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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471화 (471/473)

엔딩메이커 470화

SS #40 Time to back(4)

입술의 감촉은 부드럽고, 뜨거우며, 동시에 달콤했다.

하지만 유더는 그 모든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코델리아의 입술이 닿은 곳은 유더의 입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은 동물처럼 두려움에 떨며 질끈 감아버린 눈보다 조금 높은 곳, 동그랗고 하얀, 그래서 매끄러운 도자기를 떠올리게 하는 유더의 이마.

코델리아의 입술이 닿은 순간 유더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읏-하고 새어 나온 작은 신음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요사스럽게 웃었다.

블랙 코델리아를 자칭한 그녀는 이맘때의 코델리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하지만 미래에는 누구누구 씨의 색으로 까맣게 물든 덕분에 가능해진 일을 실행하였다.

“왜애? 아쉬워?”

입술을 기대했는데 막상 닿은 곳이 이마라?

유더가 다시 움찔했다.

하지만 반박의 말을 만들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마른침을 삼킬 따름이었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귀에 후-하고 숨을 불어 넣었다.

약점을 공략당한 유더는 다시 얕은 신음을 흘리며 움찔하였고, 코델리아는 인내했다.

여기서 귓불을 살짝 깨물면, 부드러운 혀로 귀를 어루만져 주면 유더가 어찌 반응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유더는 못 견딜 거야.’

이러나저러나 타고난 게이머인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연인이 된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끊임없이 공략하였고, 서로의 약점에 대해 본인들보다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추가타를 넣고 싶은 마음을, 그리하여 크리티컬 히트를 내 유더를 단번에 격침시키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눈앞의 유더는 뉴비 중의 뉴비였으니까.

남만고양이 언니가 말했듯이 뉴비는 아껴줘야 하는 법이었다.

코델리아의 입술이 이번에는 유더의 눈꺼풀 위에 닿았다.

이마와 마찬가지였다.

눈꺼풀로 느낄 수 있는 감각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이마에 이어 눈꺼풀 위로 뜨거운 감각을 느낀 유더는 스스로가 공략당하고 있다는- 아니, 낱낱이 해체당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고, 그러한 감각은 유더에게 무력감과 굴욕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지나친 흥분으로 인해 숨결이 절로 달아올랐다.

거칠어진 호흡을 반영하듯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델리아의 손길이 닿았다.

다시 한번 뺨에.

뜨거웠다.

단지 손이 닿았을 뿐인데 정말로 불에 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읽어냈다.

지금의 육체는 천사가 되기 이전의, 레벨도 오르기 이전의 약하디약한 쪼렙의 몸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코델리아 자신의 몸이었다.

유더가 말했듯이 타고난 짐승의 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오감을 갖추고 있었다.

평소보다 달콤한 유더의 체향.

격렬하게 날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

평소의 서늘함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얼굴에 몰린 피로 인해 뜨거운 열을 발하는 얼굴.

코델리아의 입술이 다시 한번 유더에게 닿았다.

이번에는 뺨이었다.

미끄러지듯 내려와 턱에도 입술을 맞추었다.

유더는 더 이상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대로 무너지듯 쓰러졌고, 코델리아는 정복자처럼 그런 유더의 위를 온전히 점하였다.

유더가 가쁜 숨을 토하며 눈을 떴다.

반쯤 열린 초록색 눈동자에는 이번에도 여러 가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원망, 노여움, 혼란, 열망, 두려움, 갈망.

그리고- 희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땀에 젖은 몸으로 그저 가쁜 숨을 토하고 있을 뿐인 유더를 보며 코델리아는 생각했다.

이런 적이 전에도 있었는데.

언제였을까.

코델리아 자신과 유더가 서로의 아바타에 들어갔을 때였던가?

해묵은 추억을 떠올리며 코델리아는 유더의 몸에 엎드리듯 살며시 자신의 몸을 겹쳤다.

가슴에 닿는 묵직하고 부드러운, 동시에 더없이 말캉한 감촉에 유더는 초록색 눈 가득 어찌할 바 모를 혼란을 비치더니 이내 억누른 신음과 함께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에게 입술을 맞추지 않았다.

그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숨결로 유더의 달아오른 얼굴을 희롱하며 어깨 위에 올렸던 손을 조금씩 움직였다.

작고 마른, 뼈가 그대로 만져지는 어깨를 지나 단단함보다는 연약함이 느껴지는 가슴을 가볍게 어루만지자 유더의 얼굴이 다시 엉망으로 변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허리선을 따라 손을 놀려 짓눌린 채로나마 허리를 활처럼 휘려 하는 유더의 몸부림을 고스란히 느낀 뒤 자신의 배와 비스듬히 닿아 있는 유더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웠다.

말랑말랑한 배였다.

성벽처럼 든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유더의 복근이 아닌, 조금도 단련되지 않아 아기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말랑한 배.

코델리아는 장난치듯 손가락 끝으로 배꼽 주위를 꾹꾹 눌러보았고, 그때마다 유더는 움찔움찔하며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코델리아의 숨결 역시 뜨거워졌다.

금방이라도 눈시울을 붉힐 것 같은, 하지만 끝내 눈물은 보이지 않은 엉망진창인 유더를 보며 다시 한번 옛 기억들을 떠올렸다.

유더가 코델리아 자신의 아바타에 들어갔을 때 외에는 이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웠고, 짜릿했으며, 즐거웠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의 새로운 맛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

찰나간에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아니, 코델리아 자신의 위치가 완전히 변했다.

하늘을 향해 있던 등이 땅에 닿아 있었고, 풍만한 가슴이 이번에는 아까와 정반대 방향으로 중력에 순응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눈앞을 가득 채운 것은 유더의 얼굴이었다.

아까와 비슷하지만 다른, 여전히 굴욕감과 수치심과 숨기지 못할 열망에 휩싸여 있지만 마냥 무력하지만은 않은, 맞서 싸울 투지와 약간의 의기양양함이 어린 녹색 눈동자.

유더의 배를 희롱하던 손은 손목을 붙잡힌 채 바닥에 닿아 있었고, 아랫배는 유더의 가벼운 몸에 짓눌리고 있었다.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유더가 뜨거운 숨을 토하며 간신히 말을 만들어냈다.

그랬기에 승자의 여유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은 지지 않았노라고, 반격할 힘이 있다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뉴비 유더가 어찌 나올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둘 다 똑같이 쪼렙이었지만 유더는 구음절맥이었고, 코델리아 자신은 아니었다.

지금의 유더 정도는 마법을 쓰지 않아도 다시 제압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참아보았다.

우리 뉴비가 어떻게 행동할까.

서툰 손짓과 어설프지만 맹렬한 욕망으로 부딪혀 올까?

아니면 천무지체답게 순식간에 노련해져서 오히려 코델리아 자신을 맘껏 희롱해 줄까.

코델리아는 웃었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더잖아.’

우리 유더.

몇 번의 생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항상 서로만을 사랑한 진정한 영혼의 반려.

‘우리 유더가 의외로 숙맥이란 말이야?’

더욱이 지금의 유더는 정말로 진짜 순진무구한 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코델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어른의 미소를.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의 재롱을 지켜보는 큰누나의 엄마 같은 미소를.

유더가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자존심이 상했을 터였다.

여유만만한 코델리아의 모습보다는, 그런 코델리아의 미소가 너무 아름답다 생각하는, 그래서 머릿속이 흐물흐물해지는 자신의 모습 그 자체에.

역시 유더였다.

코델리아 자신이 좋아하는 유더.

그래서 코델리아는 유더가 기껏 마운트 포지션을 취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를 속삭여 주었다.

“우리 유더는 신사니까. 마이아한테 말한 것처럼.”

자신에게 덤벼온 여자를 격퇴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유더는 호구가 아니었으니까.

선공 역시 얼마든지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를 강제로 어찌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다.

하물며 그것이 코델리아라면 더욱더.

마이아의 이름이 나온 탓인지 유더의 얼굴이 다시 엉망이 되었고, 코델리아는 행동했다.

허리를 한 번 튕김과 동시에 마력을 발휘하여 가볍기 짝이 없는 유더의 몸을 낮게나마 솟구치게 한 뒤 짐승 같은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위와 아래를 바꾸었다.

“다시 내 턴이네?”

유더의 말랑한 배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코델리아는 상체를 숙이며 그리 말했고, 유더는 수치심에 젖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더니 급히 시선을 돌렸다.

코델리아의 가슴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뉴비 키우기를 못 참지.’

만렙 유더에게서는 볼 수 없는 참으로 신선한 반응에 부르르 몸까지 떤 코델리아는 머릿속으로 당장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들을 떠올렸다.

개중에는 유더의 손을 움직여 코델리아 자신의 심장박동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있었지만 인내했다.

지금의 유더에게는 자극이 너무 강할 테니까.

그래서 코델리아는 다른 카드를 선택했다.

조금 더 상체를 숙여 외면하듯 고개를 돌린 유더와 얼굴을 가까이 한 뒤 달콤한 숨으로 속삭였다.

“어른의 키스를 할 거야.”

괴도 핑크폭탄의 예고장에 유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꿀꺽하고 삼킨 침이, 목의 울림이 이미 대답이 된 상황이었다.

코델리아의 입술이 유더의 뺨에 닿았다.

그대로 미끄러졌고, 입술과 입술이 서로를 마주하였다.

숨결이 거칠어졌다.

절로 차오른 숨을 토해내기 위해 입술을 벌렸고, 그건 유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 열린 통로.

그렇기에 오갈 수 있게 된 것.

미끄덩하고 밀려들어온 이물질에 유더의 허리가 다시 반응을 보였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몸을 부드럽게 짓누르며 눈을 감았다.

이미 레벨이 꽤 오른 유더조차도 당황하게 만들었던 고수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양쪽 모두가 진심이었다.

코델리아가 짐승이라면 유더는 천무지체의 소유자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깨우치는 기린아처럼 맥없이 당하지 않고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코델리아는 다시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갈 곳 없이 맴돌던 거친 호흡이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고, 코델리아는 볼 수 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유더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까와 확연히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뜨거운 눈빛이었다.

초록색 눈동자가 마치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네가 먼저, 시작한, 거야.”

거친 숨을 토하며 유더가 문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뉴비의 앙탈이었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일부러 도발하듯 미소를 지어주었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정말로 할 수 있겠어?

눈빛은 통했고, 유더는 고개를 숙였다.

하늘이 내린 눈부신 무의 재능을 무공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사지가 아닌 혀로써 입증하였다.

* * *

“조루야, 조루.”

사전적 의미의 조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유와 상징.

공격적으로 키스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역시나 구음절맥이 문제였다.

이미 코델리아의 맹공에 당한 것만으로도 유더의 체력은 바닥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런데 그 상태로 역공을 가한다?

유더는 차오른 숨을 더 이상 어찌하지 못했고, 코델리아의 몸 위에서 축하고 늘어지고 말았다.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허약해, 허약해.”

일주일 동안 자신을 수도 없이 실신시켰던 누구누구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저질 체력.

엎드린 채 지면에 얼굴을 박고 있는 유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체력도 없었지만, 몹시도 창피했기 때문이다.

“반응이 없다. 그냥 시체인 모양이다.”

코델리아가 쿡쿡 찌르며 그리 말하자 유더는 문득 마이아와 나타샤의 얼굴을 떠올렸다.

울고 싶을 때 가족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아무튼 유더야, 이제는 믿겠지?”

내가 했던 이야기들.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느릿느릿 힘겨운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커다란 바위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아직은. 조금 더 확인해야겠어.”

“음…… 나는 괜찮은데 체력이 되겠어?”

“……그런 거 말고.”

“그럼?”

“정말로 미래에 나랑 결혼했을 정도면…… 나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겠지?”

유더가 아닌 강진호에 관한 것들.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키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쟁이 유더에게 어떤 답을 해줄지가 반짝하고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말 말해도 돼?”

듣고 나면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코델리아의 도발 섞인 물음에 유더는 미간을 좁히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봐.”

“나이트 풀에 갔다가 수영복이 끊어진 나타샤의 가슴을 보고 처음으로 야한 꿈을 꾼 뒤 몽정했어.”

유더가 아닌 나타샤에게 들은 이야기.

코델리아는 웃으며 말했고, 유더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더니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대로 침몰하듯 쓰러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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