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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13화 (413/473)

엔딩메이커 412화

제7장 – 강습

플레이아데스의 주신이라 할 수 있을 어린 신 아탈리아는 당혹감 속에 세계를 주시하였다.

수십- 아니, 어쩌면 일백이 넘을 외신들이 플레이아데스에 강림하였다.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외신들은 무리를 짓지 않았다.

지난 오랜 역사 속에서 플레이아데스를 찾은 외신의 수는 겨우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저 정도 숫자의 외신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얼마나 큰 환란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일곱 재앙들과 악마 추종자들이 미쳐 날뛰었던 재앙전쟁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차단되었어.”

세계가 닫혔다.

플레이아데스와 외부로의 연결이 모두 끊어졌다.

지옥에 자리한 마녀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천상에 자리한 대천사들과도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었다.

플레이아데스의 주신인 아탈리아는 알 수 있었다.

플레이아데스가 고립되었다.

수십의 외신들이 함께 펼친 결계가 마치 상자라도 되듯 플레이아데스 전체를 가두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외신들은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유델리아.”

유더와 코델리아.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들.

두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금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치 두 사람의 부재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계획적인 침공이야.”

즉흥적인 공격이 아니다.

적은 오래전부터 플레이아데스를 노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적의 목적은 무엇일까.

외신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그저 영혼을 포식하고 싶은 것일까?

아탈리아는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세계를 몇 번이나 이어 붙인 탓에 주신으로서의 힘과 권능을 대부분 잃어버린 그녀였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는 플레이아데스의 주신이었다.

그 어떤 신보다도 플레이아데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탈리아의 영혼이- 신성이 세계에 닿았다.

세상의 시스템 속에서 그녀는 플레이아데스 전체를 조망하였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세계를 조망하는 외신이 하나 있었다.

아탈리아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이번 사태를 초래한 궁극적인 적이라는 사실을 직감하였다.

주변의 풍경이 변하였다.

하얀 하늘과 검은 땅.

지평처럼 그저 끝없이 펼쳐진 그곳에 선 아탈리아는 저만치에 오도카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여신을 보았다.

하얗고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마치 조각상의 끝부분이 깨져 나간 것처럼 군데군데 부서진 흔적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근거를 잃은 외신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안녕.”

여신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아탈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여신을 노려보았다.

그런 아탈리아의 시선에 여신은 작게 미소 짓더니 고개를 내려 아탈리아를 보았다.

“다시 한번 안녕. 내 이름은 아이리아야.”

“아탈리아다.”

아탈리아가 딱딱하게 답하자 아이리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적대하는 것도 당연해.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너의- 아니, 플레이아데스의 적인걸. 지금부터 아주 심한 짓을 할 생각이고.”

“무슨 짓을 할 생각인 거지?”

“정말로 심하고 못된 짓.”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아이리아는 자신의 부서진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태어난 세계는 부서졌어. 사라지진 않았지만, 많이 망가진 상태야.”

이야기 속에 함축된 개념들이 아탈리아에게 전달되었다.

아이리아의 세계.

반으로 부서진 그 세계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살아 있지 못했고, 아무도 살아갈 수 없었다.

“나는 우리 세계를 고치고 싶어.”

“도움이라면 주겠다.”

“고맙지만 사양할게. 단순히 일손 좀 빌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

아이리아는 하늘과 땅을 가리켰다.

그러자 하늘과 땅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열려 그 너머에 자리한 것을 드러내었다.

플레이아데스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정보의 집합체.

세계의 주춧돌이라 할 수 있는 그것들.

“아탈리아,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 네가 한 행동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도 과감해지기로 했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가려서는 안 되니까 말이야.”

아이리아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공간 너머에 드러나 있던 주춧돌이- 세계석이라 불러 마땅한 것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역시 여기서 가져가는 건 안 되네. 역시 직접 가지러 가야겠지?”

아이리아의 말에 아탈리아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플레이아데스를 몇 번이나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플레이아데스의 세계석은 세계 속에서 실체를 갖게 되었다.

“우리 세계의 세계석이 목적인가?”

“응, 우리 세계를 복구하는 데 필요해. 플레이아데스의 세계석이 있으면 우리 세계는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아이리아는 얼마나 좋은 일이냐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주신이었다.

그렇기에 세계석의 강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 터였다.

“아이리아.”

“응, 아탈리아.”

“너희 세계를 위해 우리 세계를 파괴하겠다는 건가?”

“어, 그럴 생각이야.”

나는 우리 세계의 주신이니까.

다시 한번 우리의 별을 생명으로 가득 채울 거니까.

반드시 그러겠다고 떠나간 모두와 약속했으니까.

“세계가 붕괴하면 플레이아데스의 모두가 죽을 거다.”

“그것도 알아. 그래서 미안해. 진심으로.”

하지만 멈추지는 않을 거야.

너희 세계를 파괴해서라도 우리 세계를 구하고 말 거야.

“안녕, 아탈리아. 만나서 반가웠어. 그리고 미리 조언할게. 유더와 코델리아는 올 수 없어. 이유는 너도 알고 있겠지?”

아름답게 미소 지은 아이리아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혼자가 된 아탈리아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이를 악문 채 다시 한번 세계를 인지하였다.

아이리아의 목적은 세계석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세계석들의 위치를 알아내었다.

이는 곧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탈리아의 눈에 보였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하기 시작한 외신들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난 외계의 신들을 보며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는 플레이아데스의 주민들이.

“안 돼.”

하늘에서 나타난 외신을 보며 어린아이 하나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외신이 그런 아이를 보았고, 하얗게 웃었다.

신의 힘을 발하였다.

마을 하나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아탈리아는 주먹을 움켜쥔 채 동쪽을 돌아보았다.

무시무시한 규모의 대군이 외신들과 함께 진군을 개시했다.

창천의 용.

동방을 통일한 초인황제.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외신들의 권속이었다.

아니, 수많은 외신들의 힘을 받아들인 그는 이미 또 하나의 외신- 인신(人神)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였다.

“유더…… 코델리아.”

어린 신 아탈리아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참극에 비명을 질렀다.

* * *

“불가능하단다.”

플레이아데스로 진입할 방법을 묻는 유더의 물음에 마녀는 단언했다.

“지금의 플레이아데스로는 진입할 방도가 존재하지 않는단다.”

“어째서죠?”

“외신들의 결계 때문이란다.”

마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나른한 미소가 걸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옥좌에서 일어나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외신들의 결계가 공간을 어그러뜨리고 있단다. 좌푯값을 안다 할지라도 플레이아데스로의 공간 도약은 불가능하도록 말이야. 애당초 너희가 지옥에 온 것도 운이 좋은 것이란다. 자칫 잘못했다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멀고 먼 세계에 불시착했을지도 모를 일이란다.”

유더는 마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어째서 진입이 불가능하다 말하는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세상 간 이동은 기본적으로 공간 도약을 전제로 했다.

그런데 그 공간의 문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면 들어갈 방도가 없는 셈이었다.

“한둘이 아니란다. 수십에 달한 외신들이 함께 펼친 결계란다.”

마녀의 등 뒤로 커다란 구 셋이 떠올랐다.

왼쪽에 위치한 것이 지옥, 가운데 자리한 것이 플레이아데스, 오른쪽에 자리한 것이 천상이었다.

마녀는 자신의 머리 위에 떠오른, 동그란 막에 감싸인 플레이아데스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결계의 빈틈이나 구멍을 통해 공간 도약을 시도하는 방법도 모색해 봤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단다.”

외신들의 결계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패턴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찰나의 순간을 노린다는 계획조차 세울 수 없었다.

“그럼 아예 방법이 없는 건가요? 결계를 아예 폭발시킬 수는 없을까요?”

코델리아의 물음에 깊은 숲의 마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신 하나가 아닌 여럿이 펼친 결계를, 그것도 다른 세계에 있는 결계를 원격으로 부수는 것은 마녀뿐만이 아니라 온전한 신인 지옥의 대군주들에게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외신들에 의해 플레이아데스가 유린당하는 것을 구경만 해야 한단 말인가.

유더는 이를 악물고 생각을 시작했다.

마녀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담아 유더를 바라보았고,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매달리는 대신 마녀가 만들어낸 세계의 모형들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방법이 있을 터였다.

무언가 방법이.

지옥에서 플레이아데스로 진입할 방법이-

“아.”

코델리아가 돌연 목소리를 내었다.

유더와 마녀가 동시에 그녀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순간 움찔하더니 발표하는 학생처럼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 저기! 이건 가능하지 않을까?”

종종 잊곤 했지만 코델리아는 플레이아데스 최고의 대마법사였다.

태양과 사랑과 아름다움에 이어 마법의 신을 담당해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녀의 의견이었다.

아니, 마법의 신을 떠나 코델리아였다.

유더는 과정을 넘어 결과에 도달하는 그녀의 힘을 알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난 것이니?”

마녀의 기대 섞인 물음에 코델리아는 입술을 한 번 움츠리더니 이내 머리 위의 천구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직접 가면 어떨까요?”

“직접?”

“네, 직접. 공간 도약이 아니라, 그냥 지옥에서 플레이아데스까지 이동하는 거예요.”

코델리아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긋자 지옥과 플레이아데스 사이에 선이 하나 그어졌다.

공간 도약이 안 되면 직접 가자.

지구에서 달을 향해 로켓을 쏘듯이.

코델리아의 말에 마녀는 순간 뇌정지가 온 것 같은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와 도시 간의 이동도 아니고 세상과 세상 간의 이동이었다.

공간 도약 없이 그냥 걸어서- 아니, 달려서 다른 세상에 간다니 그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

“가가 아닌가?”

마녀가 멍한 목소리를 내며 눈을 깜박였고, 유더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거야! 바로 그거야! 코델리아!”

“꺅!”

코델리아를 와락 끌어안은 유더는 그대로 코델리아의 이마와 뺨과 입술에 마구 키스를 한 뒤 환희에 차 외쳤다.

“그래, 공간 도약이 안 되면 그냥 직접 가면 되는 거야. 지옥과 플레이아데스는 다른 세계들에 비하면 훨씬 가까운 편에 속해. 속도만 확보할 수 있다면 분명 가능할 거야. 역시 코델리아. 천재, 천사, 나의 여신.”

“흐흐흥.”

유더의 찬사에 코델리아는 흥흥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 유더가 말한 속도의 확보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 그녀였지만, 어차피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유더의 역할이었다.

더욱이 이 자리에는 마녀 또한 있었다.

“가능할 것 같구나. 수천 년의 시간을 전제로 한다고는 하지만 애당초 세상과 세상 사이를 주유하는 외신들의 존재가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너희는 플레이아데스의 신들이니 세상을 넘어갈 때의 저항 문제도 존재하지 않을 거고. 일반적으로 세상과 세상 사이는 너무나 머니까, 세상 사이를 직접 이동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가능할 것 같구나. 물론 도달한 뒤에도 결계를 돌파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공간 도약보다는 훨씬 더 가능성 높은 현실적인 계획이구나.”

조금씩 말이 이어질 때마다 총기를 되찾기 시작한 마녀의 눈이었다.

유더는 팔짱을 끼며 고민했다.

“문제는 속도의 확보와 내구성인가.”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진공의 우주로 나가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세상 밖에서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신들과 같은 신성이 필요했다.

‘아바타인데 가능할까?’

지금의 코델리아는 대천사가 아닌 지천사였다.

물론 대천사의 영혼을 가지고는 있지만, 영육이 부조화를 이룬 상태이기에 온전한 신성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는 유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신성을 어찌 확보할 것인가.

속도는 또 어찌할 것인가.

아무리 지옥과 플레이아데스가 가까운 편이라 해도 마녀조차 직접 간다는 발상을 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가 존재했다.

애당초 마녀의 설명대로라면 외신들조차도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들여 세상 사이를 주유하는 것 같았고 말이다.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다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일까?

유더는 궁리했다.

그리고 그런 유더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답고 청아한 여인의 목소리.

[유더.]

구천구문의 여신.

그녀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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