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462화 (462/473)

엔딩메이커 461화

SS #38 2년 후, 각자의 하루(2)

#3 은퇴용병 겸 천사와 작가 겸 칼잡이의

유리아가 수줍어하는 유진의 손을 이끌어 욕탕 안에 입수한 그때.

왕도의 시가지에 자리한 근사한 카페에서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정확히는 금발의 미녀와 백발의 미인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나타샤 몰로토프.

태양의 여신 코델리아의 직계 천사.

계급은 5급 천사에 해당하는 역천사.

하지만 그녀가 천사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가 딱히 비밀로 해서라기보다는 그녀의 다른 면모를 아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처음 업계에 등장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이버 세계를 지배하는 최강의 아이돌 타냐눈나의 본체가 바로 나타샤 몰로토프 그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면모가 있었다.

나타샤가 ‘사이버 창녀가 됐대!’ 같은 소리를 지껄이다가 꽥 소리가 나게 얻어맞은 베르트랑과 그 친구들에게 있어 그녀는 영원한 전우인 동시에 전장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전설의 용병 알렉세이가 길러낸 총검 가운데 총에 해당하는 여인.

나타샤 몰로토프.

아름답고 강인한 동시에 가녀리고 상냥한 모순투성이.

치명적인 독과 같지만 동시에 달콤하여 화약 같은 독주라 불리는 여인.

하지만 그녀는 지금 용병으로 자리한 것이 아니었다.

천사로 자리한 것도 아니었고, 전 세계 수천만의 팬을 거느린 아이돌로 자리한 것 역시 아니었다.

“그쪽이, 고모인가.”

백발 미인- 남자의 말에 나타샤는 살짝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쪽은 삼촌 같은 스승?”

살짝 톡 쏘는 것 같은 물음에 백발 미인은 아주 약간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발 미인.

중성적인 아름다움에 때문에 미남보다는 미인이라는 표현을 써야만 할 것 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서늘함까지 느끼게 하는 차가운 미모의 소유자.

남자의 이름은 카마엘.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재앙전쟁에서 맹활약한 구세의 대영웅.

그는 대륙에서 가장 강한 네 명의 검사들 가운데 하나였고, 검술이란 영역에서만큼은 대륙사대검사 가운데서도 제일검을 자칭할 수 있을 거라 평해지는 자였다.

그렇기에 검의 귀신.

검귀라 불리는 자.

하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면모가 숨겨져 있었다.

대작가 사누딜.

플레이아데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성왕국에서 사실상 무료로 살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코델리아교의 성경 외에는 판매량을 비교할 수 있는 서적조차 없는 대인기 시리즈- 빌트바인 영웅전의 저자.

영민권을 받기 위해서는 빌트바인 영웅전을 반드시 한 질 이상 소지해야 한다는 흐레스벨그 백작령에서는 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 전설의 대작가.

하지만 그 또한 나타샤와 같았다.

이 자리에 선 것은 검귀로서도, 수억 부가 넘는 판매량을 자랑하는 대작가로서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뭐,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 인사나 제대로 하는 게 좋겠지? 나타샤 몰로토프야.”

나타샤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자 카마엘은 마주 손을 잡는 대신 미간을 조금 더 좁히더니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카마엘이다.”

“응, 카마엘사.”

“뭐?”

“아니, 아니. 그냥. 우리 쪽에서도 댁은 좀 유명해서.”

나타샤가 킥킥거리며 웃자 카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쪽- 그러니까 지구라는 곳에 영웅전기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고, 그 이야기에 자신이 등장한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그였지만- 반대로 말하면 딱 그 정도밖에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카마엘사?

어쩐지 그냥 넘기기 어려운 별명이었다.

하지만 카마엘은 섣불리 카마엘사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눈앞의 여인에게 허투루 틈을 보였다가는 좋지 못한 일을 당할 것이라는 검귀 특유의 감이 발동한 탓이었다.

그랬기에 카마엘은 침묵했고, 나타샤는 이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사과했다.

“음, 미안. 친해지려고 농담을 좀 해본 거였는데…… 음…… 미안.”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었으니.

침묵으로 일관하는 카마엘의 태도에 나타샤는 팔짱을 끼며 똑같이 미간을 좁혔다.

‘유진이랑 유리아, 나중에 두고 보자 응?’

애당초 이 자리에 이렇다 할 인연도 없는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이유.

무려 소개팅이라는 것을 하게 된 두 원인.

-고모, 진짜 한 번만 만나봐. 응?

-저희 스승님이시긴 하지만, 정말 멋진 분이세요. 엄청 잘생기셨고요. 이건 진짜 비밀인데, 가끔은 우리 아버지보다 잘생기신 것 같아요.

‘제길.’

유더보다 잘생겼다는 말에 혹한 것이 실수였다.

물론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단순히 저 말에 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타샤 자신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유리아의 성장 배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 분명한 ‘검술 스승’이 누구인지 한 번쯤 봐둘 필요가 있다-

나타샤 자신은 누가 뭐래도 유진의 고모이자 대모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카마엘 역시 비슷했다.

그가 굳이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유진이란 녀석의 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마주한 두 사람은.

명분은 소개팅이지만 실상은 학부모- 아니, 사돈 간 대면에 가까운 이 자리에서.

“저기, 일단 밥이라도 먹는 게 어때?”

“……그렇게 하지.”

상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대화와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그렇게 전직 용병 겸 현직 아이돌 천사인 나타샤와 검귀이자 대작가인 카마엘은 소개팅 아닌 소개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각 다른 장소-

이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4 전설의 영웅들과 채팅방 멤버들의

천사와 검귀의 소개팅이 진행되고 있는 카페 겸 식당에서 약 7㎞ 떨어진 곳에 자리한 저택의 응접실에는 네 명의 남녀가- 정확히는 금발의 미녀 한 명과 아름다운 청년과 검은 머리의 미남과 세 사람을 모두 합친 것보다 거대한 호탕한 미소의 남자가 눈앞의 수정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오, 상대 여자 괜찮은데? 예뻐, 예뻐.”

“저 여자가 유진의 대모인가.”

“하하하하하.”

이 상황 자체가 재미있다는 듯 휘파람을 부는 프란과 신중한 눈으로 나타샤를 살피는 벨키안과 이런 자리가 성사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다는 듯 호탕하게 웃는 란디우스.

저마다 태도는 달랐지만 나타샤에게 제법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동일했다.

하지만 단 한 명.

그렇지 않은 이가 있었다.

“저 여자, 마음에 안 들어.”

“어? 레나?”

딱딱한 목소리에 흠칫 놀란 세 사람은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딱딱한 건 레나의 목소리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살짝 깨문 입술과 불편함이 가득한 푸른 눈동자, 어쩐지 모르게 신경질이 난 것 같은 분위기까지.

“우리 카마엘이 어떤 사람인데.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사람인데. 지금 표정 봤어? 미간 좁히는 거? 카마엘한테는 좀 더 착하고 상냥한 사람이 어울려.”

순식간에 쏟아진 말에 프란은 다시 눈을 깜박였고, 벨키안은 쓴웃음을 지었으며, 란디우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레나와 카마엘.

다섯 영웅들 가운데서 가장 앙숙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친한 두 사람이기도 하였다.

적어도 다른 영웅들이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우리 카마엘이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데. 저 여자는 너무 무신경해 보여. 금발인 것도 그렇고. 우리 카마엘의 백발이랑 잘 안 어울릴 거야. 그리고 금발 여자들은 대체로 경박해서 싫어.”

‘저기, 레나 너도 금발이거든?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 카마엘이 된 건데?’

당혹감을 느낀 프란은 벨키안을 돌아보았고, 벨키안은 여전히 쓴웃음을 머금은 채 메시지 마법으로 답했다.

[적발이면 적발 나름대로 싫은 이유를 대었겠지. 은발이면 은발이라 싫다고 했을 거고.]

[아, 대충 알겠구만.]

벨키안의 대답에 프란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큭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레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남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레나. 일단 두고 보자고. 모처럼이잖아?”

“맞아, 맞아. 카마엘의 맞선이라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지.”

“맞선 아니거든? 그냥 가볍게 한 번 인사나 해보는 거거든?”

프란의 말에 날카롭게 답한 레나는 다시 입술을 삐쭉였고, 프란은 낄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아무튼 좀 지켜보자고.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도 같은데.”

“어울리기는 개뿔이.”

평소답지 않게 거친 말까지는 쓰며 투덜거리는 레나의 모습에 란디우스는 다시 어색하게 웃은 뒤 수정구 속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교우 관계를 넓혀서 나쁠 건 없겠지.’

특히 카마엘처럼 교우 관계가 협소한 녀석이라면.

란디우스의 감은 말하고 있었다.

연인이 되기는 힘들 거라고.

하지만 격의 없이 속내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는 가능할 것 같다고.

딱딱한 얼굴로나마 대화를 이어나가는 친구의 모습에 란디우스는 다시 웃었고, 레나는 입술을 조금 더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다른 장소.

응접실에 모여 커다란 모니터 화면을 지켜보던 무리들은 저마다의 평을 내리고 있었다.

“와, 역시 카마엘사. 완전 잘생겼어. 예뻐. 미인이야.”

“근데 소개팅 자체는 튼 거 같은데?”

“그래도 재미는 있잖아? 내가 가르쳐 준 비장의 개그를 치면 카마엘사도 빵 터질 게 분명해.”

차례대로 김혜은, 코와붕가, 유가영.

“‘토끼가 왜 센 줄 알아?’ 같은 개그를 들으면 카마엘의 분노가 빵 터지지 않을까…….”

홍유희가 작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작은 중얼거림에 채팅방 멤버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던 것은 딱딱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

“나타샤가 저렇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있는데 그걸 튕겨?”

카마엘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그 목소리에 채팅방 멤버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웃었다.

강진호가 시스콘이라는 건 이미 알 만큼 아는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은근 어울리지 않아? 친구가 될 것 같고.”

홍유희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틱틱거리고 있음에도 은근히 그럴싸하게 이어지는 나타샤와 카마엘의 대화가 바로 그 증거였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강진호의 모습에 홍유희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고, 나머지 채팅방 멤버들은 웃음을 흘리던 가운데-

“그래도 스프링클러가 동원되면 어떨까?”

최종결전병기 스프링클러라면.

장난스럽게 튀어나온 코와붕가의 말에 강진호는 두 눈을 부릅떴다.

#5 바람 같은 백작과 황금 같은 백작의

유진과 유리아가 페어리 퀸들을 알현하고 천사와 검귀가 식사를 이어나갈 때.

세일룬 왕국 북부의 대도시 바일룬에서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두 백작이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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