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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25화 (425/473)

엔딩메이커 424화

제13장 - 천사강림 #3

바이엘 백작은 당황했다.

백전연마의 노련한 장수인 동시에 검성으로서 이치에 도달하기 직전인 그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추, 출산일은 아직 한 달 이상 남지 않았나?”

저도 모르게 흘린 말에 유나는 힘든 가운데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가 성격이 급한가 봐요.”

납득이 가는 설명은 아니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타당성 따위가 아니었다.

정신이 번쩍 든 바이엘 백작은 자세를 낮춰 유나와 눈높이를 맞춘 뒤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유더가 금방 올 것이오. 곧 괜찮아질 테니 걱정 마시오.”

“네, 여보.”

유나가 다시 미소 지은 그 순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이쪽으로!”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상황을 파악한 유더가 밤의 신성을 펼쳐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뒤 바이엘 백작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다행히 바이엘 백작의 곁에는 지금 다양한 능력자들이 모여 있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레나가 염동력을 발휘해 유나를 누운 자세 그대로 부유시켰고, 생명의 힘을 다루는 벨키안과 프란이 바로 뒤따르며 유나의 상태를 살폈다.

“왕궁으로 가겠습니다. 코델리아, 다른 사람들을 부탁해.”

“어? 어어.”

코델리아가 당황 속에 답하자 유더는 숨을 한 번 크게 삼킨 뒤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

VIP석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을 데리고 왕궁,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더가 준비한 분만실 바로 옆에 위치한 방에 자리한 코델리아는 초조한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기가 태어난다.

시어머니께서 셋째를 출산하신다.

유더의 동생이, 아가씨가 태어난다.

코델리아는 마른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자기가 낳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꾸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 두근거리다 못해 쿵쾅거려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괜찮겠지? 무사히 잘 태어나겠지?’

유나의 출산 예정일은 본래 앞으로 한 달 이상이 남아 있었다.

애당초 유나가 이번 강림 의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이라니.

꼭 열 달을 다 채우고 태어나라는 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달- 아니, 거의 두 달이나 일찍 태어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 제발. 아, 제발.’

코델리아는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했다.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인 그녀인 터라 대체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래도 기도했다.

‘제발, 제발. 아탈리아 님, 유더 님, 코델리아 님.’

유더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까지 기도한 코델리아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떴다.

그러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모여 있는 이들이 보였다.

“언니, 괜찮나?”

“어? 어어, 괜찮아. 나야 괜찮지.”

붉은바람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애써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기도 했다.

애를 낳는 건 코델리아 자신이 아닌 유나였다.

그러니 코델리아 자신이 불안해하며 초조해할 이유는-

‘없을 리가 없지!’

남도 아닌 유나가, 시어머니가 애를 낳는 일이었다.

그것도 유더의 동생을 말이다!

“언니, 정말 괜찮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나도 애 낳아봤다. 정말 괜찮다.”

붉은바람이 웃으며 말하자 뒤에 서 있던 태양노래 역시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바람의 이야기.

이번에도 사실이었다.

이미 태양노래와의 사이에 자식을 낳은 붉은바람이었으니 말이다.

이번 강림의식 때는 데려오지 않았지만, 코델리아도 야생의 땅에 가서 직접 본 적이 있었다.

태양노래를 닮아서 그런지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던 우량아 중의 우량아.

‘애가 애를 낳았다고 엄청 놀랐었지.’

새삼 옛날 일을 떠올린 코델리아는 어설픈 웃음을 흘린 뒤 심호흡을 했다.

조금 더 안정을 되찾기 위해 바로 옆에 있는 또 한 명의 자녀 보유 유부녀인 아델리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언니, 언니도 괜찮았지?”

“어? 어…… 나는…… 괘, 괜찮았어.”

아델리아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쌍둥이를 낳느라 정말 모진 고생을 한 그녀였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반쯤 죽을 뻔한 기억을 떠올리니 온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 아델리아였다.

그리고 이런 아델리아의 반응에 코델리아는 다시 걱정하는 얼굴이 되었고, 붉은바람은 뭐라 할 말이 없어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주인님, 주인님.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어? 어, 키라라.”

붉은바람 근처에 서 있던 키라라는 코델리아가 반응을 보이자 예쁘게 웃더니 오른손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어머님께서는 이미 애를 두 번이나 낳아보셨잖아요? 그럼 이미 애 낳기의 프로가 아닐까요? 그러니 셋째도 괜찮을 거예요. 프로니까요.”

“어어어?”

애 낳기의 프로?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납득이 되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벌써 세 번째 출산인 유나였으니 말이다.

한편 코델리아가 키라라의 개소리- 아니, 고양이소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붉은바람은 한심해 죽겠다는 얼굴이 되더니 키라라를 노려보며 전음을 보냈다.

[야! 이 미친 고양이야! 애 낳기의 프로가 뭐야! 프로가! 어?]

[왜왜왜! 내가 아주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아오, 진짜. 상식이란 게 없어. 상식이란 게.]

붉은바람이 끌끌끌 혀를 차자 키라라는 앙증맞은 주먹을 꼭 쥐며 꼬리를 빳빳이 세웠다.

야만인 주제에 상식 운운하는 게 정말로 화가 났기 때문이다.

[야만인 주제에!]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어? 뭐라고 했냐고!]

[야만인이라고 했다! 이 야만인아!]

[이 고양이가 진짜 혼나려고! 어머님 몸보신도 하실 겸 나비탕 하나 끓여볼까?!]

만나면 언제나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답게 오늘도 역시 설전을- 정확히는 전음과 마법으로 펼치는 조용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옆에 서 있던 아델리아는 아까부터 딱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게일을 돌아보았다.

동생이 태어난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긴장한 것 같았다.

‘하긴, 근 30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니까.’

애당초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문장으로 만드니 여러 가지 의미로 진짜 더 대단한 것 같은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애들보다도 어리잖아.’

아델리아는 잠시 엠버와 에이든이 자기들보다 어린 고모와 함께 노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고, 참으로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건, 그러니까 묘한 기분에 빠져든 것은 게일과 엇비슷한 상황인 유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 30살이든 20살이든 동생이라기보다는 딸뻘인 나이인 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더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동생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유더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불안해하는 코델리아를 달래줘야 한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코델리아. 괜찮을 거야.”

조금 일찍 태어나는 거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만약 문제가 있다 해도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힘을 쓰면 어떻게든 될 가능성이 높았고 말이다.

유더가 손을 꼭 잡아준 채 조곤조곤 괜찮은 이유들을 하나씩 설명하자 코델리아는 호흡은 물론이고 심박수 역시 서서히 안정되어 감을 느꼈다.

역시 우리 집 유더.

우리 집 만병통치약.

문제가 없을 거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유더의 이야기에 비로소 안심하게 된 코델리아는 숨을 한 번 길게 토한 뒤 자세를 바르게 했다.

“이제 좀 괜찮아?”

“응, 괜찮아. 고마워.”

작게 웃으며 답한 코델리아는 몇 번 숨을 고른 뒤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런데 유더야. 달리아랑 마이아는?”

VIP석에 있던 사람들 거의 모두가 모여 있었는데, 이제 보니 달리아와 마이아가 보이지 않았다.

유나와의 관계성만 따진다면 얼결에 앉아 있는 스칼렛과 카이사, 루카스보다도 훨씬 강한 두 사람이었음에도 말이다.

“달리아랑 마이아는 왕궁 밖에 있어. 이번 강림의식은 국가적인 행사라 진행 자체는 계속해야 하니까. 지금쯤이면…… 아마 성경 나눔이랑 사인회를 하고 있을 거야.”

유더의 설명에 코델리아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의 코델리아였다면 ‘무슨 아이돌이야?’ 하고 의문을 표했겠지만 이미 유더 때문에 온갖 행사를 다 치러본 그녀였기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전음과 메시지 마법으로 각각 기력과 마력을 모두 소진한 붉은바람과 키라라가 나란히 앉아 헐떡일 즈음.

긴장과 피로로 인해 반쯤 졸고 있던 코델리아는 순간 번쩍하고 눈을 떴다.

감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델리아의 짐승 같은 직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태어났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

방문을 열고 나타난 체이스 백작은 짧고 굵게 말했고, 그 말에 VIP석에 모여 있던 모두는 작은 환호성을 토했다.

그러자 체이스 백작은 한 걸음 더 나선 뒤 두 팔을 벌려 마력으로 은빛 거울을 만들어냈다.

분만실을 비추는 마법의 거울에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코델리아가 탄성을 토했다.

“어머님!”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유나가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바이엘 백작의 모습에 체이스 백작은 새삼 미소를 지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유나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게일처럼 푸른 머리칼에 유더처럼 신비로운 녹색 눈동자.

그런데 척 보기에도 평범한 아기가 아니었다.

한 달 이상이나 일찍 태어난 미숙아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칼이 거의 다 자란 상태였는데, 머리 쪽에는 쫑긋하고 늑대의 귀가 솟아 있었다.

“야생신의 힘을 강하게 타고나서 그렇다. 인간에 가깝게 태어난 유더와 게일과 달리 말이다.”

있는지도 몰랐던 거친눈사태가 아장아장 나서며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쏠렸다.

그러자 그는 바이엘 백작가에서의 마스코트 생활 덕분에 알게 된 주목받는 즐거움을 느끼며 설명을 이었다.

“유나가 성지에서 힘을 잔뜩 회복하고 얼마 안 있어서 가지게 된 아이니 말이다. 유더가 인간 반 야생신 반이라면 저 아이는 인간보다는 야생신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 거의 7:3…… 아니, 8:2로 야생신의 비율이 강한 편이지. 아마 일찍 태어난 것도 그래서인 것 같구나.”

사실상 야생신이 태어난 것과 다름이 없다는 거친눈사태의 설명에 코델리아는 눈을 몇 번인가 깜박이더니 이내 가장 중요한 사실을 물었다.

“그래서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거죠?”

“그래, 아주 건강한 것 같구나.”

거친눈사태의 대답에 비로소 안도한 코델리아는 환한 미소를 그리며 유더의 손을 꼭 잡았다.

“아기 예쁘다.”

“그러게, 많이 예쁘네.”

갓 태어난 아기는 본래 원숭이 같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는데 바이엘 백작가의 막내는 전혀 아니었다.

애당초 머리칼이 긴 것이 입증하듯 이미 태어난 지 한 달 이상은 된 예쁜 아기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코델리아는 그런 아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유나와 바이엘 백작을 보았다.

행복한 얼굴로 울고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보기 좋으면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더야.”

“응?”

“우리도 힘내자.”

무심코 말한 코델리아는 순간 흠칫하고 몸을 경직시켰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그리고 지금 이 말을 들은 유더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뒤늦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코델리아. 힘내자. 내가 힘을 많이 낼게.”

유더는 새카만 미소를 지으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덜컥 겁이 난 코델리아는 어설픈 미소를 흘리며 타이르듯 말했다.

“그, 조, 조금만 덜 내자. 알았지?”

“아니야, 최선을 다할게.”

힘주어 말한 유더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갈색 병에 담긴 약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뭐, 뭔데 그거.”

“에이, 알면서.”

아닌데, 모르는데. 알고 싶지 않은데.

너 그런 거 안 먹어도 이미 검은 짐승인데.

코델리아는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고, 유더 역시 눈빛으로 속이 까만 답변들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세 사람은 각자의 반응을 보였다.

[한동안 명상 수련에 집중해야 할 것 같네요.]

[벨렌시아 님, 지금 저 버리시려는 거 아니죠? 차라리 저랑 노시지 않을래요?]

적어도 일주일은 이어질 것 같은 사태를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두 사람과-

‘슬슬 새로운 손주 이름을 생각해 둬야겠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체이스 백작.

하지만 동상이몽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바이엘 백작가의 막내딸이었으니 말이다.

푸른 머리칼과 녹색 눈을 가진 바람의 야생신.

천사들의 강림과 함께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레지나.

레지나 바이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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