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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26화 (426/473)

엔딩메이커 425화

제14장 - 퍼스트 콘택트

미의 천사 마이아와 수호의 천사 달리아가 신성국 유델리아에 강림한 ‘강림의 날’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로 의미 깊은 날이 되었다.

유델리아 신성국의 국민들을 비롯한 코델리아 교단의 교인들에게는 여신의 신성이 다시 한번 증명된 축복받은 성일이었고, 세일룬 왕국과 아르곤 제국 같은 대륙의 국가들에게는 유델리아 신성국의 힘이 한층 더 증가한- 여러 가지 의미로 마냥 천사의 강림을 기뻐할 수만은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중요한 날이었다.

레지나 바이엘의 탄생.

바이엘 백작가의 삼녀가 태어났다.

십검호의 일원인 바람의 검성의 딸인 동시에 마찬가지로 십검호의 일원인 바람의 늑대의 동생이자, 플레이아데스 최강의 검사인 무검의 검성인 동시에 코델리아 상단의 상단주이며 코델리아 교단의 교황인 유더 바이엘의 동생.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레지나는 살아 있는 여신의 화신인 태양의 성녀 코델리아의 아가씨인 동시에 근위마법병단의 전설인 황금야차의 아가씨였으며, 어머니는 인간이 아닌 야생신이었다.

왕가는 물론이고 황가에도 뒤지지 않는, 아니- 어떤 의미로는 능가한다 할 수 있을 미친 집안의 막내딸.

태어나 보니 대륙 최고의 다이아 수저를 물게 된 그녀의 탄생이 알려진다면 여러 가지 의미로 대륙이 뒤흔들릴 것이 분명했다.

‘결혼 시장도 미쳐 날뛰겠지.’

바이엘 백작가와 이어질 수 있는 티켓이 한 장 더 생긴 셈이니 일반적인 귀족 가문은 물론이고 왕가나 황가 역시도 레지나와의 혼처 자리를 노릴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놓고 결혼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귀족의 정략혼이라는 것은 본래 그런 법이었다.

성격 자체는 매우 다르긴 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도 태중혼약을 약속한 사이였고 말이다.

‘물론 정략혼 따위 시킬 생각은 요만큼도 없지만.’

애당초 정략혼은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결혼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이엘 백작가가 딱히 원하는 것이- 정확히는 소중한 막내딸을 바쳐가며 무언가를 갈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재력?

이미 차고 넘친다.

무력?

대륙 최강의 가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당초 비대칭 전술 병기인 십검호 가운데 셋이 있는 가문이었다.

이 정도면 세일룬 국왕도 쉽게 못 건드릴 어마어마한 가문이었는데, 여기에 유델리아 신성국까지 연결되어 있으니 그냥 플레이아데스 내에서는 건들 수 있는 자가 없다 해도 좋았다.

‘그냥 나중에 레지나가 좋다고 하는 애랑 결혼하는 거지.’

하지만 어찌 되었든 언젠가 결혼을 하긴 할 테니 대륙의 여러 가문들이 혹시나 하며 군침을 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좋은 일이야.’

태어난 지 이제 겨우 나흘밖에 안 되었건만 벌써부터 세기의 아이니 뭐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레지나였지만, 유더에게는 모든 걸 다 떠나 소중한 막냇동생이라는 사실이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이런 유더와 마찬가지로 레지나의 탄생 그 자체를 축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마이아랑 달리아가 특히…….’

사인회와 성경 나눔 행사를 하느라 뒤늦게 도착한 두 사람은 곤히 잠든 레지나의 모습을 보며 연신 감탄을 토했었다.

“정말 천사 같아요!”

“진짜 천사예요, 천사.”

정작 말하는 두 사람이 천사이고 레지나는 야생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나온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으응…….”

작은 신음소리가 등 뒤에서- 정확히는 위에서 프로레슬링 태그매치를 해도 좋을 것 같은 커다란 침대 위에서 들려왔다.

“우리 공주님 일어났어요?”

유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침대에 누워 있다기보다는 파묻혀 있던 코델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한번 신음을 토하더니 긴 숨과 함께 몸을 늘어뜨렸다.

다시 자려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냥 온몸에 힘이 없어 반쯤 뻗은 모양이었다.

“괜찮아? 물 마실래?”

“어으…… 자, 잠시만.”

어렵사리 말을 만들어낸 코델리아는 가슴 위에 손을 올린 뒤 회복마법을 펼쳐 셀프 회생을 시도했다.

“하아…… 배고파.”

회복마법 덕분에 그럭저럭 기운은 돌아왔지만 그와 별개로 허기 때문에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지난 사흘 동안 뭔가를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아니, 사흘은 맞나?’

계속 침대 위에만 있었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코델리아였다.

“그렇지 않아도 준비해 뒀어. 자, 먹자.”

어느새 코델리아를 침대 위에 바로 앉힌 유더는 미리 준비해 둔 요리들을 척척 침대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스프야. 갑자기 먹어서 무리가 가면 안 되잖아? 우리 공주님은 소중하니까.”

유더가 언제나처럼 능글능글 웃으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진짜 소중하긴 하냐는 눈빛을 한 번 쏴준 뒤 수저를 드는 대신 입을 아 하고 벌렸다.

수저를 들 기운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이런 식의 식사 패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거사를 치르고, 졸도했다 깨어나면 유더가 밥을 먹여주는.

유더 역시 익숙했기에 능숙한 솜씨로 코델리아에게 스프를 먹여주었다.

그리고 삼십여 분 뒤.

얼추 식사를 마친 코델리아는 이제야 살겠다는 듯 배를 만지며 말했다.

“후우, 맛있었다. 그나저나 뭐 하고 있었어?”

코델리아 자신과 달리 가붕이인 유더는 지난 나흘 내내 쌩쌩함 그 자체였으니까.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침대 맞은편에 자리한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새로운 성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덤으로 추가할 내용도 구상 중이었고.”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아예 내친걸음이라는 듯 책상에 놓여 있던 스케치를 들고 와 코델리아에게 보여주었다.

천사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와 그런 아기를 축복하듯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천사들.

어쩐지 낯익은 구도의 그림에 코델리아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이거 레지나 탄생 장면이지?”

“어, 레지나의 탄생을 천사들이 축복하는 장면이야. 아기를 안고 있는 건 마이아고. 이번에 출간하는 월간지 창간호의 표지로 쓸 생각이야.”

유더의 말에 역시 예상대로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코델리아는 순간 멈칫했다.

“월간지?”

“어, 월간지. 아무래도 성경 내용이 추가될 때마다 새로 배포하는 건 이래저래 좀 문제가 있으니까. 차라리 잡지 형태로 매달 발매하고, 분량이 모이면 책으로 엮어서 출간하고 하는 식으로 해보려고. 아, 이번에 마이아랑 달리아 성화집도 낼 생각이야.”

성화집?

아니, 그거 결국 연예인 화보집 같은 거 아니야?

거기다 이번에 사인회도 했잖아.

생각해 보니 우리 진짜 교단 맞아?

연예인 매니지먼트사 아냐?

천사 E&M이라든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코델리아는 유더가 어느새 대령한 마이아의 성화집 샘플을 펼쳐 보았다.

그림으로 그린 게 아니라 에드워드가 유더의 제안을 받아 개발한 ‘사진기’로 찍은 사진들이었는데, 새삼 놀라운 마이아의 미모였다.

‘진짜 예쁘긴 엄청 예쁘네.’

이 정도면 거의 0.99 코델리아쯤 되지 않을까?

코델리아 필터를 풀가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등이란 결과를 떠올린 코델리아는 그대로 팔랑팔랑 성화집을 넘기다 물었다.

“수영복 사진은 없어?”

“저기요, 이거 성화집이거든요?”

“그래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고민해 볼게.”

유더가 미간을 좁히며 답하자 코델리아는 쿡쿡하고 웃었다.

아마 다른 천사였다면 당장 내자고- 아니, 애당초 호화 특전이나 특별판으로 수영복 화보집을 준비했을 유더였지만 주인공이 마이아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터였다.

‘시스콘이야 시스콘.’

다시 쿡쿡 웃은 코델리아는 문득 다시 유더가 그리다 만 스케치를 돌아보더니 지나가는 어조로 말했다.

“아가씨 보고 싶다.”

레지나 바이엘.

새로 태어난 유더의 동생.

꼬물꼬물 손가락 움직이는 게 참 귀여웠는데.

코델리아는 눈을 감고 레지나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나오는 귀여움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런데 코델리아.”

“응?”

“그럼 엠버랑 에이든이랑 레지나 중에 누가 제일 예뻐?”

“어?”

셋 중에 누가 제일 예쁘냐니.

반사적으로 잠시 고민하던 코델리아는 이내 눈매를 날카로이 하며 말했다.

“대답 안 할래. 아니, 애당초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건데?”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도 아니고.

코델리아가 힐난하자 유더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슬쩍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그냥.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

“뭐가?”

“우리 아기가 제일 예쁠 거라는 거.”

유더는 그리 말하며 코델리아를 침대 위에 눕혔고, 어어 하다가 다시 눕게 된 코델리아는 빨개진 얼굴로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미 유더의 혀와 입술이 맞닿은 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깐, 잠깐. 설마 또요?]

[후대는 정말로 진짜 짐승이에요.]

끌끌끌 혀를 찬 벨렌시아는 다시 카드 뭉치를 꺼냈고, 얼굴이 빨개진 멜리사는 한숨과 함께 벨렌시아의 공간의 창문을 닫은 뒤 커튼을 쳤다.

* * *

레지나의 탄생에 자극을 받은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만이 아니었다.

유델리아 신성국에 체류 중인 또 한 명의 천사- 성천사 레나는 배 위에 손을 올린 채 살짝 몽롱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아기…….’

예쁜 아기.

오래전부터 ‘단란한 가정’을 꿈꿔온 레나였던 터라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이미 오래였다.

하지만 천사의 임신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덜컥 애를 가지게 된 게일과 아델리아는 플레이아데스는 물론이고 천계의 역사를 뒤져봐도 정말 희귀한 케이스였다.

‘그래도 힘내야지.’

아무튼 타석에 많이 들어가야 홈런도 치고 안타도 치는 법 아니겠는가.

새삼 주먹을 불끈 쥔 레나는 불타는 염원을 담은 눈으로 란디우스를 돌아보았고, 란디우스는 무슨 일이냐는 듯 평화로운 얼굴로 레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

카마엘과 벨키안과 프란.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은 지금 한 방에 모여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그냥 쉬는 것이라면 각자의 방에서 쉬어도 되었지만, 예전부터 다섯이 모여 있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같이 뭉쳐 있는 경우가 많은 다섯 영웅들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조용한 가운데 목소리를 낸 것은 언제나처럼 프란이었다.

홀로 구석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던 카마엘의 시선까지 모이자 프란은 소파 위에 바로 앉더니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갑자기 하나 궁금한 게 생겼어.”

“뭔데 그러느냐.”

책을 읽고 있던 벨키안의 물음에 프란은 좋은 질문이라는 듯 빙긋 웃더니 모두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어떻게 만났는지 갑자기 궁금해서.”

드루이드들의 숲에서 살던 프란을 제외한 넷은 ‘파라곤의 결전’ 전부터 이미 서로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기대와 호기심이 섞인 프란의 물음에 카마엘과 레나는 각기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고, 벨키안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모두의 중심인 란디우스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기사단에서들 만났지.”

파라곤 왕국의 왕립 기사단.

란디우스 자신과 카마엘은 기사단원이었고, 벨키안은 기사단의 스승격인 인물이었으니까.

레나도 마법사 보조로 기사단에 얼굴을 비쳤었고.

하지만 껄껄 웃던 란디우스는 이내 웃음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쳐다보는 모두의 시선이 참으로 미묘했기 때문이다.

“어…… 아닌가?”

기사단에서 다들 본 거 아니었나?

란디우스가 자신 없는 어조로 묻자 레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었고, 벨키안은 쓰게 웃었다.

프란은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낄낄거렸고 말이다.

“뭐, 그럼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한 명씩 말해보는 게 어때? 서로 어떻게들 만났는지.”

프란의 제안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란디우스였다.

모두의 시선을 보니 진짜로 란디우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첫 만남들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그럼 나부터 시작하지.”

낮게 깔리는 미성에 프란은 오- 하는 감탄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의 시선 역시 목소리의 주인에게 모였다.

검귀 카마엘.

파라곤 왕가의 마지막 후예인 그는 쓰고 있던 노트를 접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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