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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3화 (23/233)

〈 23화 〉 가슴 보고 싶어 !

* * *

리사의 밝은 성격 덕분에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이 지옥 같은 환경에서조차 리사는 친절하고 밝고 영리했다.

나는 리사 덕분에 이 지옥 같은 환경에 점점 적응할 수 있었다.

리사를 점점 더 의지하게 됐다.

리사는 내 친구이며, 엄마였고, 전부였다.

우리의 훈련 상대는 이제 마물들이었다.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마물들과 싸우면서 깨달았다.

나는 남들보다 단단했으며 강했다.

내 덩치의 수배나 되는 마물들도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

다행이야 마물들에게서 리사를 지킬 수 있어서.

우리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고마워! 비키!"

쓰러져 있던 리사를 일으켜 세웠다.

리사의 감사에 나는 기뻤다.

리사에게는 내가 필요해.

"에잇 ! 못생긴 마물 !"

리사가 쓰러져있는 초록색 괴물을 우스꽝스럽게 발로 찼다.

그리고 초록색 괴물들의 귀를 뜯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

"비키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 그런데 나는 항상 비키에게 폐만 되고..."

리사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리사가 있어서 내가 강해지는 걸"

리사는 내게 싸우는 이유가 됐다.

그 이유 덕분에 나는 더 강해질 수가 있었다.

리사와 함께면 나는 절대 지지 않는다.

"수고했다. 17호 26호."

남자가 늘 그렇듯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리사가 남자의 손에 초록색 귀들을 올려놨다.

남자가 초코바를 건네줬다.

우리는 사이좋게 초코바 하나씩을 까먹으면서 돌아갔다.

리사를 만나고 나는 다시 초코바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있잖아. 비키는 몸을 너무 아끼지 않는것 같아. 물론 비키의 몸은 단단하지만."

리사가 초콜릿을 씹으며 말했다.

리사의 말이 맞다.

나는 다치지 않으니 몸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다치지 않으니까."

"그래도 나중에는 다칠 수도 있잖아. 나중에 ! "

리사가 초콜릿을 삼켰다.

나중까지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리사의 말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훈련을 할거야. 위험이 되는 공격에 자동으로 반격하는"

리사가 주먹으로 내 어깨를 살짝 쳤다.

"알았지 ?!"

리사가 위로 살짝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쳐다봤다.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 봐봐 이렇게 때린다!"

리사가 동작을 크게 하며 주먹으로 내 심장 부분을 살짝 쳤다.

"뭐야?! 왜 반응안해!"

가뜩이나 위로 찢어진 리사의 눈이 더 찢어졌다.

나는 결국 참았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리사는 그 후로 우스꽝스러운 훈련을 계속했다.

결국, 리사의 바람대로 나는 위협이 되는 공격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반격을 했다.

그렇게 몇 년에 걸친 훈련을 버텼다.

훈련생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훈련 난이도였다.

나도 리사라는 희망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중간에 미쳐버렸을 거야 아마.

확실하다. 훈련 난이도는 말이 안 됐다.

리사가 어느 순간부터 훈련이 아니라 실험이라고 불렀다.

훈련이면 이 정도 난이도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리사의 말에 동의했다.

리사의 말은 항상 옳았다.

"비키! 비키! 이제 곧 실험이 끝난 데 !"

리사가 내 등에 업혔다.

리사의 따뜻한 몸이 느껴졌다.

"어 들었어. 개 같은 자식들. 이렇게까지 굴릴 필요는 없었잖아."

"와!­ 비키의 가슴은 더 커진 것 같아. 가슴에 좋다는 딸기 우유를 그렇게 마신 나는 이 모양인데."

리사가 내 가슴을 주무르면서 말했다.

"흣­"

나도 모르게 신음성이 나왔다.

가슴은 유일하게 내 예민한 부위였다.

리사는 언젠가부터 내 가슴을 주무르는 걸 좋아했다.

이런 살덩어리에 리사가 왜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딸기 우유가 가슴에 좋다는 들은 리사는 언제부턴가 교관에게 부탁해 딸기 우유만 마시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곧 끝나니까! 나가면 뭐할 거야 비키는­?"

리사가 여전히 내 가슴을 만지면서 말했다.

"몰라."

언젠가부터 지옥 같은 훈련은 내 삶이 되었다.

자유를 받는다고 해도 뭘 해야 할지 상상이 안 됐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여기서 태어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밖의 세상은 이제 생각나지 않았다.

"그럼 나랑 같이 용­사나 할까~?"

리사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내 눈 바로 앞까지 온 리사의 찢어진 눈이 호선으로 휘었다.

리사에게서 물에 젖은 천 냄새가 났다.

"용사 ? 저 개 같은 제국 놈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 ?"

"내 어릴 적 꿈이 용­사였거든. 그리고 제국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 "

리사가 우스꽝스럽게 팔을 쭉 폈다.

리사는 꿈조차 친절하고 따뜻했다.

"세상을 구하는 용­사! 멋지지 않아 비키 ?"

리사의 말이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너가 무엇을 하든 나는 같이 할 거야. 리사."

이제 리사는 내 전부니까.

"역시 비키는 가슴 빼고는 재미없어"

"뭐?!"

리사가 짓궂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마지막 훈련장에 도착했다.

아니 실험장인가.

"흐응 여기는 처음 보는 곳이네"

리사의 말대로 지금 있는 곳은 전에 훈련하던 곳과는 달랐다.

"감옥 같은 느낌이야."

리사가 어깨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검은색 철로 사방이 막혀있었다.

"지금부터 마지막 훈련을 실시하겠다."

벽 너머에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앞의 벽이 열리면서 수많은 마물들이 몰려왔다.

"쟤네는 저걸 어디서 잡아 오는 거래 ?!"

리사가 기겁하면서 검을 뽑았다.

"조심해 리사."

나는 그런 리사의 앞으로 나섰다.

"역시 비키는 듬직해."

리사가 내 등 뒤에서 손을 넣어 내 가슴을 만졌다.

"그럴 상황 아니야 리사"

"비키는 절대 지지 않을 텐데 뭐. 그치 ?"

"응. 여기 있어"

리사의 손을 밀어내고 마물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편이 리사가 더 안전하다.

수많은 마물들의 목을 뽑고 부셨다.

몇 마리나 죽였을까.

내 주변은 마물들의 시체가 쌓여있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마물들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애써 외면했지만 점점 내 몸이 지쳐갔다.

이 미친놈들은 애초에 우리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최대한 마물이 리사한테 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싸웠다.

내가 죽는 건 상관 없지만 리사는 안 돼.

"역시 반쪽짜리라 그게 다인가."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었지만 마물들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살 기회를 주지. 둘 중 서로 죽여서 살아남은 한 명을 살려주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미건조하게 했다.

가볍게 무시했다.

리사가 없는 선택지는 내게 없다.

"개소리하네. 시발것들이."

간단하게 무시하고 앞 마물의 머리를 잡아 땅에 처박았다.

뇌수가 진득하게 내 손에 묻었다.

머리가 터진 마물의 손이 나를 붙잡았지만 손채로 뜯어냈다.

징그럽게도 들러붙는군.

다음은 옆에서 나를 물려고 달려드는 마물의 주둥이를 위아래로 찢었다.

마물의 검은색 피가 온 몸에 묻었지만, 상관 없었다.

"리사 걱정하지 마! 내가 꼭 ! 어 !?"

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공격에 무의식적으로 손이 나갔다.

내 손은 뒤에서 공격한 물체를 꿰뚫었다.

마물의 가죽은 이렇게 얇지 않은데 ?

뒤를 돌아보니 내 손이 리사의 배를 꿰뚫고 있었다.

"어?"

리사의 손에 들린 초코바가 내 심장 부분을 찌르고 있었다.

리사의 입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났다.

"리사?"

주위에 있던 마물들이 물러났다.

"큭.. 내가 훈련 하나는 잘 시킨단 말이야. 그치 ?"

리사의 얼굴이 창백했다.

내 입이 굳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잖아. 비키, 저 새끼들 말 번복 안 하는 거. 쿨럭"

리사의 입에서 빨간 피가 한 움큼 나왔다.

리사는 이런 상황에서도 영리했다.

"리사?"

"뻔한 전개잖아.둘이 서로 죽여라­ 하. 조 짜줄 때부터 이럴 거 같더라니 시발. 뻔한 새끼들. 아­ 비키 가슴 한 번이라도 더 볼걸... "

리사가 입에서 토하는 피와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말을 했다.

더욱 현실이 멀게 느껴졌다.

"리사?"

이게 진짜야 ?

어지러웠다.

"비키."

리사가 다시 붉은 피를 한움큼 뱉으면서 나를 불렀다.

"응응 리사 리사 ?"

나는 리사를 꿰뚫은 팔을 빼지도 못한 채 쓰러지는 리사를 안았다.

"절대로 지지마. 내 몫까지 살..."

리사가 한 글자 한 글자 내게 새기듯이 말했다.

리사의 숨이 작아지며 리사의 손에 들린 초코바가 떨어졌다.

"흠.. 이렇게 해도 별 반응이 없군. 역시 반쪽짜리는 안 되는가. 폐기해"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다시 마물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세상이 붉게 보였다.

타는듯한 고통이 내 전신을 감쌌다.

"잠깐 멈춰."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명령했다.

마물들이 멈췄다.

살갗이 타들어 갔다.

그리고 파충류의 껍질 같은 게 살갗에 돋아났다.

아니 원래 피부 아래에 있던 건가.

"크하하하 드래곤의 피가 섞였다는 게, 진짜였나 보군"

무미건조했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감정이 담겼다.

온몸이 불에 타고 있었다.

'절대 지지마'

리사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응 절대 안 질게.

힘이 넘쳐흘렀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에 있는 끝이 안 보이는 마물도.

그 너머의 검은 철문도.

"너는 합격이다! 너는 이제 제국의..."

저 개새끼도.

***

" 그럼 조별로 앉아볼게요. 조를 짜지 못했던 학생들은 뒤쪽에서 서로 확인하세요. "

껄떡거리는 몇 놈의 귀를 뜯고 나니 더는 내게 접근하는 학생은 없었다.

혼자가 편하니까 딱히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조별 과제라니 귀찮은 걸 시키네.

용사가 되기 위해 졸업은 해야 했으니 선생의 말에 따라 뒤쪽으로 갔다.

딱 봐도 친구가 없을 것 같은 세 놈이 앉아서 떠들고 있었다.

"아싸 새끼"

검은 머리의 남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인기척에 검은 머리의 남자가 뒤돌았다.

리사?

순간 헷갈렸다.

아니다 찢어진 눈이 닮았을 뿐.

리사의 콧대는 조금 더 높았다.

그렇지만 닮았다.

리사가 남자로 바뀐 모습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가까이 가니 남자에게서 리사의 냄새도 났다.

젖은 천 냄새.

가슴 깊은 곳에서 숨어있던 그리움이 차올랐다.

최대한의 호의를 담아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 개잡놈들아"

보고 싶었어 리사.

엄청.

경악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리사가 놀란 얼굴과 똑같았다.

이 지루한 용사 놀이도 꽤 재밌어지겠어.

***

"크아아아악­ 이 미친 여자가!!!"

루나는 마지막 남은 놈의 머리를 찌푸렸다.

이번 쓰레기들은 계속 재생하는 바람에 처리하는데 좀 귀찮았다.

쓰레기답게 발악하지 말고 죽을 것이지.

귀찮지만 에이든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아 에이든!

에이든 생각을 하니 금방 행복해졌다.

이따 에이든 위에서 또 충전해야지.

붉어진 에이든 귀여웠어.

에이든에이든에이든.

마지막 쓰레기를 치우고 에이든에게 붙여놓은 추적 마법을 확인했다.

에이든에게 붙여놓은 추적 마법이 먹통이었다.

"에이든?에이든?에이든?"

불안해불안해불안해.

습관적으로 씹은 손톱에서 피가 나왔다.

추적 마법이 먹통이 된 것으로 보아 아마 포탈을 통과했을 것이다.

용사 아카데미내에서 포탈은 던전 포탈밖에 없다.

루나는 서둘러 던전 관리국으로 이동했다.

장거리 이동 마법은 늘 피곤해.

"엇­ 루나양!"

"와! 루나다!"

던전 관리국 내부에는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루나는 주변의 소음을 무시하고 에이든 감지 마법을 켰다.

에이든은 이곳에 없었다.

루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포탈 입구로 향했다.

"루나 님이 여기는 무슨 일로?"

루나는 말 거는 쓰레기의 머리를 잡아서 머릿속에서 기억을 꺼냈다.

기억을 뽑힌 쓰레기가 거품을 물며 정신을 놓았다.

으 더러워.

이건 아니네.

옆에 있던 다른 쓰레기를 잡았다.

그렇게 몇 개의 쓰레기를 뒤지다가 에이든에 대한 기억을 찾았다.

이 쓰레기가 주제도 모르고.

루나는 손에 들어가는 힘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에 숨을 쉬지 못한 쓰레기의 눈이 뒤집혔다.

그동안 귀찮아서 치우지 않았던 쓰레기 중 하나가 일을 저질렀다.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아직 에이든은 아카데미에 머물러야 한다.

아카데미가 안전하니까.

응. 죽이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어.

얼굴도 기억했으니까.

일단은 에이든이 먼저야.

감히 나의 에이든을 건드린 쓰레기를 쉽게 죽여서는 안 돼.

에이든에이든에이든.

해당 포탈의 좌표를 입력하고 포탈로 들어갔다.

일단은 그 빨간 쓰레기랑 갔으니 빨간 쓰레기가 버텨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빨간 쓰레기는 쉽게 안 죽으니까.

루나도 빨간 쓰레기를 죽이는 데 실패했을 정도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저번 생에도 빨간 쓰레기는 에이든에 호의적이었다.

불안해불안해불안해.

에이든이 다치면 어떻게 하지?

다 죽여버릴 거야 그러면.

필요 없는 쓰레기들.

***

뭐지. 머리 뒤가 푹신푹신한데.

누군가가 내 얼굴을 쓰다듬는 느낌에 눈을 떴다.

익숙한 가슴 두 개가 보였다.

저 정도 크기면 비키가 유일했다.

내가 아는 여자 중 저런 무식한 크기는 비키밖에 없다.

케이트도 크지만 비키와 비교하면 부족했다.

요즘 기절만 하면 여자 무릎 위인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일어났어?"

비키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눌러서 얼굴을 보였다.

뭐야 말투가 왤캐 상냥해 시발 불안하게.

"네 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단답이 나왔다.

"흐응­ 또 그딴식으로 성의 없게 대답하면 머리 뽑힐 줄 알아"

비키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찔렀다.

그에 내 몽롱한 정신이 확 깼다.

"넵! 알겠습니다!"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지만 비키가 못 일어나게 눌렀다.

"가만히 있어"

"넵 따르겠습니다."

팔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아직도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기운을 무리하게 사용해서 그런 거야. 사제한테 보여주면 괜찮아질 거야."

비키가 어울리지 않은 친절한 말투로 설명했다.

기운?

아 그 미친 근육 소새끼는?

황급히 옆을 돌아보니 머리가 뽑힌 미노타우르스의 시체가 보였다.

진짜로 이 여자가 저 소새끼를 이긴 거야?

"내가 말했잖아. 안 진다고 나는."

비키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시원하게 웃었다.

역시 비키 누나 믿고 있었다고!

"그보다 아까 말했던 거."

비키가 어울리지 않게 우물쭈물했다.

나는 비키의 말에 기절하기 전에 죽을 줄 알고 '가슴 보고 싶어!'라고 소리쳤던 게 생각났다.

내가 미쳤었지 시발.

시발 나는 비키 누나가 이길 줄 몰랐지.

나는 황급히 비키의 말을 끊었다.

"아! 그거 제가 그때 잠깐 미쳤었..."

"보여줄게."

내 귀에 비키가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달콤한 비키의 말에 팔의 통증까지 사라졌다.

"예?"

"보여준다고."

비키의 얼굴이 어울리지 않게 붉어졌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흥분한 내 심장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이건 시험인가?

알겠다고 하면 '~라고 할 줄 알았냐 !' 하면서 대가리를 뽑아 버리는?

하지만 남자란 때로 죽을줄 알면서 들어가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네! 보고 싶습니다! 제발!"

나는 서둘러 일어나서 비키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이번에는 비키가 나를 막지 않았다.

아마 살면서 지었던 표정 중에 지금 내 표정이 가장 진지할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비키가 풋­하고 웃었다.

"아까 구해준 보답으로 보여주는 거야. 단 한 번뿐이야."

비키가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가린 천을 잡고 말했다.

비키의 눈은 어울리지 않게 아련했다.

나는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키가 붉어진 얼굴을 옆으로 돌리면서 가슴을 가린 천을 위로 올렸다.

한입 베어문 딸기 향기와 땀 냄새가 뒤섞인 향기가 확­하고 풍겨왔다.

"와­."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비키의 가슴은 하나의 예술품 그 자체였다.

신이 정성껏 빚은 큰 덩어리 두 개.

이 가슴을 평생 기억하기 위해 집중해서 뇌 속에 새겼다.

이 모습을 잊는다면 나는 살 가치가 없는 놈이다.

문제는 사람이 일어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비키의 가슴을 본 나는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만져도 될까?

비키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비키와 어울리지 않게 미친 것처럼 귀여웠다.

될까?

에라 모르겠다.

만지고 죽자 그냥.

비키의 가슴을 하나씩 손으로 잡았다.

이미 손의 통증은 잊은 지 오래였다.

"흣­"

비키는 약간 귀여운 소리를 냈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손에 두부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암묵적 동의로 알고 마음껏 만졌다.

내 손이 움직일 때마다 비키가 움찔거리면서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소리를 냈다.

지금이라면 죽어도 좋아.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때문에 표정 관리가 안 됐다.

그때 뒤쪽에서 맹렬한 살의가 느껴졌다.

뭐..뭐야 미노타우르스가 살아났나 ?

미노타우르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죽어도 좋다는 건 그냥 표현이었어요. 시발 신 새끼야.

그 거대하고 뚜렷한 살의에 놀라서 뒤를 돌자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딸꾹.'

잊고 있던 검이 딸꾹질했다.

루나였다.

근데 눈에 초점이 없는.

내 머릿속에서 미노타우르스를 볼 때보다 더 크게 경고음이 울렸다.

"이 빨간 쓰레기가."

루나가 조용히 읊조렸다.

지독한 살기가 루나에게서 퍼져 나왔다.

루나 주변의 돌들이 공중으로 치솟고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좆됐네 시발.

에라 모르겠다.

이왕 뒤지는 거 나는 비키의 가슴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주물렀다.

역시 비키의 가슴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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