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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4화 (4/233)

〈 4화 〉 인싸 공포증. (수정)

* * *

쾅­!

내 몸이 다시 실습실 바닥에 처박혔다.

그나마 실습실 바닥이 특수 처리된 게 다행이지.

만약 맨바닥이었으면 이미 나는 팔로 기어 다니고 있었을 거야.

"퉤! 검술 실습이 아닌 걸 다행으로알아! 인간 쓰레기 새끼!"

나를 땅에 패대기친 건방진 상판인 놈이 말했다.

저...저 호로 새끼 말하는 꼬라지 보소.

내가 왜 인간 쓰레기야 시발.

유급한 게 죄는 아니잖아.

격투기 실습의 마지막 대련이 끝났다.

격투기 실습하는 동안 나는 반의 공공재가 되었다.

처음에는 몇 명의 남학생이 나를 지목해서 불러내서 나를 바닥에 처박았다.

하지만 악질 팬덤이 시작하니까 나중에는 일반 학생들도 유행인 줄 알고 나를 지명해 바닥에 처박았다.

'요즘 유행하는 놀이인가? 꽤 재밌네 이거.' 라고 나를 땅에 처박고 중얼거리던 새끼도 있었다.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그냥 바닥에 처박히면 다음 학생이 나와서 나를 억지로 일으켜 다시 바닥에 처박았다.

하트 선생님은 말리기는커녕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더 신나서 시켰다.

대련 내내 옆에서 '근성! 근성! 그렇지 더 세게!' 라고 옆에서 소리치는 걸 보니 선생님도 정상은 아닌 듯했다.

다른 남자들의 거친 손길에 이미 너덜너덜해진 옷을 고쳐 입었다.

서러움에 눈앞이 흐려졌다.

아닌가? 땅에 하도 처박혀서 머리가 맛이 간 건가.

어지러운 머리를 톡톡 두들겨서 정신을 차렸다.

"자! 일어나자!"

일어설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내게 하트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하트 선생님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귀여운 외모와 다르게 하트 선생님의 손에는 굳은살들이 깊게 박혀있었다.

역시 격투가는 격투가인가. 순간 하트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눈 속에서 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나를 잡은 하트 선생님의 팔이 움찔거렸다.

뭐야 이건 또.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힘을 줘서 일어섰다.

"자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고생했어! 다들!"

하트 선생님이 활기차게 인사하고 나갔다.

"에이든! 반 친구들 모두와 대련을 하다니 근성이 대단한걸. 찡긋."

중심을 못 잡고 있는 날 옆에서 케일이 잡아줬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냐. 애새끼들이 나와서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아서 처박은 거지 시발. 그리고 너 왜 찡긋을 입으로 말하는 거야. 미친 소름 돋아."

방관자도 가해자랬어 시발 너도 가해자야 개새끼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케일이 넉살 좋게 말하며 익살맞게 웃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좆같은 케일에 붙어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좆같았다.

"그래도 이제 점심시간! 오늘의 점심 메뉴가 무엇일지 너무너무 궁금이다!"

이야기를 하다가 케일이 흥분했는지 뜨거운 콧김을 뿜어댔다.

진짜 이 새끼 머릿속에는 여자, 밥 이 두 개밖에 없는 게 분명했다.

이제 겨우 점심시간이라는 사실이 나를 질리게했다.

그래도 다행히 3교시와 4교시는 이론 수업이었다.

조금 걷자 다리에 힘이 돌아왔다.

나를 잡아주던 케일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걸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식당 앞까지 도착했다.

어느 정도 걷자 다리가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걷는 게 괜찮네 시발.

"킁킁­ 오늘은 돼지고기!"

옆에서 케일이 코를 킁킁대며 큰소리로 외쳤다.

케일은 음식은 냄새만으로 기가 막히게 알아맞혔다.

"돼지고기일 때는 빨리 가야 돼! 늦으면 풀 쪼가리들만 먹어야 한다니까!"

옆에서 케일이 잔뜩 흥분했다.

진짜 돼지 새끼 아니랄까 봐.

맛있는 냄새를 맡자 나도 배가 고파졌다.

일어나서 지금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는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고생한 내 몸에게 맛있는 것을 먹여줘야 했다.

자연스레 식당으로 향하는 걸음이 빨라졌다.

"에이든 씨?"

식당으로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불길함을 느끼며 뒤돌았다.

학생회 완장을 오른쪽 팔에 차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검은색 생머리에 검은색 뿔테 안경.

차분한 얼굴의 미녀.

어디서 봤는데...

"혜진쨩?! 혜진쨩?! 혜진짱?!"

갑작스런 미인의 등장에 케일이 고장난 것처럼 말을 더듬었다.

아 맞다­ 부학생회장 혜진이었지.

근데 쟤는 또 왜 나를.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혜진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저요?"

아니겠지 설마.

저런 애가 왜 나를 찾겠어.

"에이든씨 맞나요?"

뭔 학생끼리 씨를 붙여.

"예. 뭐 일단은요."

오늘 하도 이상한 일이 많아서 인싸의 접근이 두려웠다.

그냥 더는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주지마 제발.

"학생회장님이 찾습니다. 같이 가시죠."

혜진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걘 또 왜 나를 찾아.

그리고 지도 학생이면서 볼 일이 있으면 직접 올 것이지 시발. 너무하네.

"헉헉.. 냉미녀.. 헉.. 눈나.."

옆에서 케일이 거칠게 숨을 쉬며 중얼거렸지만, 혜진은 그런 케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제가 아직 밥을 안 먹어서."

학생회장에게 가기 싫어서 최대한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와 같이 가셨다가 식사하시면 됩니다. 가시죠."

혜진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크ㅡ흑.. 내가 에이든 몫까지 먹어줄게!"

옆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케일이 말했다.

니가 왜 내 몫까지 먹어.

내가 이따가 먹을 거야. 먹지 마.

싸늘한 혜진의 눈빛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혜진을 따라갔다.

더 이상 이목을 끌기 싫은 나는 혜진과의 거리를 두며 따라갔지만, 혜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윽고 학생회실 앞에 도착한 혜진이 문을 같은 간격으로 세 번 두드렸다.

무슨 암호 같은 건가?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미성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이 찾으신 에이든 씨입니다."

혜진이 문을 조용하게 열고 정중하게 말했다.

같은 학생끼리 뭐 하는 짓이지?

어이가 없었지만 티 내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에이든 씨"

안에는 검은색 머리의 차분한 느낌의 미남 루크가 앉아 있었다.

루크는 남자 버전의 키아나였다.

얘는 아싸인 나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성적 완벽, 대인 관계 완벽, 외모 완벽, 출신 완벽.

정확하게 내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었다.

키아나나 루나처럼 이치에 벗어날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만, 루크는 마법과 검술 둘 다 능숙하게 사용했다.

그런 완벽한 루크는 아카데미 입학 이후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학생회장을 계속 맡았다.

그리고 3년 동안 단 한 번의 문제도 아카데미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내가 유급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하얀 벽에 더러운 오물을 뿌린 느낌에 약간 고소한 마음도 들었다.

평소라면 한 명도 마주치지 않을 인물을 오늘 벌써 세 명이나 만나다니.

슬금슬금 불안감이 올라왔다.

"불편하십니까?"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루크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나는 순순히 루크가 가리키는 의자에 앉았다.

근데 루크 저 손에 있는 반지 어디서 봤는데.

가늘게 눈을 뜨고 봤지만, 어디서 본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최대한 순한 눈빛으로 루크를 쳐다봤다.

물론 살짝 올라간 내 눈꼬리 때문에 소용없겠지만.

"차 한 잔 드릴까요?"

루크의 의자는 내가 앉은 의자보다 미묘하게 높았다.

"아! 괜찮습니다."

예의상 한 질문인 듯 루크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재수 없는 새끼.

"혜진 님은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루크의 말에 혜진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갔다.

혜진이 나가자 루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제가 이렇게 부른 건 아카데미에 떠돌고 있는 루나 님과 관련된 소문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그게 아니면 학생회에서 나를 찾을 일이 없으니까.

근데 뭐 얼마나 됐다고 소문이 벌써 돌아.

분명 헛소문이겠지만­

작게 말을 잇는 루크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슨 소문을 들었건 아닙니다!!"

최대한 진심을 듬뿍 담아서 호소했다. 나으리!

"그렇죠?"

루크의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무서워 시발.

웃을 거면 눈도 같이 웃지.

"넵넵! 다 헛소문입니다!"

예전에 성격 더러운 칸한테 골목길에서 삥 뜯길 때의 기분이 들었다.

포식자 앞에 선 느낌.

오늘 재수 더럽게 없네 진짜.

루크의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알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루나 님은 우리 아카데미 최고의 보물입니다. 신분이 평민이지만 에이든 씨와 같은 평민이 아닙니다. 제 말 아시겠죠? 아! 물론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신분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루크가 작게 웃었다.

요약하자면 너와는 신분이 다르니 어울리지 말아라인가.

분명 나도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들으니 괜히 서운했다.

지네 집은 잘산다고 개새끼. 서럽네.

괜히 저런 말을 들으니 내 꼬인 심성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안녕! 좀 들어가 있어 너도.

애써 다시 밀어 넣었다.

루크의 말처럼 용사 아카데미는 신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철칙이다.

하지만 다들 밖으로는 티는 안 냈지만 암묵적으로 차이가 존재했다.

끼리끼리라는 불변의 진리처럼, 어떻게든 다들 자신의 신분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몰려다녔다.

갑자기 내 친구가 케일이라는 게 생각나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도 그 곰탱이 새끼보단 내가 낫지.

"넵!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다시 볼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루크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 하고 두들겼다.

"넵. 그럼 이만..."

루크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이 새끼는 진짜로 재수 없네 시발.

하지만 나는 속마음과 다르게 웃는 얼굴로 학생부실에서 나왔다.

휴­

그래도 이제 점심 먹을 시간이니까.

시발 깜짝이야!

학생부실 옆에는 혜진이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

얘는 왜 인기척도 안 내고 서 있는 거야.

"고생하셨습니다. 식사하러 가시죠."

특유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혜진이 말했다.

싫어.

내가 왜 너랑 같이 식사를 해.

혜진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돌아서 먼저 걸었다.

아니 밥은 편하게 먹을래 너랑 먹으면 체할 거 같아.

내가 따라오지 않자 혜진이 멈췄다.

"문제 있으십니까?"

혜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봤다.

"아뇨! 어서 가시죠!"

당연하게도 초식 동물인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나는 다시 최대한 혜진과 일행이 아닌 척하면서 따라갔다.

식당에 도착해 배식대로 갔지만, 아까 맛있는 냄새를 풍기던 돼지고기는 이미 하나도 없었다.

"아이고! 학생 돼지고기가 다 떨어졌네.. 좀 일찍 오지 그랬어!"

배식해주는 아주머니가 호호­ 거리면서 말했다.

이 돼지 새끼 진짜 내 몫까지 처먹은 거야?

농담 아니었어?

"문제 있으십니까?"

혜진이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배고픔과 차오르는 분노에 나도 모르게 표정 관리를 못 했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해 분노를 가라앉히고 표정을 관리했다.

"돼지고기가 다 떨어졌다고 해서요. 혜진 님은 괜찮으십니까?"

지금 시발 너네 때문에 개똥 같은 용사 아카데미의 유일한 낙인 식사가 망가졌잖아.

너도 솔직히 돼지고기 먹고 싶잖아.

솔직해지라고.

"아­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저는 채식주의자라."

혜진이 무미건조하게 말하며 자신의 식판을 가리켰다.

혜진의 식판 위에는 전혀 식욕이 생기지 않는 풀 쪼가리만 가득했다.

진짜 시발 개 얄밉네.

좆같은 아카데미.

망해버려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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