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49화
SS #37 강유진(2)
유더 바이엘.
검은 머리칼과 녹색 눈동자.
극한지기를 타고난 탓에 병약한 몸을 가졌지만 동시에 천무지체라는 지고의 재능을 타고난 영웅전기2 리메이크의 주인공.
코델리아 체이스.
붉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천사의 피를 강하게 이어받은 마법의 천재.
착하고, 예쁘고, 아무튼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영웅전기2 리메이크의 진주인공.
유더와 코델리아는 원본이라 할 수 있을 영웅전기2에서는 12인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중 일원일 뿐이었고, 그나마도 비주류 캐릭터에 속했다.
하지만 스토리에 상당한 수정이 가해진 ‘퍼펙트 해피엔딩’ 루트가 추가된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명실상부한 진주인공들로 거듭났다.
기존의 유저들 사이에서는 아웃복서랑 노폭이 자기들 캐릭터로 영웅전기를 갈아엎었다, 메리수다, 자캐딸이다 말들이 많았지만 - 특히 본래 진주인공이었다가 악역으로 전락한 막시밀리언을 지지하는 팬들의 반발이 심했다 - 어쩌겠는가, 이미 영웅전기 시리즈의 판권은 강진호와 홍유희의 손에 있었으니.
아무튼 유더와 코델리아.
영웅전기2 리메이크의 진주인공들.
그들이 지금 유진의 눈앞에 서 있었다.
‘코, 코스프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코스프레였지만 유진은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코스프레가 아니야.’
코스프레일 수가 없다.
진짜다.
무조건 진짜일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모두 이 세상 미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잘생기고 예쁜지 두 사람의 전신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진짜 빛이 나고 있는 건가?’
그, 후광이라든지?
어찌 되었든 자체 발광 중인 두 사람.
아니, 영웅전기2 리메이크의 퍼펙트 해피엔딩 루트와 집에 있던 성경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두 신들.
‘애 놀란 것 좀 봐. 후광은 끌 걸 그랬나?’
‘흥, 저렇게 놀라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괜찮아. 이쪽이 설득하는 수고도 없고 편하니까.’
‘와, 방금 약간 우리 아버지 같았어.’
코델리아와 유더가 빠르게 눈빛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진은 가슴을 누르며 열심히 심호흡을 하였다.
알렉세이로부터 강진호로 이어진, 그리고 다시 유진이 이어받은 가르침 덕분이었다.
‘항상 승리 조건을 생각해라.’
당황하지 말고 승리 조건을.
눈앞의 사건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해라.
‘그런데 승리 조건이 뭐지?’
아버님과 어머님께 인정받기?
유리아와 결혼하기?
‘아, 아니야.’
너무 앞서 나갔어.
당장 유리아를 만나본 적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유진이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유더와 강진호는 서로를 보며 신과 사도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애가 상태가 왜 저래. 제대로 교육시킨 거 맞아?’
‘너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유진이 아니면 지금처럼 침착한 대응조차 하지 못할 거다.’
‘흐으음…….’
강진호의 항변은 타당하고 논리적이었지만 유더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뜰 따름이었다.
‘아무튼 설명이라도 좀 해주지 그래.’
‘알겠다.’
일단 기회는 주어야 했으니까.
강진호와의 정신적 대화를 마친 유더는 유진에게 간결하고 단순하게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코델리아가 입을 연 후였다.
“그러니까-”
영웅전기2는 실존하는 세상인 플레이아데스에서 있었던 일들을 게임으로 만든 결과물이고, 영웅전기2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너희 엄마아빠와 나랑 유더는 무척이나 절친한 사이다.
“설명 끝!”
마지막에 찡긋 윙크하는 코델리아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유진은 다시 심호흡으로 스스로의 심장을 지켜낼 수 있었다.
‘잘 모르겠어.’
아니, 머리로는 대충 이해가 가는데 너무 당혹스러운 이야기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래도 납득이 되기는 해.’
평범하지 않은 우리 집.
아들 데리고 기아나 고지에 캠핑 가는 아버지와 이터널 미소녀 엄마에 천사 고모.
영웅전기2가 실존하는 세상이라고 하면 이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잖아! 영웅전기가 실존하는 거랑 아들 데리고 기아나 고지로 서바이벌 캠핑 가는 아버지 사이의 연관점이 대체 어디에?’
추가 설정이 필요했다.
아버지와 나타샤 고모에 대한 추가 설정이!
‘아무튼 진정하자 강유진.’
알렉세이가 말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침착해야 한다고.
감정 대신 이성과 논리로 사건을 마주해야 한다고.
심호흡을 한 유진은 허리를 쭉 편 뒤 정면을 보았고,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코델리아의 모습에 다시 깜짝 놀라 육체와 정신 모두가 허우적거렸다.
‘아니! 예뻐도 너무 예쁘잖아!’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 너무 예쁜, 실제로 미의 여신이기도 한 코델리아가 악동처럼 짓궂게 웃더니 유진에게 얼굴을 가까이한 그대로 물었다.
“그런데 유진아.”
“네, 넵!”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알려줄 수 있겠니?”
코델리아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었고, 실제로도 무척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이 애교를 부리며 묻자 어리긴 해도 남자인 유진으로서는 거부할 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제, 제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요.”
그래도 최소한의 이성을 발휘하여 조건부 답을 내놓자 코델리아는 다시 환한 미소를 지어 유진과 그 뒤에 서 있던 홍유희의 심장을 동시에 뒤흔들어 놓았다.
“응응, 괜찮아. 유진이라면- 아니, 유진이밖에 답을 모르는 질문인걸.”
대체 무엇일까.
코델리아는 무얼 물어보려는 것일까.
“유진아, 부담감 갖지 말고 솔직하게 답해줘.”
“네, 넵.”
“유진이는…….”
“저는.”
“영웅전기2에서 누가 제일 좋아? 응? 최애캐. 최애캐가 누구야?”
아빠랑 엄마 중에 누가 좋아?
-에 버금가는 코델리아의 질문에 유진은 순간 뇌가 정지했고, 코델리아는 계속 생글거렸으며, 그 뒤에 서 있는 유더는 차갑게 웃으며 눈빛으로 말했다.
‘대답 잘해라.’
영웅전기2의 최애캐가 누구인가.
코델리아의 질문에 강진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상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오직 함정만이 가득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큭, 하지만 질문자는 코델리아다.’
사악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발안자가 유더가 아닌 코델리아라는 점이 중요했다.
유더라면 진짜로 함정을 까는 느낌으로 저런 질문을 던졌겠지만 코델리아는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랬을 테니까.
하지만 악의 없는 순수함이 때로는 더욱 잔인해질 수도 있는 법이었으니, 유진이 궁지에 몰린 것만은 사실이었다.
‘유진아, 알렉세이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거다.’
솔직히 아빠도 정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승리 조건을 생각하며 최선의 답을 이끌어내렴.
그렇게 강진호가 응원하고 유더가 차갑게 바라보고 코델리아가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웃고 있을 때.
뇌가 정지한 유진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한 가지 답을 도출해 냈다.
“유, 유리아요.”
“어?”
“유…… 리아요. DLC에 나오는 NPC.”
유진이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얼굴로 답하자 코델리아는 육성으로 ‘어머나’ 하더니 활짝 웃으며 좋아했고, 유더는 침음을 삼키며 실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아가 제일 좋다.
유리아가 최애캐다.
이러나저러나 유리아의 약혼자인 유진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답안.
자기 딸이 제일 좋다는데 부모 된 입장으로 ‘왜 내가 아니라 내 딸인데~’라며 어찌 화를 내겠는가.
거기다 약혼자가 약혼녀를 좋아한다는데!
“우리 유리아가 제일 좋아?”
“어, 으…… 네. 제일 좋아요.”
더 이상 생각할 힘을 잃은 유진은 묻는 대로 솔직히 답했고, 코델리아는 ‘어쩜 좋아’를 연발하더니 유더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눈빛을 보냈다.
‘어때? 마음에 들지? 나는 마음에 들어.’
‘흥, 아직 어린 녀석이 발랑 까져서는.’
‘왜애. 유리아가 좋다잖아.’
‘아직 유리아 마음은 모르잖아. 약혼은 약혼일 뿐이야. 우리처럼 태중 약혼한 사이라고 무조건 사랑에 빠진다는 보장도 없고.’
‘으이구.’
평소답지 않게 괜한 고집을 부리는 유더의 모습에 귀엽다는 느낌과 답답하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은 코델리아는 살짝 복잡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다시 유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유진이는 우리 유리아 어디가 좋아? 응? 최애캐인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네? 어……. 그…….”
“그?”
“그냥 좋아요……. 예, 예쁘기도 하고…….”
유진이 우물쭈물 답하자 코델리아는 다시 귀여워 죽겠다는 미소를 지었고, 유더는 더욱 눈을 부라렸다.
‘역시 그냥 외모 보고 좋아하는 거였군. 약혼자 탈락이야, 탈락!’
‘아니, 왜 또 그래. 너도 내 외모 좋아한 거잖아.’
‘아니거든? 외모만 좋아한 거 아니거든?’
‘외모도 좋아한 거지? 나도 너 외모 좋아하는데.’
‘크으윽…….’
이런 류의 대화에서는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유더임에도 불구하고 코델이라를 이길 수가 없었다.
‘이런 얘기 할 때는 이성이 없어지니까.’
작게 쿡쿡 웃은 코델리아는 일생일대의 고백을 한 것처럼 얼굴과 목이 새빨개진 유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유진아, 너는 우리 유리아의 약혼자야.”
“확정 아니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약혼이다. 유리아가 싫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미운 소리를 하는 유더의 옆구리를 코델리아가 사정없이 꼬집었지만 애당초 이런 류의 공격에는 대미지가 아예 안 들어오는 유더였다.
그랬기에 코델리아는 살짝 화가 난 얼굴로 유더의 발을 한 번 밟아준 뒤 다시 유진에게 말했다.
“유진아, 우린 널 데리고 플레이아데스에 갈 거야.”
“여, 영웅전기의 세계에요?”
“응, 우리 유리아 소개시켜 주려고.”
유리아와 만난다.
너무나 꿈같은 이야기에 유진은 다시 이성이 증발할 것 같았지만 순간 흠칫하며 정신을 수습하였다.
코델리아 뒤에 선 유더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아 마음에 안 들면 전부 무효다!’
순간 유더가 직전에 꺼낸 말이 떠오른 유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유더의 말대로였다.
유진 자신이 유리아를 좋아하든 말든 유리아가 유진 자신을 싫어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내일 저녁에 출발할 거야. 그러니까 그 전까지 준비 좀 해둬.”
“……알겠습니다.”
유진이 돌연 결의에 찬 얼굴로 답하자 코델리아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다부진 얼굴이 마음에 들었기에 바로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보고.”
“내일 오후에 다시 오겠다.”
코델리아에 이어 바로 답한 유더는 다시 한번 유진을 강하게 노려본 뒤 강진호와 홍유희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강진호와 홍유희에게 추가 설명을 들은 유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방에 들어온 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였다.
플레이아데스.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의 딸인 유리아.
유진 자신의 약혼녀.
‘미친. 진짜로 미친.’
생각만으로도 다시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기 시작한 유진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강진호의 아들이었고, 동시에 알렉세이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아이였다.
‘냉정해지자. 승리 조건을 생각하자.’
내일 유리아를 만나러 간다.
그렇다면 유진 자신에게 주어진 승리 조건은 무엇인가.
‘유리아 마음에 드는 거지.’
아니- 단순히 마음에 드는 게 아니다.
유진 자신의 마음도 확인한다.
유리아가 정말 좋은 건지, 게임 캐릭터가 아닌 정말 약혼자로서 좋아하는 것인지.
마음을 다잡은 유진은 풀 다이브 가상현실 게임을 가능케 하는 캡슐 안에 들어간 뒤 눈을 감았다.
영웅전기2 리메이크.
실전을 뛰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했으니까.
플레이 타임이 수천 시간에 달하는 게임 속에 접속한 유진은 NPC인 유리아가 있는 유델리아 신성국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