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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7화 (7/233)

〈 7화 〉 첫 데이트 ? 첫 데이트 !

* * *

루나의 눈은 내 대답을 잔뜩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남자라면 저런 미인의 저녁 식사 초대를 거절하기 힘들 테지만 나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그 제가 친구랑 먹기로 해서..."

그럴싸한 핑계를 말했다.

급하게 생각한 핑계치고 괜찮았다.

역시 나는 임기응변에 능해.

내 대답을 들은 루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친...구?"

루나가 한 글자씩 뱉어내듯 말했다.

뭐 왜.

나도 친구는 있어.

그 친구가 한 명이라는 게 문제지만.

"네. 그 케일이라는 친구랑..."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저녁을 편하게 먹고 싶다는 마음이 이겼다.

점심때도 불편함 속에 풀 쪼가리만 먹었는데, 저녁은 좀 편하게 먹자.

"친구?친구?친구?친구? 그럼 친구가 없어지면 같이 저녁 먹을 수 있겠지? 그럴거야.그럴거야."

내 대답을 들은 루나가 땅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그 내용이 언뜻 들어도 살벌했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며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저걸 놔두면 당장이라도 빈대떡이 된 케일을 볼 것 같았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럼 나는 친구가 한 명도 없게 된다.

1과 0은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그렇지만! 친구보다는 미인이신 루나 씨와 저녁을 먹는 게 더 좋네요! 하하"

나는 흙을 삼키는 기분으로 말했다.

물론 흙을 삼켜본 적은 없었지만, 아마 비슷할 거라고 확신했다.

온몸에서 느껴지던 싸늘함이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 응응! 나도 에이든이랑 저녁 먹는 것 좋아! 내가 에이든이 좋아하는 맛집을 알아! 거기로 가자!"

내 대답을 들은 루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에이든인데 내가 좋아하는 맛집을 니가 어떻게 알아.

심지어 나는 예산도 빡빡해서 용사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서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맛집이라니.

동명이인인가.

하긴 내 이름은 흔한 이름이기는 했다.

나는 그것을 루나 나름대로의 유머라고 생각했다.

루나의 눈이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하 네.. 가시죠"

안 나오는 말을 억지로 꺼냈다.

"응! 기뻐!"

내 대답에 루나가 밝에 웃으며 자신의 작은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거겠지?

대련하다가 잡아본 여자 손 말고는 처음으로 잡는 여자 손이었다.

루나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여자 손은 이렇게 부드럽구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고 있을 때,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어느새 우리는 왁자지껄한 시장에 도착해 있었다.

"왁?!"

분명 방금까지 기숙사였는데?!

당황한 내 입에서 바보 같은 소리가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루나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게 웃는 루나의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나는 화들짝 놀라 내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홀리지 마 저건 미친 여자야.

미소를 지은 루나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처음 와보는 수도의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용사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종족들도 돌아다녔다.

와 저게 드워프라는 거구나.

진짜 난쟁이네.

드워프는 자기보다 큰 도끼를 한 손으로 들고 몰려다녔다.

"수우울~ 수우울~ 오늘도 우리는 수울!"

다른 한 손에는 자기 몸만한 맥주잔을 들면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옆을 지날때 드워프에게서 언뜻 흙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루나가 이끄는 대로 열심히 구경하면서 따라갔다.

루나는 주변에 관심이 없는 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던 루나는 허름한 식당앞에 멈췄다.

식당에는 조그마한 간판으로 '간장 라면'이라고 적혀있었다.

라면이 뭐지?

생소한 음식 이름이었다.

루나가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간 가게 안에는 허름한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딱봐도 용사 그룹에서 잡몹 처리와 심부름을 위해 데리고 다닌다는 하급 용사들 같았다.

그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하급 용사들도 지금의 나보다는 강하겠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루나에게 가게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하긴 루나의 외모는 어딜가든 시선을 끌 수 밖에 없는 외모였다.

루나는 주변의 시선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 손을 잡고 빈자리로 갔다.

빈자리 앞에서 멈춘 루나가 손을 가볍게 튕기자 의자와 책상이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와­ 진짜 편하네.

나도 루나를 따라서 자리에 앉았다.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은 꼬질꼬질한 앳된 소년이었는데 연신 루나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간장 라면 2개"

루나는 내게 시선을 떼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넵!!"

루나의 얼굴을 몰래 한 번 더 본 종업원이 다시 돌아갔다.

"있잖아. 에이든은 지금 몇 학년이야?"

루나가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유급을 한 내게는 민감한 질문이었지만, 루나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었다.

"지금 3학년이죠."

내 입에서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흐응... 그렇구나. 지금의 에이든은 3학년이구나."

루나가 내 대답을 혼자 곱 씹었다.

그 이후로 루나는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내 대답을 들으면서 루나는 방긋 웃으며 즐거워했다.

루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기도 했고 가끔은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런 루나의 모습이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여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지금의 루나는 아까와 다르게 내가 욕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듯했다.

물론 중간중간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강렬했던 첫 만남에 비하면 양호했다.

루나는 나를 부를 때, '지금의'라는 호칭을 붙였는데 말버릇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습게도 루나가 조금은 편해졌다.

"여기 간장 라면 두 개입니다!"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이 우리 앞에 음식을 놓았다.

종업원은 가기 전 루나의 얼굴을 한 번 더 힐끗 봤다.

그냥 대놓고 봐도 루나는 신경 안 쓸 텐데, 굳이 종업원에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의 에이든은 간장 라면을 먹어본 적 있어?"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니요. 처음 먹어봐요."

국물의 색이 약간 검은색인 것이 식욕에 도움이 되는 색은 아니었다.

그 모습에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냄새는 괜찮았다.

"이것 봐봐! 이것 봐봐! 이렇게! 먹는 거야!"

내 대답에 왠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신이 난 루나가 내게 젓가락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루나는 젓가락질이 약간 서툰지 국물이 좀 튀긴 했지만, 나름 태가 났다.

나도 루나를 따라서 젓가락을 움직여 라면을 먹었다.

짭조름한 맛.

굉장히 맛있었다.

첫입을 입에 넣고 그 맛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먹었다.

에이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취향은 다 비슷한가?

아까 점심에 풀 쪼가리만 먹었기 때문에 더 맛있었다.

국물까지 싹 비우고 고개를 들자 나를 보며 정말 밝게 웃고 있는 루나가 보였다.

"지금의 에이든도 역시 좋아하네."

그런 루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이었다.

내가 이 라면을 맛있게 먹는 게 그렇게 감동적인가.

횩시 라면집 주인 딸인가?

그런 생각에 슬쩍 식당 안 쪽을 봤지만, 사장이 보이지 않아 내 의문을 풀지 못했다.

루나의 간장 라면은 아까 처음 먹었던 것을 제외하고 하나도 줄지 않았다.

"다 먹었어요?"

내 물음에 루나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이것도 먹을래 ?"

루나가 자기의 그릇을 내 쪽으로 밀어줬다.

나는 배가 고팠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다.

결국, 루나의 라면도 내가 다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었네.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만족감을 즐겼다.

"저런 못생긴 놈과 다니기에는 여자가 너무 아까운데."

옆 테이블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너무 클리셰적인 전개인데...?

심지어 나는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절대 못생긴 것은 아니었다.

못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발끈한 나는 잔뜩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렸다.

옆 테이블에 무장을 한 세 명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말을 한 남자는 금발의 머리에 꽤나 반반한 얼굴이었다.

꽤 구른 모양인지 곳곳에 흉터가 있고 나이도 꽤 있어 보였지만.

그래. 저 정도 생겼으면 인정이지.

인정할 수 있는 패배에 나는 인상을 풀고 고개를 돌렸다.

무장한 것을 보니 하급 용사인데 아직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나는 나보다 강한 녀석에게는 잘 참는다.

"사내새끼가 배알도 없군. 쯧"

"하하 그 정도 해 둬. 아직 애들 같은데."

"어이 저런 그지 같은 놈 버리고 일로 오지 !"

내가 꼬리를 말자 사내들이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그렇지만 비아냥 거리는 대사가 너무 진부했다.

창의성 없는 비아냥은 아카데미에서 유급생으로 살아남은 내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루나를 보니 루나는 내게 거친 말을 한 이들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루나가 다시 내 쪽을 쳐다봤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루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루나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뭐야 시발.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루나는 전처럼 밝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잘못 본 건가?

루나가 다시 맑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나가죠."

가볍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그런 내 말에 루나가 다시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살짝 머뭇거리다 그런 루나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다시금 주위의 풍경이 달라졌다.

눈을 뜨니 다시 내 방문 앞이었다.

이거 진짜 편리하잖아.

루나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전과 달리 루나가 웃으며 내 손을 놓았다.

의외로 순순히 보내주네.

"그럼 오늘 고마웠어요."

두둑한 포만감에 부드럽게 말이 나왔다.

"응응! 나도 즐거웠어!"

문이 닫힐 때까지 루나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첫 만남이 조금 그래서 그렇지, 완전 미친 건 아닐 수도..?

방금 같이 먹은 저녁도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긴장이 풀리자 다시금 피로가 찾아왔다.

무거운 몸을 움직여 침대에 누웠다.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밝게 웃는 루나가 생각났다.

그러자 가슴 부분이 약간 간질간질해져서 긁었더니 괜찮아졌다.

뭔가 문제가 많았지만 그래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하루가 끝났다.

내일은 다시 평소의 공기와도 같은 나로 돌아갔으면.

근데 라면값을 우리가 냈었나?

***

"어?! 이 손님들 어디 갔지?! "

시끄럽고 쪼그마한 종업원이 옆에서 소리쳤다.

옆을 보니까 아까 우리가 놀렸던 커플이 사라져있었다.

"남자는 그렇다 해도 여자는 먹고 막 도망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

종업원이 씩씩대면서 식탁을 치웠다.

"응? 쟤네 언제 갔냐?"

내 말에 플라도 뒤돌아봤다.

"뭐야 그새 도망쳤어? 여자애 얼굴 보는 맛이 있었는데 아쉽네"

플라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야! 니가 괜히 꼽줘서 빨리 나간 거 아니야!"

브룩스가 플라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아­ 이름도 못 물어봤는데..."

그렇게 이쁜 여자는 살면서 처음 봤다.

"물어보면 잘도 알려줬겠다. 걔 그 못생긴 남자한테서 시선을 못 떼던데."

플라가 늘 그렇듯 내 말에 딴지를 걸었다.

"솔직히 내가 더 잘생겼는데."

나는 나름 얼굴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주위 여자들의 반응도 좋았고.

"킥킥 그래 걔보다는 낫지. 니가."

"그 새끼한테 그 얼굴로 그런 여자를 만날수 있는 비결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우리는 다시 쓰잘데기 없는 말들을 시작했다.

옆에서 종업원이 징징대는 건 우리 알 바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큰 건을 하고 왔기 때문에 당분간은 쉴 수 있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칭송하는 상급 용사 이상이 되고 싶었지만 하급 용사에서 멈추고 말았다.

결국은 재능이었다.

우리에겐 하급 용사를 벗어날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소용 없었다.

남아있던 열정도 우리보다 한참 어린애들이 쭉쭉 올라가는 것을 보며 사라졌다.

우리는 이제 하루 벌어 그날 그날 술 마시면서 살게 됐다.

배운 게 칼질 뿐이라 다른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름만 용사인 하류 인생 그게 하급 용사였다.

얼큰하게 술을 마시고 술기운에 우리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가게를 나왔다.

"크하­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있잖냐 !"

플라가 얼큰하게 취해서 소리쳤다.

그 말에 우습게도 우리는 위안을 얻었다.

"그래 ! 이렇게 살아남았잖아 우리는!"

"살아남은 걸로도 대단한 거야!"

취하긴 취했나보다 사내 새끼들끼리 이런 낯 뜨거운 말을 하다니.

그렇게 길을 지나는데 아까 봤던 여자가 보였다.

"응? 아까 쟤 아까 걔 아니야?"

친구들도 그 여자를 본 듯 했다.

"오­ 기다리고 있었나 본데?"

"크흐흐 아까 그 못생긴 애보다는 우리가 낫지"

"잘 보라고! 내가 갈 테니까!"

평소에는 숯기가 없는 브룩스가 취기 때문인지 성큼 성큼 여자에게 다가갔다.

브룩스는 술만 마시면 여자에게 들이대는 게 습관이었다.

물론 저 못생긴 얼굴에 술 냄새까지 풍기는 브룩스를 받아준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여자에게 당차게 말을 걸었던 브룩스는 또 까였는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푸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다니까!"

"큭큭 여자한테 까인 게 이걸로 열 번째인가? 축하해 두 자릿수를 채웠군!"

우리는 바보같은 브룩스를 보며 서로 배를 잡고 웃었다.

취기 때문인지 우리에게 걸어오는 브룩스의 걸음걸이마저 우스웠다.

"어이 브룩스 너무 창피해하지말라고! 하하하"

우리 앞에 도착한 브룩스가 고개를 들었다.

"도..망쳐"

그런데 브룩스의 두 눈이 있어야 하는 곳이 텅 비어있었다.

"뭐..뭐야 시발 !"

브룩스의 머리가 터지며 파편이 우리에게 튀었다.

우리에게 쏟아진 뜨거운 피 때문에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순식간에 술에서 깼다.

"오해하지 마요.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가 브룩스의 뒤쪽에서 들렸다.

브룩스의 뒤에 아까 그 여자가 서 있었다.

그 여자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하급 용사로 수십 년을 구른 감이 내게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 미친년이 브룩스를!!!"

옆에서 플라가 검을 뽑으며 분개했다.

아니. 우습게도 플라는 검을 뽑지 못했다.

플라의 검을 뽑으려던 손이 몸과 분리되어서 피를 뿜어내며 떨어졌다.

"으아아악!!"

플라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첫 데이트인데.첫 데이트인데.첫 데이트인데."

여자는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손톱을 씹고 있었는데, 얼마나 깊게 씹었는지 손톱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압도적인 공포에 나는 뒤돌아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귀에서는 계속 플라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막고 계속 뛰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있잖냐!'

플라가 말하던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참고 뛰었다.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내가 있어도 시체가 둘에서 셋이 될 뿐이다.

너희가 나였어도 이랬을 거야.

두 명한테는 미안하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뛰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고 말았다.

악착같이 움직이자 어느 정도 멀어진 것 같았다.

살았다는 생각에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숨을 가다듬는 데­

뭔가 작은 소리가 들렸다.

"... 첫 데이트인데... 첫 데이트인데"

두려움에 들리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들자 내 바로 앞에서 하늘을 보고 있는 미친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사.. 살려주세요..."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마지막으로 본 건 머리를 잃은 내 몸이 허물어지는 모습이었다.

"첫데이트인데... 아.. 오해하지 마요.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첫 데이트인데..."

중얼거리던 여자가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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