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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4화 (14/233)

〈 14화 〉 주인공이 강해지는 중 ­1­

* * *

내 말에 루나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옆으로 내려왔다.

이제 뭔가 루나를 다루는 방법을 알 것 같았다.

1­왠지는 모르지만 나를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지만.

2­또 왠지는 모르지만 내게 욕먹는 것을 좋아한다.

최대한 루나의 니즈를 맞춰주고 있었지만, 루나에게 욕할 때마다 수명이 한 움큼씩 깎이는 기분이었다.

마치 사자의 주둥이에 고기를 든 손을 집어넣는 것만 같았다.

루나가 큰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딸꾹'

도대체 검한테 무슨 짓을 했으면 검이 루나만 보면 딸꾹질을 하는 거지.

좋은 검을 받았으니 감사 인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은혜를 갚지는 않아도 감사 인사는 제대로'가 내 신조다.

"고마워 검. 잘 쓸게 루나"

고맙다는 인사가 왜 이렇게 간지러운지 모르겠네.

루나가 어두운 방 안이 환해지도록 밝게 웃었다.

아 맞다.

"그럼 꺼져 시발"

루나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후­ 살아남았다.

'와 정말 쓰레기네'

검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니가 소시민인 내 마음을 알겠니 시발.

긴장이 풀리자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자기 전에 나를 옆에 두게'

구석에 박힌 검을 가져와 내 옆에 놓았다.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거 같은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

눈을 뜨니 흰색 공간이었다.

이건 또 뭐야 시발

나는 습관적으로 주위에 루나가 있나 확인했다.

"나를 찾나 ?"

흰색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흰색 옷 흰색 머리 흰 피부.

흰색 페티쉬인가 ?

얼굴은 유명한 조각가가 온 힘을 다해 만든 조각상 같이 잘 생겼다.

"누구세요 ?"

"흠 내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니 섭섭하군."

남자가 순식간에 내 바로 앞에 나타났다.

어디서 들어본 말투인데.

나는 저렇게 잘 생긴 사람을 알지 못한다.

"자네는 본인을 잘 생겼다고 생각하나 보군"

내 앞에 선 흰 남자가 내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보면서 말했다.

"원래는 더 못난 얼굴인데 말이야. 역시 양심이 없군"

남자가 고운 손가락을 펼쳐서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뭐야 이 시발놈은. 어 ?! 마음속으로 생각했는데 ?"

"푸하하하 내가 우리는 이제 운명공동체라고 하지 않았나."

"아 그 루나검 !"

"그런 이름이 아닐세. 분명 전설의 검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여기는 ?"

주변을 둘러봐도 흰색뿐이었다.

"자네의 무의식이지. 다른 말로는 꿈"

남자가 팔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집채만큼 큰 파도가 밀려왔다.

남자가 한 번 더 팔을 휘젓자 파도가 빛으로 부서졌다.

"아름답지 않은가 ?"

"신이야 ?"

말 그대로 남자가 행한 일은 마치 신이 행하는 일처럼 보였다.

"원래 다들 머릿속에서는 신이 되지 않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네. 나는 자네의 상상력을 빌리는 것뿐이고."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보라색 나비 한 마리가 올라가 있었다.

보라색 나비는 이내 수천 마리의 매가 되어서 흩어졌다.

처음에는 자그맣던 매들이 날아가면서 한 마리 한 마리가 고래만큼 커졌다.

그 광경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왜 이러고 있는 건데 ?"

그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최악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런 자네를 나는 최강의 검사로 만들 거라고. 이게 그 방법이네. 쉽고 빠른 최적화된 방법."

남자의 형체가 쌓아둔 모래처럼 흩어졌다.

"원래는 약하디약한 인간의 정신이 무너져 사용하지 못하는 방법이네만."

내 뒤에서 다시 음성이 들렸다.

차가운 손이 내 머리를 감쌌다.

"아까 그 여자애가 자네의 정신에 튼튼한 방벽을 걸어뒀더군."

차가운 손가락이 내 눈을 파고들었다.

기괴하게 느껴졌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시험해보려고 하네. 그 방벽이 이겨낼 수 있나"

눈 앞이 깜깜해졌다.

"아니면 마는거고."

개새끼가 ?

남자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

"대장 ! 정신 차려!"

옆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이해가 됐다.

앞에서 데스 나이트가 검을 내게 찌르고 있었다.

나는 왼손에 있는 방패로 자연스럽게 검을 막았다.

기운을 오른손으로 보냈다.

­ 아 이게 기운이라는 것이군.

청량감이 들지만 묵직한 느낌이 오른손에 전해졌다.

오른손에 있는 검으로 데스 나이트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 내가 했지만 완벽한 베기. 이렇게 베는 거였군

'느낌에 집중하게'

내 검은 미스릴로 되어 있어서 마물들에게 치명적이었다.

­ 내가 이렇게 강했었나 ?

'뭐 상관없지 않나 ?'

­ 그렇지.

순식간에 내 주변 데스 나이트들을 베어 넘겼다.

"역시 ! 대장 ! 이쪽도 부탁해!"

케냑이 머리에 달린 귀를 쫑긋거리며 내게 소리쳤다.

아 수인 케냑.

한때는 내 연인이었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매력적인.

보랏빛이 도는 털이 매혹적인 여자다.

나는 품 안에 있는 작은 단검에 기운을 실어 던졌다.

단검이 데스 나이트 갑옷의 이음새 부분에 박혔다.

케냑이 잠시 멈칫 거린 데스나이트를 주먹으로 뭉개버렸다.

"후­ 의외로 질기네 마왕군 녀석들"

케냑이 어깨를 풀면서 말했다.

우리의 앞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데스 나이트들이 있었다.

데스 나이트들을 저렇게 숨겨뒀었다니 치밀하군.

­ 마왕군?

­ 아, 나는 마왕을 토벌하러 가는 중이지.

'그렇지 용사의 로망 아닌가? 마왕 토벌'

­ 내 로망은 아닌데.

­ 내 로망이 뭐였더라 ?

다시 나는 검을 들고 앞쪽의 데스 나이트에게 뛰었다.

데스 나이트의 머리에 검을 찔러 넣어 부쉈다.

그리고 다음 데스 나이트에게 검을 뻗고 있을 때.

"비켜요"

뒤에서 유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익숙하게 방패를 들고 앞 부분을 막았다.

­ 이 방패 좋아 보이는데 ?

'나보다는 못하지만 좋은 방패지'

유리의 마법이 내 바로 앞에 박혔다.

방패를 두드리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마법이 부딪힌 곳에 구멍이 생겼다.

­ 마법사는 역시 편리하고 강하네

"역­시 유리야!"

내 옆에서 가트가 무식하게 메이스를 휘두르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저저 미친 성직자 또 흥분했다."

케냑이 서둘러 가트를 따라갔다.

나도 다리에 기운을 둘러 앞으로 뛰었다.

­ 기운이라는 거 편리하네.

'기운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지. 익숙해지게'

"신께서 가라사대! 마물들에게는 매가 약이라!"

가트가 메이스를 데스 나이트에게 내리치면서 소리 질렀다.

데스 나이스가 검을 들어 막았지만 가트의 메이스에서 나오는 빛에 무너졌다.

"신성력 ! 물리 !"

가트가 짐승처럼 포효했다.

­ 저게 성직자라니 시발.

'크흡 나도 매번 웃지 이 대목에서는'

"빛이 있으라 !!!"

가트는 게거품까지 물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그만 지랄해 ! 가트"

케냑이 잔뜩 흥분한 가트를 말렸다.

옆에서 내려치는 데스 나이트 검을 케냑이 건틀릿으로 막았다.

우습게도 건틀릿에는 아직도 내가 적어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보랏빛 털이 흰색이 될 때까지'

­ 멘트 정말 구리네.

'이게 몇백 년 전 상황이라는 걸 이해해줘야 하네.'

케냑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데스 나이트에 화살이 박혔다.

"땡큐 린나 !"

케냑이 뒤를 보며 인사했다.

"새삼스럽게 별말씀을 !"

엘프인 린나가 귀를 쫑긋하며 나를 보고 웃었다.

엘프 특유의 눈부신 외모를 지닌 나의 연인.

다시 전진.

우리 뒤로는 왕국 연합의 병사들이 지켜주고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베고 끊임없이 부쉈다.

나는 그 선봉대에 섰다.

"괜히 전설의 용사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네 대장 !"

케냑이 옆을 지나가며 슬쩍 내 어깨를 만졌다.

­ 미련 많은 여자네.

나는 검에 기운을 모았다.

아직 힘을 아낄 때지만 이렇게 오래 끌리면 피해가 더 커질 뿐이다.

"베어라. 신의 가위질"

나는 조용히 읊조리고 앞으로 기운을 베어 넘겼다.

­ 엌 신의 가위질 실화냐.

'이 아이가 그런 단어를 좋아했었지'

이름과 달리 그 효과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남자가 검으로 그은 공간이 갈라졌다.

그 경로에 있는 수십여 구의 데스 나이트들이 그냥 사라졌다.

말 그대로 그냥 사라졌다.

­ 와 이게 사람이 검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 도대체 이런 무력으로 마왕을 왜 못 잡은 거지 ?

심지어 파티의 조화도 완벽했다.

흠잡을 데가 없는 파티.

파티원들 사이도 좋아보였다.

왜 실패했지 ?

마왕이 그만큼 강한가.

나는 남자의 몸에 흐르는 기운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기억한다고 해도 내가 행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우리는 마왕성의 문을 부수고 진입했다.

그렇게 말이 많던 우리 파티에도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마왕을 마주치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마왕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어떤 공격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략을 해야 하는지.

그런데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우리에겐 서로가 있으므로

­ 엌 시발.

'좀만 더 참아보게'

"신의 이름으로."

가트가 조용히 기도를 읆조렸다.

마왕성 내부에는 간간히 켜져 있는 램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큰 문을 마주했다.

­ 누가 봐도 저기 안에 마왕이 있겠네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우리는 전설이 될 것이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에 손을 올렸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들어오라는 건가.

마왕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전진했다.

큰 홀의 정중앙에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빨간색 원피스, 세상의 모든 빛을 머금은 칠흑빛의 머리칼, 무겁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숯이 많은 속눈썹,피처럼 붉은 입술.

마왕이 아니여도 위험한 외모였다.

하물며 나조차도 음심이 들 정도의 외모라니.

"짝!"

가트가 박수를 쳐 모두의 정신을 깨웠다.

"이게 얼마만의 손님인지 몰라요."

귀가 녹아버릴 듯한 달콤한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마왕은 단일 개체인가 보군.

"준비"

우리는 대인전 진형으로 움직였다.

"너무 성급하신데요 ~?"

여자가 공중으로 올라갔다.

유리가 곧바로 중력 마법을 캐스팅했다.

"재밌는 놀이부터 먼저 하죠."

마왕이 손가락을 튕겼다.

우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되어 있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장소였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한 지 꽤 됐을 때 머물렀던 여관.

여기를 왜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 진실을 마주한 용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어딘가에서 마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왕의 목소리는 마치 처음 보는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큰 임무를 해결하고 난 뒤라 다들 얼큰하게 취했었지.

내가 일어나서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케냑이 나를 따라서 올라오다가 내가 말려서 다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당시에 나는 케냑과 만나는 중이었지.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유리도 사라지고.

린나는 그런 유리를 따라 올라갔다.

술자리에는 가트와 케냑만 남았다.

그런데 이걸 왜 보여주는 거지 ?

"오늘도 고생했어 가트"

케냑이 가트를 보며 말했다.

케냑은 취했는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신의 힘이지 ! 물리 !"

가트가 굵은 팔뚝을 자랑하는 포즈를 취하며 장난쳤다.

"푸핫! 단단한데"

케냑이 가트의 팔뚝을 만졌다.

근데 그 손놀림이 조금씩 끈적해져 갔다.

"신의 힘.. 물리 ?"

가트의 눈썹이 들썩였다.

케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번이 아니었던 듯 그들은 자연스럽게 위로 같이 올라갔다.

그들은 내가 자고 있는 옆방으로 같이 들어갔다.

­ 뭔 전개야 이건 ? 쟤 성직자잖아.

마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마왕은 우리를 와해시키려고 하는 중이었다.

마왕의 꼬임에 넘어가면 안된다.

분명 분노가 치솟았지만 그래도 이해했다.

어차피 지금은 헤어진 사이니까.

나는 지금 린나를 만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이 과거에 어떤 짓을 했던 더는 상관 없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어지러웠던 정신이 다시 차분해졌다.

이 정도는 괜찮다.

이제 그만 보고 싶었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들은 옷을 벗고 짐승처럼 뒤엉켰다.

케냑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마음에 걸렸다.

나랑 할 땐 안 그랬잖아.

­ 이건 좀 추한데.

'크­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나오니까 집중하라고'

가트는 중간 중간 '물리!'라고 외쳤다.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엄청난 테크닉과 정력을 자랑했다.

­ 대단하네. 쟤 성직자 맞아 ?

한참을 진득하게 뒤엉키던 그들이 마침내 떨어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 차 있었다.

가슴속 깊이 짙은 패배감이 느껴졌다.

"대장이 알면 실망하겠군"

가트의 얼굴에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어서 있었다.

그래. 가트 너만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하­아­ 대장 ? 시발 얘기 꺼내지도 마. 너 없었으면 나는 이미 욕구불만으로 죽었을 거야."

케냑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욕구 불만 ?"

가트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좀만 움직이면 싸버리고 심지어 고추도 작고. 어디서 이상한 것만 배워와서 해달라고하고. 진짜 하다가 죽빵 때리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야. 퉤. 그 잘난 검 실력 아니었으면 이미 나한테 뒤졌어 걔는."

케냑의 얼굴은 진짜 진절머리가 난 얼굴이었다.

"푸핫 완벽한 우리 대장에게도 그런 면이 있었구만."

"닥치고 한 번 더 하기나 해. 또 당분간 못할 것 같으니까"

"대장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건 동료의 책임이지 하하 ! 물리 !"

그들은 다시 짐승처럼 뒤엉켰다.

­ 엌 시발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다니. 이건 못 참지!

'크합 ! 진짜 이 장면이 최고라니까'

이 상놈의 새끼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 이제 이 파티가 왜 망했는지 알겠네 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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