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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38화 (438/473)

엔딩메이커 437화

제17장 - Happily ever after #4

기상청에서는 폭우를 예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하늘에 우산이라도 생긴 것처럼 결혼식이 펼쳐지는 호텔 인근만 맑고 쾌청했고, 일정 경계 너머부터는 정말로 폭우가 쏟아졌다.

이상기후.

하지만 코델리아는 누구보다 뿌듯한 얼굴로 하늘을 보더니 으쓱으쓱 어깨춤을 추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많이 칭찬해 주었다.

결혼식 하객은 그렇게까지 많진 않았다.

홍유희의 부모 쪽 지인들 외에는 딱히 부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하느라 자발적 아싸가 된 홍유희의 지인들은 채팅방 멤버들이 전부였고, 강진호의 지인들은 나타샤와 버튜버 쪽 관계자들 정도가 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결혼식 직전이 되자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하객들이…… 밀려온다?’

사실 밀려온다까지는 과장이었고, 수십 명 정도가 추가된 정도였지만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몰려온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죄다 외국인- 즉,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들 예뻐. 모델 회사에서들 나온 거야?’

축의금을 받던 홍유희의 사촌오빠 홍찬희(25세, 대학생)는 갑자기 나타난 미남미녀들의 홍수에 당혹감을 느꼈지만 차라리 이쪽은 기분 좋은 당혹감에 가까웠다.

연이어 밀려온 당혹감은 두려움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여기에 돈을 넣으면 되는 건가?”

딱딱한 물음에 홍찬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씩 영화나 미드에 나오는 어색한 한국어처럼 발음이 기묘했지만 웃기기는커녕 무섭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선 남자 자체가 실로 무시무시했으니 말이다.

키는 2미터 남짓.

정장이 터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의 근육질 몸매.

거기에 선글라스를 낀 얼굴 곳곳에는 무시무시한 흉터가 자리했는데, 가장 두려운 것은 남자가 뿜어내고 있는 분위기 그 자체였다.

가까이하면 안 되는 사람.

무지무지 위험한 사람.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남자를 시작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하객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아까는 모델 회사더니 이번에는 어디 용병회사에서들이라도 나온 것일까.

‘정답.’

붉은 드레스를 입은 나타샤는 빙긋빙긋 웃으며 축의금을 내고 오는 하객들을 강진호와 함께 맞이했다.

“나타샤, 이렇게들 불러도 되는 거야?”

“뭐가 문제야? 은퇴한 지 오래되었고, 우리랑 원한 살 만한 조직은 다 박살이 났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더욱이 애당초 은퇴할 때부터 딱히 신원을 숨기거나 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노!”

“베르트랑.”

프랑스 남자가 활짝 웃으며 다가오자 가벼운 포옹을 한 강진호는 결국 미소를 지었다.

이러나저러나 오랜만에 본 전우들이 반가웠기 때문이다.

“나타샤! 어떻게 지냈어? 사이버 창녀가 되었다는 게 사실이야?”

“풉! 미,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버, 버튜버는 그런 게 아니거든? 아, 아니. 그 전에! 누가 말해준 건데? 어?!”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진 나타샤가 다급히 캐묻자 베르트랑은 낄낄낄 웃더니 휴대폰으로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언제 어디서든 나타샤를 수치사시킬 수 있는 영상 가운데 하나인 ‘타냐 눈나의 매도 스페셜’이었다.

“이거 나타샤 맞지?”

나타샤를 보아온 세월이 몇 년이던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캐릭터 모델링도 은근 나타샤를 닮았고 말이다.

“아, 아니, 으…… 제, 제발. 멈춰줘. 내가 잘못했어요. 네?”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며 매도 멘트를 입 밖에 내고 있는 타냐 눈나를 본 나타샤는 순간적으로 뇌가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쩔쩔매며 애원했고, 베르트랑은 정보부 출신 남자답게 그런 나타샤의 모습을 또 다른 폰으로 기록하는 동시에 영상을 멈추었다.

“아무튼 둘 다 좋아 보이네. 은퇴하고 잘 사나 봐.”

사실 나타샤가 처음 은퇴한다는 말을 했을 때는 지노와 나타샤 두 사람의 결혼식에 초청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했던 베르트랑이었다.

그런데 설마 지노가 정말로 평범한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될 줄이야.

베르트랑은 상식인이었고, 상식인답게 자기는 둘이 결혼할 줄 알았느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다시 한번 두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축하한 뒤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허억…… 헉…… 베르트랑 나쁜 놈. 다시는 영상을 못 보게 해야지. 전부 차단 먹일 거야.”

빨개진 얼굴을 달래기 위해 나타샤가 열심히 손부채질을 하며 말하자 강진호는 작게나마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의 나타샤였다면 ‘평소에 무슨 영상을 보길래 그게 알고리즘에 뜨는 거야? 어?’ 하며 역으로 베르트랑을 몰아붙였을 터인데 그런 생각은 조금도 못 하는 걸 보니 정말로 당황한 모양이었다.

‘애당초 처음엔 어떻게 찍게 된 걸까.’

타냐 눈나의 매도 스페셜.

하지만 의문의 시간은 짧았다.

이러나저러나 요즘도 나타샤 방송의 메인 테마는 매도하며 부끄러워하는 타냐 눈나였으니 말이다.

‘이게 돈의 힘인가.’

강진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새로운 하객들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용병 시절에 함께 싸운 전우들이었다.

코델리아가 불러온 천사들과 나타샤가 불러온 용병들.

평범한 하객들의 시선을 잡아끈 두 세력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자 홍찬희는 새삼 안도의 숨을 토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뭔가 폭풍 같았지만 이젠 다 지나간 거 같네.’

결혼식 시작까지 이제 3분 남짓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인사를 받기 위해 나와 있던 강진호는 물론이고 홍유희의 부모님들도 식장 안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다가온 커플의 등장에 홍찬희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더와 코델리아였기 때문이다.

‘뭐, 뭐지?’

코스프레?

홍유희의 부탁에 못 이겨 몇 번인가 노란폭풍의 대리 플레이까지 했던 홍찬희였기 때문에 영웅전기2에 대해서는 제법 잘 알고 있었다.

홍유희의 최애캐인 코델리아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못해 집에 피규어도 있을 정도였고 말이다.

그런데 코델리아가 나타났다.

게임 화면과 실사 사이의 차이 정도는 가볍게 씹어 먹을 정도로, 그냥 코델리아라는 생각밖에 떠올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미녀가 나타났다.

그것도 옆에는 유더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검은 머리칼의 미남을 대동한 채로.

‘뭐야. 뭐지? 깜짝 이벤트인가? 유희 결혼식을 위해 준비한 배우들인 건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랬다.

하지만 홍찬희는 자꾸만 그 현실적인 생각을 부정하고 싶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야성의 직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냥 눈앞의 두 사람이 너무 굉장했기 때문이다.

‘배우가 아냐.’

배우가 아니었다.

배우였다면 이미 세계를 씹어 먹은 월드 스타가 되었을 게 분명한 두 사람이었다.

그러면 누구인 걸까.

설마 진짜 유더와 코델리아인 것은 아닐까?

“여기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코델리아가 내민 축의금 봉투를 받아 든 홍찬희는 다시 한번 놀랐다.

코앞에서 본 코델리아의 미모가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찬희였다.

홍유희의 사촌오빠인 그는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나름 정상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아, 네네. 감사합니다.”

여전히 넋이 나가 있긴 했지만 봉투도 제대로 받고 감사 인사도 했으니까.

코델리아는 그런 홍찬희의 모습에 작게 웃더니- 그 미소를 보고 홍찬희는 다시 한번 넋이 나갔지만 - 이내 살짝 윙크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찬희 오빠.”

“……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찬희 오빠?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아니, 단순히 이름을 아는 게 아닌데.

방금 어조와 모습은 분명 아는 사람이라는 건데.

홍찬희가 다시 한번 놀라운 야성의 직감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의 머리 한구석은 당혹과 놀라움과 부끄러움과 기타 등등의 감정으로 폭주 상태였기에 제대로 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그사이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식장 안으로 유유히 들어섰고 말이다.

“음, 마음에 들어.”

야외식장의 하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그냥 평범한 하객들.

코델리아가 불러온 천사들.

나타샤가 데려온 용병들.

평범한 하객들 사이에 앉아서 천사들 구경하기 바쁜 코와붕가 일행을 살펴본 코델리아는 쿡쿡 웃다가 식장 안쪽을 돌아보았다.

사회자 자리에는 나타샤가 서 있었고, 양가 부모님의 자리에는 홍유희의 부모님과 처음 보는 외국인 여성이 앉아 있었다.

워낙 동안이라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사십 대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 붉은 머리의 여인.

누구냐고 묻기 위해 고개를 든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유더의 얼굴에 그리움과 당혹감이 동시에 일었기 때문이다.

“……레이첼이야.”

“레이첼?”

“알렉세이의 연인…… 이었던 사람. 나한테 첩보 관련 기술과 연기를 가르쳐 준.”

유더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그리움이 묻어났다.

레이첼과 함께한 시간은 고작해야 2년 남짓에 불과했지만, 잊을 수 없는 2년이었기 때문이다.

“살아 계셨구나.”

“……만나보지 않아도 돼?”

“괜찮아. 나중에 인사나 한 번 하지 뭐.”

짐짓 태연히 답한 유더는 에스코트하기 위해 잡은 코델리아의 손에 살짝 힘을 주었고, 코델리아는 사회자석에 자리한 나타샤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강진호의 마이아.

강진호의 가족.

“시작한다.”

유더의 말대로였다.

나타샤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와 함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 * *

결혼식은 문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주례 없이 진행된 터라 길고 긴 주례사 대신 다채로운(?) 이벤트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 이벤트들 하나하나가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로 진짜 천사들의 합창이니까.’

코델리아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특수훈련을 받은 천사들이었다.

결혼식 축가부터 시작해 아이돌 댄스까지 마스터한 천사들의 축하 공연은 문자 그대로 이 세상 공연이 아니었고, 하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부케를 받은 건 나타샤였다.

본래는 AAA- 그러니까 유가영이 받을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분 강풍과 여러 가지 실수가 겹쳐서 땅에 떨어지려던 것을 우연히 근처에 있던, 그리고 남다른 운동신경을 가진 나타샤가 잡아챈 것이었다.

“세상이 잔인하네.”

나타샤가 우수에 찬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린 것을 들은 것은 다행히 유더와 코델리아뿐이었다.

나타샤는 이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들었고, 결혼식은 마지막 수순에 접어들었다.

“가자.”

“응, 가자.”

지금까지는 뒤로 물러서 있었지만 마지막 사진에는 등장해 줘야 했으니까.

유더와 코델리아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이- 워낙에 극성인 딸 덕분에 유더와 코델리아에 대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던 홍유희의 부모님을 포함해 - 당황했지만 유더는, 특히 코델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홍유희가 활짝 웃으며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하해, 유희야.”

“네, 코델리아 님.”

요정의 드레스를 입은 홍유희는 정말로 요정 같았다.

그랬기에 코델리아는 활짝 웃으며 홍유희의 어깨를 안았고, 자연스럽게 유더는 강진호의 옆에 자리하게 되었다.

“축하한다.”

“고맙다.”

약간 딱딱하지만 훈훈한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정면을 보았고, 강진호와 홍유희의 바로 뒷자리에 자리한 나타샤는 다시 한번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네 시간 뒤.

결혼식을 마친 강진호와 홍유희는 여행 가방을 든 채 나타샤의 거실에 자리했고, 그런 두 사람 뒤에는 똑같이 여행 가방을 든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타샤와 김혜은과 코와붕가와 AAA.

그리고 그 모두를 마주하고 선 유더와 코델리아의 등 뒤에는 커다란 공간의 문이 열려 있었다.

“신혼여행을 플레이아데스로 가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잔뜩 흥분한 홍유희의 목소리에 활짝 웃은 코델리아는 나머지 일행들을 살펴보았다.

김혜은과 코와붕가, AAA는 영웅전기 덕후들답게 플레이아데스로의 여행에 문자 그대로 전율하고 있었고, 나타샤는 언제나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도도하게 서 있었다.

‘마이아를 한번 보고 싶어.’

나타샤가 플레이아데스로 향하는 이유.

물론 그것만은 아닐 터였다.

채팅방 멤버들과 무척이나 친해진 그녀였으니, 이런 여행 자리에 빠질 수 없었으리라.

“준비되었으면 출발할까?”

유더의 물음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고, 코델리아는 빙긋빙긋 웃으며 공간의 문을 가동시켰다.

플레이아데스로의 신혼여행.

유더와 코델리아가 가장 먼저 들어섰고, 강진호와 홍유희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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