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47화
SS #36 레지나 바이엘(8)
여신의 화신.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태양과 마법, 사랑과 미의 여신인 코델리아의 지상대행자.
재앙전쟁과 외신전쟁에서 플레이아데스를 수호한 구세의 대영웅.
그녀의 이름 앞에서 인세의 권위 따위는 무의미했다.
설사 그것이 대륙 양강에 속하는 세일룬 왕국과 아르곤 제국의 것이라 한들 말이다.
궁내부원들의 합창에 뒤를 잇듯 거대한 홀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마침 곡이 한 번 끝나 춤추던 이들도 멈춰 선 상태였기에 홀 안에 있던 이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천천히 열리는 문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레지나도 같았다.
가슴에 올린 손 너머에서 흥분과 열망과 기대로 날뛰기 시작한 심장의 고동을 고스란히 느낀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300주년 기념 무도회.’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 치러진, 지금은 전설이 된 그날의 행사.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지만 레지나는 300주년 무도회 때의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레지나에게는 평생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게까지 길지 않은, 십여 년 전의 일이었기에 직접 참석하거나 기억하는 이들도 많았고, 300주년 기념 무도회를 주제로 한 동화나 연극 역시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코델리아교의 성경에도 화려한 삽화와 함께 300주년 기념 무도회 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날의 코델리아가- 여신의 화신께서 얼마나 아름다우셨는지에 대한 기록이 아예 챕터 하나를 통으로 할애할 정도로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코델리아 언니가 들어선 순간 음악이 멎었어.’
압도적이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한 코델리아의 미모가 그렇게 만들었다.
무도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물론이고 음악을 연주하던 악사들과 시중을 들던 사용인들까지도.
어느 누구 하나 코델리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입을 열어 무어라 감정을 토해내는 것 역시 하지 못했다.
코델리아는 그저 웃으며 걸었고, 그것으로 인파의 벽이 갈라져 길이 만들어졌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넋을 반쯤 놓은 채 코델리아를 바라보던 유더는 어느 순간 눈앞의 여인이 자신의 약혼녀이자 평생의 반려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사실에 감사하며 그녀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시작된 두 사람의 춤.
음악이나 반주 없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도회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환상의 시간.
성경에 기록되어 있던 문장들을 하나하나 떠올린 레지나는 주먹을 꼭 움켜쥐고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직후, 십여 년 전의 사람들이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열린 문 너머에 빛이 있었다.
여신의 화신.
아니, 여신 그 자체.
지상에 내려온 태양.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십여 년 전과 달리 태양의 곁에는 달이 함께하고 있었다.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코델리아교의 교황.
신성국 유델리아의 국왕인 동시에 세계 최강의 검호- 지평에 도달한 자.
이번에도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제대로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울 지경이었다.
입은 듯 입지 않은 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순백의 드레스를 걸치고 빛의 날개를 펼친 코델리아의 머리 위로 헤일로가 빛났다.
분홍빛 머리칼 사이에 자리한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에는 태양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밤의 신과도 같은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를 에스코트했다.
두 사람은 소리 없이 홀의 중심으로 향했고, 모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뒤로 물러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춤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그 어떤 음악도 없이, 하지만 사무칠 만치 아름답게.
“이번에도 주인공은 저 두 사람이네.”
정신을 수습한 사자의 여왕- 다프네가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녀의 성인식이 있었던 300주년 기념회도 그랬는데, 대관식이 있음 이번 기념회도 그러했다.
주인공은 다프네 자신이 아닌 눈앞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었으니까.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들이기에 앞서 몇 번이나 왕국을- 다프네 자신과 소중한 이들의 목숨을 구해준 환상의 커플이었으니까.
다프네가 손가락을 놀리자 디온이 마법을 펼쳤고, 덕분에 황홀한 와중에도 그럭저럭 정신을 차린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레지나는 뺨을 발갛게 상기시킨 채 열기를 띤 눈으로 두 사람의 춤을 바라보았다.
천 명도 넘는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서로만을 바라보며 둘만의 세계에 빠져들 따름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금방이라도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유더와 코델리아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레지나는 정말로 숨이 멎을 뻔하였다.
어렵사리 이어지던 악단의 연주도 다시 한번 어긋나더니 그대로 끊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이번에도 개의치 않았다.
열정적인 입맞춤을 마친 두 사람은 웃으며 주변을 돌아보았고, 작은 박수 소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고요 속에 퍼져나갔다.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익숙한 두 천사들의 박수였다.
이내 박수는 다프네 여왕의 손에서도 이어졌고, 서서히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동참하니 순식간에 홀 전체를 뒤흔들 것 같은 박수갈채가 되었다.
“다프네 전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어느새 단상 앞에 다가선 두 사람이 그리 말하자 다프네 왕은 몸소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두 사람에게 예를 표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프네 님의 즉위식이니까요. 당연한 일이죠.”
코델리아의 미소에 다프네 왕은 부드럽게 웃었고, 그 순간 다시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여신의 화신이 세일룬 왕국의 새로운 국왕을 축복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가끔 믿기지가 않아.’
저 두 사람이 우리 오빠랑 언니라니.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단상 쪽을 바라보던 레지나는 뺨을 살짝 꼬집어 정신을 차린 뒤 다시 눈동자를 굴렸다.
저만치 서 있던 유리아가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유리아!”
“어머니!”
도도한 발걸음은 순식간에 어린아이의 뜀박질로 바뀌었고, 요염했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번졌다.
폴짝 뛰어 안기는 유리아를 품에 꼭 안은 코델리아는 자애롭게 웃었고, 유더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영상 기록구에 꼼꼼히 기록했다.
아마도 다음 달 성경의 메인 소재가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코델리아의 가슴에 뺨을 비비며 마음껏 어리광을 부린 유리아는 연이어 유더에게 안겼고, 유더는 그런 유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어라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나도 일단은 동생인데 그냥 달려가서 저 무리에 끼면 안 되는 걸까.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레지나는 유더의 말을 듣고 빙글 돌아선 유리아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것은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집중하고 있던 홀 안의 모두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순식간에 천 쌍이 넘는 시선들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집중된 그 장소.
일단의 무리가 그곳에 서 있었다.
저 멀리 동쪽에서 온 것 같은 사람들.
키가 크고 날카로운 기세로 전신을 두른 남자와 그 옆에 선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여인.
검은 정장과 분홍 드레스를 입은 두 사람 곁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여인이 있었는데, 레지나는 그녀에게서 어쩐지 모르게 마이아와 달리아를 뒤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천사?’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한 레지나는 그 뒤에 자리한 무리들도 마저 보았다.
마찬가지로 동방에서 온 것 같은 남자와 여자가 둘.
무척이나 긴장한 듯 경직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남자의 경우엔 손까지 떨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일까.
여신의 화신과 그 반려가 저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여신과 그 반려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아이를 데리고 발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다시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유리아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고, 그 옆에 서 있던 사랑스러운 여인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금발의 천사는 어째서인지 쿡쿡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말이다.
거리가 상당했지만 레지나는 야생신의 피를 일깨워 청각을 강화했다.
조금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정말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리아, 너한테 소개시켜 줄 아이가 있어.”
코델리아의 말에 유리아는 도도하면서도 요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더는 그런 유리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에게 눈짓을 주었고, 남자는 피식 웃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유진아.”
사랑스러운 여인의 부름에 금발 천사의 등 뒤에 숨어 있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방에서 온 것 같은 소년이었다.
검은 머리칼과 다부진 몸,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단순히 잘생긴 것을 넘어 마치 태양처럼 마주하는 이들에게 활력을 주는 얼굴.
십 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바짝 긴장해 있었고, 원래는 하얬을 것 같은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유리아도 뺨을 살짝이지만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안녕, 유리아라고 해.”
“으응, 난 유진이야. 강유진.”
소년의 어색한 인사에 유리아는 평소처럼 도도하게 웃는 대신 방긋하고 활짝 웃었고, 그 미소에 소년은 더더욱 얼굴을 붉혔지만 똑같이 태양 같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레지나는 알 수 있었다.
유리아가 말했던 바로 그 사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의 반쪽.
‘태양과 달.’
태양의 소년과 달의 소녀.
유리아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유진은 경직된 동작으로 유리아의 손을 마주 잡았다.
“우리도 춤추자. 춤출 줄 알지?”
“으응, 알아. 오기 전에 배웠어.”
“그래? 그럼 기대할게.”
여우처럼 웃은 유리아는 소년을 인도하며 발걸음을 내디뎠고, 유더와 코델리아를 비롯한 어른들은 저마다의 미소를 머금은 채 소년과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레지나.
유리아와 소년의 춤을 시작으로 다시 분주해진 홀 안에서 레지나는 열심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유리아가 말한 감이 맞아떨어졌으니, 그녀가 했던 다른 말 역시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지나 고모? 아직도 첫 춤을 안 춘 거야? 그, 그럼 나랑 출래?”
에이든이 어쩐지 모르게 살짝 긴장한 어조로 춤을 청했지만 미안하다 말하며 거절했다.
월터 역시 듬직한 미소를 지으며 춤을 권했지만 이번에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월터의 등 뒤에서 ‘네가 어떻게 우리 월터의~’ 운운하며 비비안이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릴 때는 초록색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빛을 닮은 황금색으로 변한 눈동자로 레지나는 저만치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유리아와 소년이 즐거운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리아는 도도한 가운데 은은한 미소를 흘렸고, 소년은 여전히 얼굴과 목을 붉힌 채 수줍으면서도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유리아, 나는?”
부러움을 베이스로 해서 여러 감정이 뒤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린 레지나는 어깨를 축하고 늘어뜨렸다.
어느새 마지막 춤을 위한 곡이 시작될 차례였는데 아직도 운명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에이든이랑 춰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한 곡도 안 추고 돌아가는 건 너무 아쉬웠으니까.
‘그래두…….’
첫 춤은 역시 운명의 사람이랑 춰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찌르는 것 같은 시선에 움찔한 레지나는 흠칫 뒤를 돌아보았고, 저만치 벽에 붙어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루나의 얼굴에 다시 한번 어깨를 움츠렸다.
‘아가씨! 뭐 하시는 거예요!’
대충 이런 말을 눈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 알았어.”
들리진 않겠지만 작게 답한 레지나는 후- 하고 심호흡을 한 뒤 돌아섰다.
운명의 나발이고 일단 마지막 춤을 춰야 했으니 말이다.
‘에이든? 월터? 게일 오빠는 좀 그렇겠지?’
사실 그 외에도 후보는 많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이엘 백작가의 막내 영애와의 춤이었다.
레지나가 허락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춤을 추겠다고 달려들 남자가 이 홀에만 수백 명도 넘게 있을 터였다.
‘그래, 내가 고르기만 하면 돼.’
아델리아를 흉내 내듯 억지로 흥흥거린 레지나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한곳을 바라보았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저 너무 거대한 남자였기에 시선이 쏠린 것은 아니었을까.
홀 한쪽에 거인이 서 있었다.
분명히 정장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강철도 된 갑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붉은 머리칼의 남자.
그의 곁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덩치 차이가 몇 배는 날 것 같은, 하지만 연인임에 분명한 두 사람.
‘파라곤의 영웅들!’
철인 란디우스와 성천사 레나.
두 사람이 분명했다.
이제 보니 둘의 주위에는 유리아의 스승이기도 한 검귀 카마엘과 드루이드 프란, 뱀파이어 로드 벨키안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레지나 자신과 눈이 마주친 거대한 소년.
겉모습만 보면 이미 십 대 후반은 될 것 같은 커다란 소년이었다.
선명한 붉은 머리칼과 코델리아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태양을 연상케 하는 미소.
그리고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
눈이 마주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우연.
아니, 어쩌면 필연.
레지나는 눈을 깜박였고, 소년은 돌연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지막 곡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천천히 시작된 전주와 함께 소년이 레지나 앞에 당도했고, 소년은 레지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가볍게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추었다.
마치 사랑 이야기 속의 기사가 아름다운 공주님 앞에서 그러하듯이.
“엘윈 S 파라곤입니다.”
어느새 레지나의 손을 잡은 소년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말했고, 얼굴은 물론 목까지 발갛게 붉힌 레지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레, 레지나 바이엘이에요.”
레지나의 대답에 소년- 엘윈은 부드럽게 미소 짓더니 그대로 레지나의 손등에 키스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동작에 레지나는 입만 벙긋벙긋할 뿐 무어라 말도하지 못했고, 어느새 모여든 구경꾼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들을 보였다.
팔짱을 낀 채 흐으응 하는 시선을 보내는 비비안과 잔뜩 흥분해 무어라 소리치려는 에이든, 그런 에이든을 말리며 미소 짓는 엠버.
그리고 저만치 멀리에 서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아.
“함께할 영광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부, 부탁드려요.”
본래는 ‘허락하겠습니다’라 답해야 했지만 머릿속에 열이 오른 레지나는 똑같이 부탁한다 답했고, 엘윈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레지나를 자연스럽게 인도하였다.
마지막 곡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마지막은 아니었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이야기.
완벽한 해피엔딩 이후에도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
자신의 허리를 안은 엘윈의 커다란 손에 단단함과 뜨거움을 느낀 레지나는 긴장한 얼굴로 엘윈을 올려다보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엘윈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운명의 사람.’
레지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맑게 미소 지었다.
fin
무도회가 끝나고 이틀 뒤.
건국기념 무투회를 하루 앞둔 날.
“레지나!”
“엄마! 아빠!”
갑자기 왕도에 나타난 대 바이엘 백작과 백작 부인의 방문에 레지나는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엄마! 엄마! 제가 꼭 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 엄마랑 아빠도 그런데.”
엘윈의 이야기를 하려던 레지나는 백작 부인- 유나의 말에 저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꼭 해야 할 이야기?
아빠랑 엄마가?
나한테?
레지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순진무구한 눈으로 바이엘 백작을 돌아보았고, 바이엘 백작은 어쩐지 모르게 흠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대체 무슨 일일까.
아버지가 민망해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고.
“레지나.”
“네, 엄마.”
“동생이 태어날 거야.”
“동생이요?”
“응, 동생.”
유나는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레지나는 그제야 유나의 배가 살짝 부풀어 있음을 깨달았다.
“레지나는 이제 언니가 될 거야.”
언니.
레지나는 눈을 깜박였고, 이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시 한번 폴짝 뛰어올라 바이엘 백작과 유나의 품에 안겼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