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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2화 (22/233)

〈 22화 〉 위기의 순간에 주인공이 각성하는 흔한 클리셰

* * *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를 비키가 양손으로 잡았다. 그러자 미노타우르스의 우람한 팔뚝에는 핏줄이 잔뜩 섰다.

둘의 체급차이는 말도 안 되게 났지만, 우습게도 도끼가 점점 미노타우르스 쪽으로 가까워졌다.

저 근육질 소보다 비키의 힘이 강하다고?

미노타우르스가 왼발로 비키를 차려고 했다.

비키는 몸을 옆으로 틀어서 왼발을 피하고 미노타우르스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텅빈 미노타우르스의 명치에 비키의 주먹이 정확하게 들어갔다.

쿵 소리와 함께 그 큰 미노타우르스의 몸이 공중으로 살짝 들렸다.

미노타우르스가 잠깐 멈춘 틈을 타서 비키가 미노타우르스의 등 뒤에 매달렸다.

그리고 미노타우르스의 굵은 목을 양팔로 졸랐다.

"크허어어엉!"

미노타우르스가 신전이 울릴 만큼 크게 발버둥 쳤다.

비키는 미노타우르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미노타우르스에게 매달렸다.

발버둥 치던 미노타우르스가 큼지막한 주먹으로 비키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그러자 큰 충격에 비키의 양팔이 순간적으로 풀렸고 그 틈에 미노타우르스가 비키의 몸을 잡아 땅에 처박았다.

쿵! 소리가 나면서 비키가 땅에 부딪혔다.

미노타우르스가 다시금 비키를 잡아 땅에 계속해서 처박았다.

땅에 처박히는 와중에도 비키는 미노타우르스의 손목을 잡아서 꺾었다.

"크아아악! 이 미천한 인간 놈!"

미노타우르스가 비명을 지르며 도끼로 비키를 찍었다.

옆으로 굴러서 도끼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비키가 아까 분지른 손목 쪽으로 뛰었다.

비키가 미노타우르스의 손목을 다시 잡았을 때, 미노타우르스의 다른 손이 비키의 목을 잡았다.

비키는 미노타우르스의 손에 저항했지만, 힘이 부족해 목을 잡혔다.

목을 잡힌 비키가 발버둥쳤지만, 미노타우르스는 비키의 목을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켁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키의 움직임이 점점 작아졌다.

아무리 비키라도 저건 위험해보였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해야 돼 이거 시발.

'집중해라 소년.'

검이 내 정신을 깨웠다.

그래 시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나는 일단 검을 뽑아서 무작정 비키에게 뛰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뛰는거지?

유급생 따위가.

발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나는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나는 원래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는 캐릭터라고 시발.

두려웠다.

나 무슨 병 걸렸나 봐.

왜, 시발 저게 거슬리는 거야.

시발.

검을 든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집중해라 소년. 내가 베지 못하는 건 없으니'

검이 진지하게 말했다.

시발.

저 괴상망측한 근육질 소고기도 벨 수 있어?

'크하하하 물론! 나는 도마뱀 고기도 벨 수 있다! 질긴 건 도마뱀 고기가 제일이거든!'

내 질문에 검이 크게 웃었다.

그렇단 말이지.

시발.

'그러니 날 믿고 집중해라 소년.'

검을 든 손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그러자 검을 든 손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집중해라 소년. 살고 싶다면'

당연히 살고 싶지 시발.

존나 살고 싶다고.

하지 못한 게 너무 많아 시발.

심장이 소리내어 뛰고 있었다.

심장에서 무언가가 미세하게 느껴졌다.

'기억해내라 소년. 살고 싶다면'

뭘 기억하라는 거야 미친 검 새끼야.

독촉하지 마 시발.

나는 압박감 받으면 더 못하는 타입이라고.

심장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던 게 약간 더 커지며 미노타우르스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두꺼운 미노타우르스의 팔이 보였다.

무슨 팔이 내 몸보다 두꺼워 시발.

'기억해.'

독촉 하지 말라고 시발.

검 새끼야.

심장에서 뛰던 무언가가 팔로 그리고 다리로 이동했다.

그 느낌이 너무 시원했다.

온 몸에 힘이 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계속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럼 다시'

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머리를 강타했다.

누군가가 검을 들고 베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남자는 수도 없이 베어내고 있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끊임없이.

질리지도 않고 베는구만.

근데 내가 저걸 어디서 봤지?

'그럼 다시.'

결국 나는 미노타우르스의 바로 앞에 도착했다.

가까이에서 본 미노타우르스의 위압감은 숨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이거랑 어떻게 싸우고 있던거야 저 미친 여자는.

머릿속에 떠오른 궤적을 따라서 내 몸이 움직였다.

이렇게 였나?

아니야 여기서는 조금 더...

'그럼 다시!'

몸은 무겁게.

팔은 부드럽게.

검은 가볍게.

그리고 ... 뭐였더라 ?

'그럼 다시 !!'

마음은 굳게.

누군가가 내게 속삭였다.

내가 베지 못하는 건 없으니.

그것이 무엇이든.

마침내 검이 가벼워졌다.

비키를 잡은 미노타우르스의 팔이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시발 저게 베어지네?

"크하아아아악!"

미노타우르스의 비명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떨어지는 비키를 받아서 부드럽게 안았다.

비키는 의외로 가벼웠다.

비키가 나를 보고 놀란듯 눈이 커졌다.

그 모습이 미친 것 같지만 귀여워 보였다.

"역시 맛있게 생겼다니까."

내게 안긴 비키가 게슴츠레 나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지금 상황에 농담이 나옵니까."

검을 휘두른 팔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억지로 힘을 줘서 참았다.

"그럼 당연하지. 말했잖아. 나는 지지 않는다니까."

한 입 깨문 딸기 향이 짙게 느껴졌다.

비키가 나를 부드럽게 밀며 내 품에서 일어났다.

"절대로."

비키가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무리한 것 같은데 좀 쉬고 있어."

비키가 나를 살짝 밀어 땅바닥에 앉혔다.

서 있을 힘도 없었던 나는 비키의 손에 쉽게 쓰러졌다.

비키가 내 볼에 키스 했다.

비키의 입술은 부드럽네.

"이제부터는 누나가 알아서 할게"

비키가 다시 뒤돌아서 잘린 팔을 들고 울부짖고 있는 미노타우르스에게 다가갔다.

미노타우르스의 비명소리에 신전이 진동하고 있었다.

비키가 이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겠는데.

하고 싶던 말이나 해야지.

사실 아까부터 비키의 큰 가슴이 눈에 어른거렸다.

"가슴 보고 싶어 시발!"

마지막 힘을 모아 소리쳤다.

후련하다 시발.

비키의 크게 웃는 소리가 언뜻 들린듯 했다.

'고생했다 소년.'

검이 말하는 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정신이 점점 멀어졌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비키가 미노타우르스의 귀를 물어뜯는 장면이었다.

미노타우르스의 귀를 물고 있는 비키는 미친 듯이 크게 웃고 있었다.

저 여자도 진짜 징하네 시발.

***

비키의 첫 기억은 또래 아이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었다.

그 아이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든 내 손을 풀기 위해 반항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 아이의 저항에 내 팔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 아이의 눈에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미안해미안해미안해.

아이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나는 손에 힘을 줬다.

마침내 아이의 움직임이 멈추고 아이의 입에서 토가 나와서 내 손에 묻었다.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무서웠다.

저게 내일의 내 모습일까 봐.

그 아이의 눈에는 더 이상 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죽은 아이의 귀를 잡아 뜯었다.

순식간에 내 손은 피범벅이 됐다.

나는 뜯은 귀를 옆에 있는 남자에게 건넸다.

"잘했다. 17호. 혼혈답게 기대가 되는군."

귀를 건네받은 남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나를 칭찬했다.

우습게도 그 칭찬에 나는 안도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아니야.

나는 잘한 거야.

남자는 내게 초코바를 건넸다.

나는 초코바를 받아서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를 죽이고 먹은 초코바는 너무 맛있었다.

나는 그렇게 방에서 숨죽여 울면서 초코바를 꼭꼭 씹어 먹었다.

어린 나이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내 손에 죽은 아이들처럼.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내 또래의 아이들을 싸워서 이겼다.

그리고 죽였다.

귀를 뜯어서 옆에서 지켜보는 남자에게 건넸다.

그럼 남자는 보상으로 초코바를 줬다.

어느 순간부터 보상으로 받은 초코바의 맛이 역하게 느껴져 먹지 못했다.

아닌가 내가 역한 건가.

나는 초코바를 침대 아래에 숨겨뒀다.

어느 날 남자가 나를 불렀다.

그날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처음 보는 아이들과 같이 모여있었다.

이렇게 다수의 아이들과 모인 적은 처음이라 두려웠다.

누구부터 죽여야 할지 계산했다.

왼쪽 아이가 오른쪽 아이보다는 약해 보였다.

그럼 왼쪽부터.

"여러분들은 기본 훈련을 통과한 수재들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여러분은 제국을 지키기 위한 힘이 될 것이다."

남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우리를 칭찬했다.

다행히도 서로 죽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훈련은 2인 1조로 이루어진다. 조를 짜줄 테니 항상 2인 1조로 움직이도록"

남자가 조를 불러줬다.

내 짝은 26호였다.

검은 머리의 여자 아이가 내게 와서 인사했다.

"안녕 너가 17호지? 이제부터 나랑 짝이야!"

검은 머리의 여자 아이는 여기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밝게 웃었다.

"너 빨간 머리랑 빨간 눈동자 되게 이쁘다!"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내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그 손을 무의식적으로 쳐냈다.

"하하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구나. 내 이름은 리사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야?"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 이름은 17호..."

내게 이름은 17호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거면 충분했다.

"재미없기는 본인 이름도 안 지었어?"

리사가 짖궂게 웃었다.

"그럼 내가 지어줄게! 음.. 너는 비키라고 하자! 내가 비의 발음을 좋아하거든! 키는 웃는 것 같아서 재밌고! 어때 마음에 들어?"

리사의 밝은 웃음에 나도 모르게 끄덕였다.

"그럼 반가워 비키! 앞으로 잘 해보자!"

마주 잡은 리사의 손은 따뜻했다.

내가 죽였던 아이들의 목보다 더.

따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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