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424화 (424/473)

엔딩메이커 423화

제13장 - 천사강림 #2

유델리아 신성국에 새로운 천사들이 강림한다!

유더가 코델리아 상단과 성십자 수호단을 통해 퍼뜨린 소문은 순식간에 대륙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새로운 천사들이 강림한다고?”

“어어, 나도 들었네. 신성국에 강림하신다지?”

“이번 사태와 연관이 있는 건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사내 둘이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주변에 앉아 있던 이들 역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예 말을 보태는 이들도 있었고 말이다.

“교황 성하께서 천사들의 강림을 기념하여 큰 축제를 여신다고 하더군요.”

“축제를?”

“네, 아무래도…… 이번 사태로 인해 신성국도 적잖은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축제인 모양입니다.”

“과연 그런 건가. 그럼 천사들이 내려오는 것도?”

“네, 코델리아 여신님께서 신성국의 전사자들을 하늘로 인도하고, 남은 이들을 더욱 잘 보살피기 위해 천사 둘을 새로이 내려보낸다고 신탁을 내리셨다 합니다.”

청산유수로 이어지는 여인(21세, 교황 직속 세작부대원)의 설명에 술집 안에 있는 이들은 다시 한번 감탄했고, 구석에 앉아 있던 소년(12세, 교황 직속 세작부대 견습)이 코델리아를 찬양하며 기도하자 다들 따라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신성국의 국경 지대에서는-

“마이아 씨랑 달리아 씨가 천사가 된 거지?”

“어. 마이아 씨는 미의 천사고 달리아 씨는 수호의 천사래.”

스칼렛의 물음에 카이사가 신성국의 인장이 찍힌 소책자를 펼치며 답했다.

눈을 감은 채 기도하는 모습을 한 코델리아의 성화가 표지에 그려진 소책자였는데, 안쪽에는 이번에 있을 축제에 대한 안내와 주역이라 할 수 있을 두 천사의 소개문이 적혀 있었다.

“코델리아가 이제는 대놓고 미의 여신까지 넘보는구나.”

미의 여신이신 코델리아 님의 권속인 미의 천사 마이아~ 운운하는 설명문을 본 스칼렛이 미간을 좁히자 카이사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그냥 가족 천사단을 만들려는 게 아닐까?”

코델리아의 아버지인 체이스 백작은 물론이고 언니인 아델리아 역시 천사였으니까.

생각해 보니 이미 장남인 에드워드 빼고는 전부 천사인 판국이었다.

“가능성이 있네. 아마 양쪽 모두 블랙망토의 음모겠지.”

속이 까만 유더의 미소를 떠올린 스칼렛은 다시 쓴웃음을 지으며 소책자를 펼쳐 보았다.

코델리아의 성화와 달리 마이아와 달리아의 성화는 윗부분에 짙은 음영을 줘서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는데, 이것도 유더의 술책인 것 같았다.

‘신비감과 기대감을 조성하려는 거겠지.’

뻔한 수작이었지만 동시에 잘 통하는 수작이기도 했다.

특히 마이아의 성화는 반쯤 가려진 얼굴이 제대로 신비감을 자극해 평범한 성화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아무튼 기대가 되긴 하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놈의 블랙망토- 유더가 꾸민 강림 의식이었으니까.

제도나 왕도에서 볼 수 있는 일류 극단의 연극보다도 훨씬 더 볼거리가 화려하고 풍성할 터였다.

‘애당초 소책자도 종교 집단의 의식 홍보라기보다는 극단이나 극장의 홍보물 같고.’

새로운 연기자나 가희의 등장을 예고하는 홍보물 같다고 해야 할까?

“스칼렛, 카이사.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마부석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스칼렛과 카이사는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과연 루카스의 말마따나 언덕 너머로 신성국의 수도를 상징하는, 거대한 코델리아의 여신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여긴 변함이 없군…….”

신성국의 수도 한복판에 선 역병의사 차림의 남자- 벨키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외신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건만 근 열흘 사이에 복구 작업을 끝마쳤는지 건국 선포일 때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달라진 게 있긴 있군.’

중앙 광장에 세워져 있는 초거대 코델리아 여신상을 비롯하여 도시 곳곳에 자리한 코델리아의 신상들은 그대로였지만, 여기에 새로이 추가된 것들이 있었다.

“나라면 매우 많이 부끄러울 거야.”

도시 곳곳에 걸린 마이아와 달리아의 성화들을 미적지근한 눈으로 바라보던 프란이 말했고, 벨키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의 벽은 물론이고 바닥과 가로수, 심지어는 허공에까지 성화를 걸어둔 터라 수도 어디를 돌아봐도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짝 좋을지도…….”

“응? 레나, 방금 뭐라고…….”

“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얼굴이 빨개진 레나는 다급히 양손을 내저으며 자리를 피하듯 발걸음을 서두르자 란디우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그런 레나를 쫓아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가운데 하나인 카마엘은 거리 곳곳에 비치된 소책자 하나를 펼쳐 보고는 작게 감탄을 토했다.

“인쇄술이 범상치 않군. 제지 기술도 인상적이야.”

성화 역시 수준이 상당했다.

무료로 비치된 소책자라 보기에는 종이의 질 역시 훌륭했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카마엘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표지였다.

기도하는 코델리아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

종래의 서책들의 경우 제목의 서체를 꾸미는 정도가 다였는데 이 소책자는 아예 화려한 성화를 표지로 삼아 책자의 주목도를 높이고 있었다.

‘이런 기술로 제대로 된 책을 만든다면…….’

예를 들어 빌트바인 영웅전의 한정 소장본이라든지.

솔라 블레이드를 높이 든 채 서 있는 란디우스- 아니, 빌트바인이 그려진 표지를 떠올린 카마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프란은 ‘저 양반은 갑자기 또 왜 저러지?’ 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잠시뿐이었다.

“아무튼 우리도 갑시다.”

란디우스랑 레나가 벌써 저만치나 앞서갔으니.

프란의 재촉에 소책자를 품에 챙긴 카마엘과 벨키안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초거대 코델리아 여신상의 발치에 설치된 야외무대 주변에는 강림 의식을 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림잡아도 십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코델리아가 왜 매번 부끄러워하는지 알 것 같아.”

제일 앞줄에 마련된 VIP석에 자리한 스칼렛이 작게 말하자 카이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저래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유더가 준비한 부끄러운 대사들을 입 밖에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아무튼 슬슬 시작할 것 같네.”

두근두근한 얼굴로 앉아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루카스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스칼렛과 카이사는 VIP석 좌우로 시선을 돌렸다.

바이엘 백작과 백작부인인 유나, 바람의 늑대 게일, 그리고 유모차에 탄 게일과 아델리아의 두 아이들.

란디우스를 필두로 한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실비아와 나란히 앉아 미소 짓고 있는 에드워드 체이스.

그리고 키라라와 붉은바람과 태양노래와 두 사람의 아이들과 카플란 경을 비롯한 기타 귀빈들까지.

모일 사람은 얼추 다 모인 VIP석을 훑어본 스칼렛과 카이사는 마지막으로 무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이내 무대 위로 오르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자기 아내를 모시는 종교를 만들고 본인은 교황 자리를 꿰찬 대륙 제일의 애처가.

광장을 가득 채울 만치 모인 인파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는 코델리아 교단의 교황으로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잘생기긴 했단 말이지.’

턱을 괸 채 무대 위의 유더를 바라보던 스칼렛은 무심코 생각했다.

속이 까맣고, 성격은 능구렁이 같은데다가 악랄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와 별개로 얼굴 하나는 참 잘생긴 유더였다.

‘그래도 루카스 쪽이 훨씬 더 좋지만.’

유더와 달리 정말로 착하고 순수한 루카스.

더욱이 어디 가서 꿀리는 얼굴도 아니었다.

남자답게 정말 잘생긴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조형적인 면에선 솔직히 유더가 더 잘생기긴 했지만, 스칼렛에게 있어서는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유더보다는 남자다운 루카스 쪽이 훨씬 더 취향이었다.

‘눈빛도 막 열정이 넘치고.’

루카스 특유의 소년다움을 부각시키는 그 눈빛.

뜨겁기 짝이 없는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스칼렛이었다.

‘어젯밤에도…….’

루카스와 함께한 간밤의 일을 떠올린 스칼렛은 에헤헤 웃으며 뺨을 살짝 붉혔다.

불꽃처럼 뜨거웠던 순간들이 새록새록 생각났기 때문이다.

[야, 스칼렛. 입에서 침 떨어지겠다. 너 또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어? 어어어.”

[어라고? 무슨 생각 했는데?]

방심한 순간 훅하고 들어온 카이사의 전음에 흠칫한 스칼렛은 서둘러 표정을 정돈한 뒤 마주 전음을 보냈다.

[무슨 생각은 무슨 생각. 그냥 오늘 있을 의식 생각했지.]

[아닌데, 다른 생각한 거 같은데.]

[아니거든? 착하고 바른 생각 했거든? 아, 연설 끝난 것 같다.]

서둘러 전음을 마친 스칼렛은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카이사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마찬가지로 무대를 돌아보았다.

“그럼, 천사들의 강림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들 하늘을 봐주십시오.”

속이 까만- 겉으로 보면 화사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은 유더가 하늘을 가리킨 순간이었다.

“밤이, 밤이 온다!”

누군가의 외침 그대로였다.

푸르고 맑은 하늘에 순식간에 어둠이 번져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적에 사람들은 경악을 토했고, 그건 VIP석에 모여 있는 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 진짜 밤이야?”

마법으로 인한 눈속임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밤?

아니, 설사 마법이라 해도 이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도를 넘어 유델리아 신성국 전체에 밤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진짜 밤이다. 마법이 아냐. 신의 기적이다.”

벨키안이 당혹과 경악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레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선조회귀로 천사가 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신성국의 하늘에 일어난 이적에서는 실로 거대한 신성의 힘이 느껴졌다.

“아아, 여신이시여.”

누군가가 눈앞에서 목격한 기적에 감격한 듯 두 손 모아 기도하자 광장에 모여 있던 십만에 달하는 인파 대부분이 코델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유더의 계산대로 말이다.

‘역시 무리를 한 보람이 있군.’

사람들의 시선이 하늘에 쏠린 사이 무대를 내려온 유더는 빙긋빙긋 웃으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일이 널리 퍼지면 대륙 전체에서 코델리아 교단의 힘이 한층 더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신도 수도 잔뜩 늘 터였고 말이다.

‘무리할 가치가 있어.’

신성국의 하늘에 일어난 기적.

마른하늘에 밤을 야기한 것은 유더가 가진 신성- 검은 짐승의 힘이었다.

즉, 엄밀히 따지면 여신 코델리아의 기적이 아닌 유더의 기적이었지만 유더는 이러한 진실을 밝힐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코델리아의 숭배자들을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물론 적당한 때에 여신 코델리아의 반려인 ‘검은 달의 신’을 성경에 데뷔시킬 생각인 유더였지만 그건 오늘이 아닌 나중의 일이었다.

‘자, 코델리아. 보여줘.’

오늘 의식에서 유더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그랬기에 유더는 투명화로 모습을 감춘 뒤 VVIP석인 무대 코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새카만 밤이 하늘을 뒤덮은 와중이었기에 무대로 내려오는 빛은 무척이나 눈에 띄었고, 사람들의 시선은 곧 빛이 내린 무대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한 사람.

빛이 내린 무대 위에 나타난 코델리아의 모습에 광장에 자리한 이들 모두가 차마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토해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괴성을 지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이는 없었다.

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 모두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침묵 속에서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아 기도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만든 힘.

무대 위에 자리한 코델리아의 존재감.

여신의 화신이자 지상대리인인 순백의 성녀.

분홍빛 머리칼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코델리아는 두 손을 크게 벌리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태양의 여신을 찬양하는 성송가.

광장 전체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코델리아의 노랫소리에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집중했고, 그랬기에 유더와 스칼렛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코델리아의 얼굴이 극도의 부끄러움과 민망함 때문에 붉게 달아올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부끄러움은 왜 항상 내 몫인 건데!’

지금 부르고 있는 성송가.

태양의 여신 코델리아를 찬양하는 노래였다.

즉, 코델리아 자신을 찬양하는 노래란 소리였다.

그냥 자화자찬성 노래를 부르는 것도 부끄러워 죽겠는데 자그마치 십만에 달하는 사람들 앞이라니.

코델리아는 반쯤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어 노래했고, 그런 코델리아의 심중을 읽은 스칼렛은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진짜 악마다, 악마.’

코델리아가 아닌 VVIP석에 자리하고 있을 유더의 이야기였다.

투명화 상태라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스칼렛에게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끄러워하는 코델리아는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그야말로 눈에 뻔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단하긴 하네.’

모든 진상을 간파한 스칼렛 자신조차도 이러나저러나 코델리아가 발하고 있는 아름다움과 신성함에 반쯤 넋이 나갈 지경이었으니 아무 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실제로 무려 십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숨소리 하나 크게 내지 않은 채 코델리아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어느 순간이었다.

코델리아의 노래가 차분히 가라앉는가 싶더니 이내 하늘 높은 곳에서 웅장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세 번째 충격에 빠졌다.

밤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천사의 무리들이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개 가진 천마들이 끄는 커다란 전차를 타고 지상에 강림하는 붉은 머리의 천사.

군신을 연상케 하는 그 위용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감동하여 기도했지만 바이엘 백작은 아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은 채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선두에 선 저 천사의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더 이 친구야.’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우렁차게 노래하는 붉은 머리의 천사.

코델리아의 아버지인 동시에 북부 사강 중 하나이며, 바이엘 백작 자신의 오랜 친우인 체이스 백작.

부끄러워 죽으려 하는 코델리아와 달리 지금의 상황을 한껏 즐기고 있는 것 같은 그의 등 뒤로 새로운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선두에 자리한 것은 천마 위에 탄 황금빛 머리칼의 천사였다.

“마마! 마마!”

유모차에 타고 있던 엠버와 에이든이 새로 나타난 천사를 보며 버둥거리자 게일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내려오고 있는 황금빛 머리칼의 천사가-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붉힌 채 뻣뻣한 동작으로 노래하고 있는 여인이 바로 게일 자신의 아내인 아델리아였기 때문이다.

‘형제는 닮는다더니.’

환하게 웃고 있는 게일의 얼굴을 훔쳐본 스칼렛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끄러워하는 아델리아를 보며 감탄하는 게일의 모습에서 부끄러워하는 코델리아 보며 좋아하는 유더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아델리아 언니도 코델리아랑 똑같고.’

어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저렇게 닮았을까.

이쪽도 자매는 자매라는 걸까.

쓰게 웃은 스칼렛은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고 있는 천사들 대신 코델리아 쪽을 보았고, 결국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누구누구의 말마따나 부끄러워하는-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와 언니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민망함에 몸부림치는 코델리아가 너무나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 호흡.

체이스 백작과 아델리아가 천사들을 이끌고 다시 밤하늘로 향하자 새로운 이적이 일어났다.

밤하늘이 갈라지며 두 줄기 빛이 무대 위로 내려왔다.

코델리아는 두 팔을 벌리며 다시 한번 태양의 여신을 찬미했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새로운 두 천사들이 지상에 강림을 시작했다.

“아아아…….”

빛으로 된 깃털들이 바람을 따라 흩날렸고, 아기 천사들의 배웅 아래 새하얀 성복을 걸친 두 천사들이 코델리아에게 다가섰다.

미의 천사 마이아와 수호의 천사 달리아.

마이아가 깊게 눌러 쓰고 있던 후드를 벗은 순간 광장 전체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난폭한 침묵이 가득했다.

가히 폭력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마이아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에 숨을 몰아쉬었고, 마이아와 달리아는 코델리아의 양옆에 자리를 잡은 뒤 함께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장난 아니네.’

마이아 씨가 예쁜 건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천사화와 작금의 무대가 만들어낸 버프 효과를 감안한다 할지라도 실로 어마어마한 미모였다.

당장 스칼렛 자신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랬기에 스칼렛은 괜히 루카스의 반응을 살피는 대신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확실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이아 씨 즐기고 있어!’

부끄러워하긴 하는데, 즐거움 쪽이 훨씬 더 크다고 해야 할까?

더욱이 스칼렛은 알 수 있었다.

마이아가 지금 즐거워하는 것은 자신의 우월한 미모를 세상 전체에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이아는 지금 부끄러워하는 달리아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달리아를 보며 화사하게 웃고 있는 저 얼굴과 눈빛이 유더의 그것과 몹시도 유사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과연 바이엘 백작가인가.’

유더와 게일뿐만 아니라 메이드인 마이아까지 똑같은 괴벽의 소유자들이었을 줄이야.

저 괴벽의 근원은 과연 바이엘 백작인 것일까 아니면 백작부인인 유나인 것일까.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흘렀고, 의식은 어느새 클라이막스 부분에 다다랐다.

“하늘에 계신 분이시여, 아름답고 우아하시며, 자애롭고 상냥하신 태양의 여신이시여.”

코델리아가 반쯤 울 것 같은 마음으로 스스로를 찬미하자 마이아와 달리아도 목소리를 높였고, 그 순간 밤하늘이 갈라지며 태양의 빛이 다시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밤이 지나 다시 찾아온 아침.

태양의 기적.

그리고 마침내 침묵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누군가 유도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환호였다.

기적을 목도하여 생긴 감정의 자연스러운 발로였다.

“아아, 코델리아시여.”

“태양의 여신이시여.”

십만에 달할 사람들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유더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며칠 내로 폭증할 코델리아 교단의 신도들을 생각하니 교황으로서 기껍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VIP석의 사람들.

태양의 여신 코델리아가 여신의 화신 코델리아와 동일인이라는 것은 물론이고 강림한 천사들의 정체까지 모조리 알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들 역시도 사람이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저마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하아…… 굉장하군.”

바이엘 백작.

코델리아와 아델리아의 시아버지인 동시에 체이스 백작의 친우인 그는 진심 섞인 감탄을 토하며 몸을 길게 늘어뜨렸다.

가만히 앉아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림 의식의 여운 때문인지 기분 좋은 피로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후훗, 나중에 놀려줘야겠군.’

체이스 백작의 열연을 영상 장치에 기록도 했으니까.

새삼 영상 장치를 두드린 바이엘 백작은 아예 눈을 감았다.

잠시나마 여운을 온전히 즐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여보.”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소매를 당기는 힘에 바이엘 백작은 다시 눈을 떴다.

예상대로 옆에 앉은 유나가 자신의 소매를 당기고 있었다.

바이엘 백작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잔뜩 상기된 유나의 얼굴에 미소 짓더니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말했다.

“유나, 정말 좋은 의식이었지 않소?”

“맞아요. 그런데 여보,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요.”

“중요한 이야기?”

갑자기 무슨 소리인 것일까.

바이엘 백작이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되묻자 유나는 조금 힘겨운 미소를 짓더니 부풀어 오른 배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태어날 것 같아요.”

“에?”

바이엘 백작은 멍한 소리를 내었고, 근처에 있던 게일 역시도 너무나 놀라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유나는 그런 게일의 등을 두드려 주었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바이엘 백작.

혼란한 와중에 겨우 정신줄을 붙잡은 그는 유나의 배와 얼굴을 번갈아 본 뒤 그야말로 간신히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지, 지금?”

“네, 지금.”

바이엘 백작가의 셋째가.

유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힘겨운 미소를 지었고, 바이엘 백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유더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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