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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37화 (437/473)

엔딩메이커 436화

제17장 - Happily ever after #3

“코델리아 님!”

유더와 코델리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현관 앞에서 대기 중이던 홍유희는 환희에 찬 얼굴로 외치더니 바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 유희의 모습에 코델리아는 당혹스러워했지만 유더는 아니었다.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는 홍유희를 코델리아 교단의 교황으로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는 유희 옆에 멀뚱히 서 있던 강진호에게도 눈치를 주었다.

‘넌 안 해?’

분명히 전에 만났을 때 코델리아가 세례를 해주었는데 말이야.

유더의 눈치 주기에 강진호는 잠깐 움찔하더니 이내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그러니까 합장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몇 초.

결국 견디지 못한 코델리아가 홍유희를 일으켜 세운 뒤에야 두 사람은 집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 * *

거실에 자리를 잡자마자 코델리아는 유희를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근황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결혼식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천사들을 부를까 하거든?”

“네? 천사들이요?”

“어, 천계의 천사들. 너도 알지? 영웅전기에 나오니까. 라구엘 언니라든지?”

“라, 라구엘이요? 그 대천사?”

“어, 대천사. 나랑 좀 친한 언니거든.”

자주가 아니라 그렇지 일단 만나면 서로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사이니 친한 언니 맞으리라.

“그래도 라구엘 언니가 직접 오는 건 좀 힘들 거야. 대천사니까. 나처럼 아바타를 쓰면 모를까. 그래서 라구엘 언니 말고 그 밑에 천사들을 좀 부를까 하거든?”

“저, 저야 감사하죠.”

천사들이 결혼식을 축하하러 와준다니.

세상에 이런 결혼식이 또 있을까.

하지만 코델리아는 겨우 하객 수준에 만족하지 않았다.

“축가 부를 애들이랑, 들러리 할 애들이랑, 입장할 때 축복해 줄 애들이랑 해서 한 서른 명 정도만 부를게.”

“추, 축가요?”

“어, 축가. 아, 혹시 이미 축가 부를 사람 정해놨어?”

“그…… 나타샤 언니가 혜은 언니랑 같이 불러주기로 했어요.”

“그래? 그럼 더 잘됐네. 천사들이랑 합창시키자.”

코델리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고, 최애이자 모시는 신인 코델리아의 그 미소에 홍유희는 반항할 수 없었다.

‘미안, 언니들!’

천사들 사이에 껴서 축가를 부르는 기분이 어떠할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천사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김혜은과 나타샤의 모습이 쉬이 떠올랐지만 홍유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 코델리아와 홍유희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던 유더는 생각했다.

‘아무튼 코델리아가 즐거우면 된 거겠지.’

까짓 천사들 서른 명이 뭔가. 수백 명을 불러서 결혼식장을 꽉꽉 채워도 되지 않을까?

코델리아가 즐거워한다는데.

지극히 유더다운 생각을 한 유더는 옆을 돌아보았고, 지극히 강진호다운 생각- 즉, ‘홍유희가 즐거우면 된 거 아닐까?’ 하고 있는 강진호를 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자 일동이 이러고 있는 사이, 코델리아는 다시 새로운 화제를 꺼내 들었다.

“결혼식장은 어디로 했어?”

“그,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요. 야외 결혼식이에요.”

“오, 야외.”

“네, 그런데…… 그래서 좀 걱정이에요. 당일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야외 결혼식의 문제는 역시나 날씨였다.

결혼식의 특성상 적어도 몇 달 전에 미리 예약을 잡아놔야 하는 터라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비 안 와. 내가 누구? 태양의 신. 지구 쪽 태양의 신은 만나본 적 없지만 결혼식장에 비 안 오게 하는 것 정도로 뭐라고 하진 않을 거야. 응응.”

사실 국지적인 날씨 조작이야 그냥 컨트롤 웨더 마법만으로도 충분하고.

코델리아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호언장담하자 홍유희는 다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코델리아교의 신도인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덕분에 다소 민망해진 코델리아는 헛기침을 몇 번 토한 뒤 홍유희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런데 유희야. 웨딩드레스는 정했어?”

“네, 정했어요.”

결혼식 일주일 전이었으니까.

사실 아직도 웨딩드레스를 정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문제였으리라.

‘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정했다는데 그거 취소시키고 요정의 드레스를 줄 수는 없었으니까.

‘아니지, 그냥 취소시키면 되는 거 아닐까?’

유희 성격상 구매는 안 하고 대여한다고 했을 텐데.

까짓 위약금은 내면 그만인 거고.

코델리아는 여신의 화신인 동시에 유델리아 신성국의 왕이었다.

즉, 금전 감각이 제법 마비된 삶을 살고 있다는 소리였다.

“저기, 유희야 혹시…… 내가 웨딩드레스를 준비해 줘도 괜찮을까?”

“코델리아 님이요?”

“응, 유희한테 잘 어울리는 드레스가 하나 있거든. 아, 그렇다고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고. 나도 아직 유희가 고른 드레스 못 봤으니까. 그게 더 어울리거나 예쁘면 그대로 해도 돼. 그냥, 선택지를 하나 더 준다는 느낌?”

말하다 보니 이건 아닌가 싶어서 횡설수설한 코델리아였지만 홍유희는 홍유희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코델리아가 웨딩드레스를 준비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그녀였다.

“입을게요. 코델리아 님이 주신 드레스로 할게요.”

“아니, 그래도 일단 보기는 하고. 자.”

거기까지 말한 코델리아는 바로 내부 공간을 확장시킨 마법의 가방에서 요정의 드레스와 천계의 드레스를 꺼내 든 뒤 염동력으로 허공에 고정시켰다.

“어때?”

“와아…….”

코델리아의 물음에 홍유희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허공에 걸린 드레스들이 문자 그대로 광채를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어볼래?”

“그래도 돼요?”

“되고말고.”

안 될 게 뭐가 있담?

히히거리며 일어난 코델리아는 그대로 홍유희의 손을 붙잡고 안방으로 향했다.

드레스들은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따랐고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과 드레스 두 벌이 떠난 거실.

둘만 남게 된 유더와 강진호는 어색하게 서로를 돌아보았고, 이러나저러나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유더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축하한다.”

“그래. 고맙다.”

그리고 다시 대화의 단절.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안방 쪽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다시 유더 쪽으로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유더.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유더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고, 강진호는 숨을 한 번 크게 고른 뒤 유더를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너는, 나인가?”

여러 가지 의문들을 한 번에 꿰뚫는 단 하나의 답.

강진호의 물음에 유더는 쓰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굳이 부정하기에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타샤에게서 알아낸 건가? 직접 말했을 리는 없고. 추론의 시작이었나?”

나타샤의 존재.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떠나고 지구에서는 반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시간 동안 나타샤를 가까이서 관찰한 강진호였으니 어떤 식으로든 위화감을 포착해 냈으리라.

“네 말대로 나타샤가 시작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까?

강진호의 물음에 유더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숨기는 대신 슬쩍 안방 쪽을 돌아본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압축된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강진호는 팔짱을 낀 채 생각하는 표정이 되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지만, 애당초 눈앞에 네가 있는 마당이니 그냥 받아들여야겠지.”

눈앞의 유더가 진짜 유더 바이엘이라는 것은 이미 이전의 만남에서 확인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의 의문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에 불과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어.”

“스프링클러, 너희 맞지?”

코와붕가와 AAA에게도 일어난 스프링클러 사건.

유더는 이번에도 괜한 부정을 늘어놓는 대신 순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 우리 맞다. 정확히는 코델리아의 아이디어였지.”

코델리아 안에서 스프링클러는 이미 큐피드의 화살인 동시에 신이자 무적이었으니까.

유더의 대답에 강진호는 쓰게 웃더니 이내 편안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감사하다고 전해다오.”

“그래.”

스프링클러는 두 사람을 이어준 오작교 같은 존재였으니까.

만약 코델리아가 그런 강행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지금 같은 관계로 발전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터였다.

‘분명 둘 다 은근슬쩍 뺐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홍유희네 집 문을 망가뜨린 것도 역시 잘한 일이었고 말이다.

“그나저나 결혼해도 버튜버 일은 계속하는 건가? 너도 그 채팅방 관리? 그거 계속하는 거고.”

“계속해야지. 유희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벌이도 생각 이상으로 괜찮고. 나타샤 인기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해.”

나타샤가 나오는 날과 나오지 않는 날의 차이가 눈에 띄게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참에 아예 나타샤를 따로 독립시킬 계획을 짜고 있는 강진호였다.

“왜 그러지?”

“아니, 그냥. 강진호가 채팅방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게…… 평화로우면서도 뭔가 재밌다고 해야 하나.”

분명 강진호의 기억도 가지고 있고, 현대 문물에 대한 지식도 있는 유더였지만 그래도 한계라는 것이 있었다.

버튜버라는 건 사실 아직도 좀 낯설었고, 채팅방 관리 역시도 비슷했다.

어린 시절부터 전장을 누빈 강진호가 지금은 채팅방 관리라니.

둘 사이에서 오는 갭에 위화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유더의 발언에 강진호는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나도 네 앞이니 하는 이야기지만 채팅방 관리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어디까지 봐주고 어디까지 쳐낼 것인가. 선을 정하는 게 쉽지 않단 말이지. 감정적으로 하면 안 되니까.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뭔가 그럴싸한데?”

“그럴싸한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일이다.”

엄격하게 말한 강진호는 다시 한번 강조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팔짱을 풀며 물었다.

“교황 일은 어떻지?”

“좋지. 신나지. 그냥 코델리아 덕질만 하루 종일 해도 되는 일이니까.”

“……교황이 맞는 거지? 아니, 그 전에 내가 맞는 건가?”

“어, 너 맞아요. 자기보다 아홉 살 어린 여자애 놀리는 데 목숨 걸고 게임하던 너요. 너.”

유더의 자아비판성 죽창에 강진호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지만 이번에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는 작게 웃더니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어쩐지 알 것 같군. 이제 다른 사람이야.”

유더와 강진호는 더 이상 동일 인물이 아니다.

유더 역시 동의한다는 듯 쓰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다른 사람이지. 근본이 같을 뿐…… 나는 강진호에서 다시 20년의 인생을, 그것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의 20년이 더해진 인간이니까. 기억을 각성한 열일곱 살 이전의 삶도 완전히 달랐고. 이건 코델리아도 마찬가지야. 애당초 유전자 레벨에서도 우린 다른 사람이고.”

이미 같지 않다.

타인이다.

유더의 선언에 강진호는 섭섭함보다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랬기에 훨씬 더 편안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여러 가지로 고맙다.”

“그래, 고마우면 나타샤한테도 좀 잘해주고.”

“너로 따지면 마이아 같은 사람이니까?”

“그래, 마이아.”

새삼 마이아의 얼굴을 떠올린 유더가 푸근한 표정이 되자 강진호는 호기심이 인다는 듯 소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마이아는 그 세계에서 어떻게 살고 있지?”

“시종장 일을 하고 있어. 달리아는 기사단장이고.”

강진호와 홍유희로 따지자면 나타샤와 김혜은 같은 두 사람.

그리고 유더의 이야기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유더의 마이아 자랑을 계속해서 듣던 강진호는 이야기가 잠시 끊어진 틈을 타 질문을 던졌다.

“저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 물어.”

“나랑 유희도 플레이아데스에 가볼 수 있나?”

약간의 긴장과 두근거림이 섞인 물음에 유더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가능해.”

“그럼…… 신혼여행지로 부탁해도 되겠나?”

강진호답지 않으면서도 강진호다운 물음에 유더는 이번에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짜라자잔!”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코델리아가 안방 문을 열었고, 요정의 드레스를 입은 홍유희가 수줍은 미소를 띤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등장에-

‘역시, 나야.’

눈을 반짝반짝 빛내다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진호를 본 유더는 생각했고, 다시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무척이나 맑고 좋은 날.

강진호와 홍유희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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