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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4화 (24/233)

〈 24화 〉 미친년 대 빨간 쓰레기

* * *

"저건 또 뭐야"

비키가 피곤함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비키의 가슴에서 손을 뗐다.

조금 더 만질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당분간 손 안 씻을 거야.

아니 평생 안 씻을 거야.

아직도 손에 말랑말랑한 감촉이 남아있었다.

비키가 검은 천을 내려서 가슴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루나­?."

일단은 저 정신이 나간 상태인 루나를 진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루나가 내 말은 들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내 부름에 루나가 나를 쳐다봤다.

루나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초점 없는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마치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처럼.

눈을 왜 그렇게 뜨고 있는 거야?

나를 본 루나의 눈에 초점이 약간 돌아왔다.

루나가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나는 어느새 루나의 뒤에 서 있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루나가 내 손을 잡았다.

루나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이 빨간 쓰레기가. 감히 내 에이든을."

극도로 화난 루나가 중얼거렸다.

나를 대상으로 한 살기가 아님에도 숨 쉬는 게 힘들 정도로 농도가 짙었다.

"흐응­ 뭐야. 의외로 인기 있나 보네. 우리 변태?."

비키는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변태라니?

비키의 가슴을 보고도 그런 마음이 안 생기는 남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근데 괜찮겠어? 꼬마 아가씨­ 마법이라면 나와 상성이 안 좋을 텐데."

비키는 잠에서 깬 것처럼 기지개를 켰다.

짙은 농도의 살기에도 비키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으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루나에게서 났다.

무슨 소리야 그건.

입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는 거지?

나는 화들짝 놀라 루나를 확인했다.

이를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루나의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루나 멈­춰!."

아카데미에서 알려준 마법의 주문을 루나에게 말했지만, 역시 효과가 없었다.

루나는 이미 내 말이 안 들리는 듯했다.

이거 시발 좆된거 같은데.

루나가 조막만 한 손가락으로 비키를 가리켰다.

그러자 비키의 주변이 푹­ 하고 거대한 망치로 내려친 것처럼 눌러앉았다.

신기하게도 비키도 해당 범위 안에 있었지만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나랑 상성이 안 좋다니까. 꼬마 아가씨."

비키가 피식하고 웃으며 이죽거렸다.

으득.

루나는 '꼬마 아가씨'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를 악문 루나가 저 멀리 있는 큰 바위를 가져와 비키에게 처박았다.

하지만 비키는 날아오는 큰 바위를 무슨 모래처럼 주먹으로 가볍게 부숴버렸다.

으드득.

루나의 입에서 점점 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내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왜 갑자기 지랄이야 얘는.

루나의 검은 머리가 공중으로 치솟으며 자그마한 손을 미친 듯이 움직였다.

그에 셀 수도 없는 많은 바위와 돌들이 비키에게 처박혔지만, 비키는 그것들을 하나 하나 착실하게 부쉈다.

비키는 미노타우르스랑 싸울 때보다 강해진 거 같은데.

"하하! 이것도 나름 재밌는데! 이 정도로는 부족해 꼬마 아가씨!"

그 파괴적인 행동이 재밌는 듯 비키는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럴수록 루나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이..이익! 빨간 쓰레기 !!!"

하늘에서 불 비가 내리고 루나의 손에서 번개가 나갔다.

그 모든 걸 비키는 여유롭게 받아내고 있었다.

비키는 오히려 지금 상황이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이게 진짜 인간들이 싸우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말 그대로 천지가 개벽하고 있었다.

비키의 몸에서는 어느새 장작불에 기름을 쏟아부은 것처럼 불이 활활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불에 닿은 마법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이를 갈던 루나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마법들이 루나의 손에서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불타던 대지가 순식간에 얼음장으로 바뀌었다.

시발 저게 말이 돼?

아 추워 시발.

내가 저런 여자한테 욕을 했었다니, 내가 미쳤었지.

문득 아까 근육 소새끼 팔 하나 잘랐다고 좋아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좀 강해졌나 했더니 시발...

나 개 좆밥이네 진짜.

서러움이 차올랐다.

나도 나름 성실하게 살았는데 시발.

루나가 조막만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눈보라가 내리는 구름이 갈라지면서 집채만한 크기의 불 덩어리가 나타났다.

저건 또 뭐야 시발.

'오 저 고대 마법을 다시 보는군.'

검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지금 감탄할 때냐고 시발.

이미 루나는 돌아버린 상태라 내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고 비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 저 미친 인간 두 명한테서 멀어져야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둘의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콰아아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불 덩어리가 땅에 부딪히면서 고막에서 피가 날 것만 같은 큰 소음이 들렸다.

저런 자연재해 앞에서 나는 한낱 미물이었다.

터진 불 덩어리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고­

그리고 그중 하나가 인생이 불운 덩어리인 내게 날아와 박힌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내게 주먹만 한 돌덩이가 날아오는 게 느리게 보였다.

물론 느리게 보인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시발.

"퍽!."

그것도 하필이면 머리야 시발.

가뜩이나 나쁜 머리인데.

세상이 빙글하고 돌았다.

아니다 내가 돈 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이건.

쓰러지는 내 앞에 당황한 얼굴의 루나가 나타났다.

그 순진무구한 얼굴에 열불이 확 올라왔다.

니가 한 일이잖아 이.

"시발년아."

차오르는 분노에 욕지기가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내 욕지기를 들은 루나가 정말 하얗게, 때 묻지 않게 웃었다.

그 웃음은 루나의 눈가에 있는 눈물 자국 때문에 기괴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상황에 좋아하고 있네.

진짜 시발.

"미친년."

아­아­ 에이든을 날 사랑해­ 저딴 빨간 쓰레기가 아니라­

루나가 행복에 겨워 붉어진 볼을 한 채, 눈에서는 눈물을 줄줄 흐르고 입에서는 이상한 신음을 내는 것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말 그대로 아득해졌다.

아득해지는 게 머리를 돌덩이에 처맞아서인지, 저 미친년 때문인지 헷갈렸다.

진짜 미친년.

시발.

***

요즘 기절이 너무 잦아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습관성 기절 병 아닌가.

물론 실제로 있는 병인지는 모르지만.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그래도 살아서 던전을 나오긴 했나 보네.

왼쪽 손이 무거웠다.

옆을 보니 루나가 내 손을 잡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깜짝아!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거야 시발.

루나의 표정은 마치 강아지가 잘못했을 때 주인을 바라보는 표정과 똑같았다.

루나를 보자 갑자기 돌덩이에 맞은 부분이 아팠다.

이 미친년 진짜.

"에이든?에이든?에이든?"

루나가 내가 눈 뜬 것을 확인하고 내 손을 세게 끌어당겼다.

순간적으로 몸이 루나 쪽으로 끌려갔다.

"아! 시끄러 시발."

루나의 손을 쳐냈다.

루나가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까 세상을 멸망시킬 것 같던 루나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했지만, 교육을 단단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냥 넘어가면 이번에는 살아남았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루나를 그냥 두기에는 내 몸이 너무 연약했다.

예전에 마을에서 자신이 키우던 개에게 물려 죽은 아저씨가 생각났다.

'개를 키울 때는 벌과 상을 확실히 줘서 교육 해야 하는데 쯧쯧'

그 아저씨의 시체 앞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벌과 상을 확실히 줘야 된다 그랬어.

일단 벌부터.

"너가 이랬잖아. 시발. 미친년아."

내 머리에 둘러진 붕대를 루나에게 보여줬다.

물론 치료를 받았는지 아프지 않았지만, 일부러 아픈 척 표정을 구겼다.

욕을 먹은 루나는 좋은지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내 굳은 표정을 보고 억지로 입꼬리를 내렸다.

이게 시발 좋아할 상황이냐.

"그...그건."

루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뭐 시발. 난 내가 제일 중요해. 아픈 거 존나 싫다고."

나는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루나를 노려봤다.

내가 뱉고도 너무 쓰레기 같은 말처럼 느껴졌지만, 보통 사람은 자신이 제일 중요하지 않은가.

내 거친 말과 굳은 얼굴에 루나의 표정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미안해미안해미안해."

내 팔에 루나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좀 더 해도 될까?

하늘에서 불덩어리를 소환하던 루나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냥 당장에라도 제 대가리가 돌덩어리가 지나가는 자리에 있어서 죄송하다고 머리를 박고 싶었지만, 좀 더 확실하게 교육을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물려 죽기 싫어 시발.

루나는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처럼 내게 더 절실하게 매달렸다.

"내가미안해.미안해.미안해.내가 멍청했어.나는바보야.에이든이내전부인데.에이든말잘들을게.제발.버리지마.제발."

루나가 두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숨도 쉬지 않고 쉴 새 없이 말했다.

루나가 잡은 내 팔에 루나의 손톱자국이 짙게 그려졌다.

저것 봐.

벌써 또 물고 있잖아.

"아 시발 아프다고!."

이를 악물고 루나의 손을 쳐냈다.

"제발제발제발버리지마."

루나가 내쳐진 손을 입에 가져가서 손톱을 질근질근 씹었다.

얼마나 세게 씹었는지 루나의 손에서 피가 터져 흘렀지만, 루나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 모습이 진짜 시발 너무 무서웠다.

더이상 하면 안 될 거 같아.

아니 내가 무서워서 더이상 못 해.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일로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나가 내 몸 위로 올라와 나를 안았다.

루나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안으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시발.

"미안해미안해미안해.제발 버리지마."

루나가 서럽게 울면서 내게 더 밀착했다.

이건 너무 가까운데.

그니까 시발 내 머리 왜 때렸어.

"또 한 번 내 말 무시하거나 나 아프게 하기만 해봐."

나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말을 이었다.

"응응. 에이든 말 무조건 들을게. 날 버리지만 말아줘. 제발제발제발."

루나가 내게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니 어디까지 들어오는 거야.

놔두면 내 옷 안까지 들어올 기세였다.

"멈춰."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나의 행동이 멈췄다.

정말 말 그대로 그냥 멈췄다.

그 반응에 두려움을 참고 교육한 보람이 느껴졌다.

근데 행동을 멈춘 루나의 안색이 이상했다.

점점 루나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이 미친년.

"숨은 쉬어도 돼."

그제야 루나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칭찬해 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얘는 진짜 단단히 미친년이다.

진짜 개 무서워.

"잘했어."

그럼 이제 상을 줄 차례다.

이게 상이 진짜 상인지는 의문이 들었지만, 저 미친 루나라면 좋아할 거 같았다.

내게 들러 붙어있는 루나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내가 알고 있는 욕 들을 퍼부어줬다.

하면서도 이게 상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욕을 들을수록 붉어지는 루나의 얼굴과 부르르­ 떨면서 들썩이는 루나의 몸을 보고 확신했다.

"아­아­ 나도 사랑해 에이든­."

욕을 듣던 루나가 몸을 크게 부르르 떨더니 내 위로 쓰러졌다.

뭐야 시발 기절한 거야?

쓰러진 루나를 손가락으로 찔러도 반응이 없었다.

진짜 기절했네.

루나가 앉아있는 부분이 뭔가 축축했다.

뭐야 이건.

눈 뜨자마자 위기를 넘기니 다시금 피곤이 찾아왔다.

좀 더 자도 되겠지.

따뜻한 루나의 체온을 느끼며 무거운 눈을 감았다.

근데 철수랑 드숀도 무사하겠지?

사실 별 상관은 없었지만, 둘이 죽으면 보고서를 내가 써야 하잖아.

살아있으면 좋겠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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