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성수는 축복을 내려 줄까요 ?
* * *
키아나는 한참을 혼자 웃으면서 울었다.
뭐야.. 미친 개 소름 돋아.
애초에 웃으면서 운다는 것이 가능한지 처음 알았다.
근데 그 기괴한 모습도 키아나의 외관이 완벽하니 극 중의 한 장면 같았다.
저런 짓도 멋져 보인다니...이 얼마나 사기적인 외모인가.
그것과는 별개로 내 메론빵을 들고 있는 팔은 두려움에 진동하고 있었다.
"아."
내 손을 본 키아나가 웃음을 멈췄다.
키아나가 내 손에서 메론빵 한쪽을 가져갔다.
"하나면 돼요."
키아나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완벽한 외모인 키아나가 웃으니 세상이 환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물론 그 착각은 키아나의 눈에 있는 눈물 자국을 본 순간 사라졌다.
나는 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완전 악마는 아닌 듯 반만 가져갔다.
나는 감동을 하며 남은 반 개의 메론빵을 먹었다.
아 잠깐.
그냥 반 개 삥 뜯긴 거잖아.
왜 내가 감동을 하는 거지.
원래 내 건데 ?
이게 그 나쁜 남자의 매력 그런 건가 ?
입에 넣은 메론빵은 달고 맛있었다.
늘 그렇듯.
역시 내 소울 푸드 메론빵.
한 입 한 입 음미하면서 먹었다.
키아나는 메론빵을 한참이나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럴 거면 왜 가져간 거야.
내가 반 개의 메론빵을 다 먹을 때쯤.
키아나가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 물었다.
키아나는 고급 요리를 음미하듯 메론빵을 꼭꼭 씹어먹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을 다시 쏟았다.
왜 또 이러세요 시발.
"왜 그러세요 ?"
나는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시발 역시 반 개로는 부족하다 이건가?
아니면 귀족님이 먹기 전에 평민이 감히 먼저 먹어서 화가 난 건가?
예전에 밥상머리에서 어른이 먹기 전에 먼저 먹었다가 숟가락으로 머리를 맞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역시 귀족 새끼들이랑은 상종을 하면 안 된다.
키아나가 또 한참을 울다가 빵을 한 입 더 베어먹었다.
그냥 저 여자의 식습관이 저런 건가?
귀족의 미친 다이어트 방법?
이번에도 또 씹다가 멈추고 울었다.
나는 그냥 멍하니 서서 그 희한한 관경을 보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보다 보니 약간의 재미도 있었다.
이거 남 먹는 걸 보는 것도 의외로 재밌네.
결국 키아나는 희한한 식사 방식으로 메론빵 반 개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다 먹었다.
키아나의 눈은 너무 울어서 붉어져 있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키아나가 후련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다시 세상이 밝아졌다가 눈물 자국을 확인하고 어두워졌다.
"아. 네 . 뭐."
나도 모르게 단답이 나왔다.
말하고 나서 좆밥 주제에 너무 건방지게 대답한 거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큰 위안이 됐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십쇼."
키아나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귀족님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서둘러 손을 맞잡았다.
굳은 살이 단단히 박힌 손이었다.
이런 천재도 저렇게 굳은 살이 박힐 정도로 노력하는구나.
마냥 재능빨로 강한 줄 알았는데.
나 같은 노베이스는 어떻게 살라고 있는 놈이 더 해.
갑자기 키아나가 마주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악 !"
그 힘이 너무 강해 나는 그만 추하게 비명을 질러버렸다.
역시 메론빵 반 개 준 것을 담아둔게 틀림없었다.
이 쫌생이 귀족.
"앗 ! 죄송합니다 ! 기사끼리의 인사가 습관화되어 있어서."
내 반응에 키아나가 놀라면서 말했다.
뭐야 나같은 좆밥은 기사도 아니라고 꼽주는거야 ?
"하하하하!"
손을 어루만지고 있는 나를 보고 키아나가 크게 웃었다.
진짜 미친 귀족이네.
상종하면 안된다.
내 오랜 아싸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꼽주는 것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꼽이다 저건.
"아 ! 죄송합니다. 푸흡. 저는 키아나라고 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
"에이든입니다."
"에이든... 기억하겠습니다."
키아나가 내 이름을 곱씹듯이 말했다.
왜 불안하게 내 이름을 기억한다는 거야.
너 찍혔다 이건가.
앞으로 메론빵 전용은 너다?
속으로 메론빵의 가격과 내 수중에 있는 돈을 비교했다.
비키의 딸기 우유까지 생각하면 주머니가 빠듯했다.
"그럼 이만."
복잡한 내 심경은 상관 없는지 키아나가 쿨하게 뒤돌아갔다.
저저 악랄한 귀족.
근데 나도 뭔가 잊고 있는 거 같은데..
아 시발 3교시.
서둘러 시계를 확인해보니 이미 시작한 지 한참 됐다.
"이 악마같은 귀족들 퉤퉤퉤"
키아나가 사라진 방향으로 침을 뱉었다.
수업을 들어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냥 시원하게 3교시를 포기하기로 했다.
미래의 내가 내 몫까지 열심히 해주겠지.
아 ! 성수 !
성수를 사러 가야 돼.
더 늦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금만 해도 빵셔틀이 되지 않았는가.
나는 서둘러서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돌아다니는 학생은 별로 없었다.
성당은 흰색 외벽에 돔 형식의 지붕인 건물이었다.
그 위에는 큼지막하게 이상한 조각이 올라가 있었다.
저 조각은 여잔가 남잔가 애매하네.
일부러 모호하게 만든 건가 ?
성당의 입구는 큰 나무문으로 되어 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들어가도 되는 거겠지 ?
성당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긴 나무 의자들이 두 줄로 놓여있었다.
다양한 색으로 된 창문을 통과해서 들어온 빛들이 성당 내부를 아름답게 비추었다.
와 진짜 아름답네.
중앙에는 이상하게 생기고 큰 악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강의실 교탁처럼 생긴 물건이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줄 알았으면 진작 한번 와볼 걸 그랬네.
근데 문제는 내부에도 아무도 없었다.
나 성수 사야 되는디.
"계세요 ?"
나는 꽤 큰 소리로 말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성당 내부를 살펴보니, 성당 깊숙한 곳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건 분명 성직자가 어디서 농땡이 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신 믿는 사람들도 다 똑같구만.
나는 성수가 간절하게 필요했으므로 그 문을 열었다.
그러자 수녀복을 입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수녀는 흥얼거리면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큼큼"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냈다.
"앗!힝!엨!훅!"
수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화들짝 놀랐다.
수녀가 갑자기 부지런히 옷을 만지더니 뒤돌았다.
"예 ?!!"
수녀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수녀는 머리보다 큰 수녀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약간 더 많아 보였다.
파란 머리에 파란 눈.
단아하게 생긴 미인이었다.
남자들의 첫사랑 같은 느낌의 외모였다.
돌아선 수녀의 얼굴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뭐야 고기라도 몰래 꼬불쳐 먹고 있었나?
궁금증에 슬쩍 여자 뒤를 쳐다봤다.
내 시선에 수녀가 움직여 자기 뒤를 가리려고 했지만 수녀의 덩치가 작아 가리지 못했다.
뭐야 그냥 성수잖아.
그냥 잘 놀라는 사람인가.
"무.. 무슨 일이에요 ?!"
수녀는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큰 소리로 물었다.
"성수 좀 구하려고 왔는데요. 밖에 사람이 없어서"
"아 성수.. 성수 !"
수녀가 다시 언성을 높였다.
수녀의 눈동자가 방황했다.
그러더니 자기 뒤에 있는 성수가 담긴 통을 내게 내밀었다.
방금 만든건가.
효과 확실하겠네.
"이..이거 성수에요 !"
나에게 성수를 건네는 수녀의 얼굴은 다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내게 건네는 팔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뭐야 부끄러움이 많은가 ?
성직자라는 직업 특성상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런 외모로 이성을 못 만난다니 약간 측은감이 들었다.
"얼만가요 ?"
나는 수녀가 건네주는 성수를 받고 물어봤다.
"예 ?! 아니에요 ! 그냥 가지셔도 돼요 !"
뭐야 천사인가.
돈이 필요 없다니.
이 시대에 보기 힘든 참 종교인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공짜는 사양하지 않는다.
받은 성수의 뚜껑을 바로 열었다.
"엣 ?! 여기서 드시려고요 !?"
수녀가 또 큰소리로 물었다.
뭐야 원래 성당에서 성수를 마시면 안 되나 ?
"여기서 먹으면 안 되나요 ?"
"아앗 ! 그건 아닌데 ! 앗 ! 그럼 ! 드셔주세요 !"
수녀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90도로 상체를 숙이며 소리쳤다.
진짜 착하지만, 이상한 수녀였다.
이 성수를 마심으로써 더 이상 이상한 애들이 안 꼬이기를.
나는 성수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앗.."
수녀가 앞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냈지만 무시했다.
성수는 그냥 물과 맛이 비슷했다.
근데 뭔가 약간 이상한 맛이 나는데.
기분 탓인가.
나는 내 간절함이 신에게 닿기를 기원하며 한 번에 다 마셨다.
신님 저 원샷한 거 봤죠 ?
제 마음 아시죠 ?
"아앗.. 다 마셔버렸어.."
수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땅에 주저앉았다.
붉어진 얼굴의 수녀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성수를 남이 마신다는 게 저렇게 기쁜가.
참된 종교인에다가 장인 정신까지 겸비한 훌륭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똥 같은 아카데미에 저런 참된 사람이 있었다니.
나는 다 마신 병을 다시 수녀에게 건넸다.
수녀는 빈 병을 떨리는 팔로 받았다.
"고맙습니다. 수녀님"
나는 진심을 담아서 감사를 표했다.
"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와주세요 ! 제 이름은 안드레아에요."
수녀가 힘이 풀린 얼굴로 말했다.
"저는 에이든입니다."
나는 앉아있는 수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녀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수녀의 손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일어난 수녀는 남자가 어색한지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성수 감사합니다. 잘 마셨습니다. 그럼 다음에 도움이 필요하면 또 오겠습니다."
나는 나름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혜를 잘 갚지는 않지만, 돈이 들지 않는 감사 표현은 잘한다.
수녀가 내 말 중간에 이상한 효과음을 내면서 주저 앉았다.
수녀에게 인사하고 성당을 나왔다.
성수를 마시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종교의 힘인가 ?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방금만 봐도 이 아카데미 들어오고 처음으로 올바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가.
아아 저렇게 올곧은 성직자가 이 세상에 아직 존재했다니.
앞으로 성당을 자주 올 것을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사람은 종교가 있어야 해' 라고 말했던 꼬장꼬장한 촌장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음 수업을 들으러 이동했다.
***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거였다.
안드레아가 마시던 물을 옆자리 남자애가 뺏어 마시며 시작됐다.
자신이 마시던 물을 마시는 남자애를 보며 안드레아는 상상했다.
그 아이가 마시는 물에 내 타액이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 일부분을 마신다는 그런 상상.
갑자기 몸이 뜨거워졌다.
안드레아는 그만 힘이 풀려 책상에 엎드렸다.
"응? 뭐야. 이거 여기 둔다. 잘 마셨다."
그날 이후로 안드레아는 일부러 물병을 들고 돌아다녔다.
친구들이 자신의 물을 마시는 걸 보면서 혼자 붉어졌다. 혼자 뜨거워졌다.
대범해진 안드레아는 약간씩 양을 늘려나갔다.
"응? 물맛이 조금 이상한데?"
물을 마시던 친구가 살짝 갸웃하더니 다시 마셨다.
들켰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여 안드레아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안드레아는 다시 비율을 조절했다.
많은 실험 끝에 안 들킬 정도의 완벽한 비율을 찾아냈다.
아카데미에서 재능에 대한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안드레아는 신성력에 대한 재능이 매우 특출나게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안드레아는 지금까지 했던 자신의 행동에 묘한 배덕감도 들었다.
신에 대해 관심은 없었지만, 밥벌이로 나쁘지 않다는 선생님의 말에 안드레아는 성직자를 선택했다.
검사 결과가 거짓이 아니었는지 안드레아는 별다른 노력 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신성력이 증가했다.
신성력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신의 존재를 느꼈다.
안드레아는 그 이후로 신이 진짜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행동을 조심했다.
그렇게 안드레아의 욕구는 쌓여만 갔다.
신성 학교를 최단 시간으로 졸업했다.
졸업식 때는 교황님이 직접 안드레아에게 졸업장을 건넸다.
선생님은 최고 등급 용사 파티 가입을 권유했지만, 안드레아는 거절했다.
안드레아는 마물을 때려잡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용사 아카데미로 가고 싶었다.
이성은 절대 안 된다고 들키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소리쳤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안 들키면 된다고 속삭였다.
용사 아카데미 성당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가끔 다쳐서 오는 애들은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가 있다고 다른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다.
성수를 제작하다가 그동안 눌러왔던 욕망이 올라왔다.
그리고 올라왔던 욕망은 더 깊고 더러워져 있었다.
'아무도 모를 거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그 욕망은 현재 자신이 성직자라는 데서 더 커졌다.
신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덕감은 더욱 커졌고.
큰 배덕감은 안드레아에게 더 큰 흥분을 안겨주었다.
안드레아는 조용히 성수 제작방 문을 닫았다.
성스러운 물이 보였다.
성스러운 물에 자신의 것을 섞는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덕감에 다리가 풀렸다.
'아무도 모를 거야.'
몸이 다시 전보다 더 뜨거워졌다.
***
소녀가 내 몸을 무슨 과자나 케이크를 선물할 때처럼 리본으로 묶었다.
심지어 그 리본조차 양쪽의 크기가 달라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대가 정말 좋아하겠군요. 주인님. 하하하!'
내 칭찬에 소녀가 특유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검존심은 버린 지 오래다.
제발.. 빨리 소녀의 손에서 탈출하기만을..
역사적으로 최강의 검사 징표였던 내가...
나는 단 하나의 희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강의 검사여!
나는 수천 가지 검술을 알고 있으며, 몇천 년간의 실전 경험 또한 가지고 있다.
내가 그대를 역사에 남을 검사로 만들어주겠다.
아니 최강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가 최강으로 만들어주겠다.
제발 빨리 나를 이 손에서 구해만 다오.
선물의 대상 최강의 검사에게...
전설의 검 올림.
ps. *정보* 소녀의 팬티는 핑크색이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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