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08화
제4장 - 채팅방 #3
아웃복서009.
자그마치 36개월 동안 서버 1등을 유지한 영웅전기2의 레전드인 동시에 썩은물 중의 썩은물.
속칭 아복이.
모르는 사람들은 아복이의 방대한 지식과 초월적인 대인전 능력을 보고 감탄하지만 코와붕가는 아복이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
영웅전기2에 제대로 미친놈.
서버 2등인 노란폭풍을 놀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감수하는 또라이.
지난 몇 년 동안 아복이를 지켜봐 온 코와붕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복이가 1등인 이유는 노폭이가 2등이기 때문이다.
노폭이가 100등이었다면 아복이는 99등이었을 거고, 노폭이가 10,000등이었다면 아복이는 9,999등이었을 거다.
‘아무튼 진짜 또라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노폭이 놀리겠다며 바지 까고 엉덩이춤을 추던 아복이의 모습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는 코와붕가였다.
아복이 입에서 나온 수많은, 실로 주옥같은 유치한 드립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야말로 개초딩.
그런데 그런 아복이가 초슈퍼 알파 메일이다.
그래,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의 부조리라며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했다.
돌이켜 보면 노폭이 일이 아닐 경우의 아복이는 꽤 정상적인 걸 넘어 무척이나 믿음직한 남자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뭐, 뭐야? 대체 뭐냐고?’
아복이와 악수한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들.
반사적으로 발동시킨 사이코메트리였기 때문에 읽어낸 정보 역시 목적성이나 통일성을 갖추지 못했다.
총성.
폭연.
비명과 폭발음.
낯설기 짝이 없는 정보들에 코와붕가는 저도 모르게 사이코메트리를 강화하였고, 보다 선명한 정보를,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밤이었다.
정글이었고, 온몸은 피와 땀에 젖어 끈적거렸다.
하지만 숨결은 고요했다.
날카로이 곤두선 감각은 대기의 흐름마저 읽어낼 것 같았다.
타다닷!
총성이 울렸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멈춘 채 때를 기다렸고, 어느 순간 미끄러지듯 몸을 놀려 놀라울 만치 빠르게 움직였다.
탕! 탕! 탕!
수백, 수천 번의 훈련으로 만들어진 기계같이 정교한 사격에 머리와 가슴을 적중당한 상대가 쓰러졌다.
그리고 총성이 이어졌다.
두 명을 더 사살했고, 탄환이 모두 떨어진 총 대신 나이프를 손에 쥐었다.
숨을 멈추고 대기를 읽었다.
자욱이 깔린 화약 냄새 속에서 익숙한 냄새를 읽어냈고, 천천히 숨을 토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노.”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와 땀에 젖은 얼굴로 지친 미소를 짓고 있는 금발 벽안의 여인.
“나타샤.”
거기까지였다.
눈을 깜박인 코와붕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간을 좁힌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복이- 강진호였다.
“야, 괜찮아?”
목소리는 옆에서 들려왔다.
AAA.
유가영.
하지만 코와붕가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받아들인 기억에서 아직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었다.
“코와붕가?”
강진호가 손을 놓으며 물었고, 코와붕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 어어.”
“진짜 괜찮아? 식은땀도 엄청 흘리는데?”
남만고양이- 김혜은의 물음에 코와붕가는 이마를 훔치고는 깜짝 놀랐다.
김혜은의 말처럼 땀을 잔뜩 흘린 탓이었다.
“아, 그, 어. 갑자기 좀. 괜찮아.”
어색하게 웃은 코와붕가는 일단 자리에 앉았고, 김혜은과 유가영은 걱정과 미심쩍음이 반씩 섞인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지만 무어라 말을 꺼내진 않았다.
강진호 역시 홍유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을 뿐 딱히 더 묻지는 않았고 말이다.
‘뭐지? 방금 본 거 뭐였지?’
인상 깊게 본 영화나 게임의 기억이 아니었다.
강진호 본인의 체험.
실제로 강진호에게 있었던 일.
‘구, 군인인가? 용병 같은?’
그러고 보니 금발 벽안의 여인이 여기저기 찢어진 군복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던 것 같기는 했다.
그리고 사격.
총격전.
“야, 진짜 괜찮아?”
“어, 네, 응.”
AAA의 물음에 다시 어색하게 답한 코와붕가는 마른침을 삼키며 정면을 보았다.
홍유희와 이야기 중인 강진호.
노폭이 놀리는 데 목숨을 걸던 개초딩 아복이.
그 아복이가 진짜로 목숨 걸고 싸우던 용병이었다? 사람도 죽여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읏?”
갑자기 울린 휴대폰 진동에 움찔한 코와붕가는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켰고, AAA가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
[AAA : 야, 야, 아복이 진짜 의외지?]
[코와붕가 : ㅇㅇ.]
AAA가 말한 의외와 코와붕가 자신이 생각한 의외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튼 의외인 것은 분명했다.
‘키, 킬러는 아니겠지?’
그 막 존 윅에 나온 것 같은.
조직의 히트맨이라든가.
머릿속에 망상이 폭주하기 시작한 코와붕가는 다시 강진호의 눈치를 살피며 마른침을 삼켰다.
‘한 번만 더 접촉해 보면 알 것 같은데.’
대체 뭐 하는 인간- 아니, 분이신지.
저도 모르게 공손해진 코와붕가는 호로록 커피를 마시며 강진호의 손을 쳐다보았고, 그런 코와붕가를 은신 마법을 펼친 채 지켜보던 코델리아는 옆에 앉은 유더의 팔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유더야, 유더야.]
[어, 코델리아.]
[코와붕가가 강진호한테 반한 것 같지 않아?]
[……어떤 근거로?]
[아니, 그. 막 강진호랑 손잡고 나니까 심박? 같은 것도 빨라졌고, 막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고, 지금도 강진호 손 다시 잡고 싶어서 막 쳐다보잖아.]
하나하나 놓고 보면 전부 사실이었지만, 그 모든 정보를 조합했을 때 나온 결론이 참으로 기괴했다.
[그건 아닐 거야.]
오히려 저건 바짝 쫀 것에 가까웠다.
어째서일까.
혹시 코와붕가 가진 초능력은 정보 탐색 계열인 것일까?
[그럼 유더야. AAA는 어때? AAA가 저런 언니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아재 개그를 즐기는 후덕한 아저씨일 줄 알았는데 예쁘고 세 보이는 언니일 줄이야.
패션이 심상치 않은데 무슨 일을 하는 걸까?
패션 쪽 일일까?
혹시 밴드의 보컬이라든지?
코델리아가 두근두근 하다는 듯 두 손을 모아 쥐며 말하자 유더는 돌연 목소리를 낮추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전음을 보냈다.
[AAA- 유가영은 배리어의 요원이야.]
[배리어?]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초국가적 첩보 조직이야. 주로 초상능력과 관련된 일에 머리를 들이미는 조직이지. 조직원들 가운데 초능력자도 많고.]
유더의 설명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더니 다시 유가영을 보며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그, 그럼 쉴드 같은 거야? 막 어벤저스 같은?]
[비슷해. 유가영은 배리어의 동아시아 지부의 요원이야. 주된 임무는 이 세계 기준으로 A랭크 초능력자인 코와붕가를 감시하는 일이고.]
유더의 연이은 설명에 코델리아는 황당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어쩐지 모를 납득과 흥미진진함 역시 함께 느꼈다.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 진짜로? 그럼 AAA가 우리 채팅방 들어온 게 코와붕가 때문이었던 거야?]
[그런 거지.]
[와…… 생각해 보니 말이 되는 것 같아!]
AAA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 코델리아는 마침내 의문이 풀렸다는 듯 작게 박수까지 치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런 코델리아를 보며 유더는 말했다.
[코델리아.]
[응, 유더야.]
[뻥이야.]
[어?]
[뻥이라고.]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잠시 뇌정지가 왔다는 듯 눈을 깜박였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모습에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고장 난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한 코델리아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우씨!]
완전히 속은 걸 깨달은 코델리아가 앙증맞은 주먹으로 유더를 마구 때렸지만 말 그대로 앙증맞을 뿐이었다.
유더는 짓궂게 웃으며 코델리아의 앙탈(?)을 받아주더니 이내 웃음기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AAA는 인터넷 성인용품점 사장이야.]
[어?]
[성인용품점. 그, 막 있잖아. 어른의 장난감?]
말해놓고도 민망하다는 듯 유더가 흠흠 헛기침을 터뜨리자 덩달아 얼굴이 빨개진 코델리아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고, 유더는 언제나처럼 코델리아의 바람을 읽어냈다.
[그…… 관심 있어?]
코델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고, 유더는 다시 헛기침을 토한 뒤 코델리아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AAA의 사이트.
코델리아는 카이사에게 신간을 받았을 때의 얼굴이 되어 두 손으로 휴대폰을 꼭 쥔 채 손가락을 놀렸고, 유더는 곁눈질로 그런 코델리아와 휴대폰 화면을 살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어떻게든 강진호와의 재접촉 각을 보고 있던 코와붕가는 결국 플랜B를 택했다.
‘그래, 그냥 용병인가 보지 뭐.’
그냥 인정한다.
상상도 못 한 정체였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다.
‘생각해 보면 난 초능력자잖아?’
용병보다 더 귀한 초능력자.
그래, 초능력자.
초능력자도 있는데 까짓 용병 정도야 있을 수도 있지 뭐.
‘씨발, 그럴 리가 없잖아.’
초능력자는 초능력자고, 용병은 용병이지!
같이 게임하던 친구가 사실 은퇴한 용병?
라노베 제목도 그렇게는 안 지을-
“코와붕가, 여기.”
“어? 어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코와붕가는 홍유희가 내민 손을, 정확히는 그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았다.
코와붕가가 개인적으로 팬심을 보이고 있는 ‘타냐 눈나’의 굿즈였다.
전에 갖고 싶다고 말한 걸 기억해 준 모양이었다.
“자, 전에 말한 거 이거 맞지?”
“어어, 고마워.”
그러고 보니 타냐 누나에 대해 물어봐도 되는 걸까?
타냐 누나 안의 사람은 진짜배기 외국인 같던데.
코와붕가는 타냐 누나 생각을 하며 손을 벌렸고, 홍유희는 그런 코와붕가의 손 위에 캐릭터 그림이 들어간 열쇠고리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강진호 덕분에 예민해져 있던 코와붕가의 초능력이 다시 한번 발동했다.
“에?”
홍유희의 기억들.
코와붕가는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 * *
1. 코델리아 사랑이 폭발한 성공한 십덕 홍유희가 프로 코스츔 플레이어를 섭외해 코델리아 코스프레를 시켰다.
2. 코스츔 플레이어에게 내적 연기까지 요청해 코델리아의 만남 이벤트를 연출-
‘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홍유희의 기억 속에 나온 두 사람은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영웅전기2의 유더와 코델리아.
어떻게 된 거지?
유더와 코델리아가 왜 있는 거지?
다른 세계?
이세계 진입?
사실 영웅전기2는 게임이 아닌 다른 무언가였다?
혹시 이런 것이 아닐까?
영웅전기2의 배경이 되는 플레이아데스는 몇 번이나 멸망의 위기를 반복하고 있고, 멸망의 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이세계로 정보를 보내 게임을- 영웅전기2를 만든 것이 아닐까?
그리고 게임의 썩은물 중의 썩은물인 아복이와 노폭이의 도움을 받아 플레이아데스의 위기를 타파했다.
그래, 그래서 유더와 코델리아가 감사의 인사를 표할 겸 두 사람을 찾아왔다.
‘말이 되는 것 같아.’
초능력자도 있고 용병도 있는 마당에 까짓 이세계 정도 있을 수도 있지.
“야, 너 괜찮은 거 맞아?”
“맞아, 괜찮고말고.”
AAA- 유가영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바로 답한 코와붕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AAA가 딱 내 이상형에 가까운 유쾌하고 야한 십덕 누나이기도 한 마당에 유더와 코델리아 정도는 있을 수도 있지.’
사실 전자 쪽의 가능성이 훨씬 더 희박하지 않았을까?
“어, 음…… 뭐, 괜찮으면 다행이고.”
“그래, 그러니까 재미있게 놀자.”
마음을 굳힌 코와붕가는 유가영의 손을 덥석 잡았고, 유가영은 깜짝 놀란 듯하더니 이내 키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열 시간 뒤.
야심한 시각.
“야야, 누나가 태워줄게!”
“응? 좋아!”
술에 잔뜩 취한 유가영과 코와붕가는 대리 기사가 모는 유가영의 차를 타고 코와붕가의 오피스텔로 향했고-
그날 밤, 코와붕가가 거주하는 오피스텔 관리실에는 지하 주차장 스프링클러가 망가졌다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