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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9화 (19/233)

〈 19화 〉 딸기 우유를 마실 때는 빨대를 !

* * *

'크하하하하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얄미운 검새끼가 크게 웃었다.

쉐이크를 흠뻑 맞은 키아나는 아무 반응 없이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예상 범위를 벗어난 상황을 맞이하면 사람의 사고가 멈춘다는.

내 머릿속에는 좆됐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땀을 닦기 위해 가져온 수건으로 서둘러 키아나의 얼굴을 닦았다.

내 땀을 닦은 수건이지만 지금 닦을 물건이 그것밖에 없었다.

키아나는 얌전히 서 있었다.

아니 키아나는 굳어 있었다.

키아나의 옷에도 묻은 단백질 쉐이크가 보였다.

맞기 싫다는 생각에 수건으로 키아나의 옷에 뭍은 쉐이크를 열심히 닦았다.

키아나가 중간 중간 움찔거렸지만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수건 너머로 느껴지는 키아나의 몸은 단단하고 부드러웠다.

"하하..죄송합니다."

나는 다 닦은 수건을 뒤로 숨기고 재빨리 키아나에게 고개 숙였다.

왠지 목검을 든 키아나 손의 힘줄이 두드러져 보였다.

제발 때리지 말아 주세요.

아니 약하게 때려주세요.

"아! 괜찮습니다. 옷이 조금 더러워졌지만"

그제야 키아나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면서 자신의 옷을 툭툭 털었다.

그렇게 말하는 키아나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화난건가?

"정 미안하시면 다음에 메론빵 하나 사주시죠."

키아나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시원하게 웃었다.

진짜 이 여자는 메론빵에 미친 건가.

앞으로는 메론빵을 알아서 챙겨다니라는 뜻 같았다.

그래도 안 맞은 게 어디야.

"하하 키아나 님이라면 얼마든지요."

어차피 계속 뜯어갈 거잖아 시발.

나는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살짝 올라간 내 눈꼬리 때문에 쓸모 없을테지만.

"에이든은 정말 친절하군요."

키아나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미소지었다.

세상에 죽도로 그렇게 처맞고도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나는 대가리도 한 번 깨졌다. 저 죽도에.

저 악질은 자신이 한 행동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키아나의 죽도는 친절 주입기 그 자체였다.

"키아나 님이니까요."

너의 친절 주입기가 내게 친절을 주입했다는 것을 은연중에 담아서 말했다.

"아! 그..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층 붉어진 얼굴의 키아나가 급하게 사라졌다.

내 의도가 키아나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았다.

키아나가 자신의 과도한 친절 주입기를 자각해 부끄러움을 느낀 모습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내 완벽한 처세술에 스스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자네는 여러모로 노답이군.'

검의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개운함을 느끼며 기숙사로 돌아갔다.

간단하게 씻고 누웠다.

피곤함 때문에 금방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도 긴 하루였어.

몸 위에서 무언가가 누르는 느낌때문에 잠에서 깼다.

뭐야 왜 무겁지.

눈을 뜨니 누군가가 내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시발 뭐야.

소름끼치는 느낌에 잠이 단번에 확 깼다.

귀신이야? 나 성수 마셨는디.

'딸꾹'

검이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검의 딸꾹질에 내 위에 있는 물체가 루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얘가 왜 여기 누워있어? 큰 눈을 감지도 않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루나와 눈이 마주쳤다.

시발 매일 밤마다 공포물을 한 편씩 찍고 있네.

내일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감도 안 왔다.

눈을 돌려서 보니 오늘은 다행히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당황하지 말자.

그냥 루나가 내 방에 몰래 들어와서 잠자는 내 위에서 엎드려있는 것 뿐이잖아.

별 거 아니잖아.

어제는 검을 들고 서 있고 오늘은 내 위에 엎드려 있는 게 뭐 이상한 건가?

이상한 거지 시발.

확실해 이건 이상한 거야.

"아..깼어? 안 깨우려고 했는데!"

루나가 얼굴을 내 얼굴에 가까이 들이댔다.

그냥 거기서 말해도 잘 들려.

그리고 몸 위에 무언가 올라가 있으면 보통 사람들은 다 깨.

루나의 얼굴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다.

"어.. 근데 뭐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입 냄새가 나지 않도록 숨을 들이마셨다.

"충전"

루나의 입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충전?"

"응 충전"

분명 대화를 했는데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긴 단어도 아닌데.

"내 위에서?"

"응. 충전"

루나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시 물어봐도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루나를 이해하려고 한 내 잘못 아닐까?

아마 내 잘못이 맞을 거야.

루나에게서 맑은 책 냄새 그리고 그 사이에 은은한 피 냄새가 났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응. 아직 조금 더 남았어."

루나가 얼굴을 내 가슴에 가져다 댔다.

자기 전에 씻고 바로 누워서 나는 속옷밖에 입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루나의 부드러운 볼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루나는 내 위에서 자꾸 꼼지락거렸다.

약간 위험한데 이건.

나는 필사적으로 오늘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을 복습했다.

전설의 용사 벨 크리다흐의 파티에는 유리 가트 린나 케냑이 있다.

가트의 이름을 되새기니까 갑자기 가슴이 차가워졌다.

뭐지?

효과 있네.

가트가트가트

몇 번을 되뇌이자 혈기왕성한 몸이 진정했다.

다시 눈을 뜨니 루나가 조용히 자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덩치가 생각보다 더 작았다.

피곤한 일이 있었는지 금방 잠들었다.

손을 어디에다 둬야 될지 몰라서 당황하다가 그냥 옆에다가 뒀다.

누군가 위에 있다는 게 조금 많이 불편했지만, 루나가 가벼워서 다시 잘 수 있었다.

루나의 이상함에 원치 않지만 적응하고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또 일찍 일어났다.

루나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침대 옆에는 샌드위치와 우유가 놓여있었다.

아침으로 먹으라고 두고 간건가?

샌드위치에 큼지막하게 삐뚤빼뚤한 하트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마침 배가 고팠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바로 먹었다.

샌드위치는 진짜 맛있었다.

고기와 이런저런 양념 그리고 채소들이 섞여 있었는데 정확하게 내 입맛이었다.

루나 얘는 어떻게 내 취향을 이렇게 잘 알지?

'보통 그러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나?'

루나는 원래 이상한데.

걔는 이상한 게 정상이야.

'속 편하군'

그런 말 많이 듣지.

맛있네 이거.

불쌍하다 너는 이런 걸 못 느끼니.

'원래 불행이라는 것은 아는 것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아예 모르니 오히려 행복한 거지'

오­ 꽤 유식해 보이는 말인데.

기억해둬야겠다. 불행이라는 것은 아는 데에서 온다..

다 먹은 것을 치우고 간단히 나가서 달리기했다.

달리기 자세는 어제보다도 더 좋아졌다.

샌드위치를 먹고 아침 달리기까지.

완벽한 모범생 아닐까?

아침 운동을 하니 상쾌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모범생과 샌드위치는 무슨 관계지?'

느낌이 그렇다고 느낌이.

***

1교시는 '마물의 이해'시간이었다.

루나가 준 종이들을 챙겨서 기숙사를 나왔다.

일단은 매점부터 먼저 들려야 한다.

비키님에게 바칠 딸기 우유랑 키아나를 만나면 상납할 메론빵을 구해둬야 한다.

다행히 매점이 열려있었다.

"딸기 우유랑 메론빵이랑 초코바 하나 주세요."

나는 돈을 지불하고 물건들을 받았다.

이 정도면 오늘 하루는 무사히 넘어가겠지.

내 생명 유지 장치들을 챙겨서 강의실로 이동했다.

강의실에는 아직 학생이 없었다.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며 늘 그렇듯이 강의실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하나둘 학생들이 들어왔다.

"어­이 유급생"

밥버러지 드숀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뻐킹 어글리 오렌지. 시발 조사해왔냐?"

드숀에게 정겨운 아침인사를 건넸다.

"그런 건 너 같은 평민이나 하는 거라니까. 나 같은 귀족은 그런 거 안 한다고. 쯧"

드숀이 자신의 주황색 머리를 쓸어넘기며 재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넌 시발 이따가 비키님한테 귀 한쪽 물어뜯길 준비해라.

벌써 드숀이 짝귀로 도박판을 전전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드숀의 옆자리에 철수가 크큭거리면서 앉았다.

"좋은 아침이야 '연'"

"크큭.. 좋은 아침이군. 고귀한 드숀 크큭.."

둘 다 아싸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연이고 고귀한이고 자기들끼리 신난듯했다.

"철수 시발 너 저번에 도서관 같이 가자니까 어디로 튀었냐 ? 매콤 주먹 맛 좀 볼래 ?"

무시무시하게 생긴 매콤 주먹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크큭... 그런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나는 오직 파괴.. 혼돈.. 크큭"

"그런 건 너 같은 평민이나 하는 거라니까. 으휴"

비정상 두 명이 뭉쳐있으니까 대화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두 명의 당당한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물론 나도 조사를 안 했지만 그래도 나는 루나가 준 자료가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나는 조사를 한 것이다.

그냥 둘 다 쥐어팰까.

이제 이대일로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쟤네가 아직 내 매콤 주먹 맛을 못 봐서 까불거리는 게 분명했다.

'그 의견은 나도 동감이다.크큭'

너는 또 왜 크큭거려 시발.

내 매콤 주먹을 꺼내려고 할 때, 옆에서 한 입 깨문 딸기 냄새가 났다.

빠르게 일어나서 내 옆자리의 의자를 뺐다.

비키가 내가 빼둔 의자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흐응­ 그래서 안 했다고 ?"

비키가 혀로 피처럼 붉은 입술을 핥으며 밥 버러지 두 명을 쳐다봤다.

"크큭.. 그렇지만 때로는 의무가 아닌 일도 하는 법 크큭.."

철수가 종이 몇 장을 품속에서 꺼냈다.

종이는 꼬깃꼬깃 구겨져 있었다.

"그렇지. 귀족에게는 귀족의 의무가 있는 법"

드숀도 자신의 가죽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이 새끼들 다 조사해왔으면서 쓸데없이 센 척 하기는.

"아쉽네."

비키가 탄탄한 다리를 책상에 올렸다.

짧은 치마 때문에 드러난 비키의 다리를 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딸기 우유"

비키가 야수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넵"

나는 냉큼 일어나 비키의 손에 딸기 우유를 꺼내서 올려놨다.

"빨대는?"

비키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아차 내가 이런 실수를.

비키님의 혓바닥이 불길하게 입술을 핥았다.

***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남부 흑마법사의 총집회가 있는 날.

음지에만 숨어 살던 우리가 힘을 합치기로 한 날이었다.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동지들이 속속히 모이고 있었다.

"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긁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쿠를이 분명하군. 잘 지냈지 하하 자네의 그 악취미는 여전하구만"

벤 옆에는 발가벗은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벤은 이쁜 여자를 언데드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는 악취미가 있었다.

저 취미 때문에 대륙 공적으로 찍혔는데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하하하 자네도 해보게 꽤 쓸만하다네"

벤이 여자 언데드의 엉덩이를 손으로 탁 소리가 나게 쳤다.

"나는 대륙 공적까지는 되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하하"

잡담을 떠들고 있을 때,대부분의 인원이 모였다.

"자자 동지들이여 집중해주기 바라네."

우리의 대장 단 스피너가 단상에 올랐다.

단 스피너는 고위급 리치였다.

우리 중 유일하게 리치에 도달한 흑마법사.

우리와는 급이 달랐다.

단 스피너가 뼈만 남은 손을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단 스피너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모든 흑마법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음지에서 숨어 살았다네. 우리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어서 숨어 살아야 하는가 ?"

단 스피터의 눈에서 푸른색 불꽃이 일렁거렸다.

우리는 단 스피터의 말에 호응했다.

당장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처녀 몇 명을 피를 구하기 위해 죽였지만.

우리가 한 행동은 사냥이었을 뿐이다.

몬스터를 잡는 건 되고 인간을 잡는 건 안된다?

모순덩어리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양지로 나갈 것이네."

단 스피터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솟아올라서 천장까지 닿았다.

"와­아!"

흑마법사들이 신나서 소리 질렀다.

나도 덩달아 같이 소리쳤다.

그때 단 스피터의 뒤에 한 소녀가 등장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와 눈동자.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미인들을 봤지만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압도적인 미모.

근데 눈동자에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아서 사람보다는 인형 같았다.

"뭐야 단 스피터님이 준비한 물건인가? 흐흐"

"이거 오길 진짜 잘했는데"

소녀를 본 흑마법사들이 천박한 본능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숨길 필요가 없었다.

흑마법사들끼리 모인 이곳은 본능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역시 단 스피터님!"

흑마법사들이 단 스피터의 이름을 연호했다.

흥분한 몇 명은 자신의 언데드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때 단 스피터의 해골 머리가 가루로 잘게 부서졌다.

소녀가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손을 저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흑마법사가 큰 망치로 맞은 것처럼 피떡이 됐다.

몇몇 흑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웠지만,소용없었다.

마치 자연재해 앞에 서 있는 기분을 느끼며 평생 믿지 않던 신을 간절히 찾았다.

내 앞에서 죽어가던 처녀들이 부르짖을 때처럼 신은 역시 답변이 없었다.

내 방어 마법이 압도적인 힘에 찢겨나갔다.

"오늘은 두 곳 더. 피곤해. 에이든자고있을까? 에이든저녁먹었을까? 에이든 에이든"

피곤함이 잔뜩 담긴 음성으로 중얼거린 소녀가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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