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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16화 (416/473)

엔딩메이커 415화

제8장 - 격화 #2

-마이아, 마이아.

도련님이 눈앞에 있었다.

다섯 살 남짓이나 된 유더 도련님.

어젯밤 열이 오른 탓에 오늘은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던 유더는 여전히 열 때문에 빨개진 얼굴로 얕은 숨을 토했다.

-네, 도련님. 저 여기 있어요.

마이아도 작았다. 천애고아인 터라 정확한 나이는 몰랐지만, 아마도 열 살이 조금 넘었을 것 같은 작은 소녀.

침대에 폭 묻혀 있는 손을 가만히 잡아주자 유더는 아픈 가운데도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마이아.

-네, 도련님.

-나중에, 나중에 어른이 되면 마이아랑 결혼할 거야.

-정말요?

-응, 정말. 정말 건강해져서 꼭 결혼할 거야.

어른이 되면.

건강해지면.

어린 유더가 부끄럽다는 듯 에헤헤 웃으며 건넨 말에 마이아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 당시의 유더는 정말로 병약해서 스무 살 이후를 기약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아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활짝 웃으며 유더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네, 도련님.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러니 꼭 건강해지셔야 해요?

-응, 마이아. 마이아 너무 좋아.

-저도요, 도련님. 도련님이 너무 좋아요.

어린 유더에게 있어 마이아는 그저 친한 메이드 정도가 아니었다.

어머니이자 누이인 동시에 세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이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더 바이엘.

나의 작은 도련님.

츠화악!

날카로운 소리가 현실을 일깨웠다.

꿈결처럼 지나간 주마등에서 깨어난 마이아는 눈앞에 자리한 괴물을 보았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두려움과 통증으로 흘러내린 눈물 너머로 날카로운 빛이 비친 순간 마이아는 마지막으로 유더를 떠올렸다.

괴물이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하였다.

“마이아아아아!”

비명 같은 외침이 고속으로 다가왔다.

먼저 반응한 것은 괴물이었다.

하지만 놈이 돌아서는 것보다 돌진해 오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쾅!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괴물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등 뒤에서부터 괴물의 몸에 어깨로 몸통박치기를 한 여인이 엉망진창으로 바닥을 굴렀다.

마이아는 그녀를 보았다.

눈에 익은 옅은 갈색 머리칼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으아아!”

스스로를 독려하는 것 같은 외침과 동시에 여인이- 달리아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유더가 드워프 장인들을 시켜 만들어낸, 에이션트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 조각이 들어간 마갑을 걸친 채였다.

밀려났던 괴물과 마이아가 충돌했다.

아니, 서로를 향해 달려든 그 순간 날카로운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콰가가가가가!

검과 검의 교차였다.

괴물이 가진 네 개의 팔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쇄도했고, 달리아의 검이 그 모든 궤적들을 튕겨냈다.

본래 달리아의 기량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갑의 보조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신경계를 강화하는 약물이 달리아에게 초월적인 지각 능력을 부여하였다.

달리아가 걸친 마갑으로부터 푸른빛이 솟구쳐 올랐다.

마갑의 성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낸 탓에 달리아의 눈과 귀,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달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검격이 가로놓인 모든 것을 파괴했다.

네 개의 팔이 단번에 잘려 나간 괴물의 가슴이 크게 갈라졌고, 둘로 쪼개진 놈의 머리로부터 붉은 체액이 솟구쳐 올랐다.

쿵!

괴물이 무너진 순간 달리아 역시 제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 순간 비로소 정신을 수습한 마이아가 달리아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무리였다.

짓뭉개진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마이아는 바닥을 기어 달리아에게 다가갔다.

“커흑. 윽.”

한 움큼 피를 토한 달리아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머리가 아팠다.

몸도 아팠지만 눈앞이 자꾸만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달리아는 입술을 세게 깨물어 피를 냈다.

통증으로 의식을 붙잡은 뒤 자신의 발치에 가까스로 다다른 여인을 돌아보았다.

“달리아.”

“마이아.”

얼굴을 본 순간 와락 눈물이 나왔다.

안심했기 때문일까.

마이아도 마찬가지였다.

마이아도 울음을 터뜨렸다.

“마이아, 괜찮아?”

달리아의 물음에 마이아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저 가까이 다가온 달리아를 세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마갑 너머였지만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뜨거운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달리아가 이곳에 다다른 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아탈리아의 호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아, 괜찮겠어?”

“괜찮아, 그러니까 빨리…….”

세계석을 전송시켜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 달리아는 마이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삐거덕거리는 것 같았지만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막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달리아는 한 가지 위화감을 느꼈다.

그녀가 단련된 기사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위화감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방금 쓰러뜨린 괴물은 특별한 개체가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 와중에 똑같은 괴물을 셋이나 쓰러뜨린 달리아였다.

그런데 왜 추가로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괴물이 넷뿐이어서?

말이 되지 않았다.

정말로 넷뿐이었다 한들 다른 종류의 괴물이라도 나타나야만 했다.

달리아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어째서 괴물들이 추가로 나타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커다랗게 뚫린 구멍 너머.

외팔이 남자가 걸어 나왔다.

하나뿐인 오른팔 아래 푸른 검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암청색 머리칼 아래 자리한 회색 눈동자에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인간이 아니다.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해했다.

이길 수 없다.

마갑의 힘은 물론이고 약물의 힘까지 더하여도 도저히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마이아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문을 여는 데 팔이나 다리는 불필요하겠지.”

남자- 무신이 말한 순간 한 줄기 섬광이 복도를 갈랐다.

그리고 달리아가 쓰러졌다.

마갑 채로 두 다리가 잘려 나갔다.

“달리아!”

달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리가 잘려 나간 쇼크 때문인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 뿐이었다.

무신이 그런 달리아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다시 검을 들어 올렸고, 그 순간 마이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달리아를 끌어안았다.

무신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다시 검을 휘둘렀다.

마이아의 몸을 분해하기 위해.

세계석이 숨겨진 방의 문을 강제로 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열쇠를 쓰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하였기에.

마이아가 달리아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무신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 * *

제일검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황궁을 향해.

저 먼 지평을 향하여.

이름 모를 소드 마스터가 제일검의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 보는 자였다.

어쩌면 자신이 죽은 뒤에 새로운 제국의 소드 마스터로 등극한 자일지 몰랐다.

개의치 않았다.

그저 검을 보았다.

검을 통해 그의 길을 보았다.

알 수 있었다.

지평으로의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저마다의 길에는 모두 저마다의 가치가 있었다.

제일검은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처음 검을 손에 쥐었을 때를 떠올렸다.

원숙한 검사가 검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바라보게 되는 지평의 존재를 제일검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잊고 말았다.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했기에 오히려 지평으로의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일검은 검을 휘둘렀다.

더 이상의 미혹은 없었다.

유열에 취하는 대신 그저 검에 심취하였다.

이름 모를 소드 마스터가 쓰러진다.

화려하고 강력한 검기의 대결에서 패한 것이 아니었다.

천지를 요동케 하는 충돌이나 폭발음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검.

한 자루 쇠막대기로 펼치는 검격 앞에 소드 마스터는 가슴이 베여 쓰러지고 말았다.

제일검은 알았다.

자신을 이 땅에 다시 세운 자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원하는 세계석이라는 것을 가져가면 이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개의치 않았다.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검만을 보았다.

평생을 함께해 왔던 지평을 다시 바라보며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마법은 제일검을 해할 수 없었다.

멀리서 쏟아진 폭격도 매한가지였다.

제일검의 검은 검리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는 세상과 공간을 베어 마법을 와해했다.

군대가 제일검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 핏물이 되어 쓰러졌다.

무엇이 길 앞에 놓이든 제일검은 황궁을 향해, 지평을 향해 똑바로 나아갈 따름이었다.

“더 이상은 갈 수 없다.”

레온과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이 보였다.

그들이 동시에 제일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섯 대 하나.

하지만 긴장으로 몸이 굳는 것은 하나가 아닌 다섯이었다.

소드 마스터들의 합격이었다.

제국의 역사가 열린 이래 지금처럼 소드 마스터 다섯이 오직 한 명의 상대를 향해 합격을 펼친 것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성이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검과 검이 교차했다.

아니, 교차한 것이 아니었다.

제일검의 검이 소드 마스터들의 검을 갈랐다.

검과 검이 대치하는 순간 펼쳐질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미래들 가운데 하나를 강제하였다.

소드 마스터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단순히 검을 잃는 것이 아니라 목이 잘리고 가슴이 갈려 목숨을 잃는 자들도 있었다.

레온은 잘린 팔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제일검은 그를 보았다.

눈부신 재능을 가진 자였다.

저대로 수련하면 언젠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 검성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는 자였다.

제일검은 개의치 않았다.

눈부신 미래를 짓밟았다는 사실에서 희열을 느끼는 대신 그저 정면을 바라보았다.

황궁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지평 역시도 그리하였다.

저곳에 닿는다면, 검리에 도달하면 그때는 어떤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대체 어떤 것일까.

제일검은 웃으며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한 남자가 자리했다.

구면이었다.

제일검도 남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막시밀리언 데 아비스.

대륙에서 가장 빛나는 재능을 타고난 자.

그렇기에 제일검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평으로의 길을 잃고만 자.

아마도 지금의 제국이 꺼내 들 수 있는 최강의 카드.

하지만 막시밀리언은 검을 뽑아 들지 않았다.

제일검 역시 검을 드는 대신 오히려 검을 늘어뜨린 채 편한 자세를 취했다.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일검을 막기 위해 ‘플레이아데스’가 준비한 카드는 막시밀리언이 아니라는 것을.

“달라졌군. 그렇지 않나?”

제일검의 말에 화답하듯, 지평으로 놓인 길 앞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무신의 검은 마이아를 해할 수 없었다.

불어온 바람이 무신의 검을 튕겨냈다.

거칠고 성난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에 마이아는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무신 앞에 버티고 선 남자의 뒷모습에 울음을 터뜨렸다.

* * *

아탈리아는 거친 숨을 토했다.

급격한 힘의 소모로 말미암아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지만 미소를 머금었다.

무신과 제일검 앞을 막아선 자들.

아이리아도 그들을 알고 있었다.

“바람의 검성.”

바이엘 백작.

“하늘의 검성.”

루카스 흐레스벨그.

바이엘 백작이 바람의 검을 펼쳤다.

루카스와 제일검이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불타는 왕도를 향해 나아가는 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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