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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화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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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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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에 박힌 검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나왔다.

미친 신 새끼.

내가 좀 화나게 했어도 그렇지..

그렇다고 지 피조물에 검을 박아?

시발 내 몸에 피가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네.

조금이라도 피를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신이 내 몸에 박은 검의 저주 특성 때문에, 나는 무조건 죽는다.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삐꺽거리기는 했지만, 애써 힘을 주니 움직이기는 했다.

주둥이에서 불을 뿜어대던 도마뱀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날개가 뜯긴 채 땅에 처박혀있었다.

크롸롸롸롸롸­ 하며 까불거리면서 날아다니더니 꼴좋다.

그 하나하나가 산만큼 덩치가 컸지만, 생기가 사라진 지금은 그저 거인 장인들이 만든 작품들 같았다.

'짐이 곧 법이고 나라니라 !'

라고 우렁차게 외치던 기운 좋은 노인네도 왕관과 같이 머리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몸은 어디 갔는지 둘러봤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뭐 마물이 뜯어 먹었나 보지.

근데 나 저 왕관 꼭 써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피 칠갑이 되어 있어서 별로 끌리지 않았다.

딱 봐도 끈적거릴 것 같잖아.

하도 유별나게 말해서 다를 줄 알았는데, 딱히 왕이라고 피 색이 다르지는 않네.

나는 또 그 왕관처럼 금빛으로 빛날 줄 알았지.

그 이외에도 세계에서 제일 큰 시체 전시관처럼 다양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머리에 빛나는 링을 달고 다니던 천사들도.

이쁜 마왕 누나도.

저 가슴 한 번만 만져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슬쩍 손을 뻗어봤지만, 너무 멀리 있었다.

수많은 시체들 중에서 제일 큰 것은 내 바로 앞에 엎어져 있었다.

내게 뻗은 산만한 손이 황망하게 멈추어 있는­

한때는 모두에게 신이라고 불렸던.

비밀이지만 신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너무 놀라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

물론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몰래 바지를 갈아입었지만.

우스운 점은 목이 뎅겅 날아간 지금도 시체가 빛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은 신이라는 건가.

덕분에 밤인데도 불구하고 아침보다 밝았다.

밤을 밝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신님!

아 이제 내 기도는 듣지 못하나.

종말이라는 단어만큼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가 없을 것이다.

신의 목이 날아가면서 태양도 같이 저물었고­

세상에는 이제 끝없는 밤만이 남았다.

물론 밤이나 낮이나 다 같이 죽은 마당에 별다른 건 없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피가 역류하는 건가.

진짜 검에 찔리면 입으로도 피가 나오네.

책에서 봤던 장면이 과장인 줄 알았는데.

흡­

어디까지 참을 수 있나 참아봤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내 마지막 작은 놀이였다.

그러다 결국 기침 터지듯 피가 터져 나왔다.

입에서 주르륵 흐른 피가 내 몸을 적셨다.

입에서 피를 뱉어내니 우습게도 갈증이 났다.

꽤 오래 참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록이야.

스스로 만족할만한 기록이었다.

아마 인간 최고 기록일 것이다.

다른 인간들은 다 뒤졌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이번에는 좀 더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다시 한번 울컥 쏟아져 나오는 피를 억지로 참았다.

이번 시도는 기세가 전보다 더 좋았다.

컨디션도 좋았고 피 양도 적당한 것 같아, 신기록을 노려보기에 충분했다.

"에이든에이든에이든"

그때 옆에서 루나가 나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아 숨 막힌다고! 시발!"

나를 꽉 끌어안는 루나를 밀쳐내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갔다.

피 참기 세계 신기록 경신 중이었는데, 루나의 방해 때문에 실패했다.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업적인데 시발.

재경기를 하기에는 내게 남은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인류 최고 기록이니까­

"아! 미안미안미안"

내 고함에 루나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루나의 품에서 떨어진 나는 땅바닥에 처박혔다.

시발 그렇다고 중환자를 바닥에 패대기치냐.

배에 찔린 고통 덕분에 바닥에 머리를 박는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인 건가?

나는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해.

바닥에 흥건한 내 피에 얼굴이 잠겼다.

문득 피 맛이 궁금해 살짝 혀를 내밀어 피 맛을 봤다.

으­ 맛없어.

마물들은 이렇게 맛없는 것을 왜 좋아했던 거지.

결국 나는 끝까지 마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발 이렇게 뒤지네."

그렇게 악착같이 살기 위해 발악했는데.

결국 결과는 이거였다.

세계가 다 같이 사이좋게 끝.

그래도 다른 생물들이 다 죽었으니 장수인 건가.. ?

옆에서 중얼거리는 저 미친 여자만 빼면 그래도 내가 생물중에서는 제일 오래 산 거다.

몇천 년을 산다는 도마뱀들보다.

온갖 몸에 좋다는 약은 다 처먹은 저 할배보다.

보잘것없는 내가 더 오래 살았다.

땅에서 주운 동전처럼 하찮은 승리감이 내 속을 채웠다.

애초에 루나는 논외였다.

신도 인정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실수라고.

아직도 루나가 신의 목을 뎅겅 날리던 살벌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게 내 몸에 검을 왜 박아.

저 미친 여자가 나한테 얼마나 집착을 하는데.

신답게 '너의 죄를 사하노라.' 했어야지.

"안돼안돼안돼 에이든은 죽을 수 없어! 안돼!"

루나의 발작 스위치가 또 눌렸나 보다.

쟤는 마지막까지 지랄이네 진짜.

저 발작 패시브 때문에 그동안 고통받았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동안 억지로 붙들고 있었던 구질구질한 삶이 끝나는 것에 대한 미약한 해방감도 느껴졌다.

그래 시발 이거면 된 거지.

이거면 된 거야.

오랜 삶의 모래가 내 눈꺼풀을 눌러 점점 무거워졌다.

"에이든에이든에이든! 안돼안돼안돼!"

왜 똑같은 단어를 세 번씩 말하는 거야 귀 아프게 시발.

한 번만 말하라니까 결국 저것도 못 고치네.

뭐 어차피 이제 끝이니까.

그냥 마음 편하게 마지막을 기다렸다.

"절대 안 돼. 누구도 못 데려가. 내 에이든 나만의 에이든"

미친 여자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을 기다리던 나는 문득 루나가 나를 좀비로 부활시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신이 나간 게 확실한 루나라면 충분히 저지를만한 행위였다.

'속으로 제발 좀비라면 머리는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아 신 뒤졌지 시발.

대머리가 될 거면 차라리 죽을 거야­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했다.

근데 좀비면 이미 죽은 거라 또 못 죽는 건가?

" 다시 쓰면 돼. 다 되돌리면 돼. 그러면 돼 . "

미친 여자의 중얼거림을 자장가 삼아.

점점 정신이 흐려졌다.

몸의 감각이 무뎌지며 어둠이 가까이 다가왔다.

'편해지자'

어둠이 내게 간드러지게 속삭였다.

그 속삭임은 내가 살면서 들었던 어떤 속삭임보다 달콤하고 매혹적이었다.

그러지 뭐.

마지막이니 시원하게 속삭임에 응했다.

" 처음부터 다시. 나는 천재니까. 맞아 그러면 돼. "

닫힌 눈꺼풀도 뚫을 만큼 큰 빛이 느껴졌다.

좀비 되는 건가 시발.

제발 대머리 좀비 말고.

제발.

이왕이면 금발 태닝 된 좀비로.

" 다시 시작하면 돼 "

루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의식이 흐려졌다.

금발 태닝...

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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