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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39화 (439/473)

엔딩메이커 438화

제17장 - Happily ever after #5

세상 간 이동은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제일 먼저 공간의 문을 빠져나온 유더와 코델리아는 모두를 마중하듯 공간의 문 양옆에 각기 자리하였고, 강진호와 홍유희, 나타샤와 김혜은, 코와붕가와 AAA순으로 일행들이 한 쌍씩 플레이아데스에 발을 디뎠다.

“우와아…… 여기가 플레이아데스인 거예요?”

홍유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묻자 유더가 바로 답했다.

“네, 그중에서도 유델리아 신성국의 왕궁입니다.”

외신 전쟁도 벌써 1년 전의 일이었다.

유더는 왕궁을 복구시키는 김에 아예 과감한 증개축 공사를 진행했고, 지금 자리한 이곳은 그렇게 하여 탄생한 공간의 문 전용 홀이었다.

천장 높이만 10미터에 육박하는 원형의 홀.

새하얀 벽면에 금색 장식들이 들어간 홀을 둘러보며 감탄을 토하던 홍유희는 천장을 올려다본 순간 비명을- 아니, 꺄- 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우와! 저, 저거?!”

놀란 것은 뒤이어 들어온 코와붕가와 AAA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천장에는 코델리아와 천사들의 성화가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

코델리아 덕후인 홍유희는 뺨을 발갛게 붉히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고, 코와붕가는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두 팔을 벌린 채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코델리아와 그 곁에 자리한 마이아와 달리아와 여러 천사들.

“시스티나 천장화 뺨치겠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예술적 가치나 심미적 우수함은 둘째치고 일단 스케일 하나만큼은 절대 밀릴 것 같지가 않았다.

나타샤조차 멍한 얼굴로 순수한 감탄을 토하자 유더는 마치 해냈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고, 코델리아는 새삼 입술을 깨물며 부끄러움을 견뎌냈다.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신선한 반응들과 함께 보니 새삼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보며 다시 한번 천장화를 만든 보람을 느꼈고 말이다.

“유델리아 신성국은 태양의 신이시자 아름다움의 여신이시며 마법과 사랑의 여신이신 코델리아 님을 모시는 나라입니다. 왕궁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에 코델리아 님의 굿즈가- 아니, 코델리아 님의 신상과 성화가 가득한 땅이죠.”

일부러다.

일부러 굿즈라고 했다가 정정한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굿즈라는 말에 홍유희가 바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오빠, 정말 천국 같은 곳이에요.”

“……대단하긴 하네.”

정말 유더가 자신이 맞는 것일까 잠시 고민한 강진호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리미트가 풀린 강진호 자신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장화만큼이나 아름답고 웅장한 - 코델리아의 흉상이 문 위에 달려 있는 - 문이 양옆으로 열리더니 여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정히 정리한 은빛 머리칼과 온몸을 빈틈없이 에워싼 것 같은 새카만 드레스.

목과 쇄골 언저리에는 하얀 천이 덧대어져 있었는데, 황금으로 장식된 푸른색 브로치가 한가운데 자리해 자연스러운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역시나 얼굴이었다.

단아하면서도 무표정한,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까지 더해져 차갑다는 느낌마저 드는-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은발의 여인.

“마이아?”

가장 먼저 말한 것은 강진호였고, 뒤늦게 은발의 여인이 마이아임을 알아본 채팅방 멤버들은 다들 저마다의 방법으로 감탄을 토했다.

“와, 엄청 예뻐. 아니, 본래도 예쁘긴 했는데 이 정도였어?”

김혜은은 깜짝 놀라 연신 눈을 깜박였고, 코와붕가는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AAA 유가영 역시 감탄을 거듭했고 말이다.

그리고 나타샤.

유더의 나타샤를- 마이아를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그녀는 여러 가지 의미로 감탄을 토했다.

‘역시, 운명인가.’

솔직히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것 같은, 저렇게 예쁜 여자 밑에서 자랐는데도 코델리아에게 완전히 빠져든 걸 보면 진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물론 홍유희가 들었다면 아닌데, 코델리아 님이 훨씬 더 예쁜데, 누가 봐도 그런데-라며 툴툴거렸겠지만 나타샤의 기준으로는 마이아 쪽이 코델리아보다 미인이었다.

조형적으로 좀 더 취향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되었든 일행들 모두가 호들갑을 떨며 미모에 감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아는 당황하거나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대신 얼음여왕이란 이명답게 단정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런 마이아를 보며 유더는 생각했다.

‘진짜로 익숙해졌구나.’

1년 전이었다면 아무리 마이아라 한들 지금 같은 원색적인 반응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겠지만 벌써 1년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미의 천사로서 지금 같은 반응을- 그러니까 언니 예뻐요! 하는 반응을 사시사철 겪다 보니 외모 칭찬에 내성이 생긴 마이아였다.

‘물론 그렇다고 완벽한 내성은 아니지만.’

요즘도 달리아가 예쁘다고 칭찬하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고는 했으니까.

어찌 되었든 침착함을 유지한 마이아는 그대로 발걸음을 내디뎌 유더와 코델리아 곁으로 다가오더니 가볍게 예를 표하며 물었다.

“도련님, 손님들이신가요?”

“어, 미안. 미리 말을 못 했어.”

지구로 갈 때까지만 해도 강진호와 홍유희의 결혼식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두 사람의 신혼여행지를 플레이아데스로 정할지도 몰랐고 말이다.

유더의 사과에 마이아는 괜찮다는 듯 작게 미소를 지으며- 그리고 그 미소에 다시 채팅방 멤버들이 소리 없는 호들갑을 떨었다. -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채팅방 멤버들 쪽으로 돌아선 마이아는 우아하게 예를 표했다.

“신성국의 시종장인 마이아 탄탈롯입니다. 교황 성하와 여신의 화신님께서 초빙하신 손님들께 예를 표합니다.”

허리와 목을 가볍게 숙임과 동시에 치맛단을 살짝 들어 올리는 그림 같은 인사에 홍유희는 다시 한번 꺄- 하고 작은 탄성을 토했고, 너무나 흥분한 코와붕가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와…… 진짜 얼음여왕님이야.”

유더 루트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NPC는 누가 뭐라 해도 마이아였다.

안 그래도 예쁜 외모 덕분에 팬이 많은 그녀였는데, 코와붕가는 팬아트도 여러 장 그릴 정도로 나름 마이아의 팬이었다.

그런 코와붕가의 감탄에 코델리아는 흐흐흥 웃더니 검지를 까딱이며 조금은 으스대는 어조로 말했다.

“아닌데, 아닌데. 마이아가 웃으면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데.”

예쁜 건 알겠는데 귀엽다는 건 무엇일까.

일행은 모두 귀엽게 웃는 마이아를 상상하며 그녀 쪽을 보았지만 마이아는 어림도 없다는 듯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유더에게 물었다.

“손님들을 숙소로 모실까요?”

마이아의 물음에 유더는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을 감지하였다.

유더의 신성인 검은 짐승이 지금이 달이 밝은 밤임을 알려주었다.

그것도 한밤중 말이다.

‘진짜 숙소부터 잡아줘야겠네.’

애당초 짐도 좀 풀어야 했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마이아에게 말했다.

“별궁을 부탁할게. 그리고…… 달의 방을 준비해 줘.”

‘달의 방’이란 말에 마이아의 눈에 잠시 이채가 어렸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직접 데려온 손님들인 만큼 귀빈인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달의 방’을 내줄 정도의 손님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갈 거야. 달의 방은 코델리아가 직접 꾸미고 싶어 해서. 일단 일행들은 나랑 코델리아가 직접 안내할게.]

메시지 마법으로 전해진 유더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 마이아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숙소에 짐을 옮겨두겠습니다. 혹시 특별히 당부하실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네? 어…… 괜찮아요. 저는.”

“저도.”

“저도요.”

코델리아를 필두로 모두가 동의하자 마이아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종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정장을 입은 집사들이 소리 없이 나타나 마이아의 옆에 도열했다.

“진짜 무슨 로판이나 순정만화 속 세상 같아.”

김혜은이 작게 중얼거리는 동안 집사들은 숙련된 동작으로 짐들을 챙겼고, 마이아는 다시 한번 일행에게 예를 표한 뒤 집사들과 방을 나섰다.

“자, 그럼 이제 가볍게 관광 좀 하다 숙소로 가죠.”

“관광이요?”

유더의 말에 홍유희가 되묻자 유더는 속이 까만- 하지만 동시에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우선은 코델리아 홍보관이 어떨까요.”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가 순간 흠칫하며 유더의 팔을 붙잡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홍유희의 눈이 문자 그대로 초롱초롱 빛났기 때문이다.

“빠, 빨리 가요. 네?”

“네, 모시겠습니다.”

유더는 후훗 웃으며 앞장섰고, 코델리아는 울상을 지었지만 너무나 좋아하는 홍유희의 모습에 울상을 지으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진짜 중증이군.’

코델리아 홍보관.

이름 그대로 코델리아를 홍보하기 위한 장소에 도착한 강진호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는 유더를 참으로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게 진짜 내가 맞나.

아무리 리미터가 풀려도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코델리아 홍보관에는 그야말로 코델리아가 가득했다.

벽면에는 성화가 끝도 없이 이어졌고, 홍보관 곳곳에는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생한 조각상들이 가득했다.

“와, 이거 라이제강이랑 싸우는 장면이죠?”

“네, 맞습니다. 코델리아는 1레벨 마법사일 때도 용감하게 라이제강에게 맞섰었죠.”

흉포하기 짝이 없는 데몬프린스 라이제강을 마주한 채 태양의 신성을 발하는 코델리아를 묘사한 성화 앞에서 유더와 홍유희는 서로 공명하였고, 코델리아는 머리칼을 잡아당기며 괴로워했다.

“오, 이건 말레키스인가?”

“루카스도 있어.”

영웅전기2 덕후들답게 성화만 봐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바로바로 알아내는 채팅방 멤버들이었다.

코델리아와 함께 마인 미노스에 맞서고 있는 루카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김혜은은 참으로 덕후스러운 고양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채팅방 멤버들 모두는 김혜은이 무슨 상상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메이드복을 입고 안경을 쓴 루카스를 상상하는 것이 분명했다.

‘역시 멀쩡해 보이지만 남만고양이도 덕후는 덕후란 말이지.’

쓰게 웃은 유더는 다시 일행을 안내함과 동시에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는 코델리아를 만끽하였다.

“란디우스도 보고 싶다. 카마엘이랑 레나도.”

“어, 맞아 나도.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여기는 전부 살아 있다고 했지?

어째서 NPC들로는 룩덕질을 할 수 없냐며 울부짖던 김혜은의 중얼거림에 AAA가 작은 목소리로 동의했다.

채팅방 멤버들 모두는 너무나 당연히 영웅전기 1편을 모두 몇 번씩 클리어했는데, 김혜은과 AAA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란디우스와 카마엘이었다.

김혜은의 경우에는 란디카마 팬픽도 몇 편 쓸 정도였고 말이다.

“아, 진짜 궁금하다. 만날 수 있겠지?”

김혜은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본 유더는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지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녀의 상상을 초월한 란디우스를 마주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한 시간여.

코델리아가 부끄러움 때문에 탈진할 것 같은 시간이 지나자 유더는 일행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 뒤 각자 숙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전 잠깐 실례할게요.”

식당에서 헤헤 웃으며 인사한 코델리아가 갑자기 빠지자 잠시 당황한 일행이었지만 말 그대로 잠깐일 뿐이었다.

유더가 그대로 남은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와! 달리아!”

“머리가 길어! 그리고 완전 예뻐!”

나름대로 소리 죽여 감탄한 코와붕가와 AAA였지만 천사가 되면서 인간을 초월한 감각을 지니게 된 달리아에게는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너무나 잘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달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고,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던 마이아는 속이 까마면서도 흐뭇한, 상쾌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치 유더처럼 말이다.

‘맞네. 마이아가 유더 키운 거.’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하지만 알 것도 같다는 미소를 지은 나타샤는 집사가 따라준 웰컴 샴페인을 마시며 식사와 담소를 즐겼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남짓이 지난 뒤.

“별궁으로 모시겠습니다.”

마이아와 달리아가 채팅방 멤버들을 이끌고 별궁으로 향했다.

강진호와 홍유희만 남겨둔 채 말이다.

“두 사람은 제가 따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 같이 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두 분의 신혼여행이니까요.”

유더의 말에 방금까지만 해도 수학여행 온 여고생처럼 들떠 있던 홍유희가 뺨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유더의 말마따나 신혼여행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방을 준비했습니다.”

신성궁에는 유더와 코델리아의 침실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달의 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왕궁의 중심에 위치한 태양의 방이었다.

홍유희는 앞장서서 걷는 유더를 따르며 강진호의 손을 꼭 움켜쥐었고, 강진호는 그런 홍유희의 손을 감싸주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방에 도착하자-

“와아…….”

플레이아데스에 도착한 이후 연신 감탄을 토한 홍유희였지만 지금의 감탄은 이전과는 결이 다소 달랐다.

단순히 기쁨을 넘어 어마어마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리로 된 천장을 통해 밤하늘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달의 방위로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발했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는 빨간 장미 꽃잎이 가득했고, 방의 중심에는 분홍빛 장막이 드리운 커다란 캐노피 침대가 자리했다.

정말로, 정말로 큰 캐노피 침대.

강진호는 광활한 침대를 보며 맨손 체술을 연마하던 유도장을 떠올렸고, 코델리아는 어린 시절에 몇 번이나 본 동화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마치 안개처럼 은은한 연기가 바닥에 깔려 있었고, 달콤함이 더해진 장미꽃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계곡물 소리.

그랬다.

달의 방에는 정말로 계곡이 있었다.

잘 만든 분수의 일종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온수가 흐르는 계곡이 있었고, 계곡의 물은 커다란 캐노피 침대 주위를 휘감아 마치 얕은 해자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강진호는 생각했다.

과하다.

하나하나가 존재감이 강한 요소들인데 한데 모아두니 너무 과한 느낌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유희 취향이야.’

그야말로 유희에 의한, 유희를 위한, 유희의 신혼방.

아까 코델리아가 어딜 가나 했더니 이 방을 꾸미느라 식사 모임에서 빠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 만에 이게 가능하다고?’

다른 건 몰라도 계곡은 힘들 거 같은데.

혹시 애당초 달의 방에 계곡이 있던 것은 아닐까?

‘정답.’

강진호의 표정만 봐도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간파할 수 있는 유더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애당초 이 방은 코델리아에 의한, 코델리아를 위한, 코델리아의 침실이었으니 말이다.

‘애당초 코델리아가 유희니까.’

좋아하는 것도 대충 비슷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코델리아는 그야말로 홍유희가 상상하는 최고의 신혼방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즐거운 시간 후후훗 되시기를 헤헤헷.”

차분하고 단정한 유더와 아저씨 같은 웃음을 흘리는 코델리아는 빠르게 인사한 뒤 방을 나섰고, 강진호와 홍유희는 어어어 하다 보니 어느새 방 안에 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1초, 2초, 3초.

“유희야.”

“오, 오빠.”

“어, 먼저 말해.”

“오빠 먼저.”

연속해서 말이 겹친 두 사람은 민망해했지만 이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 그럼 같이 씻을까요?”

홍유희가 당돌함과 부끄러움을 담아 계곡을 가리키자 강진호는 흠흠 헛기침을 토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도청이나 감시 장치가 없는지 확인부터 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로 분위기를 깰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같은 시각, 태양의 방.

“헤헤헤, 침대에 누우면 깜짝 놀라겠지?”

“놀라겠지. 특히 강진호가.”

캐노피 침대 천장에는 스프링클러가 달려 있었으니까.

쿡쿡 웃은 유더는 달의 방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수정구 위에 하얀 천을 덧씌웠고, 코델리아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천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잘 자, 유더야.”

“응? 무슨 소리야. 오늘 잠 안 잘 건데.”

“어?”

“우리도 아직 신혼이잖아?”

유더는 말했고,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는가 싶더니 눈을 흘기며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밤, 유더는 늘 그랬듯이 검은 짐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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