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메이커 454화
SS #37 강유진(7)
살기를 감지하는 것 자체는 본능의 영역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고나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은 훈련을 통해 갈고 닦는 것이 가능했다.
보다 날카롭게.
보다 민감하게.
그렇기에 유진은 등 뒤에서 날아온 은밀한 살기를 놓치지 않았다.
팟!
대응 또한 순식간에 일어났다.
타고난 감각이 유진의 몸에 무어라 명령하기도 전에 훈련으로 각인된 동작이 반사적으로 펼쳐진 덕분이었다.
일어서서 돌아섬과 동시에 자세를 낮추며 상의에 숨기고 있던 나이프를 뽑아 든다.
왼손은 길게 펼쳐 유리아를 보호하고, 두 눈은 정면 전체를 넓게 담아 상황을 파악한다.
유진은 숨을 멈췄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기아나 고지와 아마존 밀림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초원과 사막까지 돌아다닌 덕분에 평범한 야생동물은 물론이고 맹수까지도 눈앞에서 목격한 바가 여러 번인 유진이었다.
하지만 그런 유진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나타난 생물- 아니, 괴물 앞에서는 순간이지만 움찔하고 몸을 경직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묘한 생물이었다.
용을 닮은 괴수의 머리와 코끼리를 방불케 하는 커다란 사자의 몸, 뱀으로 된 꼬리.
자세를 바짝 낮춘 채 접근하고 있던 그것과는 십여 미터에 달하는 거리가 있었지만, 여간한 대형 승합차보다도 훨씬 더 큰 놈의 덩치 덕분에 그렇게까지 먼 거리로 느껴지지 않았다.
‘키메라.’
처음 보았지만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실물로 보는 것이 처음일 뿐, 영웅전기 시리즈에서 수도 없이 조우한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유진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헐떡이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괴물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접근을 들켰기 때문인지 아예 대놓고 발산하기 시작한 살기는 지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평범한 이라면 키메라의 살기를 마주한 순간 거품을 물며 쓰러지거나 패닉 상태에 빠져 비명을 질렀을 터였다.
그러니 숨결이 조금 거칠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경계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유진의 대응은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실제 상황이었고,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리아를 지켜야 해.’
-항상 승리 조건을 명심해라.
알렉세이의 가르침이 유진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유진에게 있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유리아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유리아를 지킬 수 있을지 만을 생각했다.
강진호나 유더였다면 보다 사고를 확장시켜 또 다른 합리를 찾을 터였지만 유진은 강진호의 아이인 동시에 홍유희의 아이였다.
유진은 유리아를 ‘지키는 것’에만 집중했고, 강진호에게 물려받은 두뇌와 훈련으로 길러낸 사고능력을 총동원하여 눈앞의 괴물로부터 유리아를 지킬 방법을 산출해내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맞서 싸워 승리한다.
불가능.
괴물의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켜 유리아가 도망칠 시간을 번다.
비교적 가능.
그렇다면 성공 확률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놈의 주의를 보다 확실하게 끌 방법은 무엇인가.
사고는 빛과 같은 빠르기로 이루어졌고, 유진의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몇 가지나 되는 플랜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고마워 유진 오빠. 그리고 미안해. 키메라가 상대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어서 어쩔 수가 없어. 내가 해결할게.”
차분히 이어진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유리아를 돌아볼 수 없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괴물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유리아는 다시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유리아는 지금 유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얼마나 진지한지도 알았고, 유리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 각오를 했다는 사실 역시 느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복잡한 미소가 지어졌다.
유진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서.
유진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서.
유리아는 바로 발걸음을 내디디지 않았다.
유진이 길게 뻗은 저 왼팔로 자신을 제지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유리아는 발걸음을 내디디는 대신 사랑스러운 입술을 열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구천구문, 개문.”
아홉 개의 하늘.
아홉 개의 문.
지평에 닿아 검리를 깨닫듯, 세상의 섭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초월로의 길을 여는 그것.
“제일문, 제이문, 제삼문.”
유리아의 목소리가 한 번씩 퍼질 때마다 주변 일대가 뒤흔들렸다.
순식간에 덩치를 불리는 강대한 기의 발산에 대기가 요동쳤고, 존재의 격상에 세상이 시스템이 반응했다.
키메라가 자세를 더욱 낮추며 으르렁거렸다.
뱀과 같은 놈의 두 눈은 오직 유리아만을 노려보았고, 유진은 자신의 옆을 지나 앞으로 나아가는 유리아의 모습을 뒷모습을 보았다.
유리아가 치마 속에 손을 넣었다.
대체 치마 속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긴 검을 꺼내더니 그대로 뽑아 천천히 늘어뜨렸다.
유리아는 여전히 작고 예쁜 소녀였다.
하지만 유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뒷모습을 보며 자신이 잊고 있던, 강진호와 유더라면 반드시 인지했을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유리아는 유리아야.’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들인 유더와 코델리아의 아이.
평범한 인간의 아이가 아니었다.
애당초 평범한 인간일 수 없는 소녀였다.
쾅!
생각을 끊는 굉음과 동시에 키메라가 솟구쳐 올랐다.
유리아가 검을 손에 쥔 순간 놈의 본능은 도망치라 외쳤지만 놈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대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놈의 움직임은 벼락처럼 빨랐고, 십여 미터의 거리는 놈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도약과 동시에 거리가 사라졌다.
놈의 이빨과 발톱이 유리아를 노렸다.
그리고 그에 앞서 유리아의 검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설화십이검, 두 번째 꽃송이.
설화만개.
유리아가 그린 검의 궤적을 따라 이어진 푸른 한기가 활짝 핀 꽃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이 흐름을 비틀었다.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던 키메라는 저 스스로 방향을 틀어 유리아와 유진이 아닌 커다란 나무를 향해 돌진했고, 그대로 충돌해 어마어마한 굉음을 일으켰다.
유진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유진이 알 수 있는 것은 유리아가 검을 휘둘렀고, 지면이 얼어붙었으며, 갑자기 진로를 바꾼 탓에 커다란 나무와 정면으로 충돌한 키메라의 옆면에 서리가 어려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설화십이검.
오직 극한의 힘을 가진 자만이 진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파라곤 왕가의 숨겨진 검술.
유진은 눈을 깜박였고, 숨을 토했다.
그리고 다시금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누구의 아이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오빠, 괜찮아?”
유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고, 유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여전히 토끼 머리띠를 쓰고 있는 유리아의 모습이, 미안함과 고마움과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표출된 어색함이 뒤섞인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차, 창피해.’
부끄러웠다.
정말로 진짜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누굴 지킨다고 앞으로 나선 거지?
유리아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주인 지킨다고 나서서 으르렁거린 하룻강아지처럼 보였을까?
창피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빠?”
유리아가 다시 말했고, 이제는 걱정만이 아니라 약간의 두려움까지 섞인 그 표정에 유진은 애써 숨을 크게 골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촤확!
머리 위에서 쏟아진 물벼락이 유리아와 유진을 집어삼켰다.
* * *
간단한 이치였다.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답게 나뭇잎도 엄청나게 컸고, 그 엄청나게 큰 나뭇잎들이 잔뜩 머금고 있던 물기는 물벼락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리고 키메라의 충돌은 바로 그 나뭇잎들을 모조리 요동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추었고 말이다.
그래서 쏟아진 물벼락.
자연의 스프링클러.
“어, 어어어.”
멍한 소리를 낸 것은 유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야 겨우 다시 온전한 정신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물벼락이 쏟아진 직후.
순식간에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유진과 유리아는 서로를 보았고, 그다음부터는 뭔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연달아 발생한 돌발 상황과 이후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고 해야 할까.
대충 시작은 이러했다.
“마, 말리자.”
“어?”
“옷, 말리자. 그대로 있으면 감기 걸릴 거야.”
그렇지 않아도 밤공기가 찬 상황인데 물에 젖은 상태로 있으면 아무리 유리아라 해도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안 걸릴려나?’
구천구문 여는 거 보니까 천무지체이기도 한 것 같은데.
하지만 생각해 보면 천무지체의 대명사인 유더조차도 감기에는 곧잘 걸렸으니 유리아라고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유진은 훈련받은 대로 생각했다.
옷을 젖은 상태로 있으면 감기에 걸린다.
지금처럼 밤공기가 찬 상황이면 단순히 감기에 걸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옷을 말리고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옷을…… 어떻게 말리게?”
“어?”
“아니, 그, 옷.”
“어…… 벗어서?”
불을 피우고, 나뭇가지로 임시 빨랫대를 만든 뒤 그 위에 옷을 걸어 말린다.
아버지와 수십 번도 넘게 해본 서바이벌 스킬.
유리아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답한 유진은 순간 움찔하였고, 유리아는 입술을 오므린 채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이 되더니 비비안이 보았다면 ‘속이 시커매!’라고 외칠 것 같은 미소를 숨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말리자.”
그리고 지금.
나무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작은 동굴에 불을 피운 뒤 나뭇가지를 모아 만든 옷걸이에 젖은 옷을 올려 직화구이- 아니, 직화로 빠르게 옷을 말리는 와중에 모닥불로 차게 식은 몸 또한 녹인다.
수십 번도 넘게 해본 행동이었지만 겨우 정신을 회복한 유진은 금방 또 정신줄을 놓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같이 있는 것은 아버지가 아닌 유리아였기 때문이다.
‘이, 이래도 되는 건가? 되는 거야?’
유진 자신은 상의를 벗은 채 소위 사각팬티라 부르는 속옷만 입고 있었다.
유리아를 보지는 못했지만 일단 유진 자신이 지금 아는 대로라면, 속옷만 입은 상태로 유일하게 젖지 않은 옷가지인 유진 자신의 겉옷을 두르고 있는 상태였다.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남녀가, 으슥한 곳에서, 사실상 알몸인 상태로 같이 있다.
물론 충분한 안전장치는 해둔 상태였다.
유진 자신은 눈가리개를 한 채 유리아를 등진 상태였으니 말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자신이 혹시라도 정신이 나가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한다 해도 문제없었다.
유리아는 유진 자신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할 테니 말이다.
‘그래, 좋아, 괜찮아, 문제없어, 노 프러블럼.’
논스톱으로 계속 생각을 잇는 것 자체가 지금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았지만 유진은 자가세뇌를 멈추지 않았다.
잠시라도 세뇌를 멈췄다가는 바로 등 뒤로 느껴지는 유리아의 존재감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진이 그렇게 번뇌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유리아의 마음속 길드 하우스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법으로 옷을 말릴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지금의 상황을 유도한 것 자체는 무척 좋은 발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진 오빠는 우리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까요.”
“완전히 검사로 생각하는 것 같았지?”
“어, 그러니까 그걸 들킬 걱정은 딱히 하지 않아도 될 거야. 당장은 말이야.”
“물벼락이 쏟아진 타이밍도 좋았어.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으니 말이야.”
“근데 유진 오빠 너무 귀여우면서 멋지지 않아?”
토끼 머리띠를 장착한 유리아의 말에 다른 유리아들이 동의한다는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키메라 앞에서도 버티는 거 봤어?”
“봤어, 봤어. 거기다 그 왼팔. 그거 우리 지키려고 그런 거지?”
“남자야, 남자.”
“어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까.”
“아냐, 멋있는 거야.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멋진 거였어.”
“하아, 마음 같아서는 그냥 계속 지켜지고 싶었는데.”
“그냥 멧돼지 정도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게, 왜 하필 키메라가 나타났담?”
“그래도 키메라가 나타난 덕분에 지금 같은 2차 이벤트가 발생했잖아?”
“그건 그래.”
다시 유리아들이 속이 까만 미소를 지으며 고개들을 끄덕였다.
하지만 유리아들 가운데 하나가 살짝 불만이라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런데 유진 오빠 너무 신사 아니야?”
“그러게, 돌아앉는 것까지는 예상했는데 셀프 눈가리개라니.”
“유진 오빠 발상이 귀여워. 사랑스러워.”
기본적으로 고고하며 도도하며 차가운 도시 소녀에 가까운 유리아였지만 스위치가 한 번 들어가면 비비안 뺨치는 팔불출로 변하는 것이 바로 유리아였다.
마치 유더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어떻게 하지? 지금 상황 자체도 매우 좋은데.”
“응응, 좋은 것 같아. 모닥불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 뭔가 로맨틱한 기분이야.”
“한 명이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는 게 좀 걸리지만 아무튼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나도 찬성이야.”
“나도.”
“나도.”
유리아들이 한 명씩 거수하며 동의한 그때였다.
“정말 이 정도로 만족할 건가요?”
길드 하우스의 리더인 마담 유리아였다.
토끼 머리띠를 하고 있는 덕에 평소보다 다소 고고함과 도도함이 깎이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유리아들에 비해서는 도도함과 요망함을 겸비하고 있는 그녀였다.
“아주 약간만 더 진도를 나가도록 하죠.”
“지, 진도?”
“오빠와 어깨를 맞대는 거예요. 어깨가 좀 그렇다면 등이라도?”
마담의 제안에 유리아들은 동시에 같은 그림을 떠올려 보았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어깨를 맞대고 있는 두 사람.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숨결과 달콤한 살내음.
모닥불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얼굴을 붉힌 채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
“좋은 것 같아.”
“그림 나오는데?”
“역시 마담이에요!”
유리아들의 찬사에 후훗하고 미소 지은 마담 유리아는 토끼 머리띠를 고쳐 쓴 뒤 말했다.
“그럼 계획을 실행하도록 하죠.”
“예스! 맴!”
유리아들이 소리높여 대답한 직후.
현실의 유리아는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로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은근슬쩍 엉덩이를 끌어 앉은 자세는 물론이고 위치까지 수정을 하였다.
유진과 어깨를 맞대기 위함이었다.
“유, 유리아?”
“체온으로 좀 더 빨리 몸을 녹이기 위함이에요.”
비비안이 보았다면 ‘저, 저거 속이 까만 것 좀 봐! 눈이랑 입술이랑 전부 완전 음흉해!’라고 소리쳤을 터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지 않았다.
유리아는 논리적인 척하는 도도한 목소리로 유진의 움직임을 봉쇄한 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앉자.’
유진의 바로 옆에.
그리고 어깨를 기대자.
유진이 움찔했다.
유리아 또한 그러했다.
이미 달아올라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은 더더욱 새빨개졌고 말이다.
“계산 착오군요.”
마담 유리아가 얼굴을 붉힌 채 말했고, 다른 유리아들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들을 끄덕였다.
바로 붙어 앉아 몸을 기대니 어깨만 닿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닿았다.
맨살과 맨살이 말이다!
‘부, 부드러워!’
‘단단해!’
앞은 유리아 뒤는 유진.
세상에 이런 부드러움이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한 유리아와의 접촉에 유진은 이를 악물었고, 유리아는 생각 이상으로 단단한 유진의 근육에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결국엔 아직 어린 소년과 소녀였기에, 그리고 지금 상황만으로도 이미 머리에 피가 올라 기절할 지경이었기에 더 이상의 진척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서로 몸을 기댄 채 마른 침들을 꼴깍꼴깍 삼키며 두근두근하는 것이 두 사람의 한계점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냥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분, 2분.
조금씩이지만 지금의 상황에 익숙해진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유, 유리아.”
“오, 오빠.”
말이 엉켰고, 어색한 웃음을 흘린 두 사람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먼저 말해.”
“오빠 먼저 말해요.”
틀에 박혔다고 해도 좋을 대화였지만 두 사람에게는 딱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유진과 유리아는 다시 웃었고, 이번에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 있었다.
“동작 그만.”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
극한지기의 진수와도 같은 냉기가 풀풀 풍기는 그 목소리에 유진과 유리아는 동시에 흠칫했고.
목소리의 주인은, 플레이아데스와 가정의 수호자인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은 도끼 눈을 뜬 채 유진과 유리아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