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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8화 (8/233)

〈 8화 〉 아싸들의 지옥 ­ 조별 과제

* * *

"지직.. 지지직.... 빠빠 빠빠빠 빠빠빠 빠빠라라빠빠 !"

아이 시발 진짜 좆같은 아카데미!

눈뜨자마자 욕지기가 나왔다.

기상 나팔 소리에 잠이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확 깼다.

용사 아카데미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가끔 저렇게 기상 나팔로 모든 학생을 깨우고 운동장에 집합하게 하는 악취미.

뭐 말로는 비상 상황 대비 훈련이라고 하는데.

학생 입장에서는 악몽 그 자체였다.

늦게 나가면 남녀 불문하고 감점과 빠따질을 당했다.

나는 대충 아무거나 걸치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복도에는 나처럼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학생들이 한가득이었다.

"아이 시발!!!"

복도가 울릴 정도로 크게 욕지기가 들렸다.

"시발!"

나도 그 욕지기를 따라서 외쳤다.

욕은 입 밖으로 내뱉으면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봄이라지만 새벽 공기는 아직 쌀쌀했다.

팔을 문지르며 운동장으로 나갔다.

긴 팔 입고 나올걸.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줄을 맞춰서 서고 있었다.

나는 그 중 마지막 줄에 섰다.

"하나!"

"둘!"

각 줄의 앞에 있는 애가 번호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대충 눈치를 보다 앞에 있는 애가 앉을 때 같이 앉았다.

"번호 끝!"

이 훈련도 익숙해져서 금방 줄이 정리됐다.

"개좆같네"

"그니까 이딴 병신같은걸 왜 해"

주변에서 학생들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에서는 늦게 나온 학생들이 빠따질을 맞고 있는 소리가 났다.

대부분 이 상황을 처음 겪는 1학년 학생일 것이다.

나도 1학년때는 정말 많이 맞았다.

심지어 나는 아침 잠도 많은 편이어서 거의 1학년 내내 맞았다.

"어ㅡ이 유급생!"

아 이 재수없는 목소리.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싸가지 드숀이었다.

드숀은 전체적으로 나랑 수준이 비슷했다.

성적도 외모도 키도 검술 실력도.

다른 점은 저 녀석은 끄트머리지만, 그래도 귀족이라는 점이었다.

이름만 귀족이여서 평민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것이 녀석이 유일하게 나보다 나은 점이었다.

녀석도 그런 점들을 알고 있는지 나에게 동족 혐오를 느끼는 듯했다.

녀석은 나만 보면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이었다.

내가 유급 판정을 받았을 때 녀석이 배를 잡고 바닥에서 웃던 모습은 내 평생 가장 큰 치욕이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좆같은 얼굴이 보였다.

오렌지 색 머리에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 참 혐오스럽게 생겼다.

그래도 저 녀석 보다는 내가 낫지.

"이게 누구신가 뻐킹 어글리 오렌지 아니신가?"

나는 짐짓 어른스러운 채를 하며 말했다.

"누가 뻐킹 어글리야! 이 못생긴 평민이!"

드숀이 표정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저 녀석도 날 보면서 외모는 본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 사실이 내 기분을 더 더럽게 만들었다.

"너가 뻐킹 어글리지 이 좆같이 생긴 오렌지야!"

오렌지색 머리는 녀석의 컴플렉스 중 하나였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 들어야 한다고 격투기 실습 시간 때 배웠다.

내 펀치가 제법 잘 들어갔는지 녀석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졌다.

"이..이.."

할 말을 잃었는지 녀석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승리감에 취해 녀석에게 양손의 중지를 펼쳐줬다.

그니까 왜 매번 처발리면서도 덤비는거야.

"주목"

앞 쪽에서 일부러 낮게 내리깐 목소리가 들렸다.

"주목!"

우리는 바로 차렷 자세를 하면서 외쳤다.

앞을 보자 교관 하퍼가 보였다.

약간 작은 키에 슬림한 몸매를 지닌 하퍼 교관이 보였다.

하퍼 교관은 왠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빨간 모자를 눈이 안 보일 정도로 풀 눌러쓰고 있었다.

여자에 작은 키라 처음에는 몇몇 학생이 대들었었지만, 대들었던 학생들이 나란히 하퍼에게 두들겨 맞아 침대 생활을 하게 되면서 하퍼 교관에게 대드는 학생은 더이상 없었다.

그 뒤로 하퍼 교관의 붉은 모자는 원래 하얀색이었는데 학생들의 피로 붉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나름 근거 있는 소문이라 생각한다.

"번호."

"하나!둘!... 번호 끝"

줄의 앞 쪽에 선 학생들이 군기가 바짝 들어서 번호를 외쳤다.

"몸 풀어"

하퍼 교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분주하게 몸을 풀었다.

나도 발목과 팔목을 풀어줬다.

"늘 그렇듯 아카데미 한 바퀴. 전속력으로. 뒤쳐지면.."

하퍼 교관은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꼭 듣지 않아도 의미를 알 수 있는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말들은 안 듣는게 나았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아카데미를 뛰었다.

아카데미를 한 바퀴 돌고오니 온 몸에서 열이 났다.

"너. 너. 너. 옷 똑바로 입어."

하퍼 교관의 지목을 받은 학생들이 황급히 옷을 추스렸다.

"위생을 위해서 샤워는 꼭 하도록. 이상 점호 끝."

"점호 끝 !!"

학생들이 외쳤다.

제 시간에 씻기 위해서는 빨리 뛰어가야 한다.

그 사실을 아는 학생들이 서로 밀치면서 뛰었다.

처음 방에서 나올때 미리 세면도구를 복도에 꺼내둔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샤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빈 샤워부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였다.

구보는 항상 뛸 때는 좆같지만, 뛰고 나면 약간의 보람이 있었다.

"야 이 평민 새끼야! 아까 뭐라고 했어!"

그때 옆에서 드숀의 목소리가 들렸다.

"좆같은 오렌지라고 했다 이 새끼야!"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에게는 참지 않는다.

잔뜩 인상을 쓰고 옆을 돌아보자 좆같이 생긴 드숀이 샤워하고 있었다.

"이 평민 새끼가! 나중에 아카데미 밖에서 마주치기만 해봐!"

"응~ 아카데미에서 평생 살거야~"

"누가 유급생 아니랄까봐 아카데미에서 평생 산다니. 개 좆! 유급생 답네!"

욕을 하는 드숀의 어투가 약간 어색했다.

저 욕들은 다 나에게 배운 것들이었다.

나는 머리를 감던 손을 내려서 녀석에게 중지를 펼쳐서 보여줬다.

그러자 녀석도 나에게 중지를 내밀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지만 우리는 진지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이렇게 항상 서로 거친 언행이 오가지만 물리적인 다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 좆밥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싸워봤자 서로 좆밥이라는 걸 남들에게 들킬 뿐이었다.

우습게도 그런 유치함 속에 스트레스가 풀렸다.

1교시를 듣기 위해 강의실로 갔다.

1교시는 마물의 이해 시간이었다.

왜 그런 흉측한 것들을 이해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필수 과목이었다.

강의실은 아직 한산했다.

나는 늘 그렇듯 제일 뒤 구석자리로 가서 앉았다.

역시 이 자리에 앉아야 마음이 편하다.

강의 시작 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책상에 엎드렸다.

앞에서 툭툭 쳐서 잠에서 깼다.

일어나보니 이미 수업은 시작한 후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깨워준 사람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마물의 이해 수업 담당인 벤자민 선생님이 말하고 있었다.

"자 그럼 오늘부터는 조별로 진행될거에요. 조는 다 짰죠 ?"

아싸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단어 '조'.

듣자마자 머릿속에 공포와 짜증이 가득찼다.

근데 뭐 이미 다 짰다고 ?

내가 자는 동안 조를 짰나보다.

야! 깨울거면 좀 더 일찍 깨워야지 시발.

괜히 나를 깨운 녀석에게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근데 사실 일찍 깨웠어도 조를 짜지는 못 했을 것이다.

오히려 내게는 좋은 핑계였다.

"조 짜지 못한 사람 손 들어봐요."

벤자민 선생님이 아싸들에게 최고 수치심이 드는 말을 했다.

하지만 손을 들수 밖에 없었다.

공개 처형.

"하나 둘 셋 넷. 딱 네 명이네. 네 명이 같은 조에요."

다행히도 나 말고도 아싸가 세 명 더 있었나보다.

그 사실이 내게 안도감을 줬다.

휴­ 나만 아싸가 아니야.

"그럼 조 별로 앉아볼게요. 조를 짜지 못했던 학생들은 뒤 쪽에서 서로 확인하세요."

벤자민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이 움직였다.

나는 어차피 뒷 쪽 자리였기 때문에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키킥­ 아싸 새끼. 조 못 짰냐 ?"

옆에서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드숀 이 새끼도 이 수업듣네.

재수없는 새끼.

드숀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자 드숀이 얌전히 내 오른쪽 의자를 빼고는 조용히 앉았다.

"뭐야"

내 말을 드숀이 못 들은척 하면서 반대쪽을 쳐다봤다.

아 맞다 이 새끼도 아싸였지.

"아싸 새끼"

역시 우리가 서로를 싫어하는 이유는 동족 혐오가 맞았다.

그럼 나머지 두 명은 누구지.

"크큭.. 또 보는군.. 동지... 벗어날수 없는 데스티니라는 것인가.. 크큭"

아 좆됐다.

내 왼쪽에 미친놈이 중얼거리며 앉았다.

"크큭.. 다들 나에게 두려움을 느끼나 보군... 아.. 힘 조절에 미숙한 내 잘못인가.. 크큭..."

미친놈이 안대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푸핫! 너 미친놈이랑도 아는 사이였냐? 아싸끼리 잘 어울린다. 잘 어울려. 미친놈은 너가 책임져라. 난 쟤 옆에 절대로 앉을 생각 없으니까."

드숀이 내게 이죽거렸다.

지도 아싸여서 여기 온 거면서.

드림팀이 구성될 것만 같은 느낌에 두통이 느껴졌다.

마지막 멤버를 보기가 너무 무서웠다.

제발 마지막 멤버는 정상인.

정상인.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안녕 개잡놈들아."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불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붉은 머리색의 터질듯한 몸매의 미녀가 서있었다.

딱봐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악명 높은 미친개 비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배고 선생이고 남자고 여자고 다 쥐어패는 미친개.

자기에게 들이댔던 한 남학생의 귀를 물어 뜯어버린 사건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물어서! 뜯은 다음! 버렸다.

그 뒤로 감히 미친개에게 들이대는 남학생은 없었다.

그럼에도 미친개가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그녀의 격투에 대한 재능 때문이었다.

선생까지도 쥐어팰 수 있었던 특출난 격투 재능.

용사 아카데미는 철저하게 실력제였다.

사실 애초에 용사에게 인성은 필요 없었다.

착하다고 마물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비 정상인들이 많은건가.

비키를 본 드숀이 조용히 일어나서 미친놈 옆으로 가서 앉았다.

"반가워. 난 드숀이라고 해."

드숀이 미친놈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크큭... '연'이라 불러라.."

그런 드숀에게 미친놈이 살갑게 인사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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