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34화
제17장 - Happily ever after
유더와 코델리아가 향한 곳은 어린 신 아탈리아가 머물고 있는 신전이었다.
플레이아데스의 주신임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코델리아교에서 모시는 세 명의 신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랑과 미와 태양과 마법의 신 코델리아.
달과 검은 짐승의 신 지노.
세계를 그리는 어린 신 아탈리아.
여담이지만 유더는 달의 신 지노로부터 여신의 화신인 코델리아를 보살피라는 명을 받아 지상에 내려온 지노의 권속이라는 설정이었다.
달의 신 지노는 태양의 신 코델리아의 반려였고 말이다.
-그런데 유더야, 성경이 이렇게 자주 바뀌어도 되는 거야?’
-아직 개발 초기니까 괜찮아.
-하긴…… 월간지로 찍어내는 성경이니까. 화보집도 내구.
어찌 되었든 코델리아 교단에서 모시는 신들 가운데 하나였기에 아탈리아는 제법 커다란 신전에서 여러 신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아탈리아 님! 아탈리아 님!”
공간을 도약해 알현의 방- 아탈리아와 마주할 수 있는 공간에 진입한 코델리아가 크게 소리치자 오래지 않아 작은 소녀- 아탈리아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코델…… 리아?”
반쯤 잠긴 목소리는 물론이거니와 눈을 비비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다 깬 모양이었다.
평소였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할 코델리아였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에 다녀와야겠어요. 저번에 말씀하신 방어진은 문제없는 거죠?”
“어? 지구?”
아탈리아가 깜짝 놀라 눈을 깜박이자 유더는 허공에 대고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손가락이 한 번 허공을 찍을 때마다 황금빛 선이 허공에 번져 나갔는데, 유더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제없어. 정상적으로 가동 중이야.”
방어진.
외신전쟁과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든 방어 시스템.
외신들이 했던 것처럼 외부의 침공을 완벽히 저지하는 방벽을 설치하는 것은 무리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설치 자체는 가능했지만 1년 열두 달 내내 방어진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시적인 운용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부득이 플레이아데스를 비워야 할 때 빈집이 된 플레이아데스를 지키는 거대한 결계 마법.
그리고 이것만이 아니었다.
방어진에는 핵심적인 기능이 하나 더 첨가되어 있었다.
“송환 장치도 문제없이 기동할 것 같아.”
언제 어디서든 유더와 코델리아를 플레이아데스로 불러올 수 있는 송환 장치.
애당초 방어진 자체를 기획하고 설계한 것은 유더였다.
그랬기에 방어진의 관리자인 아탈리아 이상으로 상황 점검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인 거지? 지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니?”
아탈리아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코델리아는 입술을 한 번 깨문 뒤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정확히는 저희도 몰라요. 하지만 긴급 사태인 것만은 분명해요.”
“……알겠다. 방어진을 가동시키겠다.”
아탈리아는 가타부타 더 말을 잇는 대신 주신의 옥좌 위에 앉은 뒤 신력을 발동시켰다.
“좋아, 우리도 바로 출발하자. 아바타는 준비되어 있지?”
“응, 있어.”
지구에 갈 때 사용하기 위해 준비해 둔 아바타들만이 아니라 여자 유더와 남자 코델리아, 거기에 꼬마 유더라는 유희용 아바타들까지 완비된 상황이었다.
“잠깐, 꼬마 유더?”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
“아, 아니. 그래.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아바타 만들기는 코델리아의 취미 같은 것이었으니까.
잠시 혼미해진 정신을 바로잡은 유더는 코델리아 쪽으로 등을 보인 채 자세를 낮췄다.
“코델리아, 가자.”
“응!”
다시 코델리아를 업은 유더는 공간도약 마법을 사용해 신전 밖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약 이십여 분 뒤.
유더와 코델리아는 지구로의 세상 간 이동을 시작했다.
* * *
“나타샤!”
공간의 문을 나서자마자 코델리아는 크게 소리쳤다.
PC방 옥상이 아닌 실내.
이미 이전에 한번 들러본 적이 있는 나타샤의 아파트.
다급히 공간의 문을 빠져나온 코델리아는 나타샤를 찾기 위해 고개를 휙휙휙 돌려댔고, 오래지 않아 나타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왔어?”
거실 소파 위.
하늘하늘한 네글리제에 팬티 차림으로 소파 위에 다리를 올리고 앉은 채 맥주를 마시며 전자담배를 피우는 백금발의 미녀.
이미 꽤 마셨는지 백옥 같던 피부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니, 피부를 볼 것도 없이 소파 앞 테이블에 나뒹구는 빈 캔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얼핏 세어도 서른 개가 훌쩍 넘었으니 말이다.
“아니, 이걸 다 혼자서 마신 거야?”
“아닌데, 혼자 아닌데. 혜은이랑 같이 마셨는데.”
“혜은이? 혜은 언니랑?”
“어, 안방에 쓰러져 있을 거야. 아까 화장실에서 토하고 그대로 쓰러졌길래 옮겨놨거든.”
재밌다는 듯 아하하 웃는 얼굴이 딱 취한 사람의 그것이었기에 코델리아는 다시 도도도 달려 안방으로 향했다.
티셔츠에 팬티 차림인 김혜은이 침대 위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아오, 냄새!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마시다 옷에 흘리기라도 했는지 방 안 가득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코델리아는 급히 정화 마법으로 방 안 공기를 정화한 뒤 공기청정기를 가동시켰다.
“언니도 좀 씻겨야지.”
염동력으로 허공에 띄운 뒤 옷을 벗기고 세척 마법을 사용한다.
여간하면 깰 법도 하건만 옷이 벗겨지고 몸이 씻어지는 와중에도 쿨쿨 잘도 자는 김혜은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거실에 선 유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타샤를 보았다.
“큰…… 일은 아니지?”
“흐흥, 글쎄? 그보다 여기 앉아봐. 오랜만에 같이 한잔하자. 응?”
은근한 얼굴로 자기 옆자리를 통통 두드리는 나타샤의 모습에 유더는 다시 한번 미간을 좁혔다.
설마 이 인간이 술 마시고 취해서 실수로 막대를 부러뜨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술김에 불렀다든지.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나타샤였다.
유더는 고개를 끄덕인 뒤 나타샤 옆에 앉아 아직 차가운 맥주 캔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인데?”
“음…… 글쎄? 일단 마시자.”
에헤헤 웃는 나타샤의 건배 제의에 유더는 살짝 잔을 부딪힌 뒤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때였다.
“하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작게 투덜거리며 안방에서 나온 코델리아는 돌연 팔짱을 끼더니 새삼 눈매를 날카로이 했다.
“흐으응.”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유더와 반라의 나타샤.
코델리아가 다시 눈을 가늘게 뜨자 유더는 움찔했고, 나타샤는 오히려 신난다는 듯 유더에게 매달리며 끈적끈적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걸?”
“호오, 둘이 무슨 사인데?”
코델리아가 다시 싸늘한 어조로 묻자 유더는 급히 일어나 코델리아에게 다가섰다.
“아니, 왜 그래. 그냥 놀리는 거잖아!”
“응, 알아. 그냥 건수 잡아서 그래”
“어?”
유더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더니 유더의 뺨을 꼬집어주었다.
청출어람.
근묵자흑.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이미 유더만큼 속이 까매진 코델리아였다.
그녀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는 유더의 뺨을 한 번 더 꼬집어준 뒤 나타샤의 옆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아무튼 나타샤, 진짜 왜 부른 거야? 무슨 일인데?”
코델리아의 물음에 나타샤는 한숨을 한 번 길게 내쉬더니 소파 옆 서랍장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여기.”
“이게 뭔데?”
“열어보면 알아.”
쓸쓸한 얼굴이 된 나타샤의 말에 코델리아는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봉투를 열었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청첩장?”
말 그대로 청첩장.
그것도 강진호와 홍유희의 이름이 쓰여 있는.
“둘이 결혼해.”
나타샤가 담배 연기를 토하며 말했고, 코델리아는 입을 크게 벌렸다.
* * *
“결혼은 중대 사항이긴 하지.”
인정.
어, 인정.
검은 막대를 부러뜨릴 만한 일이지.
거기다 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안 남았으니까.
긴급한 사안이 절대로 맞았다.
“유희 벌써 드레스 구했으려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구했으리라.
하지만 코델리아는 그래도 유희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요정의 드레스는 좀 그러려나? 아예 천사들 옷은 어떨까?”
생각해 보니 유희는 이미 코델리아 계보의 천사이지 않은가.
“티아라도 준비할까? 아예 천계에서 천사들도 좀 데려오는 건 어때? 들러리도 시키고 축가도 부르게 하고. 응응,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쓰라고 있는 천사들이 아닌 것 같지만 코델리아의 뇌는 이미 축제 모드였다.
아니, 유더와 나타샤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 이미 코델리아의 머릿속 길드하우스에서는 여러 코델리아들이 활발히 의견을 내며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길드장! 결혼식은 야외에서 진행하죠!”
“비 오면 어떡하고?”
“날씨 조작하면 되지! 컨트롤 웨더 마법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겁니다!”
“그러네, 까짓거 그냥 조작하면 되겠지?”
“축가는 천사들보다는 가수들 부르는 게 어떨까요?”
“가수들? 아는 가수 없는데.”
“대신 돈이 있잖아요.”
“그것도 그러네.”
빈손으로 오긴 했지만 까짓거 천사들 부르면서 황금이나 보석도 좀 들고 오게 하면 되었으니까.
“아니, 잠깐. 진짜 천사들 부르자는 거야?”
구석에 앉아 있던 상식인 코델리아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나머지 모든 코델리아들이 왜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얼굴이 되었고, 상식인 코델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라, 라구엘도 부를까?”
“에이, 라구엘까지는 좀 아니지.”
“대천사는 무리니까. 그냥 권천사 아랫급으로 해서 부르자.”
“천국의 문을 열면 되겠지?”
코델리아들 간의 회의답게 점점 우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길드하우스에서 쫓겨나긴 싫었기에 상식인 코델리아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리고 현실.
자신만의 피버 타임에 들어간 코델리아의 상태를 잠시 점검한 유더는 입술을 삐쭉이며 툴툴거리고 있는 나타샤에게 물었다.
“그런데 좀 갑자기 아닌가?”
언제 결혼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나이들이- 정확히는 홍유희의 나이가 너무 어렸으니까.
‘물론 우린 더 어리지만.’
홍유희의 나이는 이제 스물둘이니 스물한 살인 유더와 코델리아보다도 연상이었지만 한국과 플레이아데스 사이에는 문화 차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한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스물둘은 확실히 결혼하기엔 좀 많이 이른 나이였다.
유더의 물음에 나타샤는 새삼 다시 입술을 삐쭉이더니 맥주 캔 하나를 새로 따며 말했다.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거든.”
“해야만 하는 이유?”
“응, 해야만 하는 이유.”
아직 어린 홍유희가 결혼해야만 하는 이유.
“잠깐, 설마?”
바로 그 순간이었다.
띵동-
맑고 청명한 초인종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