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09화
제5장 - 정리
채팅방 정모로부터 이틀 뒤.
남만고양이 김혜은은 길드하우스 거실 소파에 앉은 자신의 캐릭터를- 정확히는 길드하우스 거실에서 꽁냥거리고 있는 ‘두 커플’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노란폭풍 : 어때요, 오빠? 귀엽죠? 예쁘죠? 오빠가 좋아하는 바니 걸이에요.]
홍유희의 캐릭터인 코델리아가 분홍색 바니걸 복장을 한 채 귀여운 포즈를 취하자 강진호의 캐릭터인 유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웃복서009 : 예쁘네. 귀엽고.]
[노란폭풍 : 그쵸그쵸? 그런데 오빠, 그거 알아요?]
[아웃복서009 : 뭐가?]
강진호의 물음에 코델리아 캐릭터는 몸을 비비 꼬는가 싶더니 귓속말하는 자세가 되어 말했다.
[노란폭풍 : 이거 실사판도 주문해서 지금 집에 오고 있어요.]
나직한 속삭임에 - 하지만 결국 다 보이는 공개채팅에 - 유더 캐릭터는 기쁨을 표하듯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고, 코델리아 캐릭터는 까르르 웃었다.
“아니, 씨발.”
게임 속 채팅이 아닌 현실의 목소리.
팔짱을 낀 채 둘이 하는 꼴을 지켜보던 김혜은은 더더욱 미간을 좁혔다.
아니, 저런 대화를 할 거면 귓속말을 하거나 아예 전화를 할 것이지 왜 공개채팅을 한단 말인가.
물론 둘이 하는 짓이 귀엽기는 했다.
사실 얼마 전의 김혜은이라면 으이구으이구 하면서 귀엽게 봤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으니, 그 원인은 길드하우스 다른 곳에 위치한 두 사람에게 있었다.
[AAA : 야야, 토끼가 강한 이유가 뭔지 알아?]
[코와붕가 : 몰라.]
[AAA : 깡과 총이 있어서.]
[코와붕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이 절로 차게 식는 AAA의 아재개그에 코와붕가의 레온 캐릭터가 포복절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AAA : 웃기지? 그럼 돌잔치를 영어로 하면 뭔지 알아?]
[코와붕가 : 모르겠는데?]
[AAA : 락페스티벌]
[코와붕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기네.]
이번에도 다시 자지러지듯이 웃는 모습에 김혜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이 변했어.”
변했다.
AAA의 아재개그에 저렇게 반응하다니.
저런 식으로 웃으며 좋아하다니.
아무리 봐도 가식이었다.
아니, 잘 보이기 위한 노력?
“수상해.”
정모 끝나고 같은 차에 탄 AAA와 코와붕가.
코와붕가의 오피스텔로 향한 차.
그리고 급변한 코와붕가의 태도.
아니, 사실 태도가 변한 것은 코와붕가만이 아니었다.
[AAA : 야, 근데 너 잘하더라?]
[코와붕가 : 내가 좀.]
뭘까. 뭘 잘한다는 걸까.
왜 남자 캐릭터 둘이서 몸을 비비 꼬며 부끄러워하는 자세를 취한단 말인가.
물론 현실에서는 남자와 여자였지만.
“스프링클러라도 터졌나?”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둘.
술에 취한 코와붕가는 온 김에 물이라도 마시고 가라 권하고, AAA는 그럴까 말까 하던 중 지하 주차장의 스프링클러가 터지고…… 홀딱 젖은 AAA는 어쩔 수 없이 코와붕가의 집으로 향하는데…….
“그다음은 뻔하지.”
손톱을 살짝 깨물며 추리력을 풀가동시킨 김혜은은 쌍으로 염장질 중인 커플들 사이에 홀로 자리한 자신의 캐릭터를 바라보았다.
“길드원 추가 모집해야 하나…….”
그리고 정모도 다시 연다거나.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띵동-
초인종 소리에 김혜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일어섰다.
딱히 택배나 배달을 시킨 것도 없는데 이 시간에 누구란 말인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인터폰을 켠 김혜은은 더더욱 당황해 눈을 깜박였다.
“나타샤 언니?”
강진호의 친한 누나이자 홍유희의 버튜버 파트너인 멋진 언니.
오며 가며 몇 번이나 인사한 사이였던 터라 김혜은은 반가움과 의아함이 반반 섞인 얼굴이 되어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 들어가도 될까?”
“네? 아, 네. 들어오세요.”
술과 안주가 잔뜩 든 비닐봉지를 든 나타샤의 등장에 김혜은은 가디건을 고쳐 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지노랑 유히랑 마시려고 했는데- 음…… 알지?”
“어…… 알죠.”
지금 길드하우스에서 열심히 꽁냥거리는 두 사람이니까. 아마 곧 야간합체 운운하며 로그아웃하지 않을까.
“같이 마실래?”
나타샤가 맥주와 보드카가 든 비닐봉지를 들어 올리며 묻자 김혜은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그렇지 않아도 술이 땡기던 참이니까.
김혜은이 수락하자 나타샤는 빙긋 웃더니 새삼 생각났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마이아면 네가 달리아인가.”
“네?”
“아니, 그냥.”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미소 지은 나타샤는 발걸음을 떼었고, 김혜은은 고개를 한 번 갸웃한 뒤 그런 나타샤를 따랐다.
* * *
정모로부터 닷새 뒤.
저녁 찬거리를 사서 집으로 향하던 김은정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는 얼굴이 빼꼼하고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엄마.”
홍유희.
착하고 귀여운 딸의 등장에 김은정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언제나처럼의 딸이었는데 묘하게 다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희야?”
반사적으로 묻자 홍유희는 쪼르르 다가오더니 옆에 섰고, 장바구니 하나를 나눠 들었다.
“오늘 그 버튜버 방송인가 있는 날 아니야?”
“응응, 그런데 그냥 엄마 보고 싶어서 쉬는 시간에 잠깐 나왔어.”
진솔함이 담긴 홍유희의 목소리에 김은정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얘가 왜 이러는 것일까.
이전 같으면 용돈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것일 텐데- 그 버튜버인지 뭔지를 시작한 이후로는 오히려 용돈을 주기 시작한 홍유희가 아니던가.
“엄마.”
“응?”
“그냥.”
실없이 웃은 홍유희는 돌연 김은정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엄마, 사랑해.”
“징그럽게 왜 이래?”
“사랑한대두.”
“그래, 나도 사랑한다, 사랑해. 우리 딸 사랑해.”
김은정이 웃으며 말하자 홍유희는 무척이나 기쁘다는 듯 헤실헤실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이어진 소소한 잡담.
별것 아닌 언제나와 같은 대화.
“그럼 이따 봐 엄마.”
“그래, 이따 보자.”
엘리베이터에서 김은정이 내리고, 홍유희는 김은정의 뒷모습을 보며 숨을 크게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것은 홍유희가 아닌 코델리아였다.
폴리모프 셀프.
변신 마법.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코델리아 앞에 선 유더는 그녀의 뺨을 가볍게 꼬집으며 물었다.
“이제 괜찮아?”
“응, 괜찮아.”
오랜만에 엄마랑 이야기했으니까.
엄마라고도 불러봤으니까.
엄마도 날 안아주었으니까.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다시 빙긋 웃은 뒤 말했다.
“그럼 돌아갈까?”
“돌아가자.”
플레이아데스.
우리들의 집으로.
* * *
PC방 옥상에 선 것은 다섯 명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
강진호와 홍유희.
그리고 나타샤.
“저기, 진짜 받고 싶어?”
“네네, 받고 싶어요.”
코델리아 교의 교인으로 거듭났음을 증명하는 세례.
코델리아의 물음에 홍유희가 의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유더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교황인 내가 해도 되겠지만…… 여신 본인이 하는 게 제일 좋겠지?”
유더의 말에 홍유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코델리아는 부끄럽다는 듯 입술을 움츠렸다.
자기 자신에게 세례라니.
하지만 부끄러운 이유는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사실 코델리아는 지금까지 세례 의식 자체를 딱 한 명에게만 해보았기 때문이다.
“코델리아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건 세상에 둘뿐이랍니다.”
“진짜요?”
“네, 저랑 유희 씨. 이렇게 단둘뿐이죠.”
유더의 말에 홍유희는 뺨을 붉히더니 세상 행복한 얼굴로 웃었고, 유더는 다시 미소 지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허락하지 않을 터였지만, 홍유희는 코델리아였으니까.
코델리아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이란 타이틀을 공유해도 괜찮았다.
“코델리아, 준비됐지?”
“으응, 준비됐어.”
코델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자 유더는 홍유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려울 건 없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코델리아를 바라보세요.”
“넵.”
긴장했는지 조금 딱딱하게 답한 홍유희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쥔 뒤 코델리아를 바라보고 섰다.
‘부, 부담스러워.’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이라니.
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코델리아는 천사의 날개와 헤일로를 꺼내 성스러운 힘을 개방하였다.
성역전개.
이 옥상은 지금부터 태양의 여신 코델리아의 성역일지니.
코델리아가 발하는 성스러움 앞에 강진호와 나타샤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였고, 코델리아는 긴장과 기쁨으로 몸을 살짝 떨고 있는 홍유희에게 다가섰다.
“태양과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서 나의 신도에게 가호를 내리나니.”
코델리아의 손이 홍유희의 이마에 닿았다.
성스러운 빛의 문장이 홍유희의 이마에 자리했고, 황금빛 태양의 가호가 아름답게 펼쳐져 홍유희를 휘감았다.
“태양의 가호가 항상 그대와 함께하리라.”
그것은 여신의 선언이었다.
천상에 새겨진 솔라리의 계보에 홍유희의 이름이 추가되었고, 그 순간 홍유희로부터 새로운 천상의 힘이- 천사의 날개가 펼쳐졌다.
단순한 신도로서의 세례가 아닌 천사의 임명.
애당초 코델리아이기에 천사로서의 적성이 우수하다 못해 초월적인 홍유희였다.
홍유희의 머리 위로 빛의 헤일로가 떠올랐고, 한 쌍이지만 아름다운 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와아…….”
나탸사갸 저도 모르게 흘린 감탄에 코델리아는 자애로운 미소를 짓더니 황홀함에 취한 홍유희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끝났어요. 이제 유희 씨는 제 가호를 받은 천사예요.”
여운에 취한 듯 홍유희는 들뜬 숨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는 그런 홍유희로부터 시선을 돌려 강진호와 나타샤를 보며 물었다.
“진호 씨랑 나타샤도 받을래요?”
내친걸음이었으니까.
더욱이 코델리아 자신의 가호를 받으면 두 사람 모두 훨씬 더 건강해지리라.
‘사고 같은 게 나도 안심이고.’
코델리아의 물음에 나타샤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발랄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난 본래 무교였지만 이제부터 코델리아 교 신도 할게.”
“유희와 함께라면.”
두 사람 모두 승낙이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유더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은 제가-”
“에이, 됐어. 내가 해야지.”
[본인한테 질투하기 있기 없기?]
[흠.]
목소리에 이어진 메시지 마법에 유더는 헛기침을 토했고, 코델리아는 질투쟁이라며 놀리며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잠시 후, 강진호와 나타샤의 세례 의식이 모두 끝나자 코델리아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럼 이만 돌아갈게.”
모두와도 만났고, 엄마랑 아빠랑도 인사했으니까.
뒷말은 감춘 채 코델리아가 헤일로와 빛의 날개를 거두자 홍유희가 조금은 매달리듯이 물어왔다.
“나중에 다시 오시는 거죠?”
“응응, 유희랑 모두 보러 다시 놀러 올게.”
“기다릴게요.”
“응, 그래.”
코델리아는 홍유희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나타샤 쪽을 보며 말했다.
“나타샤, 늘 고마워요.”
“그래.”
강진호의 마이아.
유더의 누나이자 어머니이자 친구인 사람.
유더 역시 나타샤를 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
“잘 있어, 나타샤.”
“그래, 지노.”
아주 작게 속삭인 나타샤는 유더를 마주 안았다.
홍유희와 강진호다 다소 의아하단 시선을 보냈지만 굳이 설명이 필요한 일 역시 아니었다.
“응응, 그럼 나중에 또 만나!”
마지막으로 인사한 코델리아는 커다란 공간의 문 앞에 섰고, 유더 역시 나타샤와의 눈인사를 마지막으로 코델리아와 함께 섰다.
“그럼 가자.”
“그래.”
유더와 코델리아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둘이서 함께 공간의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
공간의 문을 통해 도착한 곳.
피처럼 붉은 하늘과 메마른 대지가 펼쳐진 땅.
좌푯값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가 도착한 곳은 플레이아데스가 아니었다.
지옥.
악마들의 땅.
“코델리아! 준비해!”
사납게 외친 유더가 전신의 기를 개방하였고, 반사적으로 천사의 힘을 개방한 코델리아는 볼 수 있었다.
수백에 달할 악마들이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