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472화 (472/473)

엔딩메이커 471화

SS #40 Time to back(5)

“선동과 날조야. 나타샤가 조작한 이야기야.”

유더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뉴비 유더도 일단은 유더이기 때문인지 뻔뻔함 스킬은 건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데 정말 거짓말인가?’라고 생각하는 대신 입꼬리를 끌어 올릴 따름이었다.

“조작이라. 팩트가 아니라?”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이미 다 안다는 그 눈빛에 여간한 사람이라면 낭패한 표정을 지었겠지만 유더는 아니었다.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조작이야. 나타샤를 안다면, 너도 나타샤 성격을 알 거 아니야.”

나타샤가 얼마나 짓궂고 장난기가 많은지.

“흐음.”

유더의 주장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었다.

나탸사의 성격이라면 코델리아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정말 선동과 날조야? 응? 정말로 진짜?”

코델리아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기울이며 다시금 물었다.

뻔뻔함을 넘어 억울함까지 내비치고 있는 유더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면서 말이다.

코델리아의 얼굴.

낡은 표현이지만, 정말로 호수같이 맑은 푸른 눈동자.

그래서 부담스러웠다.

애써 만들어낸 가면 같은 표정이 깨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유더는 인내했다.

알렉세이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뻔뻔함을 유지하고자 했다.

코델리아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타샤가 분명히 우리 애기 유더가 빨개진 얼굴로 몰래 속옷 빠는 모습을 봤다고 했는데?”

보기 드물게 당황한 모습으로.

당혹스러움과 민망함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얼굴을 한 채.

유더가 움찔했다.

뻔뻔함으로 코팅한 얼굴 표정에 균열이 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랭킹 정산 때마다, 정확히는 유더에게 놀림당할 때마다 꼭꼭 해주고 싶던 복수의 희열을 느끼며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속옷 빨다가 걸렸다고도 했고?”

“……읏.”

“한 사흘이었나, 나타샤 얼굴은 물론이고 가슴 쪽도 못 쳐다봤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으으윽.”

거기까지였다.

유더가 다시 침몰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바닥에 쓰러져 온몸으로 민망함을 발산하던 유더는 수치심에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디까지 이야기한 거야. 대체.”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유더의 항복을 순순히 받아주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누구누구 씨 때문에 속이 까맣게 물들어 버린 블랙 코델리아였기 때문이다.

“음, 글쎄? 어디까지일까?”

“으흐윽.”

애태우는 물음에 유더가 저도 모르게 반응했고, 코델리아는 더더욱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애기 유더.

귀여운 뉴비.

만렙 유더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기는 정말 힘들었는데.

아니, 코델리아 자신의 아바타에 강제로 집어넣었을 때 외에는 아예 본 적이 없었는데.

‘만렙 유더면 여전히 뻔뻔했겠지?’

오히려 이 건으로 코델리아 자신의 질투심을 자극하면 자극했지 지금처럼 맥없이 뻗어버리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렙 유더의 이야기였고,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파릇파릇한 뉴비 유더였다.

그랬기에 코델리아는 유더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한 뒤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유더도 알다시피 나타샤가 술이 들어가면 많이 솔직해지니까. 강진호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래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단 말이지?

“이를테면…….”

“그만, 제발 그만! 믿을게! 어? 미래에서 온 코델리아고, 나랑 그, 어…… 러, 러브러브? 아니, 그, 사, 사랑. 그래, 사랑!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도 다 믿을 테니까!”

유더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사실상을 넘어, 그냥 엎드려 절하는 것 같은 항복 선언이었다.

“그런데 유더야.”

“왜…… 왜 또.”

천하의 유더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자 코델리아는 새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모르게 위험한 세계에 눈을 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이미 뜬 건가?’

어찌 되었든 코델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충동적이었고,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난 생각을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좋았어?”

“……어?”

“좋았냐고. 나랑…… 키스한 거.”

자극적인 물음에 유더가 다시 움찔했다.

숨결이 닿은 귀는 어느새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드가 뚫린 초록색 눈동자는 가늘게 떨렸고 말이다.

코델리아의 숨결 역시 달아올랐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을 뿐 얼굴 역시 흥분과 조각만큼이나마 남은 부끄러움으로 붉어진 상태였다.

“솔직하게 말해봐, 응?”

어르듯 건넨 목소리에 유더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눈동자를 굴려 코델리아가 아닌 바닥을 보았고, 눈동자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 좋았어.”

“얼마나?”

“마, 많이.”

“많이 좋았어?”

“많이…… 좋았어.”

코델리아가 물을 때마다 유더는 부끄러움과 열망으로 채색된 목소리를 입 밖에 내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니 머리에 열이 너무 올라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또…… 하고 싶어?”

“하고…… 싶…… 헉?”

반사적으로 답하다 간신히 이성을 회복한 유더였지만 사냥꾼 코델리아는 겨우 잡은 사냥감이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더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다시 입맞춤을 하였고, 유더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어른의 키스.

누구누구 씨 때문에 속이 까매진 것은 물론이고 키스 스킬마저 만렙이 되어버린 코델리아의 진심 키스.

새파란 뉴비 유더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자극이었다.

이미 라이프가 제로였던 유더는 금방 무너져 내렸다.

이성의 방패를 세우기는커녕 코델리아의 리드에 이끌릴 따름이었다.

“하아…… 하…….”

뜨거운 숨을 토하는 코델리아의 입술과 유더의 입술을 진득하게 연결하던 선이 끊어졌다.

유더의 초록색 눈동자에는 수치심이나 민망함은커녕 이성의 파편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열락에 물든 녹색 눈동자.

코델리아는 그 눈동자에 빨갛게 물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물었다.

충동적인 물음이었다.

“좋았어?”

유더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낼 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고 싶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입술에 스치듯 짧은 버드 키스를 한 뒤 다시 속삭이듯 물었다.

“코델리아가 최고지? 1등이지?”

-야! 이거 가스라이팅이야!

-아니, 아니, 이런 건 조교라고 하는 거야.

순간 머릿속에서 스칼렛과 카이사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코델리아는 무시했다.

뉴비 유더에게만 집중했고, 뉴비 유더는 어여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못 참겠어.’

그냥, 그냥 이대로 끝까지 가버릴까?

순간 떠오른 충동은 매력적이었지만 코델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더의 라이프는 이미 제로였다.

여기서 더 했다가는 정말로 뻗어버릴지도 몰랐다.

더욱이 오늘의 일정도 있었으니까.

장난은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았다.

-잠깐, 이게 장난이라고?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다시 머릿속의 스칼렛과 카이사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코델리아는 그런 둘의 목소리를 대충 무시한 뒤 여전히 넋이 반쯤 나간 유더에게 리커버리를 걸어주었다.

“유더 군,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읏…… 으윽.”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입술을 깨물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리커버리 덕분에 머릿속이 맑아지며 새삼 수치심이 밀려온 탓이었다.

‘참자, 참자 코델리아.’

여기서 다시 키스하면 도돌이표였으니까.

“아무튼 유더야. 이제 이야기를 진행하자. 빨리 정신 챙겨. 어?”

“기, 기다려.”

쥐어짜 낸 목소리를 흘린 유더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눈을 감고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알렉세이 도와줘요!’

딱히 독순술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말.

그리고 언제나처럼 효과가 있었다.

여전히 너덜너덜한 상태이긴 했지만 그래도 눈에 총기를 회복한 유더는 몇 번인가 숨을 고르다 코델리아를 살짝 노려보며 말했다.

“……음란해.”

“저기, 유더야. 너 지금 엄청 야한 뉴비 같거든? 그리고…… 내가 누구한테 배웠을 것 같아?”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다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모르게 ‘업보로구나-’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튼 유더야, 지친 건 알겠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이동하면서 이야기하자. 업어줄게.”

말을 마친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등을 보인 뒤 쪼그려 앉았다.

“빨리 업혀. 어부바하자. 응?”

아기 달래는 것 같은 목소리에 유더는 수치심에 물든 얼굴로 코델리아의 등에 매달리듯 업혔다.

“어휴, 가벼운 거 봐. 살 좀 쪄야지. 근육도 좀 키우고. 엉덩이에 뼈밖에 없네.”

“그…… 이야기.”

“어? 어어. 그래. 이야기. 이제 내 이야기 다 믿지?”

코델리아가 힘차게 나아가며 묻자 유더는 코끝을 자극하는 코델리아의 체향에 어지러워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뒤 이성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거의. 거의 다 믿어. 나타샤를 알 정도면…… 그리고 나타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라면 정말 친밀한 관계였…… 잠깐, 아까 분명 나타샤에게 직접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응, 나타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야.”

코델리아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유더는 눈을 깜박이더니 마른침을 삼키고 물었다.

“우리가 다시 지구에 돌아가는 거야? 설마 그, 영혼만 옮겨 간다거나?”

“아! 맞다. 내가 본편 이야기만 했구나.”

“본편?”

“어…… 비유라고 해야 할까? 소설로 치면 360편은 너끈히 나올 이야기라 본편 이야기만 했는데, 그 뒤의 이야기가 더 있다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외전?”

“……비유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다음이 있다는 소리지?”

“응응, 그, 공략법 알아내라고 지구에서 우리를 환생시키긴 했는데, 다시 플레이아데스에 돌아올 때에는 영혼이 분리되었거든. 그래서 지구에는 여전히 우리- 홍유희랑 강진호가 살아 있어. 뭐, 사실 이미 우리라고 할 수 없는 타인이지만.”

강진호와 홍유희는 유더와 코델리아가 가진 여러 전생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전생의 기억들을 모두 회복한 지금의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체이스’의 자의식이 훨씬 더 강했다.

영혼의 분리.

유더가 강진호에게 선언했듯이 이미 타인과 같은 상황.

정신만이 아니었다.

유전자적으로도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공유하는 것은 그저 과거의 기억뿐.

유더와 강진호, 코델리아와 홍유희는 타인이었다.

“아무튼 일 다 끝나고 지구에 놀러 갔었어. 거기서 나타샤 만났고. 지금은…… 아니, 지금이라 하기 애매한가. 아무튼 채팅방 멤버들도 전부 다 알아. 나타샤는 1년에 절반 정도는 지구가 아니라 플레이아데스에서 살고. 나타샤랑 카마엘은 절친 됐고.”

“……신기한 조합이군.”

나타샤와 카마엘이라니.

“그래서 더 잘 어울리는 것도 같아. 뭐, 애당초 나타샤의 미친 친화력이 아니었다면 친구가 되지 못했겠지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였다.

영웅전기1에서 묘사된 카마엘은 그야말로 고슴도치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홍유희? 그게 지구에서의 이름이었나?”

“응, 홍유희. 예쁜 이름이지?”

“그래, 그런데…….”

“그런데?”

코델리아의 되물음에 유더는 바로 답하는 대신 미간을 좁혔다.

어쩐지 모르게 들어본 이름 같았기 때문이다.

홍유희.

홍유희.

홍…….

“잠깐, 설마?”

“빙고! 옆집 소녀의 이름이랍니다!”

코델리아의 외침에 유더는 너무 놀라 떨어질 뻔했다.

“자, 잠깐. 옆집 소녀? 우리 옆집 사는?”

“응응, 옆집 사는 귀엽고 착하고 예쁘고 겜덕들의 여신 그 자체인, 수시로 대학도 정해져서 고3 최후의 방학을 만끽하고 있던 예비 여대생인 동시에 일단은 현역 여고생.”

“맙소사.”

정말로 맙소사.

노란폭풍이 옆집 소녀였다고?

나보다 10살 가까이는 어린, 이사 올 당시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던 그 애였다고?

“오, 진짜 충격받네? 유더 말대로야.”

“내가 뭐라고 했는데?”

“그, 뭐냐. 서로 정체를 알았을 때 우린 사실 별로 충격을 안 받았거든. 이미 갈 데까지 가고 사랑하는 사이였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유더가 그랬어. 지금처럼 서로 간의 애정을 쌓기 전의, 그러니까 그냥 아웃복서009와 노란폭풍 사이였다면 엄청나게 놀랐을 거라고. 충격도 받고.”

“……타당한 이야기네.”

합리적이고.

“응응, 유더다운 이야기야.”

코델리아의 태연한, 그러면서도 어쩐지 모르게 자랑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유더는 생각했다.

‘쪽팔려 죽을 것 같아.’

이미 수치심의 끝을 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이런 수치심이라니.

유더는 상식적인 남자였다.

그랬기에 자기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여자애를 초딩처럼 놀려대며 만족감을 느꼈다는 사실에 깊은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열 살 차이 아니라 아홉 살 차이야. 그리고 강진호랑 홍유희도 결국 사랑에 빠졌으니까. 아무 문제 없어.”

“……여러 가지로 문제 같지만 아무튼 그래.”

생각하기를 포기한 유더는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 멀리, 목적지인 신전의 입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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