 한 코와붕가는 어색하게 웃으며 강진호의 손을 잡았고, 반사적으로 초능력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에?”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전해진 정보들.

상상을 초월한 그것들에 코와붕가는 멍청한 얼굴이 되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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